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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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인간에 대해 말하다

2020-08-18 손유진



<진격의 거인>: 인간에 대해 말하다


 2014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큰 센세이션을 일으킨 <진격의 거인>은 아마 만화를 즐기지 않는 대중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정체불명의 거인들의 습격으로 인해 인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며 수많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학살당한다. 이에 대항하여 특별 부대를 조직한 인류는 거인을 구축하고 그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진격의 거인>은 2010년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만화 작품으로 꼽히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1기가 끝난 후 몇 년의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코믹스는 높은 인기를 지속하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존재에게 무참히 함락당하는 인간의 무력과 절망을 건조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 점이 전례 없는 인기의 주요한 요인으로 언급되지만 거인의 정체가 밝혀진 현 시점에서도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거인의 실체와 관련된 작품의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어떠한 울림을 주는 것일까?

 작품 초반에 감도는 센세이셔널한 폭력성은 극 내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거인의 정체가 인간임을 밝히면서 작품의 포커스를 거인에서 인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2000년전 거인의 시조인 유미르가 있었고 그의 자손들이 전쟁의 병기로 이용되면서 그들의 기원인 에르디아국의 국민들은 다른 인종들을 박해하고 착취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러 사건을 거치고 시간이 흘러 파라디섬에 에르디아민들이 이주하게 되면서 판세는 역전된다. 거인 능력을 이용하여 타국을 지배하던 에르디아민들은 기억이 말소된 채 자신들이 거인에게 당하는 판국에 처하고 만다. 이렇게 순환하는 역사 속에서 주인공 ‘에렌’은 파라디의 군인으로 살아간다. 그는 거인에게 어머니를 잃고 이에 대한 복수를 위해 거인 구축과 탐사를 목적으로 하는 ‘조사병단’에 입대한다. 그러나 그가 입대한 이유는 복수심만이 아니다. 그의 소꿉친구인 ‘아르민’과 어렸을 때 읽었던 외부세계를 다루는 그림책에서 본 바다를 항상 떠올리며 벽 외부로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그는 간직하고 있다. ‘에렌’이 가진 거인화 능력을 중심으로 조사병단은 탐사를 계속 이어 나가고 이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는 것이 <진격의 거인> 스토리의 골자이다.
<진격의 거인>은 인류라는 다소 거대한 규모의 소재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이어지고 순환하는지 깊게 통찰하고 있다. 그것은 모두 작품 내에서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등장 인물들의 서사를 통해 명료하게 밖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진격의 거인>은 어떠한 요소를 역점에 두고 인류를 바라보고 있을까?


1. 인류의 역사: 개인과 집단
거인과 함께하는 <진격의 거인> 속 인류의 역사는 한 소녀에서부터 시작한다. 고대 에르디아 왕국의 노예였던 ‘유미르’는 절도 혐의에 대해 누명을 쓴 채 추방을 당하고, 맹수들에게 쫓기던 끝에 동굴 속 우물에 빠져 시조생물과 조우하게 된다. 그렇게 거인화 능력을 얻은 ‘유미르’는 국왕에게 병기로서 이용당하고 강제로 자식을 생산하여 그 능력을 잇게 된다. 모든 역사가 ‘유미르’라는 개인에게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비극은 그의 인생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역사 전체로 뻗어 나가게 된다. 에르디아가 정복 전쟁을 위해 거인을 사용하고 이에 따라 식민지들의 원한이 역사에 누적되어 간다.
‘에렌’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로 개인의 서사가 하나의 역사로 이어지는 것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모친을 잃은 채 입대를 하고 거인화 능력을 각성시켜 조사병단의 선봉에서 작전을 수행한다. 그러던 중 적국에 소속된 스파이인 거인병들의 정체가 조사병단의 동료들임을 알게 되고 이후 적국인 ‘마레’에 침공하여 에르디아와 마레의 충돌에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마레 침공을 성공시킨 ‘에렌’은 자국인 파라디에서 영웅으로 추앙받고 시민들의 주도로 봉기한 정치적 세력 ‘예거파’의 중심이 된다.
이외에도 작중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 선택들이 크고 작게 모여 하나의 커다란 줄기가 되는 전개가 상당수 등장한다. 개인의 원한이 국가의 원한이 되고 개인 간의 갈등이 섞이고 반복되어 폭력의 역사로서 순환하는 것이다. 개인의 행동은 집단의 결과가 된다.

