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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만화, 한국사를 꿰뚫는 가장 작은 시선

한국 시사만화는 1909년 시작된 이후 일제강점기, 분단, 민주화, 사회적 참사와 디지털 시대를 거치며 비판과 공감, 기억과 윤리를 담아내는 시대의 시각적 증언이자 표현의 언어로 진화해왔다.

2025-06-17 안소라

시사만화, 한국사를 꿰뚫는 가장 작은 시선

시사만화는 단지 웃음을 주는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격랑을 지나온 언어였고, 시대를 증언해 온 증인이며, 무엇보다 억눌린 민중의 눈과 입이었다. 정치와 사회, 문화가 뒤틀릴수록 시사만화는 침묵하지 않았다. 한 칸의 공간, 때로는 신문 한 모퉁이. 그 작은 지면이야말로 가장 예리하고 정직한 현실의 반영이었다. 자의 칼날은 권력을 향했고, 웃음 속에는 절망이, 슬픔 속에는 단단한 희망이 담겼다. 시사만화는 한국 현대사의 거울이자 그림자였고, 동시에 그것이 숨겨진 힘이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과 분단의 아픔, 격렬했던 민주화의 과정, 그리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며 기적을 일궈낸 환희의 순간들, 급변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고비마다 시사만화는 그 핵심을 꿰뚫으며 시대를 증언하고, 때로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 혹은 국민적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 글은 1900년부터 2025년에 이르는 지난 125년간, 한국사의 주요 변곡점에서 중요한 순간, 절망과 극복, 환희와 성찰의 장면들을 포착하고 시대정신을 담아낸 대표적인 시사만평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시사만화가 한국의 역사와 사회를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하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지 고찰한다.

1. 저항으로 태어난 시사만화

1890년대 이후 조선은 서구 열강의 압박과 내부의 봉건적 모순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낡은 체제를 뒤흔들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언론이 탄생했고, 그 가장자리에 만화가 있었다. 1909대한민보의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의 삽화는 한국 시사만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문맹률이 높던 당시 상황에서 한 칸의 그림은 말보다 빠르게 현실을 전달했고, 부패한 관리와 외세에 기대는 지배층을 조롱함으로써 민중의 분노와 자각을 이끌어냈다. 이후 일제강점기 시기, 시사만화는 더욱 은밀하면서도 날카로운 형식으로 진화한다. 직접적인 독립 의지 표현은 금지되었지만, 조선의 현실은 우화와 상징의 형태로 끊임없이 그려졌다. 동아일보조선일보등의 지면에 실린 삽화들은 검열을 피해가면서도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장치로 활용되었다.

이 시기의 시사만화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민중 계몽과 공동체의식을 일깨우는 도구였다. 그림은 웃음을 유도하면서도 통렬한 비판을 담았고, 지면 가장자리에 실리면서도 당시 언론보다 더 깊은 현실을 드러냈다. 글이 검열 당하는 시대, 만화는 오히려 가장 앞서 나간 저항의 언어였다. 이처럼 한국의 시사만화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한시각의 정치로서 근대의 문을 두드렸다.

한편으로 이 시기 시사만화는 급속히 유입되는 신문물에 대한 반응 또한 중요한 소재였다. 전차, 전등, 양장, 우산 같은 서구 문물이 거리와 일상에 침투하던 시점, 많은 만화는 이를 근대화의 상징이자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모방으로 묘사했다. 예컨대 안석주(1901-1950)192825일자 '모던걸의 장신운동가' 같은 작품을 들 수 있다. 안석주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4편의 시리즈를 제작했다.

2. 전쟁, 분단,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속으로

그림 1. 1909725일 이도영의 <자부상피> 당시 이완용과 그의 며느리의 스캔들을 풍자한 작품
그림 2. 1924115일지에 실린 일본인의 이중성을 그린 작품.

광복 이후 한반도는 해방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분단과 전쟁, 독재와 탄압의 격랑에 휘말렸다.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 질서 속에서 한국 사회는 극단적 이념 대립, 외세 의존, 내부 억압이라는 삼중고를 겪었다. 이러한 시대의 진실을 전하는 도구로서 시사만화는 한 발짝 물러서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말할 수 없는 시대였기에, 풍자는 오히려 더 절박하고, 더 정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림 3. 192825<던껄의 장신운동(裝身運動)>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시사만화의 표현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전쟁 초기의 만화들은 반공을 중심으로 이념적 동원을 강조하며, 북한과 공산당을 괴물이나 동물로 묘사하는 등 명확한 선악 구도를 드러냈다. 이러한 시각은 정부 통제와 언론의 선전 기능 속에서 만화가 '계몽 수단'으로 활용되며, 본연의 비판성과 거리두기를 잃는 한계를 드러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시사만화는 다시 그 특유의 은유와 상징을 통해 시대의 틈을 비집기 시작한다.

