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기계전사 109>의 만화가 김준범
거친 기계 인간 속
세상을 넘어
더 넓고 광활한
우주와 사람 속 만화를 꿈꾸다

《지금, 만화》 독자분들을 위해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만화가 김준범입니다.
1998년까지 만화가로 활동하셨다가 한동안 소식을 듣기 어려웠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일종의 마음 공부와 비슷한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30대 중반에 다시 만화계로 돌아와 보니 제가 알던 만화시장이 사라진 것처럼 변했었습니다. 작가들에 의해서 판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시스템이 변화한 거지요. 그렇게 10년 정도 만화 작업을 했는데 다행히 그동안 했던 작품들은 거의다 출판이 됐습니다. 다른 작가분들과 비교하면 운이 좋았어요. 이제 제 선후배, 동료 작가라고 할 사람들이 몇몇만 빼면 거의 없으니까요. 그래서 마치 멸종 위기의 공룡이 된 듯한 기분도 듭니다. 지금의 웹툰도 한계에 부딪힌 시기인 듯해서 모두가 고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만화를 접하시고 본격적으로 그리시게 되셨나요?
원래 저는 서양화를 그리려고 했었는데 그게 여의치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회화를 하려면 소위 홍대 같은 제도권의 미술대학에 입학해야 했으니까요. 또 수학, 물리학 같은 과목을 싫어해서 포기 상태로 만화방에 가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만화를 그리면 먹고 살기 힘들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공포의 외인구단〉과 같은 만화를 보고 충격을 받아서 가장 좋아하던 허영만 선생님의 화실로 갔지요. 거기서 문하생으로 3, 4년 정도 있었습니다.
데뷔는 어떻게 하시게 됐나요?
그 당시 노진수 선생님은 〈담배 한 개비〉, 〈2시간 10분〉, 〈아스팔트 사나이〉를 쓰신 허영만 선생님의 가장 중요한 스토리 작가였습니다. 그런데 군 제대를 한두 달 남기면서 굉장히 데뷔하고 싶었는데 자꾸 잡지사에 투고해도 떨어지는 걸 보시더니 “한번 해볼래?”라면서 주신 게 SF 스토리였습니다. 그때 그 분도 사모님 영향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정의를 바로잡는 내용에 관심이 있으셨고 저도 〈공각기동대〉, 〈아키라〉 같은 SF 만화를 좋아했으니까 함께 작업해서 《아이큐 점프》에 연재됐습니다.
그때 이현세 작가님의 〈아마게돈〉도 인기를 얻고 있어서 여러모로 화제가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마게돈〉보다는 〈남벌〉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이현세 선생님 만화면 다 재미있었는데 직접 만화를 그리니까 까다로워지는 거지요. 저는 아직도 한국 SF만화만의 독창성을 가진 뛰어난 작품을 제 만화까지 포함해서 딱히 못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SF 장르 작품인 〈아마게돈〉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부담스럽지 않으셨나요?
아니요. 전 이현세 선생님의 스타일과 다르니까요. 오히려 제가 데뷔했을 대 가장 먼저 용기를 주시고 인정해 주신 분이 이현세 선생님이셨습니다. 그 말을 그 당시 편집부에게 얘기해 주시기까지 하셨으니까요. 제가 듣기로는 절 반대하고 밀어내려는 기성작가들도 몇몇 있었는데 이현세 선생님은 절 응원해주셔서 큰 힘이 됐습니다.
그런데도 〈기계전사 109〉를 연재할 때 상황이 안 좋았다고요?
1990년 즈음에 서울문화사에서 한창 〈드래곤볼〉을 찍고 있을 때인데 한국 만화는 잘 안 찍어주는 거예요. 그걸로 항의를 했더니 볼모처럼 한 권씩만 찍어주더라구요. 그래서 다들 대원문화사의 《코믹 챔프》로 옮기게 됐지요. 그 때 〈붉은 매〉,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으로 10만 부를 찍고 《아이큐 점프》에서도 〈진짜 사나이〉가 히트하니까 저도 돈을 좀 벌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만화 단행본 부서에서는 〈기계전사 109〉의 판매가 부진해서 많이 못 찍는다는 거예요. 그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 특히 만화계 사람들조차도 〈기계전사 109〉로 돈 좀 벌었겠다고 하면 참 답답한 노릇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