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오컬트 만화, 시간이 지나며 더욱 깊어져 가는 장르의 풍미
2025년 현재, 한국은 때아닌 오컬트 열풍이 불고 있다. 2024년에 개봉한 장재현 연출의 영화 <파묘>가 단숨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올해 상반기에 개봉한 권혁재 연출의 영화 <검은 수녀들>과 이우혁의 전설적인 오컬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퇴마록>의 흥행은 오컬트에 관한 관심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였다. 비슷한 시기에는 ‘일본에서 조선의 무속 신앙을 다루는 만화를 그렸다’라며 화제가 된 토가와 요난의 만화 <흑무경담>이 한국에 알려지며 더욱 오컬트에 대한 관심을 더 키웠다.
그러다 하반기에 들어서는 일본 소니 픽처스와 미국 넷플릭스의 합작으로 제작된 작품이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무속 문화와 아이돌 팝을 재치 있게 버무려낸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등장했다. 작품이 서비스되기 전에는 외국에서 어설프거나 조잡한 방식으로 K-POP을 다루는 게 아니냐면서 걱정하는 여론이 많았지만, 그러한 걱정은 곧바로 기우가 되었다. 작품은 한국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동시에 작품의 여기저기에 쓰이고 있는 한국 전통 무속의 상징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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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부터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한 이우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퇴마록>의 2부 ‘세계 편’.
올해 상반기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퇴마록>의 인기와 더불어 웹툰도 함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오컬트 붐은 비록 영상을 중심으로 한 유행이다. 그러나 만화도 이러한 붐에서 결코 무관한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흑무경담>처럼 일본 만화지만 한국의 무속을 기반으로 한 오컬트를 깊이가 있으면서도 흥미롭게 다뤄내며 주목을 받은 것에 더해, 애니메이션 <퇴마록>이 흥행하자 이미 완결된 상태였던 <퇴마록>의 웹툰이 다시 주목받은 것은 물론 이러한 인기를 받아 약 1년 반 만에 2부의 연재를 시작하며 1부를 넘는 인기를 끄는 상황이다.
여기에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작품이 발표된 시기는 <파묘>보다는 이르긴 하였으나, <미래의 골동품 가게>나 <아일랜드>와 같은 만화들이 한국의 오컬트 붐에 미친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 오컬트 만화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에서의 오컬트 장르가 흘러간 역사를 반추한 행위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어려움 속에서도 두각을 드러냈으며, 웹툰의 시대에서 더더욱 깊어져 가는 한국 오컬트 만화의 세계를 짚으며 앞으로 더욱 기반이 단단해질 한국 오컬트 장르의 세계를 상상해 보자.
대중문화의 발달과 함께 확대된 세계의 오컬트 장르, 그 흐름에 함께하지 못했던 한국
오컬트(occult)는 본래 초자연적이거나 불가사의한 현상을 일컫는 영어 표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중세 시기부터 유럽에서 번성했던 연금술이나 점성술, 강령술, 또는 밀교와 같이 제도적인 종교에서 벗어난 신비주의적인 이론이나 집단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하지만 장르를 지칭할 때의 뉘앙스는 이와는 조금 다르다. ‘퇴마’나 ‘강령’, ‘제령’ 같이 실제 역사 속 오컬트에서 자주 활용하였던 요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공포나 미스터리, 또는 스릴러나 때로는 액션 등 다른 장르들과 결합하며 작품의 고유한 분위기를 더해내는 형태로 작동한다.
따라서 오컬트 장르의 등장과 정착은 소설과 같은 대중문화의 흐름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오컬트를 구성하는 요소 자체는 서구권에서는 오랜 시간 사회 전반에 깊숙하게 퍼질 정도로 대중들에게는 친숙한 대상이었지만, 이러한 요소를 활용한 소설이나 희곡, 만화 등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각의 대중문화 장르들이 등장하고 향유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어야 했다.
