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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만화 수업에서 만난 어린이들
글 불친(만화가)
내가 성장하던 때는 만화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너무 없었다. 비슷한 어감인 ‘민화 수업 모집문 앞에 한참 서 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를 때면 씁쓸하다. 지역에서는 하나의 수업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자 계기가 될 수 있기에, 시도되는 만화 수업이 좌절되지 않아야 했다. ‘만화 수업을 거절당하지 않았다’, ‘만화 수업을 한 적 있었다’는 소문이 퍼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강의 섭외가 들어오면 스케줄이 어렵더라도 전부 진행하고 있다.
어린이 만화 수업은 2006년부터 시작해 햇수로만 벌써 18년 차가 되었다. 그렇다고 익숙하다 말하긴 어렵다. 변화하는 신기술만큼이나 아이들의 생각과 취향, 행동도 달라지고 있다. 그야말로 ‘신인류’가 오고 있음을 마주하는 현장이다. 올해는 특히나 처음으로 ‘AI’라는 용어가 붙은 ‘AI 웹툰만화가’ 강의를 진행했다. 매번 가득 차서 대기까지 걸렸던 ‘웹툰만화가’ 수업 신청 인원이 ‘AI’가 붙더니 박살났다. 미래교육 키워드로 AI가 열풍이긴 한데, 아이들을 직접 만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니터를 켜주면 내 목소리에 집중을 잘 못한다. 멍해진 아이 표정을 보면 마음 아플 때도 있다.
“영혼을 빼앗긴 거야?” 물으면
“아니요.” 영혼없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왜 웹툰은 유튜브처럼 자동으로 보여주지 않아요?
직접 손을 움직이면서까지 봐야 한다고요?”

요즘 어린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모바일과 함께 동거동락해온 사이이다. 마우스로 스크롤을 직접 손으로 내려 웹툰을 보는 일을 신기해하는 어린이들은 <체인소맨>, <최애의 아이>, <오징어게임> 등 그들의 시청연령가를 넘어선 15세, 19세 콘텐츠들을 두루 섭렵한 경험을 영웅담(?)처럼 자랑하곤 한다. 초등학생 1학년 어린이가 <귀멸의 칼날> 캐릭터를 따라 그리며 “재미있게 봤다”는 소릴 하는 것을 들었을 때는 믿기지가 않아 몇 번이고 “그걸 정말로 보았느냐”고 되묻기도 하였다. 무한 랜덤 재생 유튜브를 보며 자라온 어린이도 있었을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의 어린이들은 역사상 가장 자극적이고 말초적이며 필터링이 덜 된 콘텐츠들을 접한 세대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성장하면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다.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2020년
대화 가능한 AI 어린이에게 ‘어린이용 콘텐츠’와 ‘무분별한 콘텐츠’를 보여준 경우의 실험을 통해 비속어와 차별적 언어를 구사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었다. 연령에 맞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선별하는 일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래에 덜 알려지거나 깜박 잊었을 만한 어린이 콘텐츠를 소개해본다.
<유아 추천 콘텐츠>
포코요, 바바파파, EQ의 천재들, 무민, CBeebies TV프로그램, EBS 유아 프로그램 등
<어린이 추천 콘텐츠>
EBS 어린이 드라마 및 프로그램, 은비까비,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적에, 머털도사,
안녕 전우치! , 디즈니, 유니버설픽처스, 지브리 스튜디오의 전체연령가 작품들 등 |
*이 외 OTT에서 프로필별로 시청 연령을 제한 설정하여 시청하는 방법도 있다.
어린이들의 대기시간은 매우 조용하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교우보다는 손안의 모바일을 탐색하고 있다. 대화와 눈 마주침, 직접 손으로 만져보는 등 체험의 중요성을 느끼며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에는 되도록 휴대폰을 꺼내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다.

지난 겨울특강엔 컴퓨터가 없는 교실을 자처하고 모둠으로 붙어앉아 아날로그식 만화 그리기를 시도해보았다. 그간 아이들과 웹툰 수업을 하며 우리가 쉽게 쓰는 프로그램 속 브러시, 칸, 효과선들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직접 날카로운 펜촉을 손으로 만지고 진득한 잉크를 찍어 그어나갈 때 아이들의 집중력이 컴퓨터 모니터를 마주했을 때와는 또 달랐다. 조심스레 도구를 사용했고 우려와 다르게 펜촉에 손이 찔리거나 다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글짓기 수업을 병행하였다. 1학년 어린이들이 과연 집중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활약했고 꼼꼼하게 적는 5학년 학생의 솜씨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보드게임도 준비했다. 수업 중 보드게임 활용은 뇌를 다양하게 움직이게 하고 아이스브레이킹에 효과적이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아이들은 보드게임에 대한 좋은 기억을 회상하며 다음에도 또 하고 싶다며 종종 조르기도 한다.
신청곡을 받기도 한다. 함께 들으며 공감대 형성하기 좋을뿐더러 함께하는 어린이들의 감성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만화 주제가를 프린트하여 함께 노래 부르는 시간도 좋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불리는 덴마크에는 성인들을 위한 학교 ‘호이스콜레(Folkehøjskole)’가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사계절을 지내고 온 이한나 작가의 책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를 읽게 되었는데, ‘함께 노래하는 시간’을 통해 코로나 팬데믹을 이겨낸 사례가 매우 인상깊게 다가와서 매주 새로운 만화 주제가를 아이들과 함께 불러보았다.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주제가를 씩씩하게 불러냈다.

