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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주소가 바뀌었다

종이책이 만화를 만나는 주된 통로였던 시절에서 웹툰과 전자책을 거쳐 가상공간과 AI를 논하는 시대가 되었다. 여전히 우리를 매료시키는 만화의 다음 만남의 장소를 상상해 본다.

2026-11-02 김성령

만화의 주소가 바뀌었다



“웹툰을 처음 만나는 장소가 어디인가?"

9월 18일 세계만화웹툰평론가대회에서 일본 망가연구소의 부소장이 던진 질문이다. 언뜻 들어보면 사소한 질문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웹툰을 어디에서 처음 만났는지 돌이켜보면 그 장소가 웹툰(만화)의 변천사를 관통하는 질문임을 깨닫게 된다. 


대여점에서 스마트폰으로


어린 시절 살던 동네는 변화가 더딘 편이었다. 높은 아파트라곤 고작 5층이었던 당시,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노는 것 외에는 대여점에서 DVD와 만화를 빌려서 보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만화를 대여하던 시절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어느새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종이로 된 만화책을 보는 것보다 스마트폰의 웹툰을 보는 것이 더 익숙한 시기였다. 지금과는 달리 자그마한 화면을 조금씩 엄지로 내리며 한 컷, 한 컷 눈이 건조해지며 읽어야 했던 웹툰이었다. 이후 스마트폰의 화면이 커지고 모바일 환경이 발전하면서 웹툰은 더욱 일상적인 콘텐츠가 되었다. 


한때 만화는 찾아가야만 향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대여점에서 빌리고, 서점에서 구매하고, 만화방에 앉아 읽었다. 어떻게 보면 만화책을 볼 수 있는 장소를 고려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반면, 웹툰과 전자책은 만화를 읽기 위해 특정한 장소를 방문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일상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 이것 하나만 있으면 침대에서도, 지하철에서도, 학교에서도 만화를 펼칠 수 있다. 이렇듯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 만화·웹툰 이용자 조사>에 따르면 출판만화 구매자의 주요 구매 경로 중 전자책이 31.3%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는 전년도 19.7%에서 증가한 수치다. 만화를 만나기 위해 찾아가던 공간이 이제는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터치 몇 번으로 만나는 사적인 공간으로 옮겨온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화가 오프라인 공간의 소멸로만 이어지지는 않았다. 과거의 만화방은 사라지지 않고 만화카페란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만화카페는 만화만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음식과 휴식, 보드게임을 함께 만끽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작품의 캐릭터와 공간을 현실에 재현한 팝업스토어도 등장했다. 인스타그램과 같이 대중적인 SNS에서도 만화에 대해 타인과 이야기하고, 팬아트와 굿즈를 통해 취향을 공유한다. 한때 만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는 것이 당연했던 분위기나 서울코믹월드와 같이 특정한 장소에서만 서로의 취향을 보여주던 시기와 비교하면 이러한 변화는 더욱 흥미롭다. 만화를 읽는 장소는 작아졌지만, 만화를 향유하는 장소는 오히려 넓어진 것이다. 


다만, 공간의 확대를 마냥 반기기는 어렵다. 만화카페의 수익은 작품 자체보다 공간의 이용에 집중되어 있다. 독자는 특정 작품을 구매하는 대신 그 작품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에 비용을 지불한다. 물론 매장이 책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창작자에게 수익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후의 열람 횟수가 창작자의 추가 수익으로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화를 향유하는 공간의 확대가 작가에게도 경제적인 기회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만화카페 벌툰. [필자 제공]


미래로 나아가는 만화


공간의 변화는 만화의 표현 방식의 변화로도 이어진다. 종이책은 페이지를 넘기고, 웹툰은 화면을 아래로 스크롤한다. 전자책은 종이책의 형식으로 디지털 기기에 옮겨놓는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만화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소리와 움직임, 상호작용까지 평면의 만화에서 벗어난다. 


VR 웹툰.[필자 제공]


2018년, 스퀘어 에닉스(Square Enix)가 제작한 만화 감상형 VR 콘텐츠 《결혼반지 이야기 VR》가 출시됐다. 종이에만 머물던 만화에서 3D공간과 몰입감 있는 사운드를 통해 독자가 만화 속에 직접 들어가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당시에는 가상현실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허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VR 만화가 보편적인 감상 방식으로 자리 잡지 못한 채, 오히려 네이버웹툰의 숏폼 애니메이션 서비스 ‘컷츠’와 같이 AI를 사용하여 익숙한 기기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의 확장을 보여준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가능성과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움직이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독자의 즐거움도 풍부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를 만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결혼반지 이야기 VR》처럼 움직이고 말하는 캐릭터를 보는 일은 만화를 읽는 것과 같은가? 또한, VR을 통한 만화 감상이 기존의 독서 방식과 비교해 어떤 고유한 경험을 제공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현재, 만화를 읽는 것은 옛날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장소가 변화했어도 결국 그림과 글을 읽고 칸을 통해 유기성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의 이해>에서 독자가 칸과 칸 사이의 생략된 사건을 상상으로 이어 붙이는 ‘완결성 연상(closure)’을 설명한다. 만화에서 독자는 단지 제시된 장면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지된 그림 사이의 시간과 움직임을 스스로 구성한다. 영상이 움직임을 보여주고 AI가 인물의 생동감을 만들어낼 때, 만화는 어디에 자리를 잡고 있을까. 


만화가 남는 곳


종이책이 만화를 만나는 주된 통로였던 시절에서 웹툰과 전자책을 거쳐 가상공간과 AI를 논하는 시대가 되었다. 새로운 장소가 등장할 때마다 이전의 장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종이책의 페이지를 넘기고, 누군가는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하며 장면과 장면 사이의 이야기를 읽는다. 어린 시절의 대여점은 이제 과거의 한 조각으로 남았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읽었던 만화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만화를 처음 만난 장소는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달라져도 우리는 여전히 그림의 순서를 따라가고, 그 사이를 상상하며 이야기에 몰입한다. 우리가 만화를 읽는다는 행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만화의 다음 주소는 어디일까? 



[참고 자료] 


-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만화·웹툰 이용자 조사』 

- 스퀘어 에닉스 《결혼반지 이야기 VR》 공식 소개 https://www.jp.square-enix.com/mangainvr/weddingring/en/

- 네이버웹툰 컷츠 출시 보도https://www.yna.co.kr/view/AKR20250825050700005?utm

필진이미지

김성령

- 공주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부 졸업
- 2025 대한민국만화평론공모전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