한편으로는 오컬트와 같은 소위 ‘비과학적인’ 요소의 활용을 어떻게든 용인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했다. 사회의 근대화는 소위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조속한 폐기를 요구했고, 오컬트적인 이론들 역시 시급하게 처분이 시급한 대상이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 대중문화와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대중매체가 함께 발전하며 오컬트는 실제 현실 속에서는 사라졌어도, 픽션의 세계를 통해 오컬트의 요소들은 계속 생명력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픽션에서조차도 오컬트를 쉽게 용인하기 어려운 국가들에서는 오컬트 장르의 등장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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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분명 밀교나 무속 신앙같이 오컬트 장르의 요소로 변용할 수 있는 역사적 전통이 없던 것은 아니다.
박기당의 <저승피리>처럼 이를 활용한 만화도 일찌감치 존재했다.
그러나 아직 장르로서의 ‘오컬트’라고 부르려면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은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하기 참으로 쉽지 않았다. 오컬트로 활용할 수 있는 요소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도 밀교와 같이 신비주의적 종교의 전통은 분명 존재했고, 무엇보다 ‘무속 신앙’이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숭유억불을 국가의 중요한 신조로 내걸었던 조선 시대나 더더욱 비과학적인 요소들을 근절하기에 앞장섰던 일본 제국 시기를 모두 거치면서도 무속 신앙은 쉽게 단절되지 않을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형성이 지지부진하고, 그와 함께 오컬트 장르의 요소를 함께 지탱할 수 있는 다른 장르들의 정착에 긴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 족히 1990년대까지 유지되었던 국가 차원의 권위주의적 검열은 오컬트적인 표현을 시도하는 것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줬다.
게다가 ‘오컬트 만화’로 가면 상황은 더욱 어려웠다. 앞서 언급했던 어려움에 더해, 한국은 2000년대 전까지 만화 산업 자체가 결코 안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오컬트 장르의 기초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는 ‘귀신’이 등장하는 호러 장르의 만화는 있었다. 1950년대 말에 발표된 박기당의 <저승피리> 같이 고전을 소재로 괴기한 경향의 작품은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문화 형성의 지연과 장르 정착의 지연, 만화 산업의 정착 지연은 이러한 요소들을 그저 각각의 장르를 보조하는 부차적인 차원, 또는 고전의 변용이나 괴기한 분위기를 낳는 한정된 도구로 놓아둘 따름이었다. 요소는 분명 활용되었지만, 장르로서의 오컬트가 등장했다고 말하기엔 어려운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어려움 속에도 한국에 도착한 해외 작품들, 오컬트 자르의 가능성을 만들다
그러나 아무리 장르의 자생적인 형성이 지지부진해도, 아무리 서슬 퍼런 검열의 악명이 드높았어도 문화 교류와 그로 인한 영향까지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다른 여러 대중문화의 장르들과 마찬가지로 오컬트 역시도 한국에서는 해외에서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서 한국에 도착한 해외 작품들을 통해서 조금씩 장르의 매력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 첫 시작을 끊은 것은 연구자마다 조금씩 견해는 다르겠지만, 미국에서는 1973년에, 한국에서는 여러 검열 끝에 1975년에야 겨우 수입된 윌리엄 프리드킨의 영화 <엑소시스트>가 아닐까. <엑소시스트>는 한국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은 물론, 해외에서도 오컬트 경향의 장르가 대중들에게 친숙해지는 새로운 전기를 만든 하나의 계기였다. 이전에도 기독교의 구마 의식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엑소시스트>는 이러한 요소들을 현재까지도 전 세계 오컬트 장르의 중요한 소재로 정착시킬 정도로 매우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미국에서는 1976년, 한국은 1977년에 개봉한 리처드 도너 연출의 영화 <오멘>은 더더욱 한국의 관객들에게 오컬트의 요소들이 친숙해지는 것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한국인들이 오컬트의 장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에는 도움을 줘도, 본격적인 오컬트 장르의 작품이 등장하기에는 조금 힘에 부쳤다. 1970년대 한국에 소개된 두 편의 영화와 배턴을 터치하고 한국에 본격적으로 오컬트 장르 작품의 등장할 수 있도록 이끌고, 나아가 오컬트 만화의 등장을 낳은 것은 바로 일본에서 건너온 만화들이었다. 한국에는 1980년대 중후반 해적판으로 먼저 소개되었던 오기노 마코토의 <공작왕>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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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컬트 만화, 더 나아가 한국 오컬트 만화의 근원을 말하기 위해서는 결국 오기노 마코토의 <공작왕>과 같은 일본 만화의 존재를 지나칠 수 없다.
