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승천에 실패한 이무기들의 이야기
천년을 수련한 뱀은 여의주를 품고 승천해 용이 된다. 승천하는 모습을 누군가 목격했을 때, 목격한 사람이 “용이다.”라고 말하면 무사히 승천할 수 있지만, “뱀이다.”라고 말할 경우 승천은 실패하고 바닥에 떨어져 용도, 뱀도 아닌 이무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네이버 웹툰에서 2019년부터 연재하고 있는 이온 작가의 <합격시켜주세용>은 인간에 의해 승천에 실패한 이무기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바리’는 밝고 착한 천성을 가진 이무기로, 예로부터 남을 위하기를 잘했고, 인간을 좋아했다. 수련 중 산에 잘못 찾아온 인간들과 친구가 되는 것을 즐겼으며, 그들이 자신에게 검은 속셈을 가지고 다가와 끝내 배신해도 또다시 인간을 믿고 좋아했다. 그런 바리에게 ‘김서방’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 하나뿐인 진정한 인간 친구였다. 그러나, 바리가 천년의 수련을 마치고 승천하던 중, 김서방은 ‘뱀이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승천을 방해하고,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바리는 좌절하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천년의 수련이 물거품이 되어 인간에 대한 원망밖에 남지 않은 이무기들에게 낙동강을 다스리는 용이 될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시험의 주제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조화’. 이무기들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승천을 방해한 원수들의 후손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과연 바리와 이무기들은 조력자와 협력해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2. 원수에서 친구까지
승천에 실패한 이무기들은 자신을 방해한 인간들에게 각각 다른 저주를 내린다. 찬영은 바리의 저주로 인해 평생 아무리 노력해도 출세할 수 없었고, 승희네 집안은 부는 얻었지만 미리로 인해 명예만은 얻지 못했으며, 순주는 영노의 원한으로 부모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채 자랐다. 하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꽝철이는 하리에게 한평생 단 한 명의 진실된 벗을 얻지 못하는 저주를 내렸다. 이렇듯 이무기들에게만 인간이 원수인 것이 아니라, 조력자들에게도 이무기들은 자신에게 저주를 내린 원수였다. 인간은 자신의 업보를 풀기 위해, 이무기들은 승천을 위해 원수와 손을 잡는다. <합격시켜주세용>은 각각의 이무기와 조력자가 힘을 모아 시험을 헤쳐 나가는 작품인 만큼, 작품 속 인물들의 관계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파충류를 싫어하는 주인공 유찬영은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은 바리를 짐 덩어리처럼 생각한다. 김서방의 직계 후손도 아닌, 어머니의 먼 조상인 김서방의 업보로 없는 살림에 군식구로 파충류를 받게 된 찬영은 바리가 썩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찬영은 친한 벗에게 배신당한 바리의 속사정을 알게 되고, 자신을 스승이라 부르며 따르는 맑은 성격을 가진 바리에게 점차 마음을 열어간다. 먼 조상의 업보를 들이대며 조력을 강요하는 이무기들과 친해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무기들과 조력자의 관계에 천천히 시간을 들이는 전개 방식으로 독자들도 함께 주인공들의 사정을 알아가게 해, 그들이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를 합리적으로 납득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파충류를 싫어해, 자신의 앞에서 이무기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 조건까지 내걸었던 찬영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친 바리를 감싸 안으며 걱정하는 모습과, 뱀들의 소굴까지 들어가 바리를 만나러 가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3. 주인공만큼 매력 있는 조연들
이온 작가님의 작품의 특징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조연 캐릭터들 또한 매력이 있다는 점이다. 작가님의 전 작 <슈퍼 시크릿>에서 주인공 커플만큼 인기 있었던 조연 커플, 지민과 요한처럼 <합격시켜주세용>의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이무기들과 조력자의 관계 또한 하나의 감상요소이다.
영노와 순주는 작품 속 거의 유일한 러브라인을 맡고 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영노는 순주에게 연애의 감정을 품게 되고, 둘은 두근거리면서도 언제 들킬까 하는 아슬아슬한 관계성을 유지한다. 또, 영노를 여자로 오해하고 맹렬히 대시하고 있는 미리의 조력자, 승희와의 관계 또한 주목할 만하다. 다른 이무기와 조력자들의 우호적인 관계와 정반대되는 미리와 승희의 관계성도 흥미롭다. 영노와 순주가 ‘애정’, 바리와 찬영이 ‘우정’을 상징한다면 미리와 승희가 상징하는 것은 ‘악연’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무기와 조력자들의 관계를 나타내기엔 ‘악연’이라는 말이 가장 알맞은 단어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방해한 인물과, 자신에게 저주를 내린 인물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시적으로 손을 잡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계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서로를 팔아먹지 못해 안달인 승희와 미리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과연 둘 사이에는 미운 정이 싹틀 수 있을까?
시즌 2를 마무리 하고 잠시 휴재기간에 있는 <합격시켜주세용>은 이번 8월에 연재가 재개된다. 낙동강 용이 되기 위해 찬영과 함께 힘을 합쳐 시험을 해쳐나가는 바리는, 과연 최후의 승자가 되어 용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의 그들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