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오컬트 웹툰, 한(恨)과 무속의 서사
글_안소라
2025년 6월 20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세계적인 성공을 이루었다.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애니메이션이 되었으며, 사운드트랙 또한 많은 인기를 얻으며 빌보드 차트에까지 진입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케이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음악 활동을 하면서 악령을 퇴치한다는 설정은 언뜻 보기에 엉뚱하게 들릴 수 있지만, 김밥을 먹는 모습, 한약방에 가는 모습, 낙산공원 성곽길 등 애니메이션에 표현된 섬세한 한국 문화의 요소들은 세계인들이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한국 오컬트 문화를 근간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선대 헌트릭스가 무당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헌트릭스가 퇴치해야 할 악령들이 저승사자의 이미지로 묘사된 것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다. 이는 한국적 오컬트의 정서를 의도적으로 담아낸 결과다.(여담이지만 ⟪케데헌⟫의 감독 매기 강은 무당이 굿판을 벌이는 모습에서 공동체를 위해 춤과 노래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의 관람객 수가 급증하고 관련 문화상품 매출액이 증가한 현상은 우연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케데헌》의 성공은 한국 전통무속문화가 현대 대중문화 속에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케데헌》은 한국 오컬트가 가지는 한(恨)이라는 뿌리 깊은 서사적 특징을 대중적으로 재현하였다. 이는 서양의 오컬트가 기독교의 퇴마 의식이나 악마와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고,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를 명확히 하는 것과 차이가 난다. 오컬트적 요소를 통해 공포를 유발하는 방식도 한국과 서양은 차이가 있는데, 한국은 심리적 공포에 무게를 두지만, 서양은 물리적 고통을 기반으로 하는 무차별적인 폭력성과 시각적인 잔인함을 표현한다. 이는 같은 오컬트 장르라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각 나라의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국 오컬트의 어떤 부분이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한국 오컬트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들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1. 한국 고유의 정서인 한(恨)과 원혼설화
한국 오컬트의 원류는 억울하게 죽은 자의 원혼을 다루는 설화에서 비롯된다. 한국 전통 속 원혼은 단순히 사람을 놀라게 하는 귀신이 아니다. 그 존재는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이들이 품은 한(恨)을 상징하며, 그 한이 풀리지 않는 한 공동체 전체의 평화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대표적인 설화로 경상도 밀양에 전해 내려오는⟪아랑 설화⟫가 있다. 어머니를 잃고 유모 손에 자라던 아랑은 지방관리와 유모의 음모에 희생되어 억울하게 죽음을 맞는다. 이후 원귀가 된 아랑은 부임하는 관리들을 잇달아 죽게 만들지만, 이상사(李上舍)라는 신임관리 앞에서 억울한 사연을 밝히며 원한을 풀고서야 마을은 다시 평안을 되찾는다. 이 설화에서 귀신은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정서는 현대 대중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으로 ⟪전설의 고향⟫을 들 수 있다. 매년 여름밤을 책임졌던 ⟪전설의 고향⟫은 무서운 귀신의 모습이나 공포를 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은 “왜 귀신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물음을 담고 있다. ⟪전설의 고향⟫에서 귀신으로 나타난 원혼들 역시 대부분 억울하게 죽음을 맞거나, 사회적 약자로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맥락은 웹툰에서도 이어지는데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되었던 김나임 작가의 ⟪바리공주⟫가 대표적인 예이다. <미명귀>, <몽달귀신>, <사혼제> 등 각각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리공주가 무당으로 현신(現身)하여 원혼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오컬트 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리공주가 무당으로 현신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오컬트의 두 번째 특징인 무속신앙과 연결된다.
2. 무속신앙과 해원의 방식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는 것은 퇴마라 부르기 어렵다. 퇴마(退魔)는 악한 영적인 존재를 쫓아내거나 물리치는 것을 의미하는데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을 악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퇴마라는 말보다 억울함을 풀어주는 의미의 해원(解寃), 맺힌 것을 풀어주는 해소(解消), 깨끗하게 씻어냄을 의미하는 정화(淨化)라는 표현을 더 자주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원이나 해소, 정화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 절차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하는 행위자가 무당(巫堂)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오컬트의 상당 부분은 무속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오컬트의 중심에는 늘 무속신앙이 있다. 무속신앙은 특정 교리나 경전을 가진 제도 종교라기보다, 무당을 매개로 신과 인간이 만나는 실천적 신앙이다. 여기서 무당은 단순히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 아니다. 억울하게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그들의 한을 풀어내는 의례를 주관하며, 때로는 마을 전체의 안녕을 위해 굿판을 벌이는 존재다. 그래서 한국 오컬트 속 귀신은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무당이라는 매개자를 통해 구원받아야 할 연민의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특징은 대중문화 속에서도 이어진다. ⟪전설의 고향⟫같은 작품 속에서 원혼들과 함께 구미호, 저승사자, 도깨비 등 민간설화 속 존재들을 활용해 공포를 조성했다면, 그 존재들이 잘못을 깨닫게 하고, 구원하는 것은 주로 무당의 역할로 그려졌다. 앞선 맥락에서 바라볼 때 한국 오컬트 장르에서 귀신을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닌 구원해야 할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서구의 엑소시즘과 결합하는 형태를 보이기도 하는데, 두 개의 대표적인 웹툰을 통해 그 차이를 살필 수 있다.

