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만화 주인공 같다는 의미는 개구쟁이, 낙천적이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나 엉뚱한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어린이를 뜻한다. 이러한 명랑만화 주인공들의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는 그 시절 골목길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친숙한 친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같은 반 친구 중 누군가의 모습이었던 명랑만화 주인공들! 그들의 일상은 우리가 꿈꾸던 모습이 표현되어있기에 현실과 만화 속의 웃음이 쉽게 연결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만화책을 보면서 ‘명랑만화 주인공들을 누가 이렇게 재밌게 그리는 걸까’하며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참 컸었다. 나이가 들어 명랑만화작가들을 만났을 때, 그분들의 모습이 즐거운 만화 속 주인공들의 생활과 많이 닮아있는 것을 보며 명랑만화캐릭터들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웃음은 공감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의 생활이 우리에게 공감될 수 있었기에 명랑만화의 즐거움을 더욱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웃음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때 더욱 즐거움을 준다. 명랑 만화 속 주인공들 옆에는 늘 그 웃음을 빛나게 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하고 있다. 현시대에는 한 자녀들이 많지만 70~80년대에는 형제자매가 많은 편이었다. 언니, 오빠, 동생 또 부모님 이외에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함께 사는 대가족이 많았는데 명랑 만화 속 캐릭터들 역시 개구쟁이 오빠를 감싸주는 여동생이 있거나 말썽꾸러기 행동에 훈계를 줄 수 있는 할아버지, 따뜻한 가족들의 중심인 아버지 등이 함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장난 속에서도 감동이 있었고, 함께하는 웃음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바른 정서와 올바른 가족문화의 교훈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명랑만화 주인공들을 살펴보면 ‘길창덕’의 <꺼벙이>를 대표주자로 다양한 형태의 명랑 캐릭터들이 작가의 개성에 맞게 탄생되었다. 그들의 행동들은 웃음을 주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캐릭터들의 성격에 따라 골목길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여 때로는 정의로웠고, 가족과 친구들을 챙기는 의로움과 더 나아가서는 애국의 마음까지 보여주었다.
일상 속에서 개구쟁이로 본인을 희화화하여 웃음을 주는 캐릭터가 있는 반면, 모범적인 모습으로 잘못을 바로잡는 모습에서 건강한 웃음을 주는 캐릭터들, 교육적 측면에서 학습과 모험에 도전하는 캐릭터들로 해학과 교훈을 남겨주기에 나이가 든 지금까지도 그 웃음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명랑만화를 찾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요즘 많은 매체에서 폭력, 반항 등의 죄가 만화로 인해 정서가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표현할 때면 명랑만화까지 좋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들 때가 많다.

만화책을 보면서 주인공과 그의 주변 상황을 함께하듯이 키득키득 웃게 되는 것은 그들의 시간 속에 독자가 아닌 친구로서 함께하는 기분일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꺼벙이, 심똘이, 두심이, 똘비, 혁이 등의 이름과 함께 기억되는 만화 속 에피소드들이 어린 시절 추억마냥 머릿속에 남아있다.
접근하기 힘들고 읽기 어려웠던 내용을 교육정보 차원에서 재밌는 명랑만화책으로 즐겨 찾게 되었고 상상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일상 속 풍자를 통해 행복한 웃음을 웃을 수 있는 그런 캐릭터들은 자화상이자 영웅적 모습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만화가 동심의 판타지 여행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만화의 긍정적인 웃음들을 상기시키며 그 속의 교훈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70~80년 시대에 어린이들의 교양 문화를 책임졌던 것은 소년소녀잡지들이었다. 다양한 기사와 기획들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상상하는 세상과 꿈꾸던 현실들의 기록들을 어린이들의 눈에 맞춰 보여주었다. 또한, 그 기사들을 학교에서 친구들과 공감하며 소통의 기반이 되었다. 그때 잡지 속 연재만화는 잡지를 사게 되는 빠질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였고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를 안고 한 달을 기다리는 마음은 어린 시절 인내를 배울 수도 있는 소중한 경험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다양한 잡지들이 여러 연재만화를 소개했지만, 당시에 인기 작가들은 한정되어 있어서인지 여러 캐릭터를 한 만화가가 탄생시킬 때가 많았다. 하지만 각 작가마다 대표되는 캐릭터들이 정해져 있었고, 그 인기는 잡지 속 만화를 문고로 묶어 출판하는 일로 이어졌다.