비록 해적판으로 알려진 명성이었지만, <공작왕> 등 오컬트 소재의 일본 만화들은 한국에서 오컬트 장르의 흥미로운 감각을 독자와 창작자 모두에게 알려준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마치 <엑소시스트>와 <오멘>이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오컬트 장르의 정전(正傳, canon)이 되었다면, <공작왕>은 일본을 비롯해 한국, 홍콩, 대만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 동양적인 세계관을 기틀에 둔 오컬트 장르가 정착할 수 있도록 만든 현대적 기원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일본을 비롯하여 중국, 또는 불교적인 전통과 세계관에 기초한 온갖 요괴와 마물들, 다시 같은 세계관에 근원한 ‘퇴마사’가 등장한다. 요괴와 마물들은 인간 사회의 어둠을 먹고 자라나 무수한 혼란을 낳고, 퇴마사는 이들을 정벌하기 위해 무수한 고난을 뚫고 화려한 액션과 다양한 필살기로 목표를 완수한다. 비록 한국에는 여러 폭력적이거나 잔혹한 장면, 선정적 묘사 등으로 인해 1990년대 후반 도서 출판 대원(현, 대원씨아이)이 정식으로 발매하기 전까지 <공작왕>은 해적판으로만 한국에 유통되었지만,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홍콩 영화가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 정도로 결코 적지 않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지녔다.
<공작왕>이 전파한 동양식 오컬트 만화의 가능성은 이후 타카다 유조의 <3×3 EYES>(서전아이즈)와 마쿠라 쇼 글, 오카노 타케시 그림의 만화 <지옥선생 누베>로 이어졌다. <공작왕>과 마찬가지로 두 작품 모두 한국에는 처음 해적판으로 유통되기 시작해, 꽤 시간이 지나서야 한국에 정식으로 발매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도 높은 인지도와 영향을 미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3×3 EYES>는 <공작왕>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더 확장된 세계관, 특히 순애적 경향의 로맨스와 결합해 내었다면, <지옥선생 누베>는 무대를 과감히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친숙한 학교나 동네로 옮겨내면서 마치 작중의 모습이 현실에서도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어반 판타지’적인 요소와 결합하면서 몰입감을 자아내었다는 점일 것이다.
<퇴마록>의 등장, 그리고 <아일랜드>와 <두 사람이다>
이제 한국에도 오컬트 장르의 매력이 전해졌다. 정식 발매는 여러 사정으로 지연되었더라도, 해적판의 인기와 영화 등의 파생 저작물의 흥행은 한국에서도 오컬트 장르가 가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들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해외의 오컬트 장르 코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다시 이를 한국의 정서에 맞게 변주한 작품이 등장했다. 바로 이우혁이 1993년 PC통신 서비스 ‘하이텔’에 연재해, 1994년 책으로 출간된 소설 <퇴마록>이다. <퇴마록>은 발표된 지 30년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인들에게 계속 회자되는 것은 물론, 여전히 <퇴마록>의 누적 판매량 1,000만부(2013년, 문학동네-엘릭시르의 공표 기준)를 넘은 한국 장르 소설이 없을 정도로 큰 선풍을 일으켰다. 작품 완결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2021년에는 웹툰이, 2025년에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나온 것은 <퇴마록>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력을 짐작하도록 만든다.
