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화 위기 아닌 적이 있었나?
1000만부 넘게 만화를 팔아치운 작가라면, 그것도 우리 민족에 ‘출판’문화가 생긴 이래 단일 타이틀로 이문열의 삼국지 다음으로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한 작가라면, 행복해져야하는 게 상식이다. 같은 업종의 만화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이 작가는 최근 몇 년 동안 해마나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되는 행운(?)을 누리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의 홍은영은 정당한 대우는 고사하고 기자회견 여느라, 법정 ?아 다니느라, 만화가 저작권 보호를 위해 투쟁하느라 그 어느 해 보다 혹독한 시련기를 거치고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 하나로 영국 최고의 여성 갑부가 됐고 이제는 거대한 문화 권력의 반열에 오른 - 실업자이자 이혼녀 출신의 - 여성작가 조앤k.롤링의 한국판 성공신화가 이 무지한 땅에서는 아직도 요원한 것 같아 착잡한 심정이다.
한 중견 만화가의 “우리나라에 만화문화가 생긴 이래 단 한번도 위기 아닌 적이 있었나? ”라는 반문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보면, 운동화 끈을 단단히 동여매는 결의가 우리 만화인에게 다시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지난해 2003년 한국만화계는 인터넷만화의 대약진과 대학출신의 신진작가들의 대거 등장, 서점만화의 활성화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도약의 시기 등 대체적으로 긍정적 뉴스가 주류를 이뤘다. 특히 경향신문의 신춘문예 만화 부문 신설, 꺼벙이 작가 길창덕 선생의 보관문화훈장 수훈 등은 우리만화가 하류 대중문화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한 단계 올라서는 가슴 뿌듯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김병수, [2003 한국 만화를 돌아본다], 만화비평 vol 21, 2003년 12월.))
그러나 2004년 벽두부터 한국만화계는 예의 홍은영 작가 사건에서부터 세계일보 조민성 화백, 시방새의 김준범, 문화일보 이재용 화백 사건 등 연중 내내 ‘수난’으로 점철되어 왔다. 과거에는 우리만화가 권력에 의해 핍박받아 왔다면 오늘날 우리만화는 자본과 언론에 의해 여전히 유효한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2004년 한국만화계가 창작자들의 권리 침해에 대한 갈등만 누적되어 온 것은 아니다. 해외시장에서는 한국만화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원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채로운 해외행사 참여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 ‘망가를 넘어 만화로’라는 캐치 플레이즈를 내걸고 -일본망가의 그늘을 벗어나- 한국만화 고유브랜드로 약진하는 계가를 올리기도 했다. 영화, 드라마, 게임 등 우리 문화전반에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 대거 선보였으며 만화적 코드로 무장한 문화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등 만화적 상상력이 점차 문화전체로 확산돼 가는 고무적인 현상도 목격됐다. 한편 출판만화시장은 인터넷만화시장으로 그 상징적 주도권을 거의 넘겨준 시기로 기록해야 할 듯싶다. 또 틈새시장을 뚫고 대안을 모색하는 만화잡지들도 대거 새롭게 선보이기도 했다.
만화계 주요 뉴스를 중심으로 2004년 우리만화계를 살펴보고자한다.
차례
[1] 만화작가의 권리를 보장하라!
[2] 한국만화 해외 진출 본격화 원년
[3] 만화가 문화를 집어 삼키다!
[4] 언론자본, 시사만화에 재갈 물리다.
[5] 세대교체의 깃발 높이 드는 온라인 만화
[6] 새로운 만화매체 창간 러시
[7] 아동도서시장의 절대 강자, 만화!
[8]과도기를 넘어 새로운 체제로
만화작가의 권리를 보장하라!
그리스로마신화 홍은영, 시방새 김준범 등 작가들 연달아 저작권 침해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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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영작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 |
제 7회 부천만화축제 기네스전에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만화책으로 기록된 그리스로마신화(그림1)가 새해 벽두부터 국내 출판만화사상 최고액의 송사에 휘말리는 불미스러운 기록도 아울러 세우게 됐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작가 홍은영(40) 작가는 가나출판사를 상대로 지난 1월과 7월, 2차례에 걸쳐 인세 미지급과 2차 저작물 무단 제작, 배포 혐의를 들어 서울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000만부를 상회하는 판매부수(([한국만화 기네스전], 부천만화정보센터. 2004년 10월.))를 기록에 의하면 2004년 10월까지 1020만부가 팔렸다.
기록했음에도 출판사측에서 370만부에 해당하는 인세만 지급하여 작가에게 엄청난 재산상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작가의 직접적인 동의없이 ‘그리스로마신화 - 올림포스 가디언’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제작 방영하는 등 2차 저작물에 대한 작가의 권리도 명백하게 침해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출판사측의 대응이다. 가나출판사에서는 작가에게 판매부수를 절반정도로 축소 통보하고 언론홍보에는 실판매부수인 1000만부를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이중플레이를 해왔다. 사건이 확대되자 출간 부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둥, 미지급분 전액을 법원에 공탁한 상태라는 둥 변명과 회피로 일관하여 만화계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노현, [만화로 보는 그리스...], 매일경제, 2004년 7월 9일. ))
현재 이 사건은 회사측의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까지 겹쳐 사회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홍은영 작가사건이 만화계에 점차 이슈가 되어가던 시점인 지난 4월에는 중견작가 김준범씨가 굿데이로부터 받은 부당한 대우가 불거져 나왔다. 다음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4월 27일치 관련 기사다.