어문각에서 나온 클로버문고 ‘그 시절’의 새소년 잡지에 연재되었던 만화가 주를 이루었지만, 소년중앙, 어깨동무 등에서도 연재했던 작품들도 있었고 그 캐릭터들은 각 잡지 속에서뿐만 아니라 클로버문고 안에서 다시 공동웃음체로 기억되고 있다.
1. 말썽꾸러기, 개구쟁이, 심술꾸러기 - 꺼벙이, 꾸러기, 심똘이
△ 꺼벙이(길창덕), 꾸러기 말썽일기(윤준환), 심똘이(이정문)
2. 세계일주의 꿈을 꾸게 해주던 모험과 도전의 행동꾸러기 - 고철이, 선달이, 두심이
△ 신판보물섬(길창덕), 선달이 여행기(길창덕), 두심이 표류기(윤승운)
3. 교육적 상상꾸러기 - 혁이, 요철이
△ 도깨비감투(신문수), 요철발명왕(윤승운)
4. 시간을 초월한 친근한 원시인 엉뚱꾸러기 - 똘비, 땅콩찐콩
△ 원시소년 똘비(신문수), 땅콩찐콩(박수동)
5, 여성 악동캐릭터 - 얄숙이와 심쑥이
△ 심쑥이(이정문), 얄숙이와 오스틴 대령(이두호)
이 외에도 SF, 명랑 단짝친구를 가진 ‘로봇찌빠’와 ‘팔팔이’, ‘금봉이’와 ‘달봉이’, 친근한 동물캐릭터를 의인화한 강아지 캐릭터 ‘강가딘’과 공룡캐릭터 ‘아기공룡 둘리’ 등 다양한 분류작업을 한다면 시대별과 카테고리별로 더 세세히 나눠질 명랑캐릭터들이 많겠지만 클로버문고 속 명랑캐릭터들에 대해서만 소개를 하겠다.
정의로운 도깨비감투의 혁이 VS 엉뚱상상의 요철발명왕 요철이 최근 복간된 작품 중 인기작들인 도깨비감투의 ‘혁이’와 요철발명왕의 ‘요철이’는 어깨동무에 연재되었던 20회 연재물로 매회 다양한 에피소드로 재미를 준 작품들이다.
2016년 최고인기 아이콘으로 도깨비가 거론되는 것은 우연일지 몰라도 도깨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상상은 시대가 변해도 똑같은 것 같다. 어린이들에게 도깨비감투는 투명인간이 되어 무엇이든 이루어 줄 수 있는 만능감투이기에 ‘이럴 때 그 도깨비감투가 있다면!’ 하는 꿈을 꾸게 만들어주었다. 언젠가는 정말 도깨비감투라는 것이 나올 것만 같고 알 수 없는 미래는 뭐든 이루어질 거 같은 생각도 들게 하는 게 어린 시절의 상상이었다.
요철이가 발명해내는 다양한 발명품들은 꼭 필요했던 제품이고 한 번쯤 이런 게 있으면 했던 우리들의 바람을 담은 발명품이기에 요철이의 발명 활동을 응원하고, 도깨비감투를 쓰고 다니며 대리만족을 해주는 혁이를 부러워하게 되는 것 같다.
두 작품을 비교해 볼 때 도깨비감투가 먼저 연재되고 있었음에도 도깨비감투 속 혁이가 다닌 학교는 <요철 국민학교>이며, 후에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병원명은 <요철병원>이다. 이런 만화 속의 작은 부분에서의 재미로 두 작품의 연결고리를 찾게 될 때면 작품에 대한 친근함이 더욱 커지게 된다.

