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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권 도입을 둘러싼 만화계 논쟁 점화

모든 저작자와 만화 관련 단체들이 대여권 도입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자료집에 의하면 작가나 독자, 관련업계 종사자들에 따라 찬성과 반대 입장이 분명하게 갈리고 있다. 작가 그룹과 독자들은 대여권 도입에 찬성하면서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았다.

2003-04-01 김병수


대여권 도입을 둘러싼 만화계 논쟁 점화

불붙은 대여권 논란

지난 1월 15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저작권과 관련된 매우 중대한 판결을 내렸다. 저작권의 시효를 ‘저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20년 연장한 1998년의 의회 결정’에 대해 7대2의 표결로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로써 미키마우스, 곰돌이 푸를 비롯한 몇몇 황금알을 낳는 거위들은 향후 20년간 수십억 달러대의 로열티 수익을 관련 업계에 지속적으로 안겨주게 됐다.
이 결정은 판결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만화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이끌어 내기까지 최대 수혜자인 디즈니사의 집요한 로비도 힘을 발휘했지만 저작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는 미국인들의 사고방식도 상당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음악파일무료다운로드 사이트였던 냅스터에 대한 법원의 폐쇄 결정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로부터 석 달여 후, 한국의 주요한 만화 기관 단체 게시판에는 저작권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글이 일제히 게재됐다. 다름아니라 [한국만화인 연합회 설립취지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내노라하는 만화 대본소 작가들과 몇몇 출판사, 대여 업계 단체들이 연합하여 만든 만화인 연합회(이하 한만연)는 [대여권 법제화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통해 대여권 제도의 도입을 반대하는 공식 입장을 냈다.
어느 나라에서는 저작자, 의회, 법원이 나서서 저작권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연장해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반해, 또 한 나라에서는 저자들이 나서서 권리를 유보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지난 5월 7일에는 국내의 대표적인 만화작가 단체들인 한국만화가협회(이하 만협), 우리만화연대(이하 우만련), 여성만화인협의회(이하 여만협), 젊은 작가모임(이하 젊작모)이 공동명의로 대여(허락권) 법제화에 적극 찬성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문제를 만화가 단체와 단체간의 단순한 의견대립으로 돌리기는 쉽지 않다. 대여권을 포기하겠다는 주장에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으며 대여권 도입을 적극 찬성하는 대다수 만화작가 단체들의 입장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만연에서는 대여권이 도입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만화산업이 공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요 만화가 단체들은 대여권이라도 도입되지 않으면 저자들의 불안정한 수입구조로 인해 만화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논거를 내세우고 있다.
이 논쟁은 지난 4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에서 발표한 [만화산업 저작권 제도 개선방안 연구]라는 자료집(이하 자료집)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요즘 어지간한 만화관련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는 ‘대여권 논쟁’은 ‘양자간의 입장 충돌’을 넘어 향후 우리 만화산업의 방향타가 된다는 점에서 만화인이라면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할 화두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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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권 점진적인 도입 가시화

저작권연구 자료집에는 만화대여점을 둘러싼 지난 몇 년간의 논쟁을 총정리하는 의미있는 내용들이 담겨있다. 나아가 우리 만화산업의 뜨거운 감자인 ‘대여점’에 관한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우선 내용을 요약하여 살펴보자.