‘신인작가 수준에도 못 미치는 원고료, 그나마 석달째 체불,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작품이 타 매체에 실리고 이에 대한 성의 있는 해명도 없었다. 결국 1년 넘게 애정을 쏟아온 작품의 불가피한 연재 중단...(이하 생략)’
이러한 상식이하의 행태는 비단 김준범 작가에게만 국한 된 문제는 아니다. 특히 스포츠 신문 담당 데스크가 작가로부터 받는 금품, 향응 제공은 만화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왔다. 힘 있는 매체들이 작가를 어떻게 대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관행이 거의 없는 실정에서 스포츠신문 연재 작가들은 언제 그만 둬야할지 모르는 강박 속에서 하루하루 연재를 이어가는 파리 목숨에 불과하다. 반면 신문의 발행부수를 좌우할 정도의 인기를 끄는 작가는 서로 끌어가기 경쟁에 휘말려 작품까지 심각한 영향을 끼쳐 중도하차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한국만화가협회, 우리만화연대, 여성만화인협의회 등 만화관련 단체들은 홍은영씨와 함께 작가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김준범씨 사건의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서도 공동보조를 취하는 한편 출판계에 만연한 인세착취 등 부당한 계약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확산되도록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지난 11월 3일 만화의 날 기념식에는 작가의 저작권 보호에 관한 세미나가 개최됐으며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 저작권 침해 사건에 대한 문화예술 창작인들의 입장’이라는 성명서가 만화 관련 6개 단체, 문화연대, 민예총,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등 시민사회 8개단체 공동 명의로 발표되기도 했다.((참여단체는 다음과 같다. (사)한국만화가협회, (사)우리만화연대, (사)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젊은 만화작가모임, 여성만화가협회,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사)민족미술인협회, (사)한국민족음악인협회, 문화연대, (사)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 한국독립영화협회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미술인회의)) 2000년대 들어 만화계 주요 관심사가 대여권과 관련한 작가 생존권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2004년에는 확실히 작가의 저작권과 관련한 ‘권리보호와 신장’에 옮겨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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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 해외 진출 본격화 원년
서구에서 한국만화로드쇼 폭발적 인기, 신암행어사, 라그나로크 일본 공략
올해는 한국의 ‘만화’라는 브랜드가 일본 ‘망가’의 그늘을 벗기 시작한 원년으로 기록돼도 좋을 만한 굵직한 이벤트나 뉴스가 줄을 이었다. 한국문화콘텐츠 진흥원은 지난해 1월 앙굴렘 만화축제 한국만화특별전에 이어 올해 7월 미국 샌디에고 코믹콘, 10월에는 각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프랑스 한국만화주간 등 미주,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만화 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들 행사는 단발성 이벤트에 머물지 않고 ‘한국만화로드쇼라는 타이틀로 국내작가 팬 사인회, 현지 만화동호인과의 만남, 언론인터뷰 등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마련,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됐다. 한국만화를 전문으로 출판하는 프랑스의 시베데 출판사는 현지에서의 이러한 마케팅에 힘입어 일본망가나 유럽만화를 출판하는 출판사들과의 경쟁에서 지난해 8위에서 올해 4위로 급부상하는 하는 등 창립 2년만에 초고속 성장을 했다고 국내 주요 언론은 전했다.
미국의 반스 앤 노블, 북스 앤 보더스, 월마트의 서점망 베스트바이 등에는 선녀강림(유현), 라그나로크(이명진), 리버스(이강우) 등 한국만화 캐릭터 상품 수요가 상당하다고 한다. 특히 미국출판 시장에는 이미 국내 작품이 40여편 이상 출판되어 10여편이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등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한국만화의 서구 진출은 이처럼 단순한 행사 중심이 아니라 실질적인 작품판매와 관련 캐릭터 산업의 흥행, 작가의 인지도 상승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어 우리 만화의 해외 진출이 구체적인 결실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만화’의 해외진출은 서구뿐만 아니라 코믹스류 만화의 초강대국 (일본의)망가도 겨냥하고 있어 국내 만화출판 시장을 흥분 시키고 있다. 올해 부천국제대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상영된 ‘신암행어사’(그림2)는 일본 만화잡지 선데이 GX에 연재되어 단행본만 150만부를 판매한 화제작으로, 한일합작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11월 26일 양국에 동시에 개봉된다. 이명진의 라그나로크는 일본을 주축으로 해외 판매부수만 100만부를 넘어섰고 전세계에 게임으로만 20여개국에 진출해 있는 등 ‘만화한류’의 최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7일부터 일본에 방영되기 시작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은 7월 들어 같은 시간대 수십편의 애니메이션 가운데 시청율 2위를 기록하는 등 국내에서는 이룩하지 못한 ‘원소스멀티유즈’의 성공 공식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신암행어사
게임 파이널 판타지로 유명한 스퀘어 에닉스는 ‘강강 YG 지난 4월 창간2호에 유현, 박성우, 김병진, 홍성군 등 한국작가의 일러스트 작품을 실었으며, 같은 계열의 월간 ‘강강 WING’에는 유현의 ‘박스 프린세스 판도라’가 6월부터 연재되고 있다. 작가 스스로 지속적으로 일본 만화잡지계를 두드려왔던 이유정은 치바 테츠야상 수상에 이어 코단샤의 대표적인 청년만화지 영 매거진에 ‘CRAZY LOVE 그녀는 전교 꼴찌’를 실었다. 미디어 웍스의 ‘전격 코믹 가오’란 잡지 6월호부터는 이규호, 고진호의 Deen Blood Tepes 카인의 후예가 연재 되고 있다. 라그나로크 게임 원작의 앤솔로지(명작집) 만화 단행본 ‘라그나로크 온라인 앤솔리지 코믹 志 SIDE : KOREA’에는 20명의 한국 신인작가, 동인작가, 게임일러스트레이터가 참여하기도 했으며 프리스트의 형민우, 열혈강호 전극진, 양재현, 교무의원의 임광묵, 푸른길의 권가야 등 국내 작가들의 일본진출은 이제 일상화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에앞서 2003년에는 한국 일본 만화업계인의 교류모임인 ‘아시아문화콘텐츠포럼’이 발족되어 한국만화의 일본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일본 3대 메이저 출판사인 쇼가쿠칸(小學館)이 자사의 문고판 시리즈로 한국 만화를 매월 1권 출간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재즈 전문만화 (남무영작)이 일본의 세계적 재즈 전문지 스윙저널에 2005년 1월호부터 연재를 시작한다. 강도영의 <순정만화> (그림3) 역시 한국 단행본 만화 사상 최고액인 1억원을 받고 일본에 진출한다. ((장상용 [일본만화시장에도 한류상륙], , 일간스포츠. 2004년 11월 15일. ))