요철이는 늘 0점을 맞는 성적표를 받았고, 요철이 아버지는 늘 공부하라는 말을 달고 사신다. 그에 비해 혁이는 1등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이며 부모님과 의논하거나 의견을 드리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요철이의 주 무대는 학교보다는 발명실이었고, 늘 상상초월의 발명품을 만들어내며,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그 모든 발명품은 다 친구들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또한, 혁이의 주 무대도 교실 이외의 전국 어디든지 이며 심지어 북한, 외국까지도 다녀오게 된다. 숙제를 잘한다거나 시험공부를 한다든지 등의 집중력을 보여줄 때도 많다. 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관심과 감시를 받기도 하는 요철이, 혁이를 믿고 행동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해주는 부모님, 혁이는 심지어 조상님들까지도 함께 한다. 같은 듯 다른 두 캐릭터는 우리의 친구로 차별이 없는 교우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인간관계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0점을 맞는 성적표를 받았고, 요철이 아버지는 공부하라는 말을 달고 사신다. 그에 비해 혁이는 1등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이며 부모님과 의논하거나 의견을 드리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요철이의 주 무대는 학교보다는 발명실이었고, 늘 상상초월의 발명품을 만들어내며,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그 모든 발명품은 다 친구들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또한, 혁이의 주 무대도 교실 이외의 전국 어디든지 이며 심지어 북한, 외국까지도 다녀오게 된다. 숙제를 잘한다거나 시험공부를 한다든지 등의 집중력을 보여줄 때도 많다. 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관심과 감시를 받기도 하는 요철이, 혁이를 믿고 행동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해주는 부모님, 혁이는 심지어 조상님들까지도 함께 한다. 같은 듯 다른 두 캐릭터는 우리의 친구로 차별이 없는 교우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인간관계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요철이는 “어린이가 어른처럼 놀 수는 없잖아!”라고 이야기하며, 옷이 더러워지더라도 땅에서 뒹굴고 흙장난을 할 수 있게, 바로 세탁하고 건조되는 세탁기를 발명해준다. 만화 속 친구들은 좋아하지만, 요즘은 흙장난을 하거나 옷을 더럽히는 일들이 적기에 이런 장면에서 공감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또 그 시절에는 상상의 발명품이었던 물건들이 지금은 존재하고 있는 제품들도 많다. 하지만 그 시절 친구들과 운동장을 뛰고, 흙장난을 하며 뒹굴던 소년 소녀들에게 요철이의 발명품은 신나게 놀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게 한 즐거운 발명품으로 남아있다.
요철이를 보며 뛰놀고 즐거운 장난을 맘껏 하지 못하는 요즘 어린이들에게도 새로운 발명품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깨비감투 6화를 보게 되면 지하철을 타는 혁이의 모습이 있다. 6화는 74년 10월호이기에 74년 8월에 개통한 지하철 소식과 모습을 만화 속에 바로 넣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지하철을 접하지 못한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이로 인해 도깨비감투가 실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꿈꾸게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 시절에 어린이였던 나 역시 도깨비감투에 대한 존재는 만화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모를 상상을 계속했었기 때문이다.
6화를 보게 되면 지하철을 타는 혁이의 모습이 있다. 6화는 74년 10월호이기에 74년 8월에 개통한 지하철 소식과 모습을 만화 속에 바로 넣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지하철을 접하지 못한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이로 인해 도깨비감투가 실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꿈꾸게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 시절에 어린이였던 나 역시 도깨비감투에 대한 존재는 만화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모를 상상을 계속했었기 때문이다.
도깨비감투를 쓰고 투명인간이 되어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에 가거나 종로에서 지하철을 타는 혁이의 모습은 자유로운 공간에서의 상상을 더욱 크게 만들어주었다. 혁이의 활약으로 명랑만화에 담긴 사회적 교훈과 교육적 효과를 웃음으로 느낄 수 있는 만화였다.
두 작품 속 캐릭터들의 개성이 다르기에 어느 캐릭터가 좋다 단정할 수 없다. 요즘같이 시국이 어수선할 때는 믿음직한 혁이가 되어 도깨비감투로 정의를 실현해보고, 경제가 어려울 때는 요철이처럼 여러 상상을 다양한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과학자의 꿈을 꾸기도 한다. 시대는 근래에 명랑만화주인공들을 더 찾아보게 되는 이유인 것 같다.
△ 사진 자료는 필자가 직접 만든 캐릭터 도시락이다. 일반적으로 국내 캐릭터 보다는 일본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많기에 국내의 고전 캐릭터 도시락이 발전되길 바라는 마음에 만들어 보았던 도시락이다.