‘저작권 개선방안 연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지는데 도입부를 현재의 만화산업의 현황과 저작권 관련 개념, 법령, 실태 등 현상규명에 집중하고, 중반에는 제도개선의 방법론, 법적 검토, 대여권 도입이 끼칠 영향과 구체적인 개선안 등에 주력하였으며, 말미에서는 실질적인 제도개선과 성공적인 시행을 위한 제언, 시행 로드맵 등을 다루고 있다.
자료집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 출판만화시장은 대여점 중심으로 고착되어 있어 저작권자에게 아무런 권리가 보장되지 않아 질 좋은 작품 제작에 전념할 구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이 정체기에 있을 때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므로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과, 대여시장에 법적인 근거 마련이 중요하며 저작권법에 대여권에 관한 조항을 삽입하여 법안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못박고 있다.
또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하며 만화시장을 활성화해야한다고 전재한 뒤 출판사, 유통업자, 대여사업자에게 추가의 재정적 부담을 지우지 말고, 현재의 만화유통 시스템 하에서 실현 가능한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작권자의 권리보호 측면에서는 ‘대여를 거부하거나 허용할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며 대여행위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을 통해서는 대여업을 양성화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대여권에 대한 여론조사결과는 대체적으로 현재의 시장상황을 불황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을 표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여권 도입의 기본적인 당위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섣부른 대여권 도입이 어려운 시장상황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도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몇가지 방법론이 제시됐다. 크게 대여 허락여부만 결정하는 방법, 판매시점에 격차를 두는 시차제, 저작권료를 먼저 징수하는 선징수 후판매제, 저작권료를 나중에 징수하는 선판매 후징수제의 네 가지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 대여 허락여부만 결정하는 방법은 시장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지만 저작권자에게 추가의 수익을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과도기적 방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선징수 후판매제와 선판매 후징수제는 법안개정만으로는 부족하고 현 만화유통시스템의 개선을 동반해야만 실행 가능하다는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대여권 도입 및 실행방안은 다음의 3단계로 나누어 추진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1단계에서는 ‘저작권자에게 대여권을 부여하는 저작권법 개정’과 함께 ‘저작권자에게 대여허락에 대한 권리만을 부여하는 대여권 도입’이다. 이 단계에서는 저작권자가 대여를 허락할지의 여부만을 결정하며 대여가 허락된 도서에 대해서는 별도의 저작권료를 징수하지 않는다.
일정기간 동안 1단계를 거친 후에는 2단계로 돌입하여 대여를 허락한 신간에 대해 단기간 동안 대여를 금지하고, 대여를 금지한 서적에 대해서 일정 기간 후에는 대여금지조치를 해제하는 방식을 골자로 하는 ‘시차제’를 추가로 실시한다는 복안이다. 또 3단계에 이르러서는 대여에 따른 저작권료 징수를 목적으로 하는 ‘선징수 후판매’제도 혹은 ‘선판매 후징수’ 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으나 만화유통의 인프라가 좀 더 구축되고 해외 저작권자와의 관계 설정이 제대로 된 이후 실시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으로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법안개정만으로 만화시장의 활성화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없으며 대여권 도입과 함께 유통시스템 등 만화시장의 인프라 개선, 만화에 대한 심의를 책임 있는 만화관련 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등의 창작환경 개선방안이 복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 최종결론이다.

대여권?

그렇다면 대여권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특정한 상품을 소비자에게 빌려주는 권리’를 말한다. 이를테면 내가 만화책을 사서 공짜로 친구에게 빌려주는 것이나 비디오가게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돈을 받고 빌려주는 것이나 모두 대여행위에 해당된다. 대여권이란 대여를 허락하거나 허락하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일단 최종소비자에게 판매된 상품에 관해서는 음반과 컴퓨터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대여를 통해 이득을 취하는 것이 현행법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바로 ‘문제’인 것이다. 어려운 용어로는 최초판매이론에 의해 권리소진에 해당되는데 다시말해 한번 팔리고 나면 저작권자는 아무런 권리를 행사 할 수 없다는 말이다.(저작권법 제43조 1항) 따라서 대여권을 도입하겠다는 말은 저작권자에게 ‘저작물에 대한 대여의 권리를 찾아 준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대여권은 공공 대여권과 사설 대여권으로 나뉜다. 공공대여권이란 도서관과 같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대여행위를 함으로써 발생하는 저작권자의 손실을 보상해 주려는 개념이다. 공공대여권에서는 저자가 대여를 허락하고 말고의 권리를 행사할 수는 없다. 사설대여권은 민간사업자가 영리목적으로 대여하는 경우 저작권자나 법으로 정한 권리자에게 대여를 허락하거나 허락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부여한 권한이다.
선진국에는 우리나라의 도서대여점 같은 사설 대여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도서관등의 공공대여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공공대여권에 관한 논의가 활발한 반면 우리나라는 유독 민간에 의한 대여문화가 발달하여 끊임없는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여권 도입여부에 관한 논의는 바로 이 사설대여권에 관한 것으로 자료집에서 다루게 될 대여권 개념 역시 사설 대여권에 한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갈리는 찬반 여론