순정만화
순정만화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한국만화진출은 매우 고무적이다. 지난 5월 중국 상해의 만동작 출판사는 고고해피만동작, 고고탑만동작이라는 두종의 한국만화중심 전문만화잡지를 창간했으며 대원씨아이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 자사만화전문잡지를 창간한다. 대원씨아이는 지난 99년과 2002년 이미 태국에서 만화전문잡지를 창간한 바 있어 아시아권을 비롯한 해외시장 공략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만화의 해외진출 러시에 덕분에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는 지난해 우리나라 만화의 수출실적이 전년대비 700 성장한 500만불을 기록했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이러한 수치는 올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만화, 세계로 세계로], 전자신문, 2004년 2월 9일.))
그러나 국내 만화가들의 해외진출을 긍정적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마치 국내 유명선수들이 일본이나 미국으로 진출하는 통에 한동안 인기가 곤두박질쳤던 프로야구처럼 우수한 국내작가들이 대거 외국 진출을 모색하면서 가뜩이나 위축되어 온 국내 만화잡지들은 작가 가뭄에 더욱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시장의 성공을 기반으로 해외진출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내활동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대안으로 나라밖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인 것이다. 신암행어사는 일본잡지에 연재된 것을 국내잡지에서 로열티를 주고 역수입하고 있다. 라그나로크는 만화원작의 인기보다는 온라인 게임의 인기에 힘입은 바 크기 때문에 작품스스로의 자생력에는 한계점이 지적됐다. 영화나 드라마, 가요가 국내 시장에서 검증 받은 후 외국에 팔리는 것과는 다른 양상인 것이다. 이를테면 최근의 국내만화작가 일본 진출은 단순한 ‘인력유출’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교무의원의 작가 임광묵은 다음과 같이 국내 활동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아무리 독한 마음을 먹어도 국내에선 만화 그려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 내게는 돈보다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할 수 있는 여건이 더 매력적이다”. ((장상용, [돈 보다는 작업위해 일본진출], 일간스포츠, 2004년 4월 20일.))
국내시장이 자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해외진출만 러시를 이룬다면 오히려 우리출판만화시장의 공동화는 예정된 수순일 수밖에 없다. 작가의 교류를 제도적으로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되겠지만 ‘작품’을 통한 진출이어야지 ‘작가’를 통한 진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장기적으로 우리 만화시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국내 출판만화잡지시장의 원기회복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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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문화를 집어 삼키다!
대중문화전반에 불어 닥친 만화적 상상력...!
2004년 우리 대중문화는 만화적 코드가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 쪽에서는 지난해 만화를 원작으로 한 ‘다모’, ‘올드보이’가 물꼬를 텃다면 올해는 ‘풀 하우스’(그림4), ‘바람의 파이터’가 확실한 바통을 이어받아 만화원작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굳이 만화가 원작이 아니라도 2004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영화나 드라마는 만화적 상상력과 표현으로 가득 찼다.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만화영화 아루치 마루치에서 모티브를 따왔으며 ‘움직이는 만화’로 봐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만화적’이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파리의 연인’은 전형적인 순정만화공식을 답습(?)하는 전략으로 대성공을 거둔 바 있다. 문화방송의 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는 만화가 이희정의 ‘내가 너무 사랑스러운 뚱땡이’의 스토리 설정과 인물 구도를 거의 그대로 가져가 소송을 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김종학 프로덕션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태왕사신기’는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전에 김진의 ‘바람의 나라’, 형민우의 ‘태왕북벌기’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단순한 표절 사건으로 받아 넘기기에 이미 만화는 영상문화에 깊숙이 침투하여 하나의 신드롬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된 작품들이 과거형 혹은 현재진행형이라면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만화원작의 영상물들은 가히 폭발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풀 하우스
현재 영화화가 진행 중인 만화작품으로는 박소희의 궁, 이영란의 ‘로맨스 파파’, 양경일, 윤인완의 ‘아일랜드’, 이현세의 ‘블루엔젤’,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 천계영의 ‘오디션(애니메이션)’, 김동화의 ‘빨간 자전거’ 김수용의 ‘힙합’ 등 거의 10여 편에 이른다. 온라인 최대 히트만화작가 강도영은 처녀작 ‘순정만화’의 영화화에 이어 두 번째 연재작 ‘미스테리심리썰렁물’도 영화화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만화평론가 이명석은 다음과 같이 분석하기도 했다.