클로버문고에는 길창덕의 ‘꺼벙이’는 포함되지 않았다. ‘선달이’, ‘고철이’ 등 다른 캐릭터들이 존재했었지만, 말썽꾸러기의 대명사는 꺼벙이라고 할 수 있다.

길창덕의 작품 속 주인공 중 가장 우리에게 익숙한 명랑만화 캐릭터는 꺼벙이일 것이다. 수많은 아이의 별명으로도 불리고, 꺼벙이가 탄생한 지 50년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썽꾸러기의 친근함은 전학 간 친구를 그리워하듯이 남아있다.
꺼벙이 에피소드 중에 <다싫기하부공>이란 새로운 병명을 만들어 어른들을 속이는 내용이 있다. 조금은 꾀가 나고 하기 싫었던,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어린 시절 우리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에피소드이다. <다싫기하부공>이 공부하기싫다의 거꾸로 된 말이라는 것을 꺼벙이의 설명으로 알았을 때 ‘아 이렇게 속일 수 있는 재미도 있네’ 하는 흥미를 주어 꺼벙이에게 더 빠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공부하기 싫다”라는 것은 학창시절 누구나 갖는 마음이다. 그런 시간을 틈내 만화책을 보며 탈출을 하던 우리에게 만화 속에서 수많은 장난으로 혼나며 당당히 <다싫기하부공!>을 외치던 그런 꺼벙이를 보고 대리 만족하며 다양한 일상적인 경험에 공감했다. 언제나 새로운 호기심으로 앞장서서 모험하고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행동들을 대신해주었기에 누구나 하고 싶었던 꺼벙이의 행동을 조금은 피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꺼벙이에게는 늘 동생 ‘꺼실이’도 함께였다. 이들 남매가 주는 웃음은 상상을 초월할 때가 많았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 벌 받는 장면에서는 안도감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누군가 함께한다는 것이 기쁠 때는 배가되고 슬플 때는 반이 된다는 것을 명랑만화 속에서 보여줬던 것 같다.
가끔 에피소드에 철없는 어른의 모습으로 길창덕 작가 본인이 직접 등장할 때면 작가님도 이 재밌는 만화에 들어가고픈 마음이 느껴진다. 정다운 골목길에서 늘 즐거운 말썽을 피우고 있는 꺼벙이와 만화에 들어가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그 시절 어린이라면 있었을 것이다.
꺼벙이와 버금가는 말썽꾸러기 개구쟁이 중 한 명인 ‘심똘이’, ‘김정문’ 선생님의 심똘이는 명랑이 주는 웃음에 새로운 심술을 첨가하였는데 그 심술스러움이 착하고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게 아닌 나쁜 사람들을 골탕 먹이고 벌주는 형태였기에 즐거운 심술 구경이 될 수 있었다. 전래동화 놀부의 심술은 가족과 이웃을 괴롭히지만 심똘이는 가족과 이웃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심술로서 그 행동에 대가를 주고 책임을 지게 하는 경우였기에 심똘이는 놀부의 심술을 인정하지 않았고 놀부 역시 심똘이 앞에서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매회 기발한 심술로 독자들에게 통쾌한 웃음과 재미를 주었고, 심술에 단수를 매겨 1000단 999단 등은 아이들에게 좀 더 공인된 심술의 강도를 보여주었다. 좋은 심술과 나쁜 심술에 대한 차별화도 알려주었던 것 같다.

심똘이는 다양한 심술 대결이나 심술 사건들에 엮이게 되는 대결구조로 상대를 이겨내어 심술의 최강자를 유지하는 캐릭터이다. 극한 상황에 빠졌어도 슬기롭게 대처하나 상대를 당황하게 하는 고급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심똘이는 가족들의 심술 역사 또한 오래되어 가문을 ??어가야 하는 막대한 책임도 있고, ‘심술통’, ‘심쑥이’ 등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심술 가족으로 인해 웬만한 장난에도 절대 당황하지 않았다.
