익숙한 장르, 정원에서 피어나는 로맨스, <오월의 정원에서>

〈오월의 정원에서〉 웹툰은 리디의 ‘RIDI ONLY’ 및 ‘Made By RIDI’ 작품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원작 웹소설은 2024년 10월 17일 연재를 시작해 2025년 3월 18일 본편이 끝났으며, 웹툰 론칭 시기인 2026년 5월에 외전 5화가 추가됐다. 단행본은 본편 4권과 외전 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문판은 리디 계열 글로벌 플랫폼 Manta에서 〈Garden of May〉라는 제목으로 서비스되고 있는데 로맨스·역사물로 분류하면서 권력 불균형, 첫사랑, 냉정한 남자 주인공, 능력 있는 여자 주인공, 씁쓸한 분위기 등을 주요 태그로 제시하고 있다. 2026년 8월 26일 확인 기준 영문판은 24화까지 공개되어 있다. 오늘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웹툰 〈오월의 정원에서〉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아름답다. 햇빛이 스며드는 정원, 꽃잎처럼 이어지는 색감 위에 두 주인공이 펼치는 장면을 본 독자는 금방 작품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그렇지만 이 작품의 인기를 단지 ‘작화가 좋은 로맨스 웹툰’이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 작품은 무수히 반복되어 온 로맨스 판타지 설정을 그대로 가져다 쓴, 클리셰로 가득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 익숙함이 여전히 통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다는 데 있다.

기본 구조는 이렇다. 몰락한 귀족 영애 바네사가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하려고 한 남자에게 연인 행세를 부탁한다. 평범한 정원사 집안의 청년이라고 믿었던 남자는 사실 신분과 권력을 가진 공작 시어도어다. (정말 너무 뻔하다.) 계약 관계, 신분 위장, 몰락 귀족 여주인공, 냉정하고 오만한 남자 주인공, 오해와 후회로 이어지는 사랑까지. 웹소설과 로맨스 웹툰에서 수없이 반복된 장치들이다. 그런데도 독자는 다시 이 이야기를 읽는다. 막장드라마를 찾는 이유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결말의 방향을 짐작하면서도 두 사람이 언제 마음을 인정할지, 거짓말이 언제 드러날지, 엇갈린 관계가 다시 이어질 수 있을지를 조마조마하며 기다린다. 창작을 하면서 작가는 늘 새로움을 찾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이 원하는 것은 낯선 설정보다 익숙한 약속이다. 너무 새로운 것 앞에서 독자는 오히려 머뭇거린다. 이미 알고 있는 장면이 얼마나 정교하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시 그려지는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오월의 정원에서〉가 생소함보다 완성도를 택한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차별점은 작화가 아름답다는 점에만 있지 않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아름다운 정원은 두 사람의 사랑을 꾸미는 배경이자 현실이 잠시 유예되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분명 현실인데 판타지 같은 공기를 만들어 내는 매개가 바로 이 정원이다. 그 안에서 바네사는 원하지 않는 결혼을 기다리던 몰락 귀족 영애에서 자신의 욕망을 말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시어도어 역시 공작이라는 신분을 감춘 채 다른 이름으로 그녀 앞에 선다. 두 사람은 정원 안에서만 가능한 관계로 시작하고, 독자는 그 평온이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계절의 찬란한 빛을 함께 누리고 싶어진다. 작화의 아름다움은 이 유예된 시간을 충분히 설득한다. 웹소설에서 문장과 독백으로 설명되던 마음의 흔들림이 웹툰에서는 표정과 동작으로, 화면의 구도와 컷 사이의 호흡으로 옮겨 왔다. 좋은 노블코믹스는 원작의 문장이 만들어 냈던 감각을 웹툰의 언어로 다시 번역해 낸다. 그 기준에서 이 작품의 각색은 성공적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원작의 성인 로맨스적 성격을 연령대를 낮추면서 절제된 방식으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원작 독자에게는 직접적인 표현이 줄어든 것이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웹툰은 관계의 긴장을 다른 곳에서 찾았다. 노골적인 장면 대신 인물 사이의 분위기와 거리, 머뭇거리는 시간의 여운으로 승부한다. 보여주는 장면을 줄인 만큼 독자가 상상으로 채워야 할 공간이 생겼다. 독자층과 매체를 고려한 영리한 재설계다. 직접적인 묘사에 기대면 관계의 깊이보다 자극만 남기 쉽다. 〈오월의 정원에서〉는 욕망을 지우지 않은 채 바네사와 시어도어의 표정과 공기 속에 녹여내며 로맨스의 온도를 지켰다.
노블코믹스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웹소설은 캐릭터의 내면과 사건의 축적에 강하다. 웹툰의 무기는 웹소설과는 다르다. 캐릭터의 비주얼과 공간을 하나의 이미지로 새겨 넣는 힘이다. 독자가 저마다 상상하던 바네사와 시어도어는 웹툰에서 구체적인 얼굴을 얻었고, 정원과 저택은 기억되는 장소가 되었다. 웹툰으로 작품을 처음 접한 독자들은 원작으로 이동한다. 이른바 역주행이다. 원작과 각색물이 서로의 입구가 되어 주는 셈인 것이다.

