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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앞서 인간을 논의할 차례

일러스트와 웹툰 시장 속 생성형 AI의 현재와 점차 소외되고 있는 창작자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2024-05-17 주다빈

| 그에 앞서 인간을 논의할 차례

한참 유튜브 알고리즘을 이용해 노래를 고르던 중, 한 플레이 리스트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가수가 이 노래까지 불렀어?’ 싶은 반가운 마음에 얼른 동영상을 클릭했다. 노래를 들으며 댓글을 둘러보는데 채널 주인이 남긴 댓글이 눈에 띈다. ‘이 영상은 AI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때 든 생각은 완전히 속았다는 것이었다. 뭔가 하면 안 되는 행위에 동참했다는 기분이 그 뒤를 따라왔다. 이러한 죄의식은 그림이 화가의 창작물로써 저작권 보호를 받듯이 특정 목소리는 고유한 가수의 소유물로 이를 활용해 가수가 부른 적도 없는 노래를 마치 부른 것처럼 제작하는 건 저작권 위반인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다. 사전에 어떤 정보도 없었기에 동영상을 눌러 노래를 감상했으나 이러한 문제의 요소가 있는 영상을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쪽의 영상을 소비했다는 점이 불편한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유튜브에서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할 때는 제목을 잘 읽어보거나 동일한 노래의 클립이 존재하는지 혹은 해당 노래를 부른 원본 프로그램이 있는지를 확인하게 됐다. 이렇게 자체 필터링을 통해 진짜인척하는 가짜의 노래는 듣지 않기로 했다.

그렇긴 하지만 AI의 활용에 완전히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지금 하는 일은 언제든지 챗GPT에 대체될 수 있을 테지만 이미 인공지능은 등장해 버렸고 세계는 어떤 쪽으로든 구르게 되어있고 겨우 태평양의 작은 나라에 사는 2N살짜리 사람을 기다려주지는 않을 테니까 어떻게든 그 흐름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현재 시류를 꼭 붙잡고 나름의 살 궁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문제는 우둔한 덕에 뭔가 하나를 이해하고 배우려면 스스로 해당 개념을 정의하고 확장하게 시켜나가는 배움밖에는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세계흐름의 뒤꽁무니만 좇게게 된다. 그런 탓에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문학잡지를 하나 사서 글 쓰는 사람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읽어보는 것이었다. 여러 편의 글이 실려있었는데 대부분 이미 닥쳐온 미래를 어쩌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챗GPT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누군가는 어쨌든 챗GPT는 평균만큼 밖에 하지 못할 것이라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좋은 것은 인간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천장이 쩍하고 갈라지더니 몇 톤짜리 절망이 내 위로 후드득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들어 평균만 하고 사는 것도 꽤 어렵다고 생각했다. 10분 정도 일찍 회사에 도착하고 종종 사소한 사고를 치지만 어쨌든 8시간 근무를 해내고 집에 돌아와 내일을 위해 씻는 ‘평범함’을 해내면서 스스로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이제 나 같은 인간은 챗GPT보다도 못한 인간이 돼버릴 예정인 것이다. 게다가 이 세상에 빼어난 사람은 정말 희소한 사람들이지 않은가? 하물며 그런 사람들도 늘 빼어난 것을 만들지는 못한다. 내가 뛰어나면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식의 발언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찬찬히 돌아보면 인공지능은 사실 그 이전부터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삶에 등장했다. 요즘 집에서는 도대체 리모컨을 어디에 뒀는지 찾아다니는 일이 적어졌다. 딱히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지니만 부르면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바꾸고 음량을 조절해 준다. 가다 한 번씩은 ‘지니야 너무 심심해’ 같은 말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면 지니는 아주 상냥한 목소리로 대꾸해 준다. 또 집에 들어서며 다녀왔다고 인사를 건네기도 하는데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 괜히 뭉클할 때도 있다. 그런 인공지능 씨가 다정하고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내 일상을 망가뜨릴 거로 생각하니 겁이 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인공지능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인공지능이 내 삶을 보조해 줬기 때문에 그런 덕에 삶이 조금은 더 편리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영역에서 나를 빼고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인공지능은 내 역할을 충분히 또 분명하게 더 잘 해낼 것이다. 몇 년을 해도 실수하는 일들을 인공지능은 단 몇 시간 혹은 몇 분 만에 마스터해내서는 영영 실수도 없이 그렇게 일을 해낼 것이다. 물론 나보다 돈도 덜 받을 테고 인간 하나를 살리는 데 필요한 만큼의 부속물들 예를 들면 10평 정도의 집과 서랍을 가득 채운 옷 같은 것들은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든 인공지능의 압승일 것이다.