심똘이의 심술은 세계 심술 선수권대회에 초대되는 모습에서 그 수준을 알 수 있다. 요즘은 세계에서 한국인이 우승하거나 최고로 평가되는 일이 많아 특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시절엔 세계 속의 한국인이 된다는 것은 너무 자랑스러웠던 일이라서 세계 심술 선수권대회에 나간 심똘이에게 심술을 배우러 오는 일 등이 재밌고 월등한 캐릭터라는 점에 자랑스러웠다.
심술이라는 게 정해지지 않고 그때 상황에 맞게 반전을 주는 일이라서 수많은 심술을 만들어내신 작가님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심술을 당하는 사람들이 악당이기보다 실생활에 자신도 모르게 잘못을 저지르고 공공질서를 안 지키는 사회적 이기주의나 배려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자칫 억지스러운 심술보다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심술로 응징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 강도가 세서 어린 심똘이의 머릿속에서 나왔을까 싶은 내용도 있지만, 작고 귀여운 심똘이의 인상 쓰는 눈썹은 잘못하면 ‘나 화낸다!’하는 귀여움에 웃음이 절로 날수도 있는 작품들이다. 나이를 알 수 없지만 의외로 성숙하고 똑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상처받기 쉬운 어린아이의 모습일 수도 있는 심똘이! 착한 일을 하며 칭찬을 받아야 하는 나이에 심술을 부리며 잘못을 벌줘야 하는 아픔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윤준환의 <꾸러기 말썽일기>는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꾸러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꾸러기를 늘 걱정해주시는 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어린 꾸러기의 장난에 당하면서도 늘 함께하는 모습에 대가족이 주는 따뜻한 가족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모범생도 아니지만 말썽장이 불량학생도 아닌 아주 평범한 보통학생의 모습을 많이 보인 꾸러기는 뜻하지 않게 말썽을 피우게 될 때면 언제나 감싸주고 대변해주는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함께 동지가 되어주는 파트너로 꺼벙이와 꺼실이, 또 남녀가 한 쌍인 심똘이와 심쑥이처럼 꾸러기의 옆에는 어린 시절 꾸러기만큼 엉뚱했을 것 같은 할아버지의 존재가 늘 함께하기에 장난에 대한 결과에 대해 교훈적 내용도 많고 감동도 많은 명랑만화이다.
길창덕의 대표 캐릭터로 꺼벙이는 알지만, 만화 제목으로는 신판보물섬이 가장 친숙한 작품일 것이다. 그 주인공의 이름은 누구일까? 여러 캐릭터 중에 ‘고철이’라고 쉽게 나오면 다행일 것이다. 어린 시절 많이 꿈꾸는 것 중 하나가 멀리 떠나 세상구경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른이라면 여행과 함께 동반되는 고생에 대해 잘 알고 있겠지만, 어린이의 생각엔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기에 늘 가장 고생스런 여행형태를 꿈꾸게도 된다. 무전여행이라든지 드럼통 비행기라든지 뗏목 배로 아주 쉽게 떠날 수가 있을 거라고 꿈꾸지만, 만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한 꿈의 실현을 보여주는 고철이와 그의 친구 삼삼이. 삼삼이의 존재는 늘 투정하고 고철이에게 태클을 걸기도 하지만 가장 믿고 의지해주기에 친구만큼 좋은 동료가 없고, 무서울 게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고철이와 삼삼이가 함께 떠나는 여행에서 우리는 대리만족의 웃음을 찾곤 했던 것 같다.
고철이가 주는 웃음은 보물섬이라는 상상 속 장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에피소드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대응하며 마지막엔 보물섬을 찾아 기쁨을 누리는 해피엔딩의 모습이라 더더욱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험난한 고생을 다 한 뒤에 보물섬은 마음속에 있다’ 만화가 끝났다면 참 낙담했을 수도 있지만 화려한 금화와 보물들이 즐비한 보물섬의 모습은 사행심과는 별개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진리를 알려주기도 하고 ‘무엇이든지 열심히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도 주기에 아주 건강한 웃음이라 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나는 작품들에서는 ‘고철이’와 ‘삼삼이’, ‘선달이’와 대학생 형, ‘두심이’와 꼴찌 등 총대를 멘 말썽장이와 그런 친구를 믿고 함께 해주는 친구가 늘 있는 것이 모험 명랑만화 속 캐릭터들의 특징이다. 그들의 우정이 주는 흐뭇한 미소 덕에 험난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지 않았다 생각한다.

