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롱'과 '춘배'가 바꾼 법칙: 서사를 넘어 밈으로 진화하는 IP
서사를 넘어선 캐릭터, 밈이 된 IP

'도로롱' 밈 캐릭터. 현재는 저작 권리가 시프트업에 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캐릭터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2023년 말, 웹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도로롱’이 그 주인공이다. 게임 ‘니케’의 ‘도로시’를 2차 창작한 이 캐릭터는 특유의 귀여움으로 유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데포르메화된 채 네발로 기어 다니는 모습은, 화려한 그림체의 원본과 비교할 때 훨씬 ‘귀엽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캐릭터가 단순한 2차 창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캐릭터는 게임 ‘소울워커’의 ‘댕댕라’를 원본으로 하는데, 원래는 썰매 끄는 강아지 몸체에 캐릭터 얼굴만 귀엽게 그려 넣은 것에 불과했다. ‘도로롱’은 ‘도로시’의 이름에 따라 그 몸체에 머리만 바꾸어 완성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로롱’은 미국, 일본, 중국 등으로 전파되며 네발에서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등 새로운 형태로 재파생되었다. 이러한 선풍적 인기에 힘입어 ‘니케’ 개발사 ‘시프트업’은 ‘도로롱’을 자사 IP로 활용하기 위해 저작권 협상에 나섰고, 2024년 10월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올해 8월 29일에는 한국에서도 ‘도로롱’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저작물이 시프트업 명의로 상표 등록 출원되기도 했다.
이 일화는 오늘날 2차 창작이 과거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원작의 세계관 안에서 규칙을 지키는 방식이었다면, 오늘날의 2차 창작은 밈(meme) 문화와 결합한다. 밈의 특징은 원작의 세계관에 얽매이지 않고 특징적인 면을 토대로 또 다른 종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이러한 2차 창작은 원작의 세계관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원작의 외부 인지도를 늘리기도 한다. ‘도로롱’의 경우,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였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만약 반사회적인 행동을 했다면 진작에 법적 조치를 당했을 것이다. 또한, 공식적인 수익화에 나섰다면 이 또한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테다. 도로롱을 그린 창자자의 권리가 어디까지인지 딱 잘라 구분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실제로 ‘니케’ 제작사 시프트업은 ‘도로롱’의 캐릭터의 몸과 머리 저작권이 각기 다른 개인에게 있어 권리 협상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공식 IP가 2차 창작을 수용한 이 사례는 오늘날의 2차 창작 문화를 잘 보여준다.
이 사례는 2차 창작이 단순히 팬층 유입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IP 확장 수단으로 뻗어 나갈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일반적으로 2차 창작은 IP 무단 사용으로 법적 대응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제작사는 이미지 훼손이 없다면 이를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2차 창작이 하나의 상품이 됨으로써 소위 ‘굿즈’ 등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을뿐더러, IP 자체가 팬들에게 회자해 사랑받음으로써 더욱 롱런 하기 위한 토대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도로롱' 현상이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더 넓은 트렌드의 일부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웹툰 '냐한남자'의 캐릭터 '춘배' 사례를 함께 분석할 필요가 있다. '춘배'는 원작의 인기를 뛰어넘어 독립적인 팬덤을 형성한 대표적 캐릭터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짤' 문화가 있다. 10~20대 여성 독자층은 웹툰의 특정 컷을 잘라내어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짤'로 활발하게 소비했다. 이 과정에서 '춘배'는 원작의 서사에서 분리되어 그 자체로 귀여움, 능청스러움, 코믹함 등 특정 감성을 대변하는 기호가 되었다.
