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와 산초가 일으키는 작은 파장 - 주호민의 <무한동력>
서은영(만화포럼 위원)
88만원 세대
잉여세대, 희망고문세대, 배틀로열 세대. 이른바 “88만원 세대”를 일컫는 용어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잔인하다. “88만원 세대”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제안한 우석훈은 『88만원 세대』라는 저서에서 이 세대는 “승자독식의 시대 … 패자에게는 아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 놓여있다고 서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아픔이 특권인양 내세우는 희망고문 류의 서적과 강연들이 줄을 이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20대들은 “엄친아”라는 기성세대가 부여한 ‘환상 속 그대’를 조롱한다. 그들은 스스로가 잉여임을 자처하고 자신이 루저라는 것을 당당히 밝힌다.
늘 그렇듯이 청년 세대 스스로는 규정한 적 없는 이 세대 지칭어들은 기성세대들에 의해 규정된다. 즉 청년은 “규정당하는 세대들”이다. 그것이 싫다면 그들은 저항해야 한다. 대개 청년세대들은 ‘일탈-저항-조정-편입’이 역사적으로 순환하는 과정 속에 놓인다. 세대담론은 주로 이 저항의 실천 속에서 구현된다.
재미있는 것은 만화라는 매체가 청년들의 전유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대담론이 대두할 때마다 만화도 유달리 인기를 끈다는 점이다. 청년 작가가 청춘의 에피소드를 그려서 청년들에게 인기를 끄는 일이 그리 특별한 일이겠느냐 만은, 그것이 유독 세대담론이 대두할 때마다 선풍을 일으킨다는 것은 만화가 하나의 문화현상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청춘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린 작가 역시 청년들이다. 식민지기에 <멍텅구리>를 그린 노수현은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모던보이였으며, <사랑의 낙서>로 인기를 모았던 강철수는 실제로 대학생이었다. <습지생태보고서>를 그린 최규석 역시 실제 애니메이션학과를 다니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화를 그렸으며, 병맛만화로 유명한 이병건은 인터넷 상에서 잉여짓을 하다가 그것을 에피소드로 꾸려 <이말년 시리즈>로 구성했다. 군대 생활을 그려 데뷔한 주호민 역시 청춘들의 현실과 좌절을 그린 <무한동력>을 통해 이 시대의 문제에 다가섰다.
21세기의 돈키호테, 한수원
무한동력 장치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많은 이들이 무한동력 장치의 실현을 꿈꿔 왔지만 모두 실패했다. 무한동력은 연료 없이도 작동할 수 있는 기관으로, 외부에서 동력을 받으면 영원히 자가발전하여 작동한다는 원리다. 하지만 이는 열역학 제 1법칙과 제 2법칙에 위배되며, 애당초 가능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이 불가능한 실험에 하숙집 주인 한원식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매달린다.
한수원의 무한동력 장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무한동력 장치를 촬영하러 온 방송국 PD는 그를 “과대망상”이라 조소하며, 방송국에서 섭외한 전문가는 무한동력 장치를 “고철덩어리” 취급한다. 결국 한수원이 20년 넘게 공들여 온 연구와 집념의 산물은 방송에서 “괴짜 발명가”로 명명됨으로써 사람들에게는 한낱 신기한 구경거리로 전락한다.
그런데 이러한 조소에는 무한동력 장치가 불가능하다는 그들의 믿음이 깔려있다. “신념”을 부정적으로 응수하며 도전 자체에 여지조차 주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방송국 PD나, 과학 시간에 무한동력을 “사기꾼”으로 단정해 교육하는 교사의 모습은 저항과 일탈이 쉽지 않은 우리 사회의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들이 보는 한수원은 생활은 뒷전인 무능력자, 꿈만 쫓는 괴짜,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한수원은 이 시대의 괴짜일 수밖에 없다.
무한동력 장치의 주전력장치가 로시난테인 것은 바로 이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로시난테는 돈키호테가 타고 다닌 망아지였기 때문이다. 1605년 세르반테스가 출간한 [돈키호테]는 ‘무모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행동이 앞서고 엉뚱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돈키호테는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을 성취하고자 진지하게 몰입하는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광인’으로 불렀다. 17세기의 이 ‘광인’이 바로 오늘날의 ‘괴짜’로 불리는 한수원이다.
