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역전! 야매요리

실패해서 더 즐거운 야매토끼의 유쾌한 ‘도전 1000 요리’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에서 올해의 중요한 소비 트렌드의 하나로...

2013-05-30 횡민호
실패해서 더 즐거운 야매토끼의 유쾌한 ‘도전 1000 요리’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13>에서 올해의 중요한 소비 트렌드의 하나로 ‘미각의 제국’을 꼽으며 우리 사회가 맛의 향연에 열광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미 수년전부터 텔레비전은 물론 영화, 뮤지컬, 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음식-요리의 세계를 소재로 다루어왔다. 그만큼 먹거리가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된 까닭이다. 하루 한끼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궁벽은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어버렸고, 넘쳐나는 음식들을 각별하고 색다르게 즐기려는 사람들의 욕구가 들끓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기상천외한 요리법과 요리를 즐기는 갖가지 방법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구 한쪽에선 여전히 굶어 죽는 사람들이 적잖은데 이런 요리타령을 보고 있자면 아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요리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 요리(料理)는 세상의 이치(理)를 헤아리는(料) 구도 행위이며 예술이다. 단지 배를 채우는 한 끼 식사가 아니라, 격이 있고 혼이 있는 요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에게 요리는 유쾌한 도전이며 즐거운 작업이다. 정형화된 먹거리가 아니라, 끝없이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야할 창조의 대상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진 요리를 다룬 여러 가지 이야기 거리 가운데 돋보이는 것으로 정다정의 만화 <역전! 야매요리>를 첫 손 꼽을만하다. ‘역전!’이 갖는 도발적, 진취적 이미지와 ‘야매’의 부정적, 음성적 이미지가 묘하게 조화를 이룬 이 만화는 웹툰이라는 형식으로 최적화되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단순한 글, 그림 조합의 만화가 아니라 작가가 열심히 요리를 만들고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서 맛깔난 글과 그림을 적절하게 버무려서 ‘요리’한 새로운 패턴의 만화이다.
 
<역전! 야매요리>는 작가자신이 빙의된 야매토끼가 매회 특정 요리를 만들게 된 배경을 소개하고 이어서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생생한 사진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요리의 배경 에피소드는 필연적으로 이 요리를 만들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을 절실하게 엮어낸다. 특히 ‘가슴이 밀덕밀덕’ ‘상하이는 매움매움해’ 편을 보라. 이 상황에선 결국 이 요리일 수 밖에 없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런 설득력있는 이야기 전개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일관되게 나타나는데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더 주목할 것은 그림과 겉돌지 않고 어우러지는 레시피 사진이다. 위생, 청결에 아랑곳 않는 조리환경과 실패한 요리현장을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요리 과정 사진은 그 솔직함과 뻔뻔함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림의 영역으로 치환되며 독자들에게 만화를 읽는 즐거움을 곱절로 안겨준다. 기술적, 예술적 감각 대신 만화적 상상력으로 앵글을 맞춘 야매토끼의 레시피 사진은, 그래서 <역전! 야매요리>가 요리 레시피가 아닌 만화일 수 있는 결정적 이유이다. 그렇다고 단지 레시피 사진 때문에 <역전! 야매요리>가 탁월한 작품인 것은 아니다. 소금을 소금소금 넣고, 후추를 후추후추 뿌리며, 당근을 탕!근 탕!근 썰고, 이럴바에야 빠에야를 만들어 내는 야매토끼의 탁월한 조어능력도 깨알같은 재미를 준다.
 
야매토끼의 매력(곧 이 만화의 매력)은 무엇보다 무모함일 것이다. 변변한 조리기구도 하나없이 요리를 하겠다고 덤벼드는데 요리의 종류도 튀김, 디저트, 밥, 국, 탕, 볶음, 찜, 과자에 이르기까지 겁도 없이 다양하다. 10년차 주부도 엄두를 못내는 게장에다 이름도 생소한 스페인 식사와 독일과자까지 다루고 있어 메뉴의 세계화도 이뤄낼 정도이다. 그러나 정작 요리하는데 기본이 되는 계량스푼이나 계량컵도 없다. 아빠숟갈(혹은 부친수저)이나 밥그릇을 대신 사용한다. 오븐대신 프라이팬이나 전기밥솥, 할매렌지를 형편대로 사용한다. 오븐에 제대로 구워내야할 과자나 빵을 프라이팬에 굽거나 밥솥에 찐다. 야매토끼는 준비되고 갖추어진 환경에서 요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해야 할 나름의 당위성을 찾으면 전후좌우 가리지 않고 바로 요리에 들어간다.
 
무조건 들이대고 보는 돈키호테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모함은 친근감과 신선함이란 다른 이름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사실 조리기구며 식재료들을 구색 갖춰두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 레시피 대로 요리를 성공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보통 사람들이 요리를 하면서 갖는 부담과 불안을 야매토끼는 한 방에 날려 보낸다. 모든 요리가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이고 착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야매토끼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이 모양으로 형편없이 만들기로 작정했다는 듯이 실패한 요리를 뻔뻔하게 보여준다. 음식에다 온갖 장난질을 해대고 음식으로 공작을 하는 불경을 서슴지 않는다. 야매토끼가 거리낄 것 없는 이런 행위를 일삼는 이유는 이미 제목에서 명분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요리가 아니라 먹기 어렵고 족보도 없는 전대미문의 ‘야매요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칼질은 위험하니까 요리를 만들지의 말고 돈주고 사먹으라는 불성실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도 어차피 ‘야매요리’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역전! 야매요리>에 등장하는 요리들, 일테면 랍새우튀김, 흑룡롤, 용용이 떡국, 고수 해물탕, 폼페이 계란찜 등등 대부분 짐작은 가지만 실체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것들 투성인데 대부분 다빈치의 식단인 송아지 콩팥을 바른 빵‘ 만큼이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일단 만화를 읽기 시작하면 야매토끼의 기발한 창의성과 독자를 만화 끌어들이는 흡인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만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라는 명제가 만화에서 절대적인 도그마라면 <역전! 야매요리>는 그 도그마에 가장 충실한 만화임이 분명하다.
 
<역전! 야매요리>는 요리라는 흔한 소재를 다루면서 결코 흔하지 않은 표현 기법과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인기만화의 반열에 오르면서 만화장르의 스펙트럼을 넓히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야매토끼의 야매요리는 도전, 진화, 발전하고 있다. ‘도전 1000 요리’를 향하여! (전국노래자랑 만큼 오래 하라면 악담일까?)야매토끼는 말한다 ’만드는 건 쉽다! 다만 먹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네이버 토요웹툰이며 최근에 단행본 2권까지 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