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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나는 귀머거리다〉가 교육 현장에 건네는 질문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생생한 경험으로 낯선 세계의 감각과 용기를 담은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로 초대하는 리뷰.

2026-10-06 홍서희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가 교육 현장에 건네는 질문
: ‘소리 없는 세상’이라는 낯선 세계의 감각과 타인에게 나를 드러내는 용기




서른여 명의 학생이 모인 학교 수업에서 교사인 나조차 특수학생을 방치했던 기억이 있다. 그 학생은 잠을 자지도, 수업 활동에 참여하지도 않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50분 내내 가만히 앉아 있었다. 특수 담당 교사에게 물어보니, 그 학생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것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고 했다.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인지와 감각 체계를 지닌 학생과 나는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학생은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라는 부끄러운 자문에서 출발해 만난 작품이 바로 라일라 작가의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2015.8.11.~2017.7.11.)이다.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 표지)


‘귀머거리’, 즉 청각장애인의 일상을 담은 이 옴니버스 웹툰은 ‘소리의 부재’를 연민이나 아픔의 신파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소리가 지워진 자리에 드러난 사물의 미세한 감각과 진동, 타인의 세밀한 표정 변화, 이로 인한 관계의 새로운 모습과 같은 ‘또 다른 세계’의 모습을 재치 있게 그리고 있다. 문학 특히 시 교육의 본질이 타성적 감각을 깨고 대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감수성을 계발하는 것이라면, 이 웹툰은 청각의 부재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미학적 시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을 떠올려 보자. 화창한 가을날, 청계천 변을 산책하고 있다. 청량하게 들려오는 개울물 소리와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여 본다. 도심에서 피곤했던 일상의 때를 말끔히 씻어주는 느낌이다. 이때 소리가 사라진다. 적막하다……. 고요하다. 소리가 사라진 세계. 햇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각도를 달리 그리며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바람도 살랑살랑 분다. 부드럽다. 사람들은 즐거운 듯 연인끼리, 가족끼리 웃고 있다. 그렇게 세상은 살아있으면서도 문득 고요해진다. 


(필자 AI 생성 이미지)


이 작품이 주는 즐거움이 청각의 부재가 전해주는 새로운 감각의 전이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인 ‘라일라’가 보여주는 관계 맺음과 삶의 방식은 ‘장애인’을 무언가 ‘결핍된 존재’로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을 뒤집는다. ‘라일라’는 청각 장애를 지닌 자신을 온전히 수용한다. 이는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생각하거나, 오히려 정반대로 ‘장애인’임을 내세워 특권을 주장하고 ‘나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식의 기만적 에고를 보여주는 양편의 극단을 부정한다. 박쥐가 초음파로, 돌고래가 반향정위로 세상을 감각하듯이, 청각이 없는 라일라와 그렇지 않은 일반인은 단지 서로 다른 환경세계를 살아갈 뿐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생물기호학(biosemiotics)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생물학자 야콥 폰 윅스퀼(1864~1944)은 모든 생물이 자신의 감각기관에 따라 저마다 다른 ‘환경세계(Umwelt)’를 산다고 보았다. 이 생물학적 통찰은 철학계에도 큰 영감을 주어, 하이데거와 메를로퐁티 같은 현상학자들은 인간이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철저하게 신체와 감각을 통해 세계와 얽혀 있는 존재임에 주목했다. 나아가 이 개념은 오늘날 동물이 세상을 어떻게 지각하는지 연구하는 동물행동학은 물론, 인간이나 인공지능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주관적인 인식을 형성하는 과정을 다루는 인지과학에서도 핵심적 참고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세계’의 차이는 비단 종과 종 사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같은 종 안에서도, 각자가 지닌 감각의 조건에 따라 저마다 고유한 주관적 우주를 살아간다. 장애를 결핍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감각 체계를 지닌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은 결국 모든 생명이 각자의 안경으로 세상을 읽어낸다는 윅스퀼의 통찰과 만난다. 


물론 라일라의 자기수용과는 별개로, ‘일반인’을 기준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청각장애인이 처한 현실의 열악함은 웹툰의 이곳저곳에서 언급된다. 가령 라일라가 초·중·고 12년 동안 수업 시간 내내 책상만 보고 앉아 있다가 대학에 가서야 비로소 대필 도우미를 지원받고 감격한 사연이나, 대학생이던 2011년에 장애인 지원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간 미국 연수에서 각종 장애인 지원 체제1)와 유니버설 디자인2)을 접하며 감탄한 일화를 살펴볼 수 있다. 라일라는 이러한 사회적 차이를 단지 기술적 격차로만 파악하지 않고, “한국이 장애를 ‘고쳐야 할 것’으로 보고 의학 기술로 치료하고자 한다면, 미국은 그 사람의 ‘정체성’으로 보고 생활에 불편함이 없게끔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미국 장애인들을 보며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거나 부정당하지 않는 사람의 미소”를 읽는다.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 136화)