<선달이 여행기>에서 위대한 탐험가가 되기로 한 선달이의 계획은 아주 현실적이었다. 동네탐험 - 시내탐험 - 전국탐험 - 세계탐험 - 우주탐험 등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에 동네 밖을 크게 벗어난 적이 없는 호기심 많은 어린이에게 전국을 돌며 유적지와 문화유산, 그에 얽힌 역사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교훈적 여행을 떠나는 선달이를 통해 많은 정보를 알게 되고, 첨부된 지역 사진으로 현장감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보면 달라진 서울의 모습과 사라진 건물들, 지방의 유명 사적들 등 명랑만화가 단순히 개구쟁이들의 장난으로 웃음을 주는 게 아니라 그들의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으며 미소 지을 수 있게 한다.
선달이는 나이는 어리지만, 용기없는 소심한 대학생 형 ‘뚝갑이’의 조수로 오히려 형을 이끌며 여행을 가게 된다. 반면에 그 형에게서 듣는 각 지역의 전래야사나 유적지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경청하는 자세는 처음부터 계획적이던 선달이의 성실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역사 공부와 교훈적 에피소드가 삽입된 만화로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기에 길창덕의 명랑만화는 언제나 믿고 보는 재미와 웃음을 함께 주는 명작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선달이 여행기〉의 복간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재미가 가득한 명랑만화였을 뿐만 아니라 국내 여행지를 소개해주는 여행 만화였고, 또 그에 따른 역사적 교훈과 감동을 주던 학습만화로 기억되기에 필자에게는 더더욱 그립고 다시 보고 싶은 장면 장면이 많은 작품이었다. 길창덕의 만화에는 언제나 뜻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날 때가 많고, 만화 지면을 탈출해서라도, 보여주는 공간을 뛰어넘는 웃음을 보여줄 때가 많았기에 언제나 웃을 준비를 하였고, 늘 기대 이상의 웃음으로 만날 때가 많았다.
선달이가 명랑만화 캐릭터 중에 가장 믿음직한 면이 많지 않을까 싶은 것은 선달이와 뚝갑이가 다니며 보여주었던 정보들에 대한 지식적 신뢰와 역사 속 인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보여주는 교훈적 행동, 만화 지면에 허락된 알찬 그림체까지 한몫하고 있다.
선달이의 여행지 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지금도 그대로인 지방의 유적들도 있지만, 서울의 달라진 모습과 사라져 버린 어린 시절의 인기장소였던 창경원이라든지 요즘 아이들은 못 들었을 ‘3·1빌딩’과 고가도로 등이다. 이제 어린 시절의 그 시간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장소들은 만화 〈선달이 여행기〉 속에서나 찾을 수 있다.
세계여행을 생각하며 떠나는 ‘두심이’와 친구 ‘꼴찌’, 동생 ‘똘방이’의 모험을 그린 〈두심이 표류기〉. 명랑만화 속 말썽꾸러기들은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좁은 세상보다는 더 넓은 곳을 향하고 싶어 하니 정말 그들은 활동성이 많은 어린이들이라 할 수 있다. 명랑만화 특유의 상상으로 〈두심이 표류기〉는 세계 일주를 계획하지만 거의 아프리카에서만 머문 것으로 기억된다. 명랑만화의 특징은 일상에서 주는 현실이 반영되어 나오는 웃음이 많지만 〈두심이 표류기〉 속에서의 경험은 만화 속에서의 상상이 아니면 얻을 수 없다.
두심이는 친구 꼴찌와 말썽도 피우지만 화해와 용서로 우정을 지켜가고 이성적인 동생 똘방이를 늘 걱정하는 형제애를 보여주기에 함께하는 그들의 모험에는 언제나 씩씩함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형제와 친구를 찾아 나선 아버지 두 분 역시 그들 못지않은 사랑과 우정으로 아프리카에 찾아오기도 한다.