‘솔직히 지난 수십 년간 우리들을 울리고 웃긴 TV 드라마는 이와 같은 만화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가 가장 즐겨보는 만화들 역시 TV 드라마의 성공 노하우를 적절히 활용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브라운관으로 달려오는 만화들의 기세를 보면 분명히 예사롭지 않은 징조를 느끼게 된다’ ((이명석, [드라마나무 만화 열렸네], 인터넷 웹진 시티즌(Cultizen.co.kr) ))
이상의 국내 작품들뿐만 아니라 최근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일본이나 대만의 영화, 드라마를 들여다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음양사1, 2, 사토라레, 고쿠센, 반항하지마, 쿠니미츠의 정치, 닥터고토의 진료소, 동물의사 닥터 스크루, 헬로 블랙잭, 너는 펫, 핫맨, 꽃보다남자, 빈궁귀공자 등 만화가 원작인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차라리 ‘아닌 것’을 가려내는 게 더 쉬울 정도로 만화에 대한 의존 경향이 뚜렷하다. ((같은 웹진))
헐리우드산 영화 역시 예외는 아니다. 스파이더맨, 엑스맨, 헐크, 데어데블, 핼보이, 언더월드, 반헬싱 등 몇 년 사이 국내 극장가를 찾은 만화원작 영화들은 즐비하다. 특히 올해 개봉된 만화원작 영화들은 가히 폭발적인 수준이다. 새롭게 제작되고 있는 수퍼맨 시리즈나 배트맨, 블레이드 등 만화원작 프랜차이즈 리스트는 그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어 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 코믹스투필름 (http://www.comics2film.com
)에 따르면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각색될 예정에 있는 만화원작은 2000년만 해도 300편이 넘었다고 한다. (([헐리우드 인기만화책 영화화 붐], 필름2.0, 2000년 7월 19일.))
문자 그대로 헐리우드는 만화의 융단폭격을 맞고 있는 셈이다.
만화는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컴퓨터 게임에서 더욱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국산 게임을 대표하는 유료 온라인 게임인 바람의 나라, 리니지, 라그나로크는 만화가 태생이라는 공통점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원소스멀티유즈 상품으로도 각광 받고 있다. 특히 이명진 원작의 라그나로크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다양한 상품화를 통해 성공적인 머천다이징 ((머천다이징(merchandisin) : 시장조사와 같은 과학적 방법에 의거하여, 수요 내용에 적합한 상품 또는 서비스를 알맞은 시기와 장소에서 적정가격으로 유통시키기 위한 일련의 시책. 네이버 사전 참고))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게임 제작사들은 열혈강호, 프리스트 등 지속적으로 만화 작품을 온라인 게임으로 만드는데 앞다투어 나서고 있다.
게임의 경우 만화를 재창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력의 절대 공급원으로도 만화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게임의 그래픽디자인이나, 시나리오, 기획 등 거의 전 분야로 만화계 출신자들이 대거 영입되고 있는 현상은 게임과 만화가 매체만 다를 뿐 속성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실제 롤플레잉이나 액션 게임의 경우는 캐릭터, 시나리오, 연출 등 만화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프리덤포스나 서틴 같은 게임은 아예 말풍선이나 의성어 등 만화적 표현법을 그대로 채용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리니지, 씰온라인, 겟앰프드, 메이플 스토리 등이 코믹북 형식으로 출간되어 만화원작의 게임화에 이어 게임원작의 만화화로 역류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장르간 상호 영향을 끼치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해 가고 있다. 게임의 만화성은 ‘피치 못할 사정’ 임이 분명하다. 지난해 ‘폐인’ 열풍을 몰고 왔던 다모는 만화원작을 드라마로 만든데 이어 드라마를 다시 만화로 만드는 드라툰(그림5)을 최근에 선보이는 등 장르간의 교류를 확대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박성식 과장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 만화는 출시되는 기간이 길어서 오랜 시간을 두고 스토리 검증을 할 수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영상제작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영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재영 [만화같은 상상력 탄탄해진 스토리], 세계일보, 2004년 6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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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누락된 이재용화백 문화만평
지난 9월초, 무료신문 데일리줌에 시사만평을 싣던 권범철 작가가 연재 3일만에 대주주인 군인공제회측의 부당한 압력(정권 눈치보기)으로 중도하차한 사건은 언론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만화계에는 소리 소문없이 알려진 어이없는 (탄압)사건이었다.
이에 앞서 2002년 4월에는 동아희평을 담당하던 손문상 화백이 회사측의 “매우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위험한 보도 태도”를 비판하며 사표를 던지는 사건이 벌어진 바 있다.