<퇴마록>이 만들어낸 가능성에 이윽고 한 편의 만화가 반응했다. 윤인완이 스토리를 맡고, 양경일이 그림을 맡아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대원씨아이의 청년만화잡지 《영 챔프》에 연재한 <아일랜드>였다. <아일랜드>는 소설 <퇴마록>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된 작품이었다. 기독교의 구마 의식에 근거한 오컬트와 밀교나 무속 신앙과 같은 동양 및 한국적 전통에 근거한 오컬트의 요소를 섞어 내고, 이 두 방향의 오컬트 요소로서 한국의 사회·문화에 근간을 둔 온갖 괴이에 맞서 싸웠다는 점에서는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의 고유한 특색 또한 역시 강했다. <퇴마록>에서는 비교적 협력하는 관계로 그려졌던 기독교와 동양적인 오컬트는 <아일랜드>에서는 쉽게 서로의 속내를 짐작할 수 없어 때로는 반복하고 의심하는 긴장적인 관계로 그려졌다. 악령으로 인한 범죄를 강렬하게 묘사하며 독자의 이목을 이끈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인상적인 특징은 ‘반’의 캐릭터성이 아니었을까. 수백 년 전 밀교에서 비밀리에 사람을 주술로 살해하는 ‘주살승’으로 키워지다 죽음을 맞이한 뒤 다시 되살아 난 ‘언데드’인 반은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캐릭터다. 일견 포악하고 잔인해 보이지만 주인공 ‘미호’ 일행을 결정적인 순간에서 돕는다. 허나 완벽한 아군이라기 하기엔 도무지 친해지기 어렵고, 어딘가 감춰진 비밀이 있어 보인다.
오컬트 장르의 전형성을 타파한 ‘반’의 캐릭터는 <아일랜드>를 1990년대 후반 많은 독자의 주목을 받게 한 일등 공신이었다. 다양한 문헌 자료를 조사해서 빚어내어 만든 작품 속 무수한 악귀들과 이에 대적하는 밀교 세력의 모습들은 <퇴마록>에서 글로만 보던 한국적 오컬트의 세계를 더욱 생생한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것도 같은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생경한 요소가 적지 않은 제주도의 민속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포집하는 독특함이 있었다. 작품 연재 1년 전 단편 <데자부 – 봄>으로 데뷔하고 <아일랜드>가 첫 번째 장편 만화였던 윤인완의 스토리는 신인 작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전 조사와 디테일이 뛰어났고, 페이즈에 맞는 완급 조절도 능숙했다. 여기에 <소마신화전기>로 이미 두각을 드러냈던 양경일의 감각적인 그림이 더해지면서, <아일랜드>는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오컬트 만화이자 1990년대 후반 한국 만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가 연재를 시작하고 2년 뒤, 1999년에는 한국 오컬트 만화에 또 다른 한 획을 그은 작품이 등장했다. 1999년 본격적으로 만화 사업에 진출을 선언했던 시공사의 첫 만화 잡지인 동시에 순정 만화잡지였던 《케이크》의 창간호에서 연재를 시작했던 강경옥의 <두 사람이다>였다. 이전에도 <노말시티>에서 부분적으로 호러적 연출을 시도했던 강경옥이 본격적으로 도전하는 호러 만화로 선전되었던 <두 사람이다>는 공포의 감각을 낳는 것으로도 효과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순정만화’라는 장르 영역과 오컬트가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 효시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작품이었다.
