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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만화 독서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만화> 제23호(2024. 10. 2. 발행) ‘Cover story’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2025-06-25 이재민

‘청년’의 만화 독서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출판이 돌아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도서전 방문객이 15만 명에 달하고, 일본의 출판 만화 작가 사인회에 신청자가 몰리는가 하면, 출판만화 판매량이 늘고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온다. 심지어 뉴스들에서는 ‘텍스트 힙(Text Hip)’이라며 Z세대를 중심으로 책 읽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런 진단에는 ‘원래 책을 안 읽던’ 젊은 세대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편견이 깔려 있다. 대형 온라인 서점인 교보문고의 ‘2023 연간 베스트셀러 동향 분석’을 보면 20대 17.1%, 30대 27.8%로 40대 29.9%, 50대 15.8%로 2030세대가 전체의 44.9%, 4050세대는 45.7%로 대동소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 인구포털에 따르면 대한민국 중위연령은 46.1세, 20대(12.31%), 30대(13.36%)에 비해 40대(15.17%), 50대(16.82%)의 인구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청년세대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은 편견에 가깝다.

물론, 베스트셀러 판매만을 두고 비교하긴 어렵다. 취향소비가 일반화된 청년세대의 소비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청년세대가 중년 이상과 비교했을 때 더 많은 도서를 소비할 것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문체부가 발표한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종합독서율은 43%에 그쳤지만, 20대(19~29세)의 독서율은 74.5%로 가장 높은 독서율을 보였고, 초·중·고등학교 학생의 종합독서율은 95.8%로 오히려 4.4% 상승했다. 단순히 데이터만 따져봐도, 연령이 높아질수록 책을 읽지 않는 경향이 도드라진다.

‘청년세대’의 만화 읽기

그럼 만화는 어떨까?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 만화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출판만화 구매 경험이 있는 독자는 2021년 49.2%에서 2022년 54.1%, 2023년 54.5%로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구매 경험이 있는 독자들 중 구매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30대(69.4%), 40대(61.8%), 20대(57.6%)로 나타났다. 또한 ‘즐겨보는 만화책이 있느냐’는 질문 역시 30대(77.1%), 40대(76.3%)가 가장 높았고, 그 뒤를 50대(65.6%), 20대(64.7%)가 이었다. 10대의 경우 즐겨보는 만화책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48.9%, 구매 경험은 48.4%로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전체 독자들 중에서 출판만화를 본다고 답한 비율은 60대(37.4%), 40대(36.8%), 50대(36.2%)에서 높게 나타났다. 모든 연령대에서 웹툰 이용자 비율이 60%를 넘겼고, 그 중 출판만화를 읽는다고 답한 비율은 연령 순으로 높아졌다는 점은 흥미롭다.

‘만화 독서 경험의 주류’가 청년세대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된 걸까. 전체 조사 결과를 보면 웹툰 이용자 비율이 전체의 2/3가량을 차지하는 65.3%로, 2021년 67.2%, 2022년 65.7%에 비해 낮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웹툰을 보는 독자’가 주류로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청년세대에서 ‘출판만화가 많이 읽힌다’는 말은 적어도 데이터로는 확인할 수 없는, 만화를 많이 읽는 고관여층에서 나타나는 환상일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를 통해 보더라도 30%p 가까운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출판만화가 크게 성장했다고 볼 근거는 빈약하다.

다만, 웹툰 유료 결제 경험에서는 20대(56.6%), 30대(50.6%), 10대(49.8%)로 만화의 주류 소비처가 된 웹툰에서 유료 결제 매출을 내는 세대가 10~30대의 젊은 세대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이들 세대는 ‘즐겨보는 웹툰 시리즈가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한 비율도 높았는데, 20대(77.5%), 10대(74.0%), 30대(70.5%) 순으로 즐겨보는 작품을 중심으로 웹툰을 소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0~30대는 여전히 굳건하게 웹툰의 주요 독자이자 구매자다. 흥미롭게도 웹툰의 본격적인 유료화가 10년이 갓 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구매자 데이터가 쌓이면서 인구 구성이 변할 앞으로의 변화를 지켜보아야 한다.

이들 주요 독자들이 연령별로 꼽은 인기작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선호하는 작품의 형태를 유추해볼 수 있다. 10대는 《외모지상주의》(14.2%), 《나혼자만 레벨업》(4.4%), 《소녀의 세계》, 《김부장》, 《연애혁명》(각 4.1%)을 주로 보는 작품으로 꼽았고, 20대는 《외모지상주의》(12.8%), 《신의 탑》(7.2%), 《전지적 독자 시점》(6.1%), 《연애혁명》(5.7%) 등을 꼽았다. 30대의 경우 《외모지상주의》, 《호랑이형님》(각 7.8%), 《신의 탑》(7.4%), 《전지적 독자 시점》, 《소녀의 세계》(각 4.8%) 등을 꼽았는데, 흔히 ‘사이다 서사’를 주로 본다는 인식과는 거리가 있는 장기 연재작이 꼽혔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독자들이 ‘사이다 서사’를 원한다는 믿음과 달리, 독자들이 ‘즐겨 보는 작품’으로 꼽은 작품들은 소위 사이다 서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장르별 재미를 살리는 동시에 독자들을 ‘록인(Lock-in)’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 동안 독자를 쌓아 나간 작품이다. 단순히 ‘사이다의 반복’에 독자들이 반응하고 순위를 높이는 것이 아니다.