한국 만화사 앞머리를 장식하는 고바우 김성환 화백의 ‘경무대 똥통사건’ 이후 우리 시사만화는 그 날카로운 풍자성과 사회비판적 메시지와 비례하여 끊임없이 권력의 탄압을 받아왔다. 중앙일보에서 오랫동안 만평을 담당해온 박기정 화백은 "네 머리에는 권총을 쏘겠다는 따위의 협박 전화는 부지기수로 받았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박인하, [만화와 사회 : 80년대 신문시사만화와 민중만화], 만화깊이보기, 2004년 9월 7일. ))
그러나 과거 우리 신문만화의 수난사가 권력에 의해 노골적으로 강제화된 것이라면 오늘날 시사만화 탄압은 언론자본에 의해 교묘하고 지능화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조민성, 이재용화백에게 공히 적용된 사측의 입장은 ‘회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일리줌 권범철 화백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잘렸다’.
조민성 화백 사건에 대해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에서는 “시사만화는 편집방향과 맞지 않더라도 그 부분을 독립적인 공간으로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도 문화일보 이재용화백 사건을 두고 10월 30일 논평을 의 태도를 비판한 18일, 한나라당과 이해찬총리의 상호 비판 발언을 다룬 29일자(그림6)도 누락 시켜 현재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10월 29일 누락된 이재용화백 문화만평
지난 9월초, 무료신문 데일리줌에 시사만평을 싣던 권범철 작가가 연재 3일만에 대주주인 군인공제회측의 부당한 압력(정권 눈치보기)으로 중도하차한 사건은 언론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만화계에는 소리 소문없이 알려진 어이없는 (탄압)사건이었다.
이에 앞서 2002년 4월에는 동아희평을 담당하던 손문상 화백이 회사측의 “매우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위험한 보도 태도”를 비판하며 사표를 던지는 사건이 벌어진 바 있다.
한국 만화사 앞머리를 장식하는 고바우 김성환 화백의 ‘경무대 똥통사건’ 이후 우리 시사만화는 그 날카로운 풍자성과 사회비판적 메시지와 비례하여 끊임없이 권력의 탄압을 받아왔다. 중앙일보에서 오랫동안 만평을 담당해온 박기정 화백은 "네 머리에는 권총을 쏘겠다는 따위의 협박 전화는 부지기수로 받았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박인하, [만화와 사회 : 80년대 신문시사만화와 민중만화], 만화깊이보기, 2004년 9월 7일. ))
그러나 과거 우리 신문만화의 수난사가 권력에 의해 노골적으로 강제화된 것이라면 오늘날 시사만화 탄압은 언론자본에 의해 교묘하고 지능화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조민성, 이재용화백에게 공히 적용된 사측의 입장은 ‘회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일리줌 권범철 화백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잘렸다’.
조민성 화백 사건에 대해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에서는 “시사만화는 편집방향과 맞지 않더라도 그 부분을 독립적인 공간으로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도 문화일보 이재용화백 사건을 두고 10월 30일 논평을 내어 "만평은 사설의 삽화가 아니라 그림 형식의 칼럼"이라며 "작가에게 논조를 맞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언론인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은경, [문화일보 만평누락 재발 방지에 최대한 노력], 미디어 오늘, 2004년 11월 7일.))
신문이 사회의 공기(公器)라면 시사만화 역시 공공의 물건이자 사회구성원 공동의 것이다. 따라서 사주나 데스크의 사사로운 수단이 될 수 없다. 민주화 물결을 타고 정치권력이 통제장치를 해제하면서 사회 전반에 불어온 자유의 바람은 언론을 새로운 형태의 권력으로 개체변이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휘둘러대는 그들의 압력은 시사만화의 장래를 더욱 암울하게 하게 만들었다. 손문상 화백이 떠난 자리에 더 이상 만평을 싣지 않는 동아일보의 행태에서 보듯이 칼자루는 그들이 쥔 셈이다.
부산일보로 옮겨간 손문상 화백은 보수적인 신문사의 논조와는 달리 ‘완벽한 창작의 자유’를 누리면서 박재동 이후 새로운 만평 스타로 거듭났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주는 보도부문 특별상을 수상 ((전국언론 노동조합 보도자료에서 발췌, 2003년 11월 14일 ))하는 등 개인의 지명도 상승을 넘어 신문사의 브랜드를 높이는 역할까지 했다. 박재동이 한겨레를 먹여 살린다는 우스개가 한동안 회자 되었듯이 손문상이 부산일보를 대표하는 얼굴로 부상한 것이다. 이처럼 시사만화는 신문의 얼굴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사주의 일방적 지시와 임무 수행에 익숙한 편집데스크가 그 얼굴에 먹칠을 하는 오늘의 현실은 깊어가는 겨울 날씨 만큼이나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조민성화백은 직무정지 54일 만인 6월 1일자로 다시 복귀했으며, 이재용화백은 지난 11월 4일 편집국장의 재발방지 약속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권범철 화백은 그야말로 ‘3일천하’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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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의 깃발 높이 드는 온라인 만화
강도영, 트라우마, 심승현, 메가쇼킹, 정철연 이어 양영순, 강성수, 강경옥 등 속속 합류
온라인 만화가 만화시장의 주류를 완전히 대체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단지 ‘대안’으로만 거론되던 인터넷 기반의 온라인만화가 올 하반기 들어서는 만화시장의 주도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과거 몇몇 만화가지망생이나 언더그라운드 만화가집단에서 출발한 온라인 만화는 현재 대형 포털 사이트들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로 급부상했다.
