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활자문화의 총아로 등장한 신문에는 전면적으로 기사가 우선이긴 했지만 사진 소설 삽화 및 만화의 게재도 일반화하는 경향이었다. 이렇게 기사, 사진, 그림(삽화)이 신문지면의 구성 요소로 자리 잡게 되면서 만화도 서서히 대중문화의 장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대형신문에서 처음 만화는 시사적인 정치만화가 주를 이루었다. 이윽고 일간지 외에 잡지류도 대거 창간되기 시작하면서 만화도 발표의 장이 서서히 넓히게 된다. 이와 함께 신문에 있어 만화의 역할은 중반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우선 신문은 지면이 한정되어 있는 데다 모든 것이 언론 중심 편집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새로운 뉴스와 시사성이 있는 문제를 다루는 신문에 대해서는 검열 당국에서도 규제가 까다로웠지만, 잡지 쪽에는 비교적 관대하였다. 따라서 신문보다는 융통성 있게 지면할애가 가능한 잡지 쪽으로 치중하게 되고 옮겨 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간지 쪽에서 이름을 날리며 활약하였던 시사 만화가들은 주간지나 월간지의 시사성은 신문보다 뒤처지기 때문에 자연히 인기 면에서도 뒤처지는 경향이었다.
한편 잡지는 독자가 일정 계층, 성별, 혹은 연대별로 세분화되어 있어 그 독자층에 따라 내용도 달라져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지속적인 독자 확보가 없고서는 잡지의 사활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게재물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재물이 가장 좋은 수단이었고 부담 없이 읽힐 수 있는 만화 쪽으로 그 초점이 모아진다. 또 시사 카툰보다는 오락만화와 연속만화의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청소년지와 일부 성인 교양지 쪽에서 적극 만화 지면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신문이 해왔던 역할을 잡지가 대신하게 된 셈인데 이를 기점으로 우리 만화사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된다. 일찍이 선진국들은 인쇄술의 개발로 신문, 잡지 출판시대와 전파 라디오 영상시대까지 열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발전하는 국제 경쟁 시대에 빠르고 정확한 정보의 전달이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신문은 시대를 내다보는 창인 동시에 시대의 표정을 담은 간추린 지식의 보고라고 한다.
여기에 만화라는 장르가 가미되어 경직된 독자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답답한 일상을 위로하고 학습에 지친 눈을 즐겁게 하는 여러 가지 간접 혜택도 주고 있다. 당국의 검열이 심하면 심할수록 경제, 스포츠, 생활유머, 인물 캐리커처, 블랙유머 등 다양한 소재로 응용되어 눈치 빠르게 독자들을 리드해 나갔던 것에 시사카툰의 공로가 크다 하겠다. 이렇게 만화의 인기가 높아져가면서 신문, 잡지사마다 인기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아직 우리 사회에 만화라는 밭은 불모지나 다름없었고 만화가들의 등용문조차 마련되지 못한 시점이었으므로 향후를 바라볼 수 있는 유능한 신인만화가를 찾아내는 것이 시급하였다. 만화가는 세상 변화와 유행에 누구보다 민감해야 하고 세계를 앞서가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위트와 탁월한 풍자능력이 필요하다. 문장력도 있어야 하고 미술에도 소질이 있어 간단한 그림체든 상세한 그림체든 어느 한 부분이라도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어떤 대상의 특징을 날카롭게 짚어내서 빠르게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캐리커처나 풍자만화에 적합한 작가가 될 수 있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도 누구나가 싫증내지 않고 볼 수 있는 그림,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가 되는 상황전개, 짧지만 함축성이 있되 재치 있는 대사로 독자에게 감흥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들에게 주제를 정확히 전달하며 감동과 만족을 주고 독자와 공감대를 이룰 수 있어야 좋은 만화가 된다.
이 작품의 가치가 평가되는 순간은 지면을 대하는 독자들의 반응에 있을 것이다. 독자가 “에이, 뭐야.”하고 집어던졌다면 그 만화는 더 이상의 생명력을 잃고 단편으로 중단될 것이고, 진한 여운을 주는 만화가 되었다면 장편으로 연재되거나 후속작으로 이어지는 명작으로 재탄생될 것이다. 이렇게 독자들의 반응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한발 앞서 재능 있는 만화가를 알아보는 편집자의 눈도 중요하다. 만화가들 중에는 처음부터 기초를 밟아 만화가로 출발한 사람도 있지만 뒤늦게 만화와 밀접한 편집 분야에서 그 능력을 키워 만화가가 된 사람도 많다. 이들 중엔 화단이나 문단에서 활동하였던 실력자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편집계열 출신은 김동영, 김일소, 이재화, 이상호, 김정파, 백인수, 임수, 신현성, 고우영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수많은 작품들이 탄생되거나 사장되는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만화계를 선도하는 유능한 작가들이 많이 등단하였다. 그리고 현대에 이를수록 만화가도 인기 직업의 하나로 꼽힐 만큼 생활보장이 되니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고, 인기 만화가의 원고료는 특별 선지급하는 시대가 되었다.
한편 유럽보다 다소 늦게 시작한 미국과 일본의 신문만화계는 카툰(컷 만화)보다 코믹스(연속만화)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인기를 누리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1896년 뉴욕 일간지 <뉴욕월드> 일요판에 리처드 P. 아웃콜드의 <노란꼬마>라는 연속만화가 등장하여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참고로, 1892년 미국인 올링거 부부에 의해 창간된 <한국의 보고서>는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최초의 잡지로 기록되어 있다.
△ 최초의 근대시인이며, 학자, 사상가, 언론인, 정치가인 최남선이 ‘신문관’에서 발간한 <새별>은
청소년 계몽을 목적으로 이광수와 새로운 형식의 문학개척 운동에 힘썼다.(1913.9)
△ 최초 아동잡지만화 <어린이>의 <씨동이의 말타기> 연재. 안석주(1925년)
△ 여학생에 관한 기사와 여성계몽 운동, 농촌 여성문제, 가정생활 등을 심도 있게 다룬 <신여성>(1923.9.),
1926년 10월 이후 ‘개벽사’의 <별건고>에 통합되었다가 1931년 1월 다시 나와 1934년 8월까지 발행된 것으로 추정
.
△ 성인, 생활, 오락 종합 대중지 <삼천리> 창간호(192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