사이다 서사는 유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서 독자들이 ‘재미’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작품(《외모지상주의》 등), 세대별로 자신의 삶과 공감할 수 있는 작품(《소녀의 세계》, 《연애혁명》 등), 연재 초기부터 읽기 시작해 인기작의 반열에 오르고, 인기작으로 다른 독자들을 끌어오는 작품(《외모지상주의》, 《나 혼자만 레벨업》, 《호랑이형님》 등)의 작품들이 ‘즐겨보는 작품’으로 꼽혔다는 점은 흥미롭다.

2023년 이후 《전지적 독자 시점》, 《나 혼자만 레벨업》, 《소녀의 세계》, 《재혼황후》, 《뷰티풀군바리》 등의 작품이 새롭게 등장했다는 점은 독자들의 변화를 읽어볼 수 있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어떤 만화를 읽는가

이런 상황에서, 출판만화 붐이 올 수 있을지 묻는다면 ‘모른다’는 답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미지의 영역이 아니라 인지의 영역으로 들여놓기 위해선 출판만화를 구매한 독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 해석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출판만화 구매 독자들이 즐겨 보는 작품으로 꼽은 작품들을 살펴보면 《원피스》가 27.4%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2위를 차지한 작품이 《슬램덩크》(11.1%)라는 점은, 어떤 방식으로 출판만화를 구매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중 웹툰 원작은 《이태원 클라쓰》가 1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3% 이상, 40대 이상에선 4% 이상 ‘즐겨 본다’는 답을 얻었고, 《열혈강호》가 10대에서 4.5%, 40대 이상에서 5% 이상 ‘즐겨보는’ 작품으로 나타났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처럼 대부분이 일본 만화, 그리고 《슬램덩크》의 사례처럼 극장판 애니메이션 대유행 등이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타 매체 이식으로 다양한 연령대가 만날 수 있는 IP 확장이 핵심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대부분이 연재가 끝난 지 오래 되었거나 이미 오래전에 완결된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고연령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만화 위주의 독서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도 있는데, 2024년 1월부터 제공하는 출판유통전산망의 ‘그래픽노블, 만화’ 분야 판매 통계 순위를 보면 대부분이 일본 만화로 TOP 10이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화산귀환》 신간 한정판(24년 2월 10위), 《열혈강호》 90권(24년 3월 5위, 4월 2위)을 제외하면 국내 출간 도서는 8월 24일까지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까지 보고 나면, 비교적 명확해진다. 독자들은 ‘재미있는’, 그리고 ‘다음에도 재미있을’ 작품을 읽는다. 그리고 새롭게 유입되는 독자들은 ‘재미있다고 소문난’ 작품부터 읽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여러 가지 지표들을 보면 단순하게 확인이 가능하다.

무엇을 ‘다양하게’ 만들지보다, 다양하게 읽힐 방법을 고민해야

공개되어 있는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애니메이션과 장기 연재가 가지는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장기 연재의 경우에는 웹툰과 출판만화 모두 나타나는 인기작의 특징이기도 했는데, 일본에서도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는 현재 다양성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하다.

흔히 기대하는 ‘출판만화 붐’이라는 것이, 특정 작품이 신드롬을 일으켜 모든 독자들이 한 작품에 환호하는 현상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에 대한 기대 역시, 다양하게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온 독자들이 여러 차례 방문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는 독자들의 취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특히, 그 취향을 알 수 있는 데이터에 대한 접근이나 공유, 그리고 독자들이 작품을 읽고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양성은 ‘많은 작품’이 나온다고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는다. 코로나19 시기 폭발적으로 성장한 웹툰 시장에서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청년세대가 읽는 작품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작품, 그리고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아 이미 다변화된 독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무언가를 ‘읽는’ 경험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읽고 난 다음 감상을 나누는 경험은 감상의 확장을 가져오고, 만화에 다시 빠져들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지금까지 우리는 ‘다양한 작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놓친 것은 ‘독자’들이다.

독자들이 어떤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그들이 지속적으로 만화를 찾게 만들지 고민하는 과정은 소홀했다. 웹툰과 출판만화 모두 마찬가지다. ‘붐’을 바란다면, 어떤 기적이나 현상을 사후적으로 분석하며 이름을 붙이기보다 먼저 다가가서 독자들을 파악하고 연결되는 과정을 만드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테면 《슬램덩크》를 바탕으로 제작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완결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IP를 다시 뜨겁게 만들었다. 《슬램덩크》를 통해 달아오른 독자들은 《가비지타임》의 폭발적 인기를 이끌었고, 이건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보다 기민하게 반응하거나 최소한 기획해볼 수 있으려면 필요한 것들이 있다. 이제야 공유되기 시작한 출판시장의 데이터처럼, 웹툰 역시 최소한의 데이터가 플랫폼으로부터 공유되어야 한다. 시장을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가 꽁꽁 묶인 상태로 독자들을 깊게 이해하거나, 독자를 구체화할 방법은 거의 없다.

추정과 미신의 영역에서 벗어나 실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위해서, 그리고 독자들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고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지금, 청년을 포함한 다양한 독자들이 어떻게 만화를 접하고 이해하는지 알 수 있다. ‘청년’ 세대의 만화 독서가 따로 알아보려고 노력하기보다, 독자의 스펙트럼을 명확히 이해한 상태에서 분광(分光)하듯 독자를 파악하고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필진이미지

이재민

만화평론가
한국만화가협회 만화문화연구소장, 팟캐스트 ‘웹투니스타’ 운영자
2017 만화평론공모전 우수상, 2019 만화평론공모전 기성 부문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