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노래>
아버지, 그립고도 쓸쓸한 이름
김성훈(만화평론가)
오기택이 불러 큰 인기를 모았던- 그리고 여전히 애창되고 있는- ‘아빠의 청춘’은 실은 1966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 OST 음반에 실렸던 곡이다. 즉, 이미 반세기 전에 세상에 나온 노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즐겨 부르고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 시대 명곡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게 널리 알려진 덕분에 이 노래는 지금도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마음을 가장 잘 담아낸 노래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후 1990년대에는 신해철의 ‘아버지와 나’ 그리고 2000년대에는 싸이의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들을 위한 사부곡(思父曲)’이 등장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아빠의 청춘’에서는 스스로 ‘브라보’를 외치던 아버지들이, ‘아버지와 나’나 ‘아버지’에서는 자식들의 시선에서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수십 년 전에 정정했던 아버지들이 시간이 흘러 세월의 힘을 거스르지 못해 노쇠해지는 모습을 반영해 보이는 듯하다. 그렇다면 김금숙의 <아버지의 노래>에서는 어떤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져 있을까.
한국적 감성, 개인의 역사
이야기는 2010년 4월의 파리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을 보기 위해 한국에 살고 있던 주인공의 어머니가 프랑스를 방문했다. 모녀는 거리를 산책 하며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 대해 담소를 나눈다. 어머니의 입에서는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주인공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데, 그것은 곧 수십 년 전 힘겨웠던 시골살이에 대한 것과 다름 아니다. 여기에 그녀의 남편, 즉 주인공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지고,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시점을 통해 1970년 초반 어느 시골의 일상이 펼쳐진다. 즉,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자 이어진 6.25전쟁은 사람들을 더 없는 가난과 궁핍에 시달리게 했다.’는 시대로 거슬러온다. 전쟁과 가난이라니! 어쩐지 아득한 느낌이 드는 배경이 아닐 수 없지만, 그래봐야 불과 30, 40년 전의 일이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그렇게 주인공의 기억에 동행하다 보면 우리는 개인의 삶 속에 속속들이 자리 잡고 있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들과도 고스란히 마주하게 된다. 일제시대와 6.25전쟁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 내레이션은 1970년대 유년기, 1980년대 청소년기 그리고 1990년대 초반의 대학생 시절로 이어지면서 1980년 광주, 1988년 서울올림픽 등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과 직간접적으로 조우한다. 가령, 1970년대 후반 고향인 남도를 떠나 서울로 터전을 옮겼던 주인공 가족의 경험이 만일 당시에 이사를 하지 않았다면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주인공의 형제들 또한 1980년에 무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서울로 올라와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노점상을 했던 주인공의 부모가 88서울올림픽 개최가 임박하면서 용역에 의해 철거당하는 모습 또한 역사적 장면들이 개인의 삶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수십 년 시간의 흐름은 흑백을 통해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고즈넉하게 표현됨으로써 원색으로 표현되는 화려함보다 밀도 있는 묘사를 완성시킨다. 특히 통상의 출판만화에서 사용되는 펜이 아닌 붓을 통한 묵직한 터치는 인물의 심리와 가슴 아픈 사건들에 대한 독자의 몰입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이는 표지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는데, 배경으로 등장하는 소나무와 산이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만날 수 있는 먹의 농도로 표현되고 있다. 가령, 전경에 배치한 소나무의 경우 진한 톤으로, 원경에 배치되는 산의 경우 옅은 톤으로 표현됨으로써 먹의 농도를 통해 원근감을 보여주는 동양화의 기법을 따른다. 이에 반해 주인공과 주인공의 어머니 모습은 펜선(혹은 가는 붓일 수도 있다)으로 생각될만한 명확한 선으로 그려 보임으로써 배경과 인물의 따른 묘사방식을 구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개성적인 표현은 본문에서도 이어진다. 이를 테면 스크린톤이 들어갈 자리에 먹을 사용해 여백을 채워나가는 연출을 보여주는데, 특히 이야기 초반 1970년대 시골의 자연이나 기와집 구석구석을 담아내 시대적 정취를 묘사하는데 있어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한편으로 진한 먹의 농도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서울로 이사와 부모님이 사기를 당해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을 때나 당뇨병으로 인해 시력을 잃은 언니의 모습을 보았을 때 등과 같은 상황에서는 묵의 진함으로 배경을 덮음으로써 상황이 의미하는 힘겨움과 어려움을 독자들에게 더욱 확고하게 전하고 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돌이켜보면, 가부장제도 아래에서는 ‘아버지’의 존재가 가족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대표성을 지녔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를 살았던 아버지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그 자체로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무게, 즉 가장으로서의 무게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셈이다. (‘아빠의 청춘’이 특히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애창곡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노래 속에 이러한 은유와 정서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의 제목 ‘아버지의 노래’가 지니는 의미는 ‘가족의 사연’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작품 속에는 주인공의 엄마, 언니, 외삼촌 등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동시에 이러한 사연들 속에 치열하고 험난했던 한국 현대사가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곧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사연’으로도 생각하게 만든다.
헌데, 1970년대 가난한 시골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 속에 실제 ‘아버지’에 대한 에피소드는 그리 많지 않다. 제목을 통해 ‘아버지에 관한 어떤 이야기’로 예상했던 독자들에게 이는 색다른 반전이다. 즉, ‘아버지의 노래’ 속에 아버지 자신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가부장적인 모습 또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측면은 아버지라는 이름이 그것이 지니는 무게감과 달리 가족 안에서는 ‘실체’가 없는 현실과도 이어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들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집밖에서 고군분투하였고, 그러는 동안 집안 살림과 자녀 양육은 고스란히 어머니의 몫으로 맡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로 인해 다분히 가족 안에서 아버지는 다른 가족 구성원에 비해 실재(實在)감이 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미비하다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작품의 말미에 이르러 실명(失明)한 주인공의 언니는 30대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작품은 자식의 무덤가에서 통곡 대신 오열을 참으며 노래를 부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그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비록 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예상컨대 그것은 하염없는 슬픔이리라. 그리고 주인공은 언니의 죽음 직후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향한다. 작품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독자들은 머나먼 이국땅으로 떠나는 막내딸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았을 아버지의 마음 또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예상컨대 그것은 가늠할 수 없는 걱정과 안타까움이리라. 그렇게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노래에는 ‘자식에 대해 어찌할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