2. 폭력의 기원: 정신과 신체
 이러한 역사적 원한들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것은 당연하게도 폭력의 순환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집단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결국 복수를 낳고 이것은 끝없이 반복되어 역사의 큰 틀을 이룬다. 그렇다면 폭력이 촉발되는 지점은 어디일까? 미움이 폭력을 낳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그럴 힘이 있기 때문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일까?
<진격의 거인>에 등장하는 최초의 폭력은 거인의 힘에서 기인한다. 에르디아 국왕은 거인이라는 권세를 취함으로써 굴종을 얻기 위하여 폭력을 행사한다. 이에 거슬러 올라가 시조 ‘유미르’에 대한 잔혹한 추방 또한 ‘유미르’에 대한 원한을 이유로 두지 않는다. 그저 노예를 학대할 수 있는 권한이 그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불합리한 선택이 행사된 것이다.
한편 조사병단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폭력의 또다른 원동력이 사적 원한임을 포착할 수 있다. 조사병단의 최정예 병사이자 ‘인류최강’으로 일컬어지는 ‘리바이’는 조사병단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면서 잃게 된 사람들을 떠올리며 거인을 끝없이 제거해 나간다. 조사병단의 수장인 ‘엘빈’의 자살돌격 작전에서 생존한 병사 ‘프록’은 잔혹한 세상에 대한 복수를 위해 세상을 멸망시킬 ‘에렌’의 계획에 적극 찬동한다.
<진격의 거인>에서 자주 등장하는 “세상은 잔혹하다”는 수식은 피로 점철된 인류의 역사를 하나의 문장으로 축약하는 문장으로 보인다. 최초의 폭력이 그저 가능했기에 발생했다면 이 폭력의 결과에서 파생된 수많은 물결은 인류라는 거대한 집단이 아닌 개인의 원한관계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폭력의 기원에 대한 성찰들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사적 원한에서 시작되었든 힘의 논리에서 시작되었든 폭력은 그 순환적 성격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폭력의 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3. 자유의 의미: 투쟁과 개척
 스토리의 절대적 결정권을 쥐고 있는 ‘에렌’이 세계 멸망이라는 궁극적 폭력을 꿈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시절 그는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원동력으로 움직이지만 이후 이야기가 종극에 도달해가면서 그의 동기는 자유에 대한 성취로 변모한다. 누구도 그의 행동을 제약할 수 없도록 그에게 통제를 가하는 대상을 모두 제거하고자 그가 가진 시조 거인의 힘으로 세상을 짓밟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소극적 자유라고도 할 수 있는 금지로의 반발을 세계 단위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학살을 막고자 ‘에렌’의 옛 동료들은 뜻을 모아 팀을 꾸린다. 그 중 핵심 단원인 ‘에렌’의 소꿉친구 ‘아르민’은 ‘에렌’에게 자유의지를 갖게끔 격려하였으며 자신 또한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벽 밖으로 향하고자 한다. 여기서 ‘에렌’과 ‘아르민’이 꿈꾸는 자유에는 방향의 차이가 있음이 드러난다. ‘에렌’이 지향하는 자유가 벽 내부를 지키려는 투쟁의 의미를 갖는다면 ‘아르민’의 자유는 벽 외부로 나아가고자 하는 개척 정신의 발로이다.
충돌하는 두 자유의 싸움에서 승리를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투쟁은 말그대로 눈 앞의 장애물에 대한 적대이다. 자신이 나아가려는 길 앞에 끝없이 무언가 가로막는다면 그들을 모두 제거한 후에야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에렌’이 파라디를 위해 외부세계를 짓밟아도 파라디 안에서의 투쟁, 동료들간의 반목 등 무한히 지속되는 폭력의 굴레에서 그는 계속 누구의 편에 서서 상대를 제거할지 결정의 기로에 영원히 서있게 된다.
‘아르민’의 자유는 누군가를 배격함으로써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자유의 발견이다. 아르민이 갖는 바다로 대표되는 바깥 세상에 대한 열망은 결국 내적 동기를 통해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자신이 갖게 되는 의지가 자유를 결정짓는 것이다. 여기서는 자신 스스로가 자유를 부여하는 주체가 된다. 지향점은 다르지만 칸트의 자유개념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칸트의 경우 자유는 자율이며 자기 입법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에게 자유를 부여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르민이 찾아 나서는 자유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인간 역사의 시작과 끝을 조망하고 있는 본 작품은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서 어느 쪽이 더 옳은 지 고뇌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집요하게 비추고 있다. 그 선택은 결국 생과 사에 관한 문제이다. 선택이 향하는 고민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지에 대한 것이다. 아군과 적을 정하는 메커니즘은 생존이다. 그렇다면 옳은 선택을 한 쪽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일까? 작가는 작품의 클라이막스인 ‘땅울림’을 통해 그 나름의 진단을 내리고자 하고 있다. 작가가 바라보는 ‘잔혹한 세상’의 끝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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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진

만화평론가(2019 만화평론 공모전 신인 부문 가작 수상)
텍스트의 의미를 중심에 두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