그 결과, 웹툰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춘배'라는 캐릭터는 친숙한 존재가 되었고, IP 인지도는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춘배' 사례의 핵심은 이러한 자발적 바이럴 현상이 어떻게 성공적인 상업화로 이어졌는지에 있다. 먼저, IP 홀더는 '춘배 짤'의 인기를 바탕으로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먼작귀’나 ‘농담곰’이 어떤 만화인지는 몰라도 캐릭터만큼은 아는 사람이 많듯이, 2차 창작으로 유통된 ‘춘배’ 역시 대중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모티콘은 팬들이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춘배'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자신의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공식적인 도구를 제공했다. ‘원작’과 관련한 맥락에서만 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고 유통하는 경로가 되어주었다. 사적인 감정이 공적인 필드에 등장함으로써 무형 자산이 유형의 IP로 전환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이는 팬덤의 자발적 확산 활동이 창출한 무형의 가치를 공식적인 수익 모델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사례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캐릭터에 '김춘배'라는, 잘생긴 외모와는 대비되는 평범하고 촌스러운 이름을 붙인 전략은 캐릭터의 독특한 매력을 배가시키고 대중의 기억에 더 쉽게 각인되는 효과를 낳았다.
'도로롱'과 '춘배' 사례를 종합하면, 오늘날 서브컬처 계열의 2차 창작은 예측 불가능성과 자발성으로 분석될 수 있다. 이들 창작물은 기업의 전략 회의가 아닌, 팬 커뮤니티 내부의 유기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자발적으로 탄생한다. 그 발생 시점과 형태, 파급력을 사전에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누가 도로롱의 탄생을 예견이나 했을까? 이러한 특성들은 전통적인 IP 관리 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거에는 영화 <신과 함께>처럼 원작의 서사와 세계관을 다른 매체로 충실하게 옮기는 것이 IP 확장의 핵심이었다. 가치는 이야기에 내재했고 각 매체에 따라 이야기를 적절하게 가공하는 게 IP 확장의 재미였다. 그러나 '춘배'와 '도로롱' 사례는 IP의 가치가 서사에서 분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IP의 가장 가치 있는 핵심 자산은 전체 스토리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밈으로 기능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매력적인 캐릭터다. 이는 IP 개발 전략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는데, 초기 기획 단계부터 서사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개별 캐릭터의 '밈'화 가능성, 즉 '밈 잠재력(meme potential)'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는 것이다.
팬덤 경제, IP의 판도를 바꾸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참여형 프로그램에서 도로롱 복장을 한 참가자들
레벨 인피니트 제공
한국의 2차 창작 시장은 공식과 비공식 영역이 복잡하게 얽힌 이중 구조를 띤다. 전통적으로 트위터, 팬 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비공식 생태계는 금전적 보상보다 평판이나 소속감 같은 사회적 자본이 우선시되는 '증여 경제(gift economy)'의 성격을 보여왔다. 이 동인 창작자들은 직접적인 금전 이익보다는 팬덤 내에서의 인정과 영향력을 통해 창작의 동기를 부여받는다. 최근, 이 증여 경제는 팬들이 IP의 성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버추얼 아이돌 그룹 '이 세계 아이돌'을 소재로 한 웹툰 단행본 펀딩이 목표액의 44,000%를 초과하며 최종 모금액 88억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게 대표적이다. 약 3만 5000여 명의 후원자가 참여한 이 펀딩은 단순한 상품 구매를 넘어, 자신들이 사랑하는 IP의 성공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팬덤의 의지를 보여줬다. 이 사례가 IP를 가진 권리사에서 런칭한 콘텐츠에 팬들이 응답하는 구조라면, 또 다른 그룹 '스텔라이브'처럼 팬들이 제작한 팬아트를 공식 팬북에 수록하는 등 팬의 창작물을 공식 IP 콘텐츠의 일부로 적극 통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는 팬들이 '증여'하는 창의적 노동과 시간이 IP의 세계관을 풍성하게 만드는 핵심 자산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팬덤의 활동이 온라인 등에서만 활발하게 이루어진다고 보면 오산이다. 포스트 판데믹 이후 2차 창작의 최전선이 다시 ‘일러스타 페스’나 ‘코믹월드’ 같은 현장으로 옮겨지며 팬 간의 오프라인 교류도 활발해졌다. 특히 산업적인 면에서는 팝업스토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소수 마니아를 위한 이벤트였던 팝업스토어는 이제 IP 비즈니스의 흥행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자리 잡았다. 팝업스토어는 무형의 유산을 시각화해 공식적인 산업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가령 웹소설 원작의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팝업스토어는 2023년 당시 일주일 만에 1만 명 이상이 방문했으며, 1인당 평균 구매액이 50만 원에 달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이 공간은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온라인상에 흩어져 있던 팬들이 오프라인에서 직접 작품의 세계관을 체험하고 동질감을 느끼는 '성지'이자, 팬덤의 결속력을 확인하는 의례적인 공간으로 기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짤'을 공유하고 밈(meme)을 확산시키는 행위가 축적한 무형의 문화적 자본과 정서적 투자가, 팝업스토어라는 시공간적 구심점을 통해 폭발적인 소비력으로 현현한다고 보면 좋다.