〈오월의 정원에서〉는 웹소설에서 전자책으로, 다시 웹툰과 글로벌 서비스로 확장되는 오늘날의 IP 구조를 그대로 보여 준다. 완결된 원작은 웹툰 제작에 안정적인 서사 기반을 제공한다. 웹툰은 그 보답으로 원작을 몰랐던 새로운 독자를 불러들인다. 캐릭터와 장면이 시각 이미지로 남은 뒤라면 해외 독자의 웹소설 진입 장벽도 낮아진다. 로맨스의 감정 구조는 문화의 차이를 쉽게 넘을 수 있고, 아름다운 작화로 번역보다 먼저 독자를 설득해 두었기 때문이다. 결국 노블코믹스는 하나의 이야기를 새로운 독자와 시장에 맞게 다시 설계하는 작업이다.
물론 익숙한 장르 공식은 한계이기도 하다. 시어도어의 정체와 거짓말, 바네사에게 닥칠 위기, 관계가 무너질 방향 같은 것은 장르에 익숙한 독자라면 너무 쉽게 예상할 수 있지 않겠나. 남자 주인공의 외모가 그의 기만과 권력 우위를 낭만적으로 덮어 버릴 위험도 있다. 다행히 작품은 바네사에게 다른 역할을 준다. 그녀는 구원을 기다리는 대신 불리한 조건 안에서 자신의 평판과 관계를 거래하며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다. 제한된 상황에서 짜낸 자구책에 가깝지만, 그 불완전한 능동성이 캐릭터를 살아 있게 만든다.
바네사와 시어도어는 둘 다 상대를 이용하며 관계를 시작한다. 바네사는 강제 결혼을 피하려고 위험한 선택을 했고, 시어도어는 자신의 신분과 정보를 감춘 채 그 상황을 즐긴다.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대가도 서로 다르다. 이 비대칭 덕분에 두 사람의 로맨스는 밀고 당기기를 넘어 신뢰와 선택권의 문제가 된다. 앞으로의 각색에서는 사랑의 성취만큼이나 이 불균형을 다루는 방식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 작품의 인기는 독자가 좋아하는 익숙한 요소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아름다운 화면과 절제된 감정 연출로 다시 조합한 데서 나왔다. 익숙한 클리셰는 때로 진부함의 다른 이름이지만, 장르 안에서는 독자가 안심하고 들어설 수 있는 문이기도 하다. 〈오월의 정원에서〉는 계약 연애와 신분 차이라는 낡은 문을 열고, 그 안을 오월의 빛과 정원의 공기, 두 인물의 미세한 시선으로 채웠다. 19세 수위의 직접적인 자극 없이도 충분히 설렌다. 결말을 짐작하면서도 다음 화를 기다리게 한다. 완결된 웹소설이 웹툰을 통해 다시 현재의 작품으로 살아나는 과정을 눈앞에서 보여 준다.
우리는 여전히 익숙한 사랑을 찾는다. 다만 그 사랑이 더 아름답고 세심하게, 지금의 기대에 맞는 방식으로 다시 이야기되기를 바랄 뿐이다. 〈오월의 정원에서〉는 그 기대를 정확히 읽어 낸, 보기 드물게 영리한 노블코믹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