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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을 둘러싼 총성 있는 전쟁 : <위대한 방옥숙> 리뷰

2020-08-18 조아라



집값을 둘러싼 총성 있는 전쟁 : <위대한 방옥숙> 리뷰

1.
요즈음 부동산관련 정책이 뜨거운 감자다. 정부는 몇 달 사이에 여러 가지 정책을 내어 놓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이 쉬이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하긴, 워낙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 애당초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무리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정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온다. 새로운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들 간의 설전도 거세다. 마치 대한민국이 이러한 소란의 한복판에서 부동산 시장의 귀추에 주목하는 모양새이다.

2.
물론, 부동산 시장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예를 들어 부동산 가격의 변동이 거의 없는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나, 부동산을 소유한다는 자체가 생소한, 아직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사회 초년생이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조차도 평생 동안 완벽한 방관자로 남아있기는 어렵다.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 중 하나인 ‘집’에 관련된 일은 언제든 나의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망하고 있지만, 그 불씨가 언제 강을 넘어 내 쪽으로 날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3.
이러한 의미에서 시의적절한 웹툰을 하나 소개하려 한다. 2019년 5월부터 네이버에서 연재하고 있는 ‘매미’, ‘희세’ 작가의 <위대한 방옥숙>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노골적으로 ‘집값’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한강 조망권 지키려다가 한강에 시체를 유기한 여자들의 이야기.
내 집값은 내가 지킨다!"

라는 작품의 설명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은 방옥숙의 아파트인 ‘노블골드캐슬’ 바로 앞 동네인 희세2지구에 재개발이 추진된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시작된다. 문제는 재개발이 추진될 경우 49층에 달하는 주상복합이 노블골드캐슬 바로 앞에 들어서게 되면서 한강을 가린다는 것이다. 집값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한강 조망권을 사수하기 위한 노블골드캐슬 부녀회와, 재개발을 어떻게든 성사시켜야 하는 조합장 윤태웅과의 갈등이 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 작품에서 ‘한강 조망권’은 노블골드캐슬의 집값을 지켜주고 입주민을 특권층으로 만들어주는 존재이다.



4.
흥미로운 점은 집값이나 재개발처럼 민감한 이야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이 작품이 취하는 태도이다. 작품은 ‘노블골드캐슬 부녀회 vs 재개발 조합’의 대결 구도에서 어느 한쪽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양쪽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는 식으로 역성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양쪽을 전부 비난하는 태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일단, 부녀회 쪽은 집값 사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막무가내 집단으로 묘사된다. 임대아파트 쪽으로 난 입구를 막고, 유명 강남학원을 유치하는 등 집값을 올리는 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노블골드캐슬 부녀회가 등장했다는 소식만으로도 구청 전체가 벌벌 떠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간혹 부녀회가 집값을 지켜야만 하는 몇몇 기구한 사연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크게 공감가지 않는다. 세상 물정 모르는 자식들이 저지른 일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기 위해 집값을 지킨다는 논리가 그다지 정당해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 ‘한다면 반드시 하는’ 부녀회로 악명이 자자한 노블골드캐슬 부녀회는 구청에서도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로 묘사된다.



재개발 조합 쪽도 더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다. 재개발 조합장인 윤태웅은 살인 전과가 있는 조직 폭력배 출신이며,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납치, 고문, 살인까지 일삼는 악질이다. 게다가 윤태웅 뒤에 있는 이영박이라는 인물도 정계에 연줄이 있는, 비리가 가득한 인물로 묘사된다.

5.
작품의 이러한 태도 때문인지,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비호감이다. 간간히 등장하는 고등학생 자녀들의 풋풋한 로맨스가 유일하게 흐뭇한 장면일 뿐, 어른들 중에는 도무지 정 붙일만한 캐릭터가 없다. 주인공인 방옥숙의 가족만 해도 그렇다. 아파트 집값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방옥숙은 물론이거니와, 문제를 일으켜 해고당한 후 무책임하게 가족을 떠난 방옥숙의 남편도, 여자 친구랑 같이 살아야겠다며 부모에게 뻔뻔하게 3억이나 되는 큰돈을 요구하는 아들도 전부 정이 가지 않는다. 부녀회 회원들도 마찬가지이다. SNS에 과도하게 집착하며 정신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김예리나 딸의 성적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호영은 묘한 불편함을 조성할 뿐이다. 정말이지 누구 하나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없다.

6.
이렇듯 영웅은 없고 악당들만 가득해서인지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둡다. 게다가 희세 작가 특유의 채색도 어두운 분위기에 한 몫 한다. 희세 작가는 기본적으로 흑백의 만화에 한두 가지 색깔만을 첨가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는 한다. 전작인 <마스크걸>에서도 시즌 1에서는 노란색, 시즌2에서는 주황색, 시즌3에서는 녹색을 첨가하는 식으로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변화를 주었다. <위대한 방옥숙>에서는 흑백에 갈색톤과 남색톤만을 추가하여 전반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결국 ‘집값이라는 민감한 주제’, ‘양쪽 진영을 다 비난하는 작품의 태도’, ‘비호감투성이 등장인물들’, ‘침체된 분위기를 조성하는 채색’이 시너지를 이루어 한껏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셈이다.



△ 작가는 흑백의 만화에 제한된 수의 색을 첨가하여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확정한다. 작가인 전작인 「마스크걸」(왼쪽)에서는 노락색을,
「위대한 방옥숙」(오른쪽)에서는 갈색톤과 남색톤만을 첨가하였다.



7.
그렇다면 이러한 불편한 만화를 계속해서 보게 하는 매력은 무엇일까? 필자는 현실을 반영한 블랙 코미디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블골드캐슬 아파트는 외풍이 심해서 겨울이 되면 버블랩, 일명 뽁뽁이를 창문에 붙여 놓는다. 그렇게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한강 조망권이라는 것이, 실상은 뽁뽁이에 가려져 있으나 마나 한 것이라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게다가 원래 이 아파트의 이름은 노블골드캐슬이 아니라 ‘매미 홈타운’이었다. 주민 투표 결과 ‘노블리치골드리버캐슬’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으나, 피자 이름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반려되어 결국 노블골드캐슬로 결정되었다는 에피소드도 우습다.



△ 현실을 풍자한 블랙코미디가 이따금씩 등장하여 작품의 불편한 분위기를 어느 정도 중화시킨다.



이 밖에도, 집을 나간 후 행방불명된 아빠가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하는 장면이라든가, 자칭 ‘중산층’인 방옥숙이 돈을 벌기 위하여 생활정보프로그램 아르바이트를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는 장면도 피식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벼운 에피소드는, 살인이나 파양 같은 무거운 주제와 적절히 섞여 극을 무리 없이 이끌어간다.

8.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위대한 방옥숙>은 불편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추악함에 기인했다는 사실이 이 작품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물론 만화적 연출을 위해서 다소 과장된 부분도 있다. 집값을 지키기 위한 갈등이 배신, 살인, 시체유기로 점철되어 있는, 그야말로 총성 ‘있는’ 전쟁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옥숙을 포함한 노블골드캐슬 아파트 부녀회의 다양한 인간군상이 터무니없이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주변에 충분히 있을 법한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부동산 정책에 요동치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