대표적인 인터넷 포탈 사이트 ‘다음’은 주간 만화중심을 지난 4월 창간하며 기존의 스캔만화에서 벗어나 신작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넷마블은 코믹스타킹, 앙큼, 옴므 파탈 등 순정, 성인을 망라하는 3종의 만화 웹진을 창간했다. 인터넷 포털 파란닷컴은 7월 17일 오픈과 함께 3만여편의 만화를 온라인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엠파스 역시 지난 7월 ‘만화엔진’을 인터넷상에 창간한 바 있다. 야후코리아, 네이트 등 여타 온라인 포털 사이트들도 만화콘텐츠 확충에 앞 다투고 있다.
미디어 다음의 만화담당 김영인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만화페이지뷰가 미디어 다음 전체 페이지뷰에서 1~2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5 수준”이라며 “연말부터 만화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변화는 작가들의 세대교체에 있다. 현재 인터넷 연재 작가들의 인기는 오프라인 만화잡지를 통해 연재해온 전통적인 코믹스계열의 작가들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순정만화의 강도영, 트라우마의 곽백수, 마린블루스의 정철연, 메가쇼킹, 츄리닝의 국중록, 이상신 등 인터넷으로 ‘뜬’ 작가들은 과거 열혈강호, 힙합, 오디션 등 잡지만화 작가들이 누리던 인기를 고스란히 흡수하고 있다.
‘1001’의 양영순, ‘위대한 캣츠비’의 강도하(강성수)(그림7), ‘비문천추’ 이현세, 새로운 소년의 김준범, 미녀, 야수의 이강주, 버츄얼 그림동화의 강격옥, 신종불치병 투병일기 임광묵 등 과거 출판만화에서 상당한 지명도를 쌓았던 만화가들도 신인 인터넷작가(?)로 속속 온라인에 합류하고 있다.
강도하(강성수) 위대한 캣츠비 1편
인터넷 만화가 이처럼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첫째 모두가 작가이고 모두가 독자라는 인터넷 특유의 용이한 접근성을 들 수 있다. 개인홈페이지, 나도 만화가 등과 같은 코너를 통해 인터넷이라면 누구나 과도한 비용 없이 만화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가능하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지만 살아남은 작가는 인기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순정만화’의 강도영은 “지난 1년간 수백편의 인터넷만화가 나왔지만 살아남은 것은 열손가락에 꼽힐 정도”라고 ((서정보, [빅히트 인터넷 만화 들여다 보니], 동아일보 2004년 9월 1일)) 한다.
마치 개그콘서트의 경쟁방식이나 일본의 만화잡지 경쟁 방식과 흡사한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독자의 반응이 리플을 통해 즉각적으로 반영된다는 점도 작가로 하여금 무엇보다도 - 독자의 반응에 신경 쓰게끔 하여 - 만화를 재미있게 만드는 장치가 되고 있다.
온라인 만화의 또 다른 장점에는 출판만화의 페이지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형식이 가능하다는 점도 꼽히고 있다. 강도영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칸 분할이 없어지면서 캐릭터의 배치나 구도, 말풍선의 위치를 기존과 다르게 할 수 있고 형식이 자유로워지자 상상력의 제한도 사라졌다” ((같은 기사))
과거에 비해 인터넷을 통해 작가와 독자사이에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단순한 독자에서 충성도 높은 매니아로 발전시키는 문화도 온라인 작가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하는 요인이다. 인기 온라인 만화작가 22명이 뭉쳐 펼치는 자선행사 ‘러브툰 콘서트(11월 21일)(그림8)’는 이러한 문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만화가도 가수나 탤런트처럼 팬과 직접 교류하는 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2004 러브툰 콘서트 홍보 포스터
다양한 문화콘텐츠 가운데 음악과 영화가 불법유통으로 몰락하고 온라인 게임과 만화만이 살아 남은 현상은(물론 불법 스캔 만화의 고질적인 병폐는 여전히 문제지만) 만화의 유연한 매체적 특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손쉬운 작업방식과 저비용의 제작시스템에도 힘입고 있다. 만화가 그 어떤 매체보다도 인터넷과 궁합이 좋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된 지 오래다. 인기있는 인터넷 작가들이 의기투합하여 작가중심의 인터넷 웹진 창간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오는 것을 보면, 온라인 만화가 우리만화시장에 확실한 대주주로 올라섰다는 ‘가설’이 현실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유력한 ‘단서’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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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만화매체 창간 러시
데일리줌, 즐김, 펀, 허브, 콩나무, 어린이 과학동아 등 새잡지 선보여
출판만화가 온라인이라는 대세에 밀려 시장의 상당부분을 잠식당하는 동안 새로운 형식 실험을 통해 등장한 매체가 대거 선보인 것도 2004년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였다.
특히 무료신문 시장은 만화를 강력한 콘텐츠로 활용하면서 신문업계에 대대적인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이 가운데 만화를 전체지면의 60로 채운 ‘데일리 줌’의 창간은 ‘만화의 힘’에 무게중심을 두는 ‘확실한 사례’였다. 필자는 이에 대해 본 ‘웹진 vol 24’ 커버스토리 ‘한국만화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전한 바 있다.
