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순정만화니?
흔히 유치하고 억지스러운 상황에 덧붙일 때 ‘순정만화같다’라고 하는 것은, 꼭 만화같네요라는 비웃음에서 한발자국 더 나간 논평이다. 만화처럼 허황되며, 소녀처럼 철없는 이야기에 내리는 판결문같은 저런 말은 순정만화적인 클리셰에 대한 일반의 뿌리깊은 인식을 대변한다. 즉 순정만화라 하면 갑자기 멋진 남자가 어디선가 뚝 떨어지더니, 우연이 한번도 아니고 대여섯 번쯤 반복되어 인연을 실감케하며, 현실에서라면 겪기는 커녕 듣기도 힘든 우여곡절을 겪어 운명을 맛보게 하고는, 결국 맺어질 인간들이니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그런 상투적인 얼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정만화를 보고 자란 이들이 강력한 소비자로 등장하면서, 그리고 문화생산의 영역으로 직접 진입하면서 순정만화같다는 것은 유치하다기보다는 트렌디한 감성으로 변모했다. 말하자면 순정만화가 그들만의 문화였을 때는 이해가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이었지만, 성장하면서 나름의 힘을 축적한 여성들이 자신의 문화적 감성을 적극적으로 다른 영역에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누가 더 특이한가?
우선 순정만화의 아기자기한 감성은 가까운 영역, 소년만화로 퍼졌다. 이는 동인계로 대변되는 막강한 여성 소비자+아마추어 생산자 집단의 세력화에 기인한 바 큰데, 기존의 힘싸움 소년만화에 순정만화다운 섬세한 설정을 대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제는 누가누가 더 세나지만 힘의 영역에 개성의 요소를 도입, 여성독자에게도 어필하는 헌터X헌터가 대표적이다. 이 만화의 등장인물들이 가진 힘의 역량은 크기로도 계산되지만,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청소기, 키스를 한다면 상대방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 자신과 똑같은 분신을 하나 더 만드는 능력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 쉽사리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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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헌터X헌터] |
세상에 웬 콩가루 집안이 그렇게 많은지? 그리고 순정만화적인 감성은 자신의 독자들이 이동하게 된 경로, 즉 여성들의 주 관심사인 TV로 옮아갔다. 각자 방 안에 TV를 가지는 시기가 도래하자 TV는 기존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1,20대에게 적합하게 바꿔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독창적인 형식을 개발하기 보다는 기존에 히트친 것을 따오는 방법이 손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드라마가 눈돌린 것이 방대한 순정만화의 세계인 것이다. 드라마에서 가장 자주 써먹는 순정만화의 기법은 고전적인 순정만화에 곧잘 등장하던 우연적인 설정이다. 뭐 뛰다가 모퉁이를 돌면 꼭 누군가와 부딪힌다는 사소한 클리셰 이외에도, 불륜의 상대가 알고 보니 동서의 옛 애인(12월의 열대야), 첫눈에 반한 애인 알고 보니 혈연(올드보이) 같은 상황도 곧잘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까딱하면 누군가가 불치병으로 죽어버리는 눈물 질질 결말, 이상하게 허황된 상류층 소재, 2대, 심하면 3대에 걸친 비극의 가족사 등 심하다고 지적되는 유난스러운 드라마의 클리셰들은 상당부분 순정만화에 빚진 바 크다. 이런 상투적인 코드 이외에도 드라마는 파격적인 판타지적 상상력도 순정만화에게서 빌려왔다. 백제의 공주가 현대로 떨어졌다는 천년지애를 보고 순정만화의 고전적 설정, 이세계 이동을 떠올린다면 무리일까? 만화에서는 주로 현대의 주인공이 과거로 이동하지만, 뭐 그거야 화면에 재현하기에는 과거보다는 현재가 손쉽다는 걸 떠올리면 될 것 같다. 또한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미녀가 된다는 설정의 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이런 설정은 순정만화엔 너무나 많아서 예를 들기도 힘들다)같은 경우도 이런 만화적 상상력을 차용한 콘텐츠다. 또한 순정만화는 소녀들의 영역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여고에서 주로 나타나는 동성애적 감성 또한 놓치지 않고 표현해왔다. 멀게는 남장여자라는 설정을 통해 은유적으로 동성애를 표현한 베르사이유의 장미같은 고전부터, 가까이는 아예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이진경이나 한혜연의 만화들이 대표적이다. 영화 여고괴담은 이러한 소녀들의 동성애적 삼수성을 영화적으로 포착한 예로서, 10대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여자들만 모여서 종일을 보내야 하는, 폐쇄적 학교구조 안에서 동성친구에 대한 끈끈한 애정을 한줄기의 구원으로 묘사한다. 순정만화가 일찍이 알아챘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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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인어아가씨] |