대다수의 오컬트 영역에 속한 작품이 눈앞에 닥친 초자연적인 현상과 악령을 퇴치하는 ‘결과’에 방점을 두었다면, <두 사람이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인과’와 해결하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기에 작중에서는 조선 시대부터 대대로 가문에 이어지는 끔찍한 저주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이들 가문에 이런 저주가 발생하고 말았는지를 파헤치는 과정이 함께 중요해졌다. 작품은 가문에 얽힌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이를 거치면서 점차 서로에게 강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섬세한 묘사도 놓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작중에서 저주를 해결하는 방식은 문제를 일으킨 악령을 퇴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저주에 얽힌 대상들을 추적하고 이들의 사연을 귀 기울여 듣는 형태로 흐르며 마치 한국의 전통 설화에서 원령의 한을 해결하는 과정을 연상하게 했다. <아일랜드>가 당시로서는 더더욱 알려지지 않았고, 지금도 결코 대중적이라 말할 수 없는 여러 전통적인 소재를 발굴하며 한국적인 오컬트를 시도했다면, <두 사람이다>는 서사를 전개하고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 간의 관계성을 통해 한국에서 가능할 수 있는 오컬트의 흐름을 시도한 셈이었다. 방향성은 달라도, <아일랜드>와 <두 사람이다> 모두 한국에서 오컬트 장르가 전래된 이래 만화의 차원에서 어떻게 작품 자신만의 것으로 장르를 소유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중요한 모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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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완 글, 양경일 그림의 <아일랜드>와 강경옥의 <두 사람이다>는 작품의 방향성은 각각 달라도
모두 1990년대 후반 등장하며 한국에서 오컬트 만화의 가능성을 증명한 중요한 작품들이다.
웹툰에서 더욱 깊어진 오컬트의 모습들 : <타이밍>에서 <미래의 골동품 가게>까지
그러나 이 두 작품의 성공은 곧바로 한국 만화에서 오컬트의 붐을 낳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두 작품이 연재되던 시기는 잡지 중심의 한국 출판 만화가 서서히 황혼기를 맞이하던 때였다. 작품에 대한 인기로 몇몇 작품들은 오컬트 장르를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대중들에게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상태로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나마 <아일랜드>와 같이 1998년 《영 챔프》에 연재되었던 형민우의 <프리스트>가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기독교적 세계관 기반의 오컬트를 농밀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작품이었다. 그저 이야기를 채 매듭짓지 못한 채 여전히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한 번 싹이 튼 오컬트 장르는 만화의 주된 매체가 잡지에서 웹툰으로 옮겨진다고 하여 쉽게 마를 수 없었다. <순정만화>로 웹툰에서 본격적으로 서사의 가능성을 시도했던 강풀이 2005년 다음 만화속세상(현, 카카오웹툰)에 세 번째로 연재한 장편 <타이밍>은 <아일랜드>와 <두 사람이다>에 이어 다시금 오컬트의 독자적인 변주를 시도한 작품이었다. 작품은 여러모로 쉽게 마주치지 않을 것 같은 장르들을 교차하는 식으로 첫머리를 띄웠다. ‘타이밍’이라는 제목대로 작품에는 시간을 멈추거나, 미래의 사건을 예지하는 등 ‘시간과 연관된 초능력자’들이 속속 등장한다. 그렇게 각자의 사연을 지닌 초능력자들 사이의 이야기로만 흘러갈 것 같았던 이야기는 이들이 거주하는 동네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죽음들과 귀신의 존재가 등장하며 호러와 미스터리의 면모를 강하게 투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초능력과 호러의 조합으로 흘러갈 것 같았던 작품은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오컬트적인 장르의 코드를 삽입하며 더욱 쉽게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시간을 다루는 초능력자들과 이들 사이의 대결, 그 와중에 벌어지는 의문의 사망 사건들이 낳는 공포와 그 전말을 파헤치기 위한 추리, 그리고 주인공들 앞에 등장한 귀신과 그의 한을 풀기 위한 오컬트적 행동이 모두 더해진 작품은 이전까지의 만화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었던 다중적인 전개의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오컬트적인 요소를 활용함에 있어서도 복합적인 장르의 조합, 그리고 이와 맞물려 중층으로 흘러가는 등장인물들의 서사와 관계성이 더해지며 색다른 오컬트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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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의 <타이밍>은 웹툰의 영역에서 오컬트가 호응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 시도이자,
오컬트의 기본적인 얼개를 유지하면서도 여러 장르와 복합적인 상호 반응을 통해 독특한 면모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타이밍>이 흥행이 영향을 미친 덕분이었을까. 출판만화에서는 물론 웹툰에서 그다지 만나기 쉽지 않았던 오컬트 소재의 작품이 2000년대 중반 이후 더욱 하나의 장르 군으로서 군집을 이루기 시작했다. 특히 <타이밍>이 그러하였듯 여러 개의 장르를 복합적으로 아우르며 오컬트를 시도하는 작품이 관찰되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네이버 웹툰에 연재된 사다함 작가의 <특수 영능력 수사반>(특영반)은 그 대표적인 시도였다. 남들보다 뛰어난 영능력을 지닌 경찰들이 모인 수사조직 ‘특영반’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은 ‘경찰’이라는 직업에 맞게 여러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추적하는 ‘추리물’의 속성을 지니면서도, 한편으로는 <공작왕>이나 <유유백서> 같은 작품처럼 등장인물 각각이 지닌 영능력으로 귀신과 직접 상대하는 ‘액션’의 속성을 함께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사건에서 공포를 자아낼 부분은 적재적소에 강조하는 면모도 놓치지 않으며 2010년대 한국 웹툰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오컬트 장르의 작품이 될 수 있었다.