| 일러스트레이터, 생성형 AI

자꾸만 넘실거리는 미래에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헐떡거리고 있는데 누군가는 벌써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 처음 AI가 그려낸 일러스트가 등장했을 때 웹툰이나 게임 일러스트 등 유관 업계에서는 큰 파장이 있었다.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는 해당 프로그램에 분노했다. 당연한 일이다. 생성형 AI의 활용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개발 자체에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게임 업계는 AI 일러스트로 게임 원화를 대체하는 움직임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에서는 생성형 AI가 게임 산업의 새로운 반등 트리거가 될 것이라며 오랜 시간 신작 흥행이 미진했던 게임 업계에 순풍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이런 빛에는 늘 그늘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법이다. AI의 활용은 곧 인간의 실직을 의미하며 더 저가의 노동으로 내몰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AI가 생성한 그림의 세부 묘사를 검수하고 보완하는 일을 떠맡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은 하나의 큰 일러스트를 그리는 것보다 높은 업무 피로도를 야기하지만, 임금은 절삭 당할 것이고 더 나아가 AI가 진화하면 어쩌면 수일 내에 사라질 일이 될 것이다. 이렇듯 일자리의 감소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생성형 AI에 대한 불안감과 분노, 적대심을 가져왔다.


[ 그림 1, 게임'레이아크' ai 일러스트 ]


그러나 일러스트 업계에서는 이러한 걱정은 조금 뒤로 밀어두는 듯하다. 당장 닥쳐있는 문제는 인공지능 교육에 사용되는 일러스트 원본 저작권이 보호되고 있는가이다. 이는 단순해 보이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면 여러 문제가 복잡하고도 연쇄적으로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학습에 활용되는 원본 이미지의 무단 이용이다. 대부분의 이용자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과정에서 정확히 어떤 이미지를 활용해 인공지능이 학습하게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일러스트레이터는 자신의 그림을 원치 않게 도용당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일러스트 이미지가 특정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과 유사 혹은 완전히 동일하다는 논란이 계속해서 생기는 중이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생성형 AI 사용이 계속될 경우 인공지능은 더 많은 그림을 학습하고 기존에 저작권을 침해했던 그림 스타일을 희석할 것이다. 이로써 피해자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한편 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물은 화풍의 차이로 구분되는데 여기에는 그림체뿐만 아니라 색 조합, 붓 터치 등 전반적인 작업이 포함된다. 그러나 화풍의 경우 국내 현행법상에서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을 수가 없다. 한참 디즈니 속 인물이나 지브리 영화 속 인물이 된 자기 모습을 만들어주는 어플이 유행했었다. 이런 홍보용 게시물에도 종종 저작권을 우려하는 댓글이 달리곤 했는데 사실 디즈니 풍이라든지 지브리 풍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키마우스나 토토로처럼 각 브랜드의 캐릭터를 가져다 쓰는 게 아니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즉 지금 당장은 그림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AI 학습에 무차별적으로 이용된 일러스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AI 개발이나 저작권법 등 관련 분야의 입법 역시 더디게 진행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인공지능은 어떠한 그림을 학습해 발전하고 있다.


[ 그림 2, 일러스트 저작권 위반 ]