그러나 모든 저작자와 만화 관련 단체들이 대여권 도입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자료집에 의하면 작가나 독자, 관련업계 종사자들에 따라 찬성과 반대 입장이 분명하게 갈리고 있다. 작가 그룹과 독자들은 대여권 도입에 찬성하면서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았다. 저작권자가 대여에 관한 권리를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현재의 대여체제 하에서는 저작권자에게 수익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여권 도입이 실제로 만화시장의 어려움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요지다. 반면에 유통, 대여점, 대본소 종사자들은 기본적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대여권이 도입되어 유통망과 일선 업소에 추가적인 부담이 발생할 경우 현재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또 현재의 만화유통망 하에서는 효과적으로 대여권을 도입, 실행하기 힘들므로 유통망의 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대여권 도입에 따른 시장 상황 개선에 있어서도 극명하게 의견이 나누어졌다. 유통업체 및 대여점 종사자들은 대여권이 도입되어도 만화시장이 확대되거나 만화독자들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작가와 독자들은 상황이 개선 될 것으로 예측하는 응답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국제 사례

대여권에 관한 국제 관례는 어떨까? WTO(국제무역기구)가 우루과이라운드의 일환으로 1995년에 체결 발효시킨 TRIPS협정(무역에 관련된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에서는 11조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영상저작물에 대해 저작권자에게 대여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14조는 음반에 대해 대여권을 부여하고 있다. 도서대여권에 관한 국제적인 협정은 아직 없는 셈이다.
나라별로도 음반과 컴퓨터소프트웨어, 영상저작물을 제외하고 도서를 포함시킨 대여권 적용사례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나마 독일이 대여로 인해 일어난 표면적 잠재적 손실에 대한 보상청구권을 규정하고 있는데 적용범위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아 도서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도서관 등의 공공대여권에 해당돼 실제로 사설대여권에 관한 국제 사례는 전무한 셈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만화산업 불황타개의 일환으로 ‘대형 만화출판사들이 2004년을 목표로 대여 전용 만화 단행본 발행을 결정하고 대형 대여사업자와 합작으로 대여에 따라 저작자와 출판사에 수익을 돌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함과 동시에 법적 근거가 되는 대여권을 출판물에도 인정될 수 있도록 경제산업성과 문화청에 저작권법 개정을 요구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만화시장과 대여권