크로스오버의 첨병, 순정만화 영화나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예술의 아우라를 상당부분 잃어버린 소설의 영역에도 순정만화의 감성은 여지없이 침투했다. 2003년 출판계 최대의 이변이었다는 귀여니의 소설이 대표적이다. 웬 킹카는 난데없이 나타나고, 연애는 느닷없이 시작되며 삼각관계, 불행한 가족사, 불치병 등의 요소들도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든다. 갑자기 청춘남녀가 한 집(방)에 동거하게 된다는 설정의 옥탑방 고양이, 돈 많고 잘생긴 남자와 별 개연성 없는 이유로 엮여 한동안 생활을 같이하게 된다는 내사랑 싸가지 등의 인터넷 소설류가 이러한 순정만화의 감수성을 매우 잘 소화해 소설로 컨버전하고 있다. 음악의 경우는 내러티브가 분명한 영역이 아닌 만큼 순정만화의 영향력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비교적 말랑말랑하다고 표현되는 모던락의 경우는 통하는 바가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한때 만화 좀 봤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자우림’의 김윤아다. 싱어송라이터인 그는 자신의 곡 제목에 ‘키키의 택급편’을 연상시키는 꿈의 택배편, 김대원의 만화 제목인 적루등을 넣거나 아예 솔로앨범 제목을 유리가면으로 짓는 등 자신의 문화적 감수성이 순정만화의 태중에서 발아했음을 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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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김윤아] |
확실히 순정만화적 감성이 문화의 여기저기에 침투한 지금에 와서도, 순정만화틱하다는 말은 상투적이란 느낌을 촉발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상투적이라함은 곧 여기저기서 많이들 써먹었단 얘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인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뜻이다. 길게는 수십 년, 짧게도 일이십년은 소녀들의 여리고도 팽팽한 신경과 감성 위에서 줄타기한 순정만화의 공력은 그래서 상당하다. 그리고 여자들이 강력한 구매력을 소유하게 된 이 시대에 소녀적인 것, 팬시한 것, 아기자기한 감성은 더 이상 마이너한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도 않는다. 소녀들이 처음으로 소유하게 된 자기 문화였던 순정만화는 그래서 특별하다. 여성적인 것 , 소녀틱한 것의 원형이 거기 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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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여고괴담2] |
여성의 변화, 순정만화의 진화
그렇다면 순정만화적 감수성이 일파만파로 다른 영역에 침투할 때, 그 뒤안에서 순정만화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확실히 전체적으로 만화가 침체되는 분위기에서 순정만화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전반적인 부진이 눈에 띈다. 그러나 산업적인 추세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들이 순정만화같다고 하는 순정만화는 더이상 이바닥의 주류가 아닌 것 같다. 순정만화 역시 진화하고 있는 다른 문화처럼,`독자의 쌈짓돈과 애정을 먹고 살아야 하는 만큼 부단한 변화를 거듭했다.
소년도 지배한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끊임없이 히트에 히트를 치고 있는 만화창작집단 클램프다. 아마추어 동인계에서 의기투합한 이 집단은 소위 동인녀들에게 어필하는 동성애적 감수성으로 일관하다가, 카드 캡터 사쿠라를 기점으로 소년들의 감성에 침투하기 시작한다. 남녀 모두의 지지를 일관되게 얻을 변신소녀물을 선택한 것부터 미소년과 미소녀의 균등한 안배, 소년들의 놀이, 트레이딩 카드의 구조에 여성적인 느낌의 타로카드적 스킨을 덧씌운 아이템 등은 순정만화와 소년만화 사이에 그럴듯한 교각을 형성한다. 이들은 이후 아예 어린 창녀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쵸비츠로 소년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물론, 클로버나 합법드러그등으로 순정만화쪽의 팬 관리를 잊지 않음은 물론이다. 천계영도 클램프와 비슷한 전략을 짠 것 같다. 데뷔부터 순정만화의 틀에 갇히지 않았던 그는 여성독자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동시에 남자들이 봐도 재밌을 순정만화의 목록에 일순위로 꼽히는 크로스오버한 감수성을 선보인다. 그의 독특한 개성은 순정만화의 필수 요건, 연애의 비율을 상당부분 낮추고 코미디를 전문에 내세우면서 스타일을 매우 강조하는 데서 생겨난다. 즉 상당 부분 낡아있는 순정만화의 고전적인 요소들을 적극 배제하고 10대에 어필하는 가벼움을 강조하는 것이다. 진중하다기보단 발랄하고, 비극적이기보다는 희망적인 그의 만화는 오디션에서 그 참신함의 절정을 보인다. 그러나 천계영은 클램프와 달리 순정만화의 틀 자체를 뛰어넘어 소년들에게까지 지지를 얻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최근작 DVD에서도 예전에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지만 순정만화의 영역 안에서의 시도로 보인다.