1960년대 들어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4.19 혁명으로 분출되었고, 시사만화도 그 흐름에 함께 했다.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은 당시 연재 시사만화로, 서민의 눈으로 시대를 바라보며 권력의 허위를 꼬집었다. 19604,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분노가 도화선이 되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진 혁명 속에서, 고바우 영감은 수위를 조절하면서도 부패한 권력과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했다그러나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과 유신체제로 이어지는 군사독재는 다시금 시사만화를 짓눌렀다. 언론통제와 검열은 일상화되었고, 풍자는 상징으로 몸을 숨겼다. 안의섭 화백의 두꺼비는 그런 시대에 태어난 상징적 만화였다. 인물들이 겪는 부조리는 독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사회의 현실이었다. 이런 만화는 독자들에게 국가 통제에 대한 거부감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림 4.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전단으로 보는 한국전쟁전시 이미지

1970~80년대는 표현의 자유가 거의 사라진 시기였다. 긴급조치와 계엄령 속에서 신문은 백지 투쟁을 벌이기도 했고, 만화는 검열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시기, 시사만화는 표현의 기술을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가위로 혀를 자르는 장면은 언론 검열을, 눈을 가린 판사는 불의한 재판을 상징했다. 5.18 민주화운동과 같은 참혹한 비극은 만화로 온전히 표현되기 어려웠지만, 그 여운은 고요한 장면 속에서 드러났다. 직설이 아니라 침묵, 공백, 상징으로 말하는 시사만화는 오히려 시대를 더욱 아프게 찔렀다. 그리고 마침내, 1987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쟁취되었을 때, 거리의 외침은 지면의 풍자와 하나가 되었다. 시사만화는 다시 시대의 언어가 되었고,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의 열망을 표현한 해방의 언어로 자리매김했다.

그림 5. 1958123일 동아일보에 게재 된 <고바우 영감>
그림 6. 1986118일 레이건을 통해 전두환을 풍자하는 작품과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는 작품

3. 민주화 이후의 시사만화 기억의 손으로

19876월 항쟁 이후, 한국 사회는 오랜 억압의 굴레를 벗고 민주주의를 향한 새로운 장을 열었다. 직접선거의 부활, 언론자유의 확대, 시민운동의 성장 속에서 시사만화 역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자유의 회복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말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새롭게 요구하는 시기였다. 권력의 억압은 이전만큼 노골적이지 않았지만, 그 대신 더 복잡한 방식으로 현실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시사만화는 이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더욱 입체적인 풍자, 더 섬세한 감정 묘사로 진화했다. 한편으로 시사만화는 권력의 억압에 저항하는 동시에, 부패와 부조리에도 시선을 두었다. 1995629일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는 기술과 자본의 탐욕이 시민의 생명을 앗아간 대표적인 참사였다. 시사만화는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 깔린 사람 대신 돈’, ‘건물 대신 욕심을 그렸다. 이는 단순한 사고 보도가 아닌, 구조적 책임에 대한 추궁으로 이어졌고, 생명보다 이익을 앞세운 한국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같은 해의 대구 가스 폭발 사고 등과 함께, 시사만화는 점점 감시뿐만 아니라 기억성찰의 도구로도 자리 잡았다.

그림 7. 삼풍백화점 붕괴 후 그 잔해가 버려진 난지도에서 실종자 유족들이 쓰레기 더미를 찾는 모습을 표현
그림 8. 19701215일 남영호 침몰, 19931010일 서해페리호 침몰, 2014416일 세월호 침몰 희생자를 표현

1997~2001IMF 외환위기는 그러한 흐름 속에서 시사만화가 다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 사건이다. 국가 경제가 무너지며 수많은 기업과 가계가 도산했고, 그 충격은 국민 전체를 불안에 빠뜨렸다. 국민들은 나라를 살리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을 펼쳤고, 이는 국가 위기 극복에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 부도 위기를 초래한 고위 공직자 대부분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당시 법원은 외환위기의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 수석의 집권 남용 혐의 중 대부분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그림 9. 1999821일 경향신문에 게재 된 김용민의 만평