그림 김나임작가의 《바리공주》(좌) 구아진 작가의 《미래의 골동품가게》(우)
⟪바리공주⟫에서 바리는 원혼들의 한을 풀어주는 전통적인 무당의 역할을 보여주지만,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구아진 작가의 ⟪미래의 골동품 가게⟫ 주인공인 도미래는 이매신과 같은 악귀를 퇴마하는 현대적인 무당의 역할을 보여준다. 즉, 현대의 한국 오컬트는 같은 무속적 세계관 안에서도 ‘달래는 무당’과 ‘싸우는 무당’이라는 두 갈래의 모습을 모두 품어낸다. 전통적으로는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달래며,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이 무당이었다면, 현대 서사에서는 원혼이 아닌, 외부로부터 침입한 악귀를 상대하는 전투적 무당의 이미지가 구현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변질이라기보다, 한국 오컬트가 시대적 요구에 맞게 자신을 변주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두 방식이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콘텐츠 안에서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독자는 바리공주의 굿판을 통해 여전히 ‘한’을 풀어내는 정서적 해원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도미래의 싸움을 통해 서구 오컬트가 보여주는 긴박한 퇴마의 긴장감에도 몰입한다. 다시 말해 한국 오컬트는 해원과 퇴마, 위무와 전투라는 이중의 서사를 동시에 끌어안으며, 서양의 오컬트와는 다른 독특한 층위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오컬트는 단순히 귀신과 싸우는 공포물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귀신이 등장하더라도 결국 중요한 것은 산 자가 그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스스로의 과오와 상처를 직면하며, 어떤 방식으로 성찰을 끌어내는가에 있다. 귀신은 공포의 주체이지만, 동시에 인간이 변화를 시작하도록 만드는 촉매다.
3. 인간 중심의 서사
한국 오컬트의 세 번째 특징은 인간 중심의 서사다. 서양 오컬트가 귀신이나 악령 자체를 절대적 악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몰아내는 행위에 서사의 초점을 맞춘다면, 한국 오컬트는 조금 다르다. 귀신은 두렵고 공포를 주는 존재다. 하지만 그 공포가 끝내 향하는 지점은 귀신 그 자체가 아니라, 귀신과 마주한 산 자의 내면과 삶이다. 즉 귀신은 단순한 적이 아니라, 산 자가 성찰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촉발하는 서사의 매개자로 작동한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케데헌》의 진우가 악령이 된 것은 세상을 해치려는 의도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자 했던 절박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볼 때 한국 오컬트는 악령조차 인간적 정서와 맞닿아 있는 존재로 변모시킨다. 이렇게 인간 중심의 서사적 특징은 웹툰에서도 드러난다. 김태영 작가의 《안개무덤》은 무속신앙과 스릴러를 결합한 작품인데, 겉으로는 귀신의 저주와 의문의 사건을 다루는 오컬트 스릴러이다. 그러나 작품이 진행될수록 독자는 사건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악령이나 귀신이 아니라, 인간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과 풀리지 않은 갈등임을 깨닫게 된다. 악령이나 귀신은 사건의 원인으로 등장하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주체는 결국 살아 있는 인간인 것이다. 죽은 자의 원혼이 던지는 메시지를 외면할 수 없는 인간이, 자신의 책임과 죄책감을 직면하면서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귀신을 무찌르고 사건이 끝나는 서양식 퇴마와는 확연히 다르다. 한국 오컬트에서 귀신은 끝내 인간의 이야기 속으로 되돌아오며, 산 자에게 남겨진 상처와 불화를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독자는 귀신의 섬뜩한 얼굴에 놀라면서도, 그 안에 담긴 인간적 서사와 감정의 무게를 외면할 수 없다. 또 다른 작품으로 네이버에서 연재된 ⟪지옥⟫(연상호 글, 최규석 그림)이 있다. 〈지옥〉은 전통적 오컬트의 범주에 넣기 어렵지만,(크리처물에 가까울 수도 있다. 다만 괴물을 신으로 가정한다면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인간 중심 서사의 연장선에서 해석 가능하다. 이 작품 속에서 사람들을 덮치는 것은 귀신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괴물의 실체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인간 사회다. 새진리회와 같은 집단은 이 현상을 ‘신의 심판’이라 규정하며 사회를 통제하고,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그 논리를 수용한다. 공포의 주체는 괴물이 아니라, 그 괴물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집단 심리와 사회적 폭력성인 셈이다. 결국 ⟪지옥⟫은 귀신이 사라진 자리에서조차 한국 오컬트의 인간 중심적 서사가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그림 김태영 작가의 《안개무덤》(좌)과 연상호 글, 최규석 그림의 《지옥》(우)
이제까지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한국 오컬트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억울하게 죽은 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한’과 원혼 설화의 전통을 가진다. 둘째, 무속신앙을 통해 원혼을 달래거나 악귀와 싸우는 해원과 퇴마의 방식이 서양의 오컬트와는 다르다. 셋째, 귀신을 빌려 인간을 성찰하게 만드는 인간 중심의 서사다. 이 세 가지 축은 단순한 장르적 장식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문화적 토대와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웹툰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바리공주》는 무당의 굿판을 통해 원혼의 한을 달래는 전통적인 서사를 이어가고,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악귀와 맞서는 전투적 무당의 이미지를 통해 서구식 퇴마극의 긴장감을 흡수한다. 《안개무덤》은 인간 내면의 죄책감을 파고드는 심리적 공포를, 《지옥》은 괴물조차 악령이나 귀신처럼 인간 사회의 불안을 비추는 장치로 삼는다. 작품마다 결은 달라도, 모두가 한국 오컬트의 뿌리에서 비롯된 상상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케데헌》은 무속적 세계관을 케이팝과 결합해 세계적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한국적 오컬트 정서가 세계 대중문화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공포로 시작하지만, 끝내는 인간과 사회를 이야기하는 서사. 그것이야말로 한국 오컬트가 지닌 독창적 매력이다. 그리고 웹툰은 이러한 한국 오컬트의 힘을 바탕으로 시대에 맞는 다양한 변주를 거듭하며, 앞으로도 새로운 상상력의 장르로 자리 잡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