무한동력 없는 청춘들의 현실
<무한동력>의 하숙집은 기묘하다. 하숙집은 산동네 기슭에 다 쓰러져가는 건물처럼 허름한데 마당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무한동력 기계장치는 멀리서도 보일 만큼 크고 복잡하다. 수자와 수동이는 생계와 학비를 걱정하는데, 무한동력 장치에는 족히 1,2억 이상의 돈이 들어갔을 지도 모를 정도로 그 집에서 가장 비싸다. 겉에서 보기엔 “고철들을 쌓아 놓은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계공학 원리들이 명쾌하게 구현된 정교한 장치”(23화)들이다. 위치 역시 집의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집 안 한 가운데 서 있는 무한동력 장치를 반드시 지나쳐야 한다. 하숙집의 원칙은 아침을 함께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싫든 좋든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 한번은 반드시 한수원의 꿈과 마주해야 한다.
<무한동력>의 청춘들은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르거나 혹은 포기했다. 선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망하는 인생이 자신의 꿈이라 믿지만 정작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조차 없다. <무한동력>의 하숙집의 청춘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들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패러다임에 갇혀 순응적으로 살아야만 하는 청춘들의 자화상이나 다름 아니다.
이들이 패러다임을 깨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명명 속에서 탈주해야 한다. 즉 <무한동력>의 하숙집은 이들에게 수동성을 벗고 스스로 알에서 깨쳐 나가야 한다는 각성의 공간이다. 이들이 <무한동력>의 하숙집으로 들어온 계기가 비록 기성세대의 패러다임 속에 안정적으로 편입하기 위해 선택한 공간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공간은 그들에게 저항과 탈주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선재와 기한, 솔이와 수자, 수동이 마주한 무한동력 장치는 자신의 이상을 위해 전념하는 한 인간의 집념과 마주하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각성의 계기이자 공간이 되었다.
변화된 산초의 새로운 삶
다시 돈키호테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많은 이들이 돈키호테가 앞뒤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행동하고 엉뚱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를 두고 허황된 꿈을 쫓다가 현실에 패배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번역한 안영옥 교수는 이를 부정한다. 그는 “돈키호테는 정신을 되찾고 현실로 돌아왔지만, 현실에 패배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일자무식이었던 산초가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다 변화했고, 후에 바라타리아 섬의 통치자로서 유토피아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돈키호테인 한수원 역시 하숙집 식구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꿈이 무엇인지조차 생각한 적 없이 살던 선재와 진기한이 자신과 진심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한동력 로시난테가 성공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으나 그것은 이미 중요하지 않다. 한수원이 선재에게 “자네는 꿈이 뭔가(37화)”라고 물었던 그 순간부터 선재에게 작은 파동을 일으키게 되고, 그 질문은 다시 선재가 진기한에게 “넌 꿈이 있냐”(52화)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현실에 안주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대열에 들어가길 바랐던 선재, 수의학을 피해 별 고민 없이 남들이 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된 기한. 불행하게도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법을 먼저 배워버리는 오늘날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사람들의 조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굳은 신념으로 불가능한 꿈을 좇는 아저씨와 함께 지낸 청춘들은 결국 돈키호테의 무모함을 보며 변화를 겪게 된 산초들이다. 승자독식, 각자도생의 잔인한 시대를 살고 있는 산초들에게 광인의 용기를 북돋워 줄 돈키호테와, 자신만의 무한동력 장치를 굳건히 키워나갈 수많은 산초들에게 주호민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무한동력>을 건넨다.
<참고도서>
우석훈·박권일, 『88만원 세대』, 레디앙, 2007.
신근섭, 『Basic 고교생을 위한 물리 용어사전』, 신원문화사, 2002.
안영옥, “돈키호테가 정신나각 괴짜라고? 천만에!”, 『조선일보』, 인터뷰, 2014.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