라일라가 목격한 이 격차는 이후 실제로 좁혀져 왔다. 이 웹툰의 영향으로 2017년 포항공대에 다니던 윤지현 대표는 속기 지원, 수화 통역 등 청각장애인을 위한 지원 서비스인 인공지능 프로그램 ‘소보로(소리를보는통로)’를 개발하는 벤처기업을 설립한다.3) 이 프로그램은 현재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의 보조공학기기 지원 품목으로 등록돼 있어, 청각 장애 학생은 학교를 통한 교육청 지원·심사 절차를 거쳐 무상으로 기기 및 라이선스를 대여(1년 단위)받을 수 있다.4)


그러나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실제적 배치는 여전히 학교의 적극성이나 학생의 문제 제기에 달려 있다. 2026년에 한 방송통신중학교에서 청각 장애 학생에게 수어 통역을 제공하지 않아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입한 사례가 있었고, 학교 측은 인권위 결정 이후에야 수어 통역사와 계약을 맺었다.5) 필자가 근무하는 공립고등학교에서 특수학생은 주 32시간 중 16시간을 일반 수업에 합류하는데, 각 교과 담당 교사가 나서서 특별한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 한 특수학생이 소외되는 경험이 발생한다. 앞서 고백했듯이, 나 역시 그 ‘나서지 않은 교사’ 중 하나였다.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 5화)


하지만 이런 현실에서도 라일라는 자신을 부정하거나 세상을 한탄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솔직하게 도움을 청한다. 제5화에서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그려진다. 라일라가 홀로 집을 지키고 있을 때, 창문 쪽에서 무언가 머리 뒤로 날아오는 기척을 느껴 뒤돌아보니 고구마 대여섯 개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창밖을 보니 열쇠를 놓고 외출하신 라일라의 어머니가 라일라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도움이란 일반인이 장애인에게 베푸는 일방향적 시혜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어우러져 살아가는 가운데 발생하는 상호적인 것 아닐까. 작가에게 결핍은 불편함일 뿐, 타인과 멀어지는 계기로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애는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을 내 삶으로 초대해 함께 어울리게 만드는 가장 다정하고 유쾌한 계기인 셈이다. 


(필자 AI 생성 이미지)


우리는 종종 교실과 사회에서 완벽해져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남들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힘들어도 참아내고,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한 채 깊은 열등감과 외로움 속으로 자신을 고립시킨다. “꼿꼿하게 걷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그는 춤추는 사람처럼 보였다.”(김기택, 「다리 저는 사람」)라고 시에서 노래했듯이, 꼿꼿한 기둥같이 마음과 몸이 굳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리 저는 사람의 몸짓은 오히려 유연한 춤처럼 보일 수 있다. 이 다정한 웹툰은 내게, 그리고 당신에게 질문을 건넨다. 


“그 특수학생은 침묵의 세계에서 무엇을 듣고 있었을까?”, 

“당신과 타인이 감각하는 이 세계는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 

“당신은 타인에게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드러낼 용기가 있는가?” 


이 질문 중 어느 하나에라도 마음이 기운다면, 당신은 이미 이 웹툰의 세계에 초대받았다. 낯선 감각과 타인의 세계에 한발 디뎌보자. 부재가 풍요로 변신하는 역설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출처 및 각주] 


1) 육아·생활 곳곳에서 장애 유형별 맞춤 지원(청각·지체·시각장애 부모를 위한 기기·설비)과, 자막·자동문 버튼 같은 장애인의 공공시설 접근성 개선을 보여준다(웹툰 136화 참고). 

2) 건물의 나선형 경사로나 횡단보도 턱낮춤 구간처럼 장애의 유무나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제품, 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끔 해주는 디자인을 뜻한다(웹툰 137화 참고). 

3) 뉴스토마토, 청각장애인 위한 인공지능 문자통역 서비스-(스타트업리포트)윤지현 소보로 대표 “청각장애인에게 ‘소리를 보는 통로’ 제공” “청각장애인 누릴 당연한 사회적 권리 정착에 도움되고파” (2018.9.20.) 

    - https://newstomato.com/ReadNews.aspx?no=847266 

4) 유스연합, SK행복나눔재단, 청각장애 학생 문자 통역 프로젝트 성과 담은 인사이트 리포트 발간 (2026.1.21.)-https://www.youthassembly.kr/news/912761

5) 뉴스핌, “인권위 ‘청각장애 학생에 수어통역 제공하라’...도교육청·학교, 권고 수용” (2026.5.13.)-https://newspim.com/news/view/20260513001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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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희

국어 교사. 학교의 분주하고 고단한 일상이 영혼의 타락을 방지하는 소중한 무대였음을 불현듯 깨닫는다. 그중 최고의 선물은 각종 이해관계를 떠나 잔잔한, 때로는 큰 웃음을 안겨주는 학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