‘한 명도 소외되지 않은 수업’이란 이런 것일까. 상처받은 아이들은 또래답지 않은 언어구사와 행동을 보인다. “선생님 저한테 깝치지 마세요.” 아직 초등 2학년인데도 걸죽한 욕과 외모 평가를 구사하던 아이, 수업 중 외투로 자폐가 있는 친구의 목을 조르던 아이, 의심이 많고 회피형 언어를 쓰던 아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며 남자아이들과 함께 앉길 두려워하고 손가락 끝이 많이 뜯어져 있던 어린이의 모습들… 아동학대 의심에 담당 선생님과 상담을 해보면, 이미 아동학대 신고를 받았거나 부모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가정의 자녀였다. 애석하게도 처음에는 이런 사정을 알려 하지 않은 채, 아이들의 행동만을 보고 오해와 선입관을 가진 채 냉랭하게 대했다.
ADHD 기질을 가진 아이들에게도 그랬다. 일명 ‘원시뇌’라 불리는, 수렵과 채집 등 생존에 특화되어 있는 뇌로 관심있는 일에만 몰입하거나 충동적인 특성을 보인다. 이 아이들 또한 오해를 많이 받는다. ‘일부러 내 말을 듣지 않은 척하는 건가?’ 화가 날 때도 있고 도저히 지도가 어려울 때도 있다. 이럴 땐 아이가 바깥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투명유리막 안에 있다고 상상을 해보면 도움이 된다.
<ADHD 아동을 만났을 때 추천하는 지도방법>
1. 박수를 크게 쳐서 주의를 돌린다.
2. “OO아!” 아동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눈을 마주친다.
3. (카운트다운에 반응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하나둘셋! 하면 OO을 하자. 하나둘셋!”
<아동학대 의심 시>
1. 담당 선생님이나 직원에게 아동의 상황을 상의한다.
2. 112나 아이지킴앱,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긴급전화를 통해 의심신고를 한다.
3. 아동의 이름, 성별, 나이, 주소, 연락처, 교육기관, 사진을 확보한다. |
오늘 마주친 어린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있을지 알 수 없으므로 최대한 다정하려 한다. 실패할 때도 있다. 지나고 나서야 ‘아.. 어쩌면 그 아이는 자기가 받았던 방식 그대로 행동했던 걸까?’, ‘ADHD였을까?’ 뒤늦게 후회하며 다음번엔 더 많은 “고마워”와 “사랑해”를 건네기로 다짐해본다.

쉬는 시간에는 칠판에 자유 그리기를 허용한다.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제한당했던 장소와 도구를 마음껏 사용하며 크게 몸을 움직인다. 이때 서로 간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며 눈맞춤과 대화가 많아진다. 그러다 이상기류가 흐르기도 한다. 어린이라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선생님 OO이는 언제 와요?”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그 아이의 자리부터 확인한다든지, 쉬는 시간을 못 참고 그 아이가 만화 그리는 모습을 보러 이동한다든지, “OO이랑 잠깐 나가서 슬릭 백 추고 와도 될까요?” 등 모든 행동과 말에서 티가 철철 흐르지만 신기하게도 어린이들끼리는 눈치채지 못한다. 삼각관계가 형성될 때도 있다. 한 아이를 두고 둘이서 티격태격한다. 모르는 척이 최고의 배려다. 이러한 기류는 금세 깨져버려 아픈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선생님 OO이가 요즘 저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풀이 죽어 한숨만 계속 내쉰다. 역시나 모르는 척이 최고의 배려다. 아는 체 했다가는 금세 놀림거리가 되고 말 테니, 괜한 위로보다 나을 것이다.
그간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선물을 받아왔다. 종이로 만든 꽃과 하트부터 시작하여 내 모습을 그린 그림, 구슬, 돌, 캐릭터 모형, 조그만 간식 등을 건내며 아이들은 내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왔다. 올해는 고양이 발 젤리(힐링용 꾹꾹이)를 3개나 선물받았다. 힘들 때마다 젤리를 꺼내 누르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면 아이들에게서 받은 위안이 크다는 것을 느낀다.
대학생 때 처음으로 어린이와 만화 수업을 했다. 그때 내게 어린이란 그저 귀여운 존재였고 생계를 위해 가르쳤을 뿐이었다. 만화가로 데뷔한 후 다시 어린이들을 만나게 되었을 땐 그전과는 달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어려움을 많이 느꼈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과의 관계였다. 존경하고 믿었던 이들에게 큰 실망감과 상처를 얻으며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 만화 그리기를 포기하기로 마음먹던 때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강원도 태백의 어린이들을 만나러 간 수업 첫날, 폭설이 내렸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았던 때라 불안감과 함께 발목이 푸욱푸욱 잠기는 눈밭을 헤치며 학교를 찾아 걸으며 울었다. 태백의 아이들은 이런 눈밭이 익숙했다.
웃으며 나를 맞아주었고 무엇보다 이들의 순수함에 놀랐다. 나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고 나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해줬다. 충청도 단양의 깊은 숲속에 있는 분교의 아이들도 만났다. 아이들의 눈빛, 철봉에 매달려 “같이 놀자요”를 외치던,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그 아이들, 그 사랑스러움과 따뜻함, 천진난만함에 힘를 얻어 다시 만화를 연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뒤 출산으로 또다시 경력이 단절되었을 때도 나를 불러준 곳은 교육 현장이었다. 어려울 때마다 어린이들은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렇다. 아이들 덕에 나의 마음과 자존감이 회복되었고, 아이들 덕에 지금까지도 따뜻한 밥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린이들에게 빚이 많은 사람이다. 앞으로도 즐겁게 갚아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