하지만 팬덤 경제의 폭발적인 성장은 기존 법률 체계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팬 창작물이 막대한 상업적 가치를 지니게 될 경우, 그 권리의 귀속과 분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게임 캐릭터 '도로롱'의 공식화 과정은 이러한 법적, 계약적 미개척지의 복잡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원본 캐릭터, 1차 파생물, 2차 파생물의 저작권이 각기 다른 개인에게 귀속되어 있고, 심지어 한 캐릭터의 머리와 몸통에 대한 권리가 나뉘어 있는 상황은 전례 없는 협상 과제를 제시했다. 이는 2차 창작물이 더 이상 소수의 즐거움을 위한 비공식적 활동에 머무르지 않게 되면서 불거진 문제다. 현행법상 2차 창작은 원저작자의 허락 없이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으나, 비상업적인 팬 활동은 사실상 묵인되어 온 '회색지대'에 존재했다. 그러나 이제 그 회색지대에서 탄생한 창작물이 막대한 가치를 창출하면서 정보와 협상력이 비대칭적인 개인 창작자와 거대 기업 간의 권리 협상을 위한 표준화된 절차나 가이드라인의 부재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기업이 잠재력 있는 팬 창작물을 공식 IP로 흡수하려는 시도를 주저하게 만드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기업의 IP 전략에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한다. 물론 <신과 함께>가 '쌍천만' 영화 신화를 쓰고, <무빙> 드라마의 성공이 원작 웹툰 매출을 35배 급증시키는 등, 원작의 서사와 세계관을 다른 매체로 충실하게 확장하는 전통적인 탑다운(Top-down) 전략은 여전히 강력하고 검증된 성공 공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탑다운 방식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팬덤의 미세한 욕망과 문화적 흐름을 완벽히 포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이 강력한 모델에 팬덤이 자발적으로 생산하고 확산시키는 2차 창작이라는 바텀업(Bottom-up) 동력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이 필수적이다. 팬덤의 활동은 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도 얻기 힘든 가장 빠르고 정확한 시장 조사 도구로 기능한다. 팬들이 어떤 캐릭터, 어떤 설정, 어떤 관계성에 열광하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팬들이 자발적으로 생산하는 '짤'과 밈, 팬아트는 기업이 집행하는 광고보다 훨씬 높은 진정성과 참여도를 가진 유기적인 마케팅 엔진 역할을 수행한다. 팬들이 만든 콘텐츠는 상업적 의도가 덜 느껴져 동료 팬들에게 높은 신뢰를 얻으며, 기업이 도달하기 어려운 커뮤니티 속을 깊숙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오늘날 콘텐츠 시장에서 IP의 가치는 더 이상 원작자나 기업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창의적이고 능동적이며, 강력한 경제력을 갖춘 팬덤과의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공동 생산(co-production)'된다. 즉, IP의 가치는 더 이상 완성된 채로 팬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팬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증폭되는 유기적인 생명체와 같다. 팬덤의 2차 창작 활동을 단순히 저작권 침해의 위협으로 간주하거나 부차적인 현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구시대적인 관점이다. 변화의 흐름 속에서 IP 홀더들은 기존의 방어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2차 창작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하는 능동적인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법적 조치에 의존하는 사후 대응에서 벗어나 선제적 가이드라인을 수립하여 팬덤과의 신뢰를 구축하고, 잠재력 있는 창작자를 발굴하여 공식적인 파트너십을 맺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해외 종합 게임 콘텐츠사 ‘사이게임즈’나 다수의 버츄얼 스트리머가 소속된 ‘홀로 라이브’처럼 타 콘텐츠 산업이 이미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두는 것에 비해 다소 느린 걸음이지만, 만화 웹툰 시장에서도 변화는 차분히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