2002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대중 정서가 집단으로 분출된 한 해였다. 월드컵의 열기는 시사만화에서도 폭발적인 응원 이미지로 이어졌고, 평소 비판적 역할에 머물던 만화가들조차 시민들과 함께 웃고 울며 '공동체의 축제'를 그렸다. 거리 응원과 '붉은 악마'는 단순한 축구 팬을 넘어 새로운 한국인의 모습을 상징했으며, 만화 속에서는 태극기 대신 우리라는 단어가 더욱 강렬히 휘날렸다.

그림 10. 미선이와 효순이의 참상에 대해 그린 작품
그림 11. <평택 시민 신문>에 실린 태안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양창규의 시민만평

하지만 같은 해,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두 여중생 미선이와 효순이 사건은 국가 주권과 시민 인권의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시사만화는 헬멧과 군화, 피 묻은 교복 같은 이미지로 두 소녀의 억울한 죽음을 전달했고, 미군 기지 앞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의 모습은 만평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국가의 보호'라는 개념이 누구를 향해 있었는가를 되묻는 시각적 외침이었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는 또 하나의 시사만화 전환점을 만들었다. 한반도 서해를 뒤덮은 검은 기름, 그러나 그 속에서도 시사만화는 '하얀 장갑'이라는 상징을 내세웠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의 연대와 책임 의식을 보여주는 감동의 상징이었다. 예전의 시사만화가 권력 비판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시기의 만화는 시민의식의 성장과 공동체 회복의 모습을 더욱 따뜻하게 비췄다.

민주화 이후의 시사만화는 단순한 풍자나 비판을 넘어, 사회 기억의 저장소이자 공감과 연대의 언어로 확장되었다. 권력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아픔을, 개인의 분노뿐 아니라 회복의 감정까지도 담아내는 새로운 형태의 시각 저널리즘. 한 장의 그림은 이제 고발에서 위로로, 비판에서 공동체 감정의 매개로 변화하고 있었다.

4. 말 잃은 시대의 시선 2010년대 이후의 시사만화

201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끊임없는 위기와 변화의 흐름 속에 놓였다. 시사만화는 그 위기의 중심에서 다시 감정을 증언하는 언어로서 기능했다. 더는 권력을 단순히 풍자하는 것을 넘어, 공동체가 겪는 상실과 분노, 슬픔과 회복을 함께 견뎌내는 감정의 매개체가 되었다.

20144,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신뢰를 뿌리째 흔든 국가적 비극이었다. 시사만화는 이 참사를 보도하거나 해석하기보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할지를 깊이 고민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노란 리본 하나로 국가의 부재를 상징했고, 텅 빈 교실, 교복을 입은 아이들 뒤로 흘러내리는 물의 이미지로 침묵의 무게를 전달했다. 이 시기 시사만화는 추모기억을 통해 사회적 애도를 공동체의 언어로 정리하는 매체로 확장되었다.

2016~2017년 박근혜 정부 탄핵 정국과 촛불집회는, 분노의 감정이 집단적 희망으로 전환되는 희귀한 장면이었다. 시사만화는 어둠 속을 비추는 작은 불빛으로서의 촛불을 반복해서 그렸다. 그것은 단순한 시위 도구가 아니라, 헌법과 정의에 대한 열망, 그리고 민주주의의 재가동을 상징했다. 만평 속 대통령은 점점 줄어들고 작아졌으며,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이 시기의 그림들은 군중이 아닌 시민’, ‘분노가 아닌 의지로 묘사되며, 시사만화가 단순한 풍자를 넘어 사회적 전환을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방식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2020, 코로나19 팬데믹의 도래는 시사만화에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바이러스는 특정한 악당이나 정책 실패로 비판하기엔 너무도 복잡한 위기였고, 시민들은 혼란과 공포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야 했다. 시사만화는 처음엔 마스크를 쓴 시민, 고립된 노인,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을 통해 연대를 상징했고, 이후엔 거리두기로 단절된 일상과 서로 마주할 수 없는 이웃의 관계를 그렸다. 주목할 점은 이 시기의 시사만화가 점차 비판보다는 공감의 언어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만화 속에서 시민들은 더는 무력한 피해자나 분노하는 대중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는 주체로 등장했다. 예를 들어,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드는 아이와 노인의 모습, 의료진에게 건네는 한 송이 꽃 같은 장면은, 시사만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정보나 풍자에서 감정의 교감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0년대 이후의 시사만화는 여전히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나 그 거울은 단순히 비틀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공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그려주는 창()으로 바뀌었다. 참사 앞에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고, 광장에서 외치지 않을 수 없으며, 격리 속에서도 함께 있음을 느끼고자 하는 이 시대. 시사만화는 그 모든 감정의 궤적을 담아내며, 시대의 일기장처럼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림 12. 20201228일 코로나19 펜데믹 속에서 서로 힘을 모으는 모습과 희망을 시사하고 있는 이정헌의 작품

