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SNS를 활발히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도트 그림으로 된 4컷 개그 만화를 한 번쯤은 본 적 있을 것이다. 요리 재료의 복수를 하러 오는 요리의 요정이라든가, 헤어진 애인 사진을 태우려다 집(초가삼간)을 불태워버리는 극단적인 4컷 만화 말이다. 바로 ㅇㅇㅇ(정세원)님의 만화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정사각형의 4컷 만화를 연재하던 ㅇㅇㅇ님은 어느 뜨겁던 올해 여름날, <무슨 만화>란 제목의 네모난 ‘네컷만화집’을 냈다. 독립서점과 출판을 겸하는 유어마인드에서 제작을 맡은 <무슨 만화>는 알라딘 만화 순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더니, 급기야는 출간 세 달 만에 알라딘에서 선정하는 ‘2018 올해의 책’에까지 랭크되기에 이른다. 인디만화가 쏘아올린 공치고는 대단히 위력적이다. 도대체 이 엉뚱한 만화가 지닌 매력은 무엇일까?

“무슨 만화”는 제목에서부터 우선 아이러니함을 자아낸다. 보통은 의문사로 활용되는 ‘무슨’은, 이 제목 안에서 힘을 잃고 ‘어떤’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형용사가 된다. “무슨 만화?”라고 물어본 질문에 “무슨 만화”라고 대답하는 방식으로, 그 자체로 중의적인 만담이 되기도 한다. 또, 독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그의 작화다. 이 만화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만화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는 각기 색깔만 다른 곰이며, 간혹 까마귀가 등장하기도 한다. 또 ‘요정’으로 짐작되는 캐릭터는 모두 날개 달린 토끼로 표현된다. 이 같은 ㅇㅇㅇ 작가의 스타일은 현실 모사라기보다는 다분히 우화적이다. 한편 ㅇㅇㅇ의 만화는 해상도가 높거나 유려한 컬러테크닉을 선보이지 않는다. 그의 만화는 마치 ‘그림판’으로 그린 듯한 도트로 된 선과 256색에서 뽑은 듯한 원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화 대사나 나레이션을 적는 글씨체 또한 굴림체 또는 굴림체-이탤릭이다. 때문에 만화에서 판독해야 할 시각적인 정보가 그리 많지 않음을 인지한 독자는 일단 어느 정도 방심한 채로 만화를 읽어나가게 된다. 그러나 <무슨 만화>의 훅(한방)은 독자들이 만화 속으로 가볍게 걸어들어온 후에야 맞닥뜨릴 수 있도록 안배되어 있다.
<무슨 만화>는 우리가 특히 짧고 전형적인 4컷 만화를 읽을 때 가장 첫 컷에서부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사전 설정’을 하나하나 해체한다. 보통 4컷 만화는 기-승-전-결로 구성되며, 첫 컷에서 모든 정보가 주어진 후 나머지 두 컷에서 서사를 쌓아올리고 마지막 컷에서 클라이막스를 주는 방식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혹은 ‘전’ 역할을 하는 세 번째 컷에 방점을 찍은 후 마지막 칸에서 정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4컷 만화 속 주인공은, 그리고 주인공 주변의 캐릭터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네 칸 안에서 기민하게 수행하는 노련한 배우와 같다. 그런데, <무슨 만화>에 나오는 중심 캐릭터는 너나할 것 없이 주어진 상황에 대해 ‘당혹스러움’을 보인다. “대체 저한테 왜 그러세요?”란 대사가 단적으로 튀어나오는 ㅇㅇㅇ의 4컷 만화를 읽을 때, 독자는 이전까지 암묵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만화 속 상황이 사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많은 사전 동의가 필요하며, 또 4컷이 끝날 때까지 이 상황을 겪어야 하는 인물에게 얼마나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일인지를 문득 깨닫게 된다. 내가 4컷 만화 속 주인공이라면? 아니, 그보다 4컷 만화 속 주인공에게도 나처럼 지면 이전과 이후의 삶이 있다면?
<무슨 만화>는 4컷이라는 제한된 분량 때문에 주어지기 마련이었던 ‘무엇인가가 당연한 상황’을 자꾸 뒤집고, ‘4컷 만화’를 편안하고 관습적으로 감상할 수 없도록 자꾸 태클을 건다. 보통 4컷 만화를 읽을 때, 우리는 결말에서 독자에게 주어질 재치 있는 명제나 어떤 ‘인사이트’를 기다리면서 첫 컷과 두 번째 컷을 느긋하게 지나친다. 그런데 <무슨 만화>에서는 첫 번째 컷부터 프레임 자체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며, 다소 싱겁지만 자유분방한 언어유희 개그를 펼쳐 버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4컷에서는 ‘싫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한 초록빛 캐릭터가 갑자기 초록 ‘실타래’가 되어 버리더니, 마지막 컷에서는 이 털실 타래를 갖고 노는 고양이가 생각 풍선으로 ‘좋아♬’라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다른 언어로 번역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 염려가 될 만큼 한국어를 갖고 놀아버리는 ㅇㅇㅇ 작가의 4컷 만화를 보며, ‘짤방’으로 길러진 인터넷 세대인 우리는 그만 정줄을 놓고 실소를 터뜨리게 되는 것이다.