| 웹툰, 생성형 AI

이렇듯 기술 발전으로 일러스트레이션 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며 인공지능을 향한 적대감은 가감 없이 드러나고 있다. 웹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얼마 전 AI를 후가공 작업에 사용해 논란이 됐던 웹툰을 기억할 것이다. 웹툰 팬들은 이에 거세게 항의했고 웹툰을 제작했던 스튜디오는 사과문을 게시하고 앞으로 작업에 AI를 사용하지 않을 것을 명시했다. 그럼에도 11월인 현재 37화까지 진행된 웹툰의 전체 평균 별점은 5.3에 머무르고 있다. 같은 날 업로드 되는 웹툰 대부분이 평균 9점대 별점인 것과 대조적이면서 현저히 낮은 점수이다. 이러한 논란은 이후 네이버 웹툰의 등용문처럼 여겨지는 지상최대공모전에서 더 크게 확산했다. 네이버 웹툰이 공모전에 AI로 작업한 작품의 출품에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논란을 인식한 네이버 웹툰은 공모전의 2차 접수에서는 해당 부분을 명시하고 수작업으로 제작된 작품만을 제출토록 했다. 비슷한 시기 공모전을 진행한 카카오웹툰의 경우 세간의 논란을 미리 확인하고는 “인간의 손으로 인간이 그린 작품만 받는다.”고 명시했다. ‘인간’이라는 단어가 반복된 것이 인상 깊다. 이렇듯 AI 사용을 두고 업계와 소비자는 서로 견해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업계에서는 인공지능 이용 논의를 오래전부터 해왔다. 한국 웹툰계의 쌍두마차인 카카오웹툰과 네이버웹툰은 각자의 기술력을 활용한 AI 개발에 몰두해 있었다. 특히 네이버는 몇 년 전 채색을 도와주는 툴을 론칭했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웹툰 작업에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이러한 기술 개발은 웹툰 작가의 열악한 업무 환경으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무너지는 웹툰 작가를 보조하기 위함이었다. 올해 2월 한국만화가협회는 ‘웹툰 작가 창작 환경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했고 간담회에 참가한 민지희 전문의는 320여 명의 웹툰 작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15명의 웹툰 작가의 심층 면접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우울증 기준을 초과한 비율이 28.7%로 드러났다. 이러한 우울증은 과도한 업무 상황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며 웹툰 업계는 이 문제를 타개할 방법으로 AI 활용을 고려했다. 그러나 AI 개발을 시작했던 맥락과는 달리 오히려 웹툰 작가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다수의 웹툰 소비자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 그림 3, 네이버웹툰 AI웹툰 불매 운동 ]


그러나 이러한 불만들이 터져 나올 것임을 웹툰 산업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기술 개발과 관련된 기사에 우려 섞인 목소리가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긴 시간 동안 업계를 이끌어가는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처를 하지 않았었다. 단지 인공지능을 통해 작가들의 노동강도가 낮아질 것이고 창작 환경이 더 나아질 것이며 이는 작가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는 영영 밝기만 한 미래를 재창하기만 했다. 정작 이전부터 이야기 되어오던 일평균 작업시간이나 회당 컷 수 등 직접적인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한 방안은 논의에서 그치기만 할 뿐 어떤 것도 개선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AI를 환영할 작가나 팬들이 있을 수 있을까? 앞서 이야기한 AI 활용의 장점은 웹툰 작가를 대체해 더 빠르게 더 많은 작품을 만들어 웹툰 소비자를 통해 돈을 벌어보려는 음흉한 속내를 감출 포장지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AI를 활용하기에 앞서 의미 없어 보일지라도 인간과 인간 노동의 가치가 존중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손바닥만 한 한 컷을 그리기 위해 작가가 쏟아붓는 시간의 무게를 알게 됐을 때, 그 누구도 그것을 경시하지 않을 때야 비로소 AI를 업무 파트너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웹툰을 유통하는 플랫폼 기업은 작품을 만드는 작가와 이를 소비하는 독자로 하여금 엄청난 금액을 매년 벌어들이고 있는 만큼 이러한 풍조를 만들 의무를 진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손실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는 하나의 점으로 보이는 미래가 도래했을 때는 더 크고 풍요로운 웹툰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야 단 몇 시간, 몇 분 만에 엄청난 양의 학습을 해내는데 고작 몇 년이 늦어진다고 하여  그 공백이 크지는 않을 테니 조금 더 늦게 등장해도 상관없지 않겠는가. 앞서 논의 됐던 굵직한 일련의 사건으로 웹툰 독자들의 요구 사항은 분명하게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단지 그림을 보고 글자를 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작품을 매개로 작가와 소통하고 싶다. 작품이 만들어진 세계를 이해할 때, 웹툰은 더욱 매력적인 작업이 되고 더 긴 생명력을 갖게 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인간보다 더 나은 작업을 더 빠르게 해낸다고 할지라도 진심을 담은 작업은 영영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 냄새가 나는 작품을 원한다.


필진이미지

주다빈

만화평론가
2020 만화·웹툰 평론 공모전 신인부문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