선진국에서는 제대로 언급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사설대여권이 우리나라에서 거대한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주지하다시피 ‘만화 대여점’ 때문이다. 만화 대여점은 이제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한 일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유일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다. 단행본 만화시장이 대여, 대본소로 편성되어 대부분의 만화들이 출판사 - 총판 - 대여, 대본소의 유통 경로를 따라 흐르고 있기 때문에 ‘판매시장’은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한 형편이다. 일반 독자들은 만화를 사보기보다는 ‘빌려서 보는 것’이 더 익숙하고 편하다. 가격면에서도 빌려보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그러나 저작자 즉 만화작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만화 1권이 대여점에 들어가 100명의 독자를 만나는 것 보다 서점에서 2권 팔리는 것이 더 이익(정확히 2배)이다. 또 100명의 독자가 대여점을 이용하면 잠재적인 구매자 100명을 잃는다는 뜻도 된다. 대여에 따른 수익은 고스란히 대여점 업주의 몫이기 때문에 작가는 수고는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대여점을 모두 없애고 독자들이 만화를 사서보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하지만 지난 50년대부터 시작된 뿌리깊은 우리나라의 대본만화문화를 일거에 바꾸기란 쉽지가 않다. 빌려보는데 익숙한 독자들의 의식도 어느날 갑자기 전환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여권 도입을 통해 대여 여부에 관한 선택권을 작가에게 돌려주고 나아가 대여가 이루어 졌을 시 일정액의 수익을 저작권자에게 분배하자는 것이다. 비싼 종이를 낭비하는 것 보다 여러 사람이 돌려보는 것은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여라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문화만은 아니다. 문제는 대여권을 통해 저작권자에게 판매시장에서 달성 할 수 있는 수익 이상을 창출해 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대여, 대본시장이 호황일 때나 성립될 수 있다. 요즘처럼 대여, 대본업소가 계속 문을 닫고 있는 불황에서는 어떤 경로든지 간에 저작권자에 이익을 나눠주라는 요구는 단행본 만화시장의 주류를 이루는 대여 대본시장의 붕괴를 가속화시킬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일부 대본소 작가와 대여, 대본업계의 반대는 생존권에 관한 문제다.
반면에 대다수의 만화작가와 단체들은 대여권 도입에 적극적으로 찬동하고 나섰다. 현재의 대여, 대본체제가 지속되면 우리나라 만화산업의 불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다. 판매시장이 완전히 고사하고 겨우 대여, 대본시장을 통해 권당 몇 천부 수준의 만화만 유통되는 현실에서 창작자는 ‘제품의 질보다는 생산량’에 치중할 수밖에 없고, 이는 독자의 외면을 낳아 다시 판매량 감소와 박리다매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대여권 도입을 통해 해결해 보자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대여, 대본시장이 국내 만화의 수준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은 타당성이 있다. 대여, 대본소 업주들조차 최근 공공연히 반입 만화의 질을 우려하는 의견을 인터넷을 통해 제기하고 있고 하루에 한 권씩 발매되는 일일만화의 경우 그 조악성으로 인해 독자들의 불만이 여러 차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산업화(?)가 대여. 대본시스템으로 인해 가능했고 이로 인해 장인 정신은 실종되고 생산과 소비의 이중 구조만 팽창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유의 검은 리본(이하 자검댕) 같은 반대여체제 운동 단체에서는 대여권 도입은 대여, 대본업소를 양성화하는 의도로도 읽힐 수 있기 때문에 대여권 도입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인정하나 대여체제 자체는 여전히 거부하고 있기도 하다.

진행 경과

콘진에서는 [만화산업 저작권 제도 개선방안 연구] 발표에 발맞추어 상충된 관련 단체, 업계의 입장을 해소하고 바람직한 대여권 도입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4월 23일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만협, 우만련, 여만협, 젊작모, 자검댕, 만화출판인협회, 문화콘텐츠 대여업 협회(이하 대여협회), 만화방연합회(이하 만방연) 등이 참석하여 3시간여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다. 만협, 우만련, 여만협, 젊작모를 비롯한 작가단체는 대여권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을 대여협회와 만방연은 도입 불가입장을 분명히 했다. 만화출판인협회의 경우 입장 표명을 유보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날 간담회의 결과는 각 단체의 입장을 확인하고 보다 신중한 자세로 접근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여권 도입 여부’ 보다는 청소년 보호법을 비롯한 관련 법규의 정비,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는 만화유통체제의 혁신, 심의제도 철폐, 작가지원제도 활성화 등 총체적인 우리만화 살리기 방안이 선행되어야 한다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콘진에서는 관련 공청회를 5월말 열 예정이며 그사이 모두에서 언급된 한국만화인연합회가 만들어져 지금은 한국만화발전연대로 전환되어 활동중이다. 또 지난 5월 7일에는 4개 만화단체(만협, 우만련, 여만협, 젊작모)가 대책회의를 갖고 대여권 도입 찬성을 밝히는 공식 입장을 내기도 했다. 문화관광부에서는 6월 임시국회에 대여권 부분이 포함된 저작권법 개정안을 낼 계획이다.