‘...(전략) 과거 신문 형태의 만화전문매체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만화무가지 창간 시도가 여러 번 있었으나 [데일리 줌]의 파괴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일단 회원 15만에 자산 4조원을 지닌 군인공제회가 50.1의 지분을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 과거의 구멍가게식 만화무가지와는 차별화된다. 또 각 스포츠신문의 대표작가로 군림하던 고우영, 강철수, 이현세가 한 매체에 연재를 시작했다는 점은 광고주들의 혼을 쏙 빼놓기에 안성맞춤이다. 가뜩이나 무료신문의 난립으로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는 가판업계는 호소문을 붙여놓는 등 일찌감치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중이다...(이하 생략)’ ((김병수, [한국만화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만화비평 vol 24, 2004년 6월. ))
무료로 출판 만화를 보는 데는 월간지 ‘즐김’도 한몫했다. 올해 5월, 창간호를 배포한 ‘즐김’은 신인만화가를 인큐베이팅 ((인큐베이팅(incubating) : 알을 품다, 부화하다, 기르다는 뜻으로 이 글에서는 신인만화가를 발굴, 육성, 지원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총체적 제어를 의미한다. )) 한다는 독특한 컨셉으로 매월 3만부 이상을 발행하여 서울시내 주요 지역에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과거 몇 차례 발간으로 수명이 다한 무가지 ‘딱지’, ‘코코인’과는 다른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승부하고 있어 성공여부에 만화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데일리줌과 즐김은 출판만화 시장에 등장한 새로운 매체라는 시각 이면에 만화의 유, 무료 논쟁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무료만화 반대론자들은 그동안 인터넷 불법 스캔만화나 일련의 온라인 만화를 통해 만화는 ‘공짜’라는 인식이 심화되어 왔다고 지적하고, 데일리줌과 즐김 등 무료만화매체들이 이러한 시각에 기름을 부어 가뜩이나 불황에 빠진 출판만화시장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지난 10월 6일 부천만화축제에서 있었던 난상 토론회에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 본격적인 논쟁을 펼쳤으나 매체의 확대라는 절박한 현실 논리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2004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서 새로운 발견상을 수상한 경향신문의 만화섹션 ‘펀’도 만화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기획이다. 최호철, 고경일, 윤태호, 모해규, 박무직, 최규석, 석정현 등 하나같이 자기 분야에서 한가닥하는 작가들이 대거 포진했으며, 종합일간지에서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전례 없던 터라 만화계에서는 은근히 다른 신문에까지 확산되기를 기대하고 있기도 했다.
지난 8월 선보인 ‘허브’는 30세 전후의 여성을 독자층으로 하여 정기구독, 통신판매 중심의 판매 전략을 내세웠다. 김진, 김혜린, 이향우 등 확실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중견 순정 만화가들이 기획자의 과감한 유통 전략에 함께 몸을 실었다는 것만으로도 주목받을만하다. 최소 편집, 인쇄비 투자로 수익을 작가와 나눠 갖겠다는 발상은 그동안 편하게 정해진 원고료 받는데 익숙해 온 작가들에게 새로운 자극제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허브]를 준비하고 있는 만화집단 두고보자의 박관형 편집장은 "1만부 정도의 정기구독자만 확보된다면 대성공이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롱런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김병수, [한국만화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만화비평 vol 24, 2004년 6월.))
아동만화잡지 ‘콩나무’(그림9)와 ‘어린이 과학 동아’의 창간 소식도 눈에 띈다. 아동만화시장이 중요성을 더해가면서 불붙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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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만화잡지 콩나무 |
한 -만화비중이 높은- 아동교양지의 창간 붐은 부천만화정보센터가 지원하는 어린이 만화전문 계간지 ‘콩나무’로 결실을 거뒀고, 한국과학문화재단이 70를 만화로 장식한 격주간지 ‘어린이 과학 동아’가 창간된 배경이 됐다. 지난해 나온 ‘고래가 그랬어’에 이어 올해 새롭게 어린이 만화시장에 도전하는 이들 매체는 어깨동무, 소년중앙, 보물섬의 계보를 잇는 성공을 거둘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창간된 이들 매체에 장밋빛 미래만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데일리줌의 경우 새롭고 참신한 신인 발굴보다는 과거형 작가에 기대고 있어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평가와 함께 최근 사정이 어렵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또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지원으로 제작되는 ‘계간만화’나 부천만화정보센터의 ‘콩나무’는 공공기관의 공적자금으로 운용되고 있어 자생력이 최대의 과제가 되고 있다. ‘허브’나 ‘고래가 그랬어’는 데스크의 마인드는 확고하나 자본이 취약한 단점을 안고 있다. 즐김은 검증 안 된 신인 중심이라 아마추어성을 극복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이고 ‘펀’ 역시 작가와 작품성에 견주어 확실한 대박을 터뜨리지 못해 분발이 촉구된다.
출판만화시장 전반에 나타난 새로운 매체의 창간은 대체적으로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기획에 의존하고 있어 매우 실험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출판만화 전통의 잡지시장이 살아나는 것이 가벼운 에세이나 일기체, 한쪽 만화에 치우친 온라인 만화의 비서사성의 자리를 메워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 매체를 중심으로 알찬 작품을 선보일 역량있는 작가의 발굴은 필 수적이다.
기존의 메이저만화출판사들이 소멸해 가는 상황과는 무관하게 다양한 기획이 줄을 잇고 있어 새로운 만화잡지 출현소식은 해를 넘어서도 계속 들려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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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도서시장의 절대 강자, 만화!