2020년부터 연재를 시작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구아진 작가의 네이버 웹툰 연재작 <미래의 골동품 가게> 또한 근래 한국 오컬트 만화의 복합 장르적인 특징이 강하게 살아있는 작품이다. <특영반>이 추리와 액션을 오컬트 호러에 결합했다면,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스릴러적인 면모를 담아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에게 괴기한 일어나는 사건을 해결하면서 진행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초자연적 사건이 지닌 공포심 이상으로 좀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 자체에 대한 불안한 감각에 초점을 맞춰낸다. 그렇게 서서히 주인공이 자신에게 깃든 영능력을 이용해서 사건의 심층에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표면에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세계의 뒷면이 드러난다. 깊은 자료 조사를 통해 구축되었을 심층적인 오컬트의 설정은 스릴러의 감각과 좋은 시너지를 이루며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2025년 현재도 꾸준히 연재되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렇게 1990년대 출판만화에서 싹이 튼 한국의 오컬트 만화는 웹툰의 환경에 이르러 특색있는 작품들과 함께 넓고 깊은 장르의 정착을 향하여 나가고 있다. 그저 오컬트 장르를 이루는 요소의 등장과 활용에 머무는 대신, 오컬트의 감각을 보다 풍성하게 즐기거나 색다른 느낌을 지닐 수 있도록 여러 장르를 복합적으로 횡단하는 등의 실험을 진행하며 장르의 풍미를 진하게 만들어낸다. 물론 오컬트 장르가 만화든, 다른 영역이든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했다고 말하기엔 아직은 어렵다. 분명 <파묘>나 <미래의 골동품 가게> 같은 성공 사례도 있지만, 이러한 성공 사례를 벗어나는 순간 장르의 향유 폭은 급격하게 감소하는 면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오컬트 장르의 존재가 대중문화의 차원으로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이 대략 50년 남짓이며, 다시 본격적인 창작으로 이어진 것은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역사가 있음을 생각하면 지금 한국 오컬트 장르, 그리고 오컬트 만화가 놓인 환경은 어떤 의미로는 한국의 근현대사처럼 매우 빠른 압축적인 성장을 거쳐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해외의 오컬트 만화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 나오는 만큼, 앞으로 한국 만화에서 나올 또 다른 오컬트 만화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특히 근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은 오컬트적인 요소나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좀 더 가벼운 분위기로 흐르거나 참신한 변주를 갖춘 작품이 더 등장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마치 <흑무경담>이 그랬던 것처럼 해외에서 한국의 무속 전통을 활용한 오컬트 만화가 등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류가 이뤄지는 모습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보다 참신하고 흥미로운 한국의, 또는 아직도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의 여러 전통적인 요소를 활용한 오컬트 만화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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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연재를 시작해 2025년 현재도 계속 연재 중인 구아진 작가의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한국의 오컬트 만화가
점차 대중과 독자들에게 정착되고 있으며 장르의 세계가 보다 풍성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