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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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열도

“2011년 2월 24일 ‘그것’에 의한 감염자는 250만 명, 사망자 90만 명...정부는 급기야 정확한 숫자를 밝히지 않았다. 대략 50일 전 2011년 1월 3일 나는 그날 ‘그것’과 만났다.” 2009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신종...

2010-03-27 석재정
“2011년 2월 24일 ‘그것’에 의한 감염자는 250만 명, 사망자 90만 명...정부는 급기야 정확한 숫자를 밝히지 않았다. 대략 50일 전 2011년 1월 3일 나는 그날 ‘그것’과 만났다.” 2009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신종 플루’는, ‘바이러스’에 의한 인류 멸망의 시나리오가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그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증명하였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계속 반복되어 왔고, 하나의 질병을 극복할 때마다 인류는 강해져갔지만, 실상 ‘감기’조차도 아직까지 완벽한 치료제가 없다고 한다. 바이러스(virus)는, 인공적인 배지에서는 배양할 수 없지만 살아 있는 세포에서는 선택적으로 기증 ·증식한다. 바이러스는 생존에 필요한 물질로서 핵산(DNA 또는 RNA)과 소수의 단백질만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밖의 모든 것은 숙주세포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결정체로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생물 ·무생물 사이에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증식과 유전이라는 생물 특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대체로 생명체로 간주된다. 세균보다 작아서 세균여과기로도 분리할 수 없고, 전자현미경을 사용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작은 입자로 비루스라고도한다.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 주는 심리적인 공포, 증식과 전염이라는 특성이 주는 확장의 공포, 숙주에게 기생한다는 생존법이 주는 병리적인 공포,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신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대항할 수 없다는 근원적인 공포....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공포를 총체적으로 가져다주는 이 미지의 존재는, 환경문제와 더불어 향후 인류가 생존을 위해 극복해야만 할 가장 큰 적일지도 모른다. “오늘 도쿄도 이즈미노시 양계장에서 닭들이 대량으로 죽는 일이 발생, 현재 조류 인플루엔자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 중입니다.....1월 4일 오전 9시 13분...시작됐다.” 여기에 소개하는 만화 “감염열도”는, 2009년에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한 일본 영화 “감염열도(한국 개봉제목 ‘블레임 : 인류멸망 2011’)”의 만화판으로, 원작은 영화 ‘감염열도 제작위원회’가, 작화는 “레인보우 2사 6방의 7인”으로 유명한 작가 Kakizaki Masasumi가 맡았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미남 청춘스타 츠마부키 사토시가 주연을 맡았고, 다양한 장르의 미디어믹스와 대대적인 프레스 행사를 통해 홍보를 펼쳐, 일본에서는 324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첫 주말 302,757,800엔의 흥행수입을 올리면서 일본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나라에서는 4만553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비참한 흥행성적을 기록하고 2주 만에 막을 내렸다) “1월 5일 감염자 6명, 그 가운데 1명이 사망...‘그것’은 뭔가?, ‘그것’은 뭘 하는 건가?, ‘그것’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을 어떻게 죽일 것인가?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 “감염열도”의 스토리는 아주 간단하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도쿄 근처의 소도시에서 발생, 급격한 확장 속도와 치명적인 증상으로 단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마침내 일본 전역으로 퍼져 감염자 3,950만 명, 사망자 1,120만 명의 대재앙을 불러온다는 내용의 심난한 재난만화다. 만화 “감염열도”는, 맨 처음 바이러스가 발생한 병원에서 미지의 존재인 바이러스와 싸우는 의사들의 이야기에 몇몇 이것과 관련된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붙여, 일종의 휴먼 드라마로 이끌어간다. (원작인 영화를 보지 못해서 영화와 만화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다) “마츠오카...마지막으로 네게 부탁이 있다. 너 같은 젊은이에게 부탁할 일은 아니지만...나는 여기서 끝이다...뭐, 바이러스를 꼭 해명하라든가...백신을 만들라든가...그런 어려운 얘기는 안 할게, 이 빌어먹을 바이러스와 맞서 싸워... 도망치지 마라...이제 다른 사람이 슬퍼하는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아! 부탁한다, 마츠오카...” 사람마다 각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작품내용의 충실함을 원하는 사람은 출판 매체를, 작품을 통한 즉각적인 감수성을 원하는 사람은 영상매체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를 원작으로 삼아 만화나 소설 같은 출판매체로 옮겼을 때, 사람들은 작가나 감독이 시간관계상 영상매체에서 다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텍스트로 보충하길 원하며, 그 작품의 배경이나 근간을 이루는 요소가 무엇인지 책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 한다. 그래서 대개는 영상매체가 출판매체로 옮겨지는 경우보단, 출판매체를 원작으로 삼아 영상매체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의 산업 환경에서는 그런 순서나 구조가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만화판 “감염열도”는, 독자적으로 기획된 깊이 있는 작품이라기보다, 영화 홍보의 한 방편으로 급조되어 기획된, 미디어믹스의 결과물 중 하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분량도 딱 한 권짜리이고, 영화 시놉시스와 비교해볼 때 내용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고, 무엇보다도 구성이나 연출 자체에서, ‘작품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가려는 것 보다는, ‘작품의 예정된 결과’를 빨리 도출해내려는, 작가의 숨가쁜 의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체...무엇과 싸우고 있는 거죠....?” “감염열도”는, 해피엔딩이라 하기엔 사람들이 너무 큰 상처를 입었고, 절망적인 결말이라 하기엔 너무나 직설적이고 단조로운 희망을 선보이면서 애매하게 끝을 낸다. “설령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자의 스피노자의 말로 끝을 맺는 이 작품은, 쉽게 얘기해서 너무 ‘일본스럽고’, 너무 ‘판에 박혀있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여 지는, ‘조그만 희망’으로 끝이 나는 담담한 결말은, 각자의 취향 문제겠지만, 한국 독자들이나 관객들의 정서하고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재난을 소재로 한 모든 영화는 다 이런 식의 결말과 구성 형태를 가지지만, 만화나 소설에서는 조금은 다른 결말과 내용을 선보여야, 미디어 믹스의 의미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영화나 드라마와 똑같이 만들 거라면, 무엇 때문에 굳이 다른 장르로의 변형을 시도하는가? 그런 점에서 만화판 “감염열도”는, 만화 자체로는 그리 나쁘지 않으나, 전체적인 점수는 낮게 주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