대여권 도입 절차

자료집에 따르면 대여권 도입에 관한 일정은 2003년부터 시작되어 2007년에 마무리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단 올 하반기까지는 여론수렴과 법안개정에 주력할 예정이다. 저작권법상 문제가 되고 있는 ‘제43조(저작물의 거래제공 및 출판물과 음반의 대여허락) ②를 배포권자는 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판매용 출판물과 음반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대여를 허락할 권리를 가진다.‘로 고치고 저작물의 한 종류로서 만화가 명확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저작권법 4조 1항의 저작물 예시에 만화를 포함시키는 등의 제도개선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후 시행령을 발동하고 2004년 하반기부터는 실질적인 대여 거부권행사를 통해 대여권 제도가 시행되는 단초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후에는 시차제를 통해 신간만화단행본은 1달, 잡지는 1주 또는 그 이하의 기간을 대여금지기간으로 설정하고 일정 기간 이후의 구간에 대해서는 대여금지를 해제하도록 하는 방안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판형을 판매용과 대여용으로 이원화 하여 유통되는 출판시장의 흐름이 생겨날 수 있도록 유도, 장정과 가격대를 적절하게 조정함으로서 이중정가제와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2005년에는 선징수 후판매 제도(이중정가제)를 실시하고 최종단계에서는 선판매 후징수 시스템을 도입하여 대여권에 관련된 실무작업을 마치게 된다.
그러나 선판매 후징수 시스템은 말단 서점, 대여점 수준까지 연동되는 유통망 전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시할 수 없으므로 유통망 개선사업의 진행 추이에 맞추어 실시할 계획이다. 대여사업자가 자발적으로 영업에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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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권, 최선책이 아니다

물론 지금까지 언급된 시행절차는 확정된 것이라기보다는 콘진을 통한 문광부의 가설 즉 ‘안’에 불과하다. 각론에 들어가서는 여만협이 시차제와 이중정가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젊작모는 대여권 도입이 차선책임을 강조하며 충실한 의견수렴과 대안 찾기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한국만화발전연대는 도입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우만련에서는 대여권 관련 논의가 한국 만화계를 살릴 수 있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므로 논의를 하루빨리 마무리 짓고 보다 근본적인 한국만화 회생방안에 만화계 전체가 나서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만협 역시 4개 만화가 단체 모임에 앞장서며 한국만화살리기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여권 도입은 궁극적으로 대여시장과 판매시장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으로써 우리나라 만화시장의 현실을 감안할 때 적절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책인가라는 물음에는 어느 누구도 확실한 답을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 만화계가 총체적 불황의 늪에 빠져있다는 뜻이다. 청소년보호법 등 시대에 뒤쳐진 법규, 열악한 창작환경, 무분별한 일본만화의 수입, 스캔만화의 창궐, 이동통신, 온라인게임으로 소비자들의 급격한 이탈 등 산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대여권 도입만으로 부족한 것만은 명백해 보인다. [만화산업 저작권 제도 개선방안 연구] 역시 끝을 맺으며 이 부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고 장기적으로 만화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안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번 보고서 작성과정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만화시장에 어려움을 주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로 만화에 대한 저급한 인식 또는 만화유통망의 낙후성 등을 꼽은 사람이 많았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여권 도입과 함께 유통시스템 등 만화시장의 인프라 개선, 만화에 대한 심의를 책임 있는 만화관련 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방안들이 복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여권 논쟁은 자칫 업계와 작가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 질 수도 있지만 도입여부에 따라 만화계의 지형이 크게 바뀔 수 있어 향후 우리 만화계의 향방을 가늠할 잣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콘진과 문광부에서 중심이 되어 제도개선에 관한 연구가 수행되고 그 결과물을 토대로 만화계 안팎의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전에 없는 성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이 자칫 소모적으로 흘러 생산성 없는 찻잔속의 태풍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보다 확실하게 수렴되고 우리만화를 살려야한다는 의지가 점점 확고해 질 때 변화의 조짐은 긍정적으로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만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참여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필진이미지

김병수

만화가
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 교수, 前 목원대 웹툰애니메이션·게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