학습만화에서 창작만화로 진화중, 인기 드라마에 영합하는 부작용도...
아동도서시장은 올해도 확실히 ‘만화’의 완승으로 끝났다. 2000년 말에 처음 출간되어 올해 10월까지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1020만부를 판매한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비롯하여 서바이블 만화 ‘살아남기’ 시리즈, 이희재의 ‘삼국지’에 이어 지난해 말 출간되어 올해 내내 베스트셀러에 오른 ‘마법천자문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아동도서시장의 판매 순위는 완전히 만화로 달궈졌다. 하반기에는 아동용 온라인게임 메이플 스토리를 만화화한 ‘코믹 메이플 스토리’까지 가세하여 2004년 아동도서시장은 만화가 베스트 순위를 싹쓸이하며 천하통일을 한 셈이 됐다.
전통적인 강자인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도 마지막권인 미국편을 7월에 출시함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이가서에서는 한국문학 100편을 만화로 옮기는 가공할(?) 기획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만화평론가 박인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이전에는 소년챔프, 아이큐점프니 하는 메이저리그에서 밀린 작가들이 학습만화 또는 아동만화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요. 기존 만화 잡지라는 게 일본식 만화를 대거 들여와 청소년 대상 시장에서 승부하는 건데 요즘 청소년들은 게임이다 뭐다해서 이전만큼 만화를 많이 보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잡지사들은 구태의연한 편집 형태를 고집해 왔어요. 그 와중에 완전히 실종됐던 초등학교 이하 아동만화 시장에 이른바 ‘학습만화’들이 차근차근 또아리를 틀기 시작한 겁니다.” ((박인하, [아동서적 시장 ‘만화 독무대’], 주간동아, 2004년 2월 18일. ))
2000년대 들면서 형성된 아동만화 붐은 과거 ‘학습만화’에 의존해 오던 경향을 최근에 말끔히 털어냈다. 순수 창작만으로도 충분히 아동도서시장에서 어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과거에는 이 분야를 거들떠보지 않던 인기만화가들을 끌어들이는 계기가 됐다. ‘용비불패’의 문정후는 이희재의 ‘삼국지’ 후속에 해당하는 초한지 시리즈를 그렸으며 ‘진짜사나이’의 박산하는 ‘공포의 축구화 블랙스콜피오’시리즈를 낸데 이어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만화화하는데 나섰다. 한겨레신문에서 만평을 담당하던 박시백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장대한 시리즈에 도전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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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순신 |
그러나 아동도서시장에서 만화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상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부 드라마, 영화의 인기에 편승하는 행위다. 한때 태조 왕건, 야인시대, 대장금 등 빅 히트 한 드라마와 관련된 만화가 수십 종씩 서점에 깔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요즘에는 소설 ‘칼의 노래’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인기에 영합하여 이순신 관련 만화(그림10)가 봇물 터지듯이 쏟아지고 있다. 드라마 장길산이 방영되면서 출판된 유사상품 ‘의적 장길산’은 원작자 황석영으로 부터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하는 등 부끄러운 오명을 ‘날리고’ 있다. 이가서의 ‘만화로 보는 한국문학 대표작선’은 기획의 참신함에 비해 황당한 작가 고료에서 기인하는 날림 작업으로 건드리지 말아야할 벌집이 되어 버린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도서시장에서 아동용 만화는 절대강자로 군림할 것은 확실시 된다. 장기불황에 빠져있는 출판시장의 거의 유일한 출구로 인식될 정도로 각 출판사들은 만화출판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만화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충분한 마인드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출판에 나서는 것은 오히려 시장을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몇몇 기관에서 만화 기획자 과정을 개설, 운영하는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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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기를 넘어 새로운 체제로
매체와 시대 뛰어 넘는 새로운 패러다임 절실한 우리 만화계
“ (전략)... 만화는 창작예술로서의 문화인 동시에 콘텐츠산업으로서의 속성도 가지고 있다. 문화의 순수성만 강조하고 정부와의 관계 맺음에 무턱대고 결벽을 보이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다. 정부기구와 민간전문단체가 적절한 결합과 역할분담을 통해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사업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의 낡은 인식이나 합리성이 떨어지는 규정만을 이유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만화문화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일이 될 것이다. 과감한 사고의 전환과 시장분석을 통한 치밀한 계획과 투자, 민간의 전문성과 정부의 추진력이 함께 할 때 한국만화는 자생력과 경쟁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이하 생략)” ((이희재, [전략적 만화전문잡지를 만들자], 월간 우리만화, 2004년 9월호, ))
그러나 매체와 시대를 뛰어 넘어 우리 만화인이 잃지 말아야할 근본, 혹은 진정한 패러다임은 만화가 김형배의 다음과 같은 일성에서 가슴에 더욱 절실히 와 닿는다.
“(전략)... 다만,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의 가치를 껴안고 화석이 아니면 전파매체의 입자로 진화할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일 뿐, 진화생물학적 관점으로 보자면 이미 도태되어야 마땅한 제 강박관념이라는 것은 나무 냄새나는 종이에 작가의 혼이 느껴지는 펜만을 사용한다 해도 사람 사는 이야기에 대한 감동만은 온전히 전달 할 수 있다면, 그 것 만으로도 만화 본래의 기능을 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김형배, [내가 만화가 이고자하는 이유], 월간 우리만화, 200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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