5. 시사만화의 새로운 전환 경계의 시대, 표현의 윤리를 묻다.

그림 13. SNS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양경수 작가의 작품.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시대 직장인들의 비애를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2020년대를 넘어오며 시사만화는 기술과 감정, 윤리 사이의 긴장을 조율해야 하는 새로운 환경에 놓였다.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으로 인해 만화의 유통 방식은 인쇄 매체 중심에서 온라인과 SNS 중심으로 급변했다. 이제 만평 한 장은 몇 시간 만에 수백만 건의 조회를 기록하며, 단순한 신문의 일부가 아닌 사회적 사건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 변화는 시사만화에 큰 확장성과 동시에 새로운 책임을 요구하게 했다. 특히 혐오 표현, 성별 갈등, 인종차별 등의 이슈가 사회 전면에 떠오르며, 시사만화는 더 이상 일방적인 조롱이나 풍자를 허용받지 않는 매체가 되었다. 익명의 소비자들은 댓글을 통해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플랫폼은 명예훼손이나 차별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떤 시사만화는 공개된 날보다 사과문이 올라온 날이 더 오래 회자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경계 설정은 시사만화를 위축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누구를 위한 공감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했다. 풍자가 단순히 비틀어 웃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방향, 방식에 대한 고민을 동반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은 시사만화를 다시 한 번 자기 혁신의 길로 이끌고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변화는 AI 기술의 도입이다. 생성형 이미지와 자동 채색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사만화의 제작 환경 역시 바뀌고 있다. 일부 만평은 손 그림이 아닌 디지털 자동화된 형식으로 구현되기도 하며, AI를 활용한 스타일 변형과 빠른 수정이 가능해지면서, ‘작가의 붓알고리즘의 손이 나란히 놓이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 변화는 시사만화의 고유성, 윤리성, 인간적 감정선의 표현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다. 시사만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감정과 판단의 전달체였기에, AI가 대신 그린 만화가 과연 '시사'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시사만화는 비판하는 그림에서 공감하고 책임지는 그림으로, 그리고 기술과 감정이 만나는 윤리적 실험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권력 비판이라는 전통적 기능은 여전하지만, 더 이상 무엇을 그릴 수 있느냐만큼이나 어떻게 그릴 것인가’, ‘누구와 함께 그릴 것인가가 중요한 시점이다. 만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묻는다. “지금, 우리가 공감하고자 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이미지 출처>

-그림 1 : https://www.khan.co.kr/article/201601251740121
-그림 2 : https://www.donga.com/news/donga100/view?gid=100145572&date=20200313
-그림 3 : https://blog.naver.com/enterani/220239395245
-그림 4 : https://www.khan.co.kr/article/200505301755021
-그림 5 :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5575
-그림 6 : https://kmas.or.kr/webzine/column/1172
-그림 7 : https://blog.naver.com/culturecre/30171037294
-그림 8 :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740955259277412&id=161649467207997&set=a.169404299765847
-그림 9 : https://www.khan.co.kr/article/201908210001001
-그림 10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82563
-그림 11 : https://www.pt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91
-그림 12 : https://gonggam.korea.kr/newsContentView.es?mid=a10401000000&section_id=NCCD_POLICY&content=NC002&code_cd=0107000000&nPage=281&b_list=9&news_id=EBC6D40145824203E0540021F662AC5F
-그림 13 : https://www.nocutnews.co.kr/news/6000418

필진이미지

안소라

만화평론가. 공주대학교 만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영상대학교, 배재대학교, 공주대학교 등 만화 웹툰 관련 학과에 출강했다. 현재 대덕대 웹툰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