대개 ‘당혹스럽게’ 시작되는 <무슨 만화> 속 4컷 만화들은 4컷 만화가 흔히 따르기 마련인 그 다음 규칙마저 날려버린다. 즉 ‘4컷 안에 모든 것을 끝낸다!’는 잠정적인 명제다. 보통 마지막 또는 그 앞 컷에서 주어지는 해결책이나 보상, 소망 성취는 <무슨 만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요소다. 그 대신 이 보상들은 좀체 주어지지 않거나, 혹은 작품 속 캐릭터가 원한 적 없었던 엉뚱한 방식으로 주어진다. 작은 걸 바랐던 상황이 큰 사고로 일파만파 퍼져나가며,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인 극단적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소망 성취가 이루어지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다. 보통 작품 속 캐릭터가 첫 컷에서 순진하게 바라던 소망은 절대 그의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조력자(key)가 기대와 달리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요정’ 역할을 맡은 캐릭터의 시니컬함은 탱탱볼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만화의 불확실성을 더욱 극대화한다. 저 유명한 만화 <요리의 요정>을 보자.
요리를 못 하는 캐릭터가 요리를 망치고 있었는데, ‘요리의 요정’이라는 존재가 나타난다. 그러자 캐릭터는 당연히 요정이 자신의 요리를 도와주러 왔을 거라고 생각하고 독자의 기대처럼 “저를 도와주러 오셨군요!” 하고 외친다. 그런데 여기서 엉뚱한 반전이 생겨난다. 큰 요리용 칼을 들고 있는 ‘요리의 요정’이 “나는 ‘요리 재료’의 복수를 하러 왔어”라고 말하는 뒷모습을 보여주며 마지막 컷이 끝나 버리는 것이다. 그 순간, 작은 생각의 전환이 찾아온다. 독자는 흔히 동화에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조력자’일 거라고 생각한 요정이 무언가의 ‘수호자’이자 ‘응징자’가 될 수 있으며, 늘 ‘주인공’을 위해 존재하리라는 보장도 사실 없다는 생각을 구체화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피식 하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앞서 말했듯, 이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인간이 아니다. 보통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은 인간이 보여주는 관계와 생활 양태를 모사하기 마련이며, 이는 기실 또 다른 편견 안에서 작품을 감상하기가 한층 쉬워진다는 말과도 같다. 왜냐하면 인간이 등장하는 작품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으며 살아가고 있기도 한, 예측 가능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무슨 만화>는 절대 인간이 아닌, 귀엽고 어디서 본 듯하지만 모호하고 알쏭달쏭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독자들이 새로운 질서 하에 구축된 만화 세계를 감상하게끔 만든다. 이 작품 속의 세계는 결코 기존 세계의 논리에 부응하지도, 독자의 관습적인 기대를 충족시키지도 않는다.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뭔가 새로운 태클에 걸릴 것이라는 신선한 기대감을 품게 만든다. 그리고 이 만화는 예측불허의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를 만족시킨다.
우리가 익히 알아 마지않은 모국어의 ‘밈’조차 이 세계에서는 재편된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유명한 카피는 자기를 짝사랑하는 상대의 원치 않은 막춤(움직임)을 목격해야 하는 엉뚱한 상황으로 번져나가며, ‘아니다’란 말은 다시 ‘안이다’라는 동음이의어 표현으로 변주된다.
또 4컷 동안 ‘죽일 것이다’란 표현을 ‘That will be a soup’와 ‘I will kill you’의 뜻으로 번갈아가며 변주하는 재치를 보여 주기도 한다. 그 외에도, <무슨 만화>에 수록된 여러 4컷 만화를 읽으면 모국어인 한국어와 언어에 관련된 관념(어)를 가지고 노는 작가의 번득이는 기지를 확인할 수 있다.
ㅇㅇㅇ 작가가 그리는 4컷 만화는 규칙을 꼬고 비틀기에 신선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4컷 만화에 보장된 재미를 가져다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목적지에는 다다르는 셈이다. 그리고 그 목적지가 애초에 생각했던 곳보다 훨씬 좋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무슨 만화>가 만들어내는 웃음은 폭발적이지만 때로 가늘고 길며, 4컷이라는 범위를 넘어 4컷 동안 읽은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보게끔 만들기도 한다. ㅇㅇㅇ 작가가 보여 주는 독보적인 스타일과 개그는 인터넷 기반의 독자 다수를 사로잡음과 동시에 한국(어로 된) 만화계의 지평을 넓히는 과감한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