욕망하는 소녀들의 발견
순정만화의 틀 자체를 부수려는 이들과 달리, 순정만화 내에서 독자들을 더욱 파고드는 이들도 있다. 이미 더 이상 10대가 순수의 대명사가 아닌 시대에, 이들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흐름이 생겨난 것이다.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집어 들게 되면 읽는 사람의 얼굴을 매우 얼굴을 붉어지게 만드는, 오사카베 마신이나 신조 마유의 소프트 포르노적인 만화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만화는 키스 한 번에 열댓 권을 할애하고, 사랑을 나눈다며 완곡하게 섹스를 표현하던 순정만화의 전통과는 백만 광년의 거리가 있다. 만나자마자 일단 배부터 맞추고 보며, 그렇지 않더라도 무슨 발정난 남자들처럼 누구랑 자네 마네, 몸을 주네 마네로 음란한 이야기들뿐이다. 타로이야기의 모리나가 아이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섹스 코드의 이런저런 배합으로 재미를 꽤 본 케이스. 남녀의 몸이 바뀌어 상대성의 쾌락을 은근하게 맛본다던지, 천방지축의 소녀가 미남을 성추행한다는 식이다. 그밖에도 10대의 탈 버진을 주제로 한 NO처녀가 되고 싶어!라던가 하아하아라는 제목의 만화도 등장해서 책장을 훑는 이들을 꽤나 민망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런 민망한 만화들의 뒤안에는 온갖 성적 쾌락을 망라하는 야오이가 도사리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야오이의 부흥에 대해서는 여성들이 자신의 쾌락을 직접 다루기 꺼려지던 때에 남자끼리의 성관계를 대신 소비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순정만화에서 여성, 심지어 10대의 섹스를 노골적으로 다루는 지금의 상황은 이러한 야오이에 빚진 바가 클 것이다. 그리고 야오이도, 역설적이게도 여자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순정만화의 일종으로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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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애완소녀] |
페미니즘의 만화적 구현 이렇듯 순정만화가 소년감성을 공략하고, 소녀들의 성적 욕망을 건드리는 빡센 방법으로 독자들의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는 한편, 기존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파격을 시도하는 흐름도 있다. 이는 8,90년대 대학가를 풍미한 페미니즘의 조류와도 일정한 관련이 있다. 이는 90년대의 한국 순정만화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일본에서의 페미니즘이 6,70년대에 득세, 사회에 영향력을 파급 시킨지 오래라는 것과 비교된다. 즉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한 이들이 만화를 그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여성적인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본 한혜연, 동성애적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동성애자를 등장시키는 이진경, 살부 충동을 각종 판타지와 학원물로 실감나게 구현한 유시진 등이 이러한 뉴웨이브의 기수들이었다. 이 진술이 과거형인 이유는 현재 한국 만화의 불황, 특히 잇단 잡지의 폐간으로 인해 이들의 활동이 중단되거나 매우 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맹아상태에서 휴면에 들어간 여성주의적인 한국 순정만화에 비해 비교적 부침 없이 변모를 계속하는 일본의 순정만화에서는 여성적 자의식이 만화 내에 한결 성숙한 형태로 드러난다. 초등학생 소녀를 화자로 등장시켜 역설적으로 성인 여성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는 ‘파파 톨드 미’의 세련된 접근법이 대표적이다. 판타지의 세계에 ‘정치적 올바름’을 무리 없이 대입시키고 있는 TONO의 ‘칼바니아 이야기’, 어머니 세대를 포용하는 깊이를 보여주는 요시나가 후미의 ‘사랑해야 하는 딸들’도 여성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만화 속에 성공적으로 구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시대가 변하면 문화도 변한다. 특히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순정만화는 여성 그 자체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변신을 거듭했다. 6,70년대의 그야말로 순정적인 여성이 보던 만화와, 아마조네스로서의 가능성을 자각한 80년대의 여성이 찾는 만화, 그리고 욕망하고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여성이 직접 그리고 향유하는 만화로의 변모에는 시간의 흐름 이상의 진화적 열망이 깃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하고자 하는 여성의 열망이 사그라들지 않는 한, 순정만화의 변화도 계속 현재진행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