〈두심이 표류기〉는 어른스럽게 밀림생활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온갖 맹수와 희귀한 식물과 동물들의 위협에도 서로 도우며 대처하는 방법들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한편 ‘한 번쯤 집을 떠나봐야 그 고마움을 느끼고 한층 더 성숙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 캐릭터에겐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형제가 있다. 그런 그들이 함께였기에 보물섬도 찾을 수 있고, 전국 무전여행도 가능하고 아프리카 밀림도 무섭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만화 속에는 늘 그렇게 가족애와 우정을 중시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교훈이 있었기에 그 시절 함께 만화를 읽었던 친구들에게는 더욱 소중한 추억이자 자산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신문수의 〈도깨비감투〉만큼 인기 있었던 작품 중에는 〈원시소년 똘비〉가 있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원시시대에서 현대사회와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그 속에서 웃음을 주는 에피소드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똘비’는 처음 보는 문명사회의 물건들을 신기하게 보고 낯설어한다. 독자들은 현대 사회와 똑같은 물건들을 원시시대에서 사용하는 장면들을 접할 때면 그 물건이 시간을 앞선 원시시대가 먼저인 것인지 현대사회를 경험하고 간 똘비같은 원시 소년이 만든 물건인지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된다.
〈원시소년 똘비〉는 복잡한 현대사회를 단순한 원시사회로 보여준다. 특히 사회를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이 부족한 생활양식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믿고 사는 사회, 서로 물질적 욕심이 없이 차별과 계산되지 않은 행동 등에서 오는 신뢰사회 등 어린이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접하는 만화들은 어쩌면 모를 때가 많다. 이에 좋은 웃음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세상은 꿈속에서나 있는 것인지 〈원시소년 똘비〉의 결말은 모두 탱구의 꿈으로 끝이 난다. 문명사회의 편리함만 가져간 원시시대가 정말 살만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수동’의 〈땅콩찐콩〉은 똑똑하게 생긴 소년 원시인 ‘땅콩’과 어수룩해 보이는 소녀 원시인 ‘찐콩’이 주인공들이다. 유래나 근거가 필요한 일들을 알려주는데 그 방법이 별로 과학적이진 않지만 공감되고 이해되게 하는 명랑만화다. 땅콩을 골탕 먹이고 속이려는 찐콩을 도리어 당하게 만들기도 한다. 원시시대의 소년과 소녀는 유치하지만, 현대사회와 별다르지 않게 놀았다는 상상력을 보여주는 기발한 에피소드들에는 다양한 재미가 있다. 원시시대에 현대사회의 발명품들이 어떤 식으로 사용되었나를 보여주는 〈땅콩찐콩〉의 그 아이디어는 감탄과 함께 〈땅콩찐콩〉을 즐겨보게 만드는 매력을 갖고 있다.
늘 장난치고 놀고먹고 공부의 스트레스 없이 대자연을 뛰어다니며 온갖 세상의 모든 것들에 궁금증을 가지고 ‘왜?’라는 호기심을 풀어가던 땅콩과 찐콩 두 친구의 우정과 느닷없이 나타나 웃음을 주던 멧돼지마저도 그리운 캐릭터들이다. 머리를 쓰며 꼼수를 부리는 소녀 캐릭터 찐콩이 고인돌과 멧돼지까지 한편이 되어 소년 캐릭터 땅콩을 당황하게 하지만 늘 이기지 못할 때가 많았다.
원시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와 현대사회의 기초가 되었던 사례들을 보여주면 ‘아! 그때 이래서 지금 이렇게 되었구나!’ 하며 호기심이 풀릴 때면, 만화가 만들어낸 상상이지만 그럴듯한 이야기에 공감이 가면서 믿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만화에 대한 기본 신뢰가 있거나 순수한 마음이 아니면 박수동의 〈땅콩찐콩〉의 이야기에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한 명쯤 있었으면 하는 막내 여동생 같은 ‘얄숙이’, 대가족 속에서 막내의 역할이지만 어른스럽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귀여운 여자 명랑 캐릭터이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얄숙이는 당찬 모습으로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모습보다는 여장부의 모습마저 보이는 똑똑함이 있는 여자 캐릭터이다. 어린 여자 캐릭터이지만 늘 위험한 일도 많고 험한 모험을 많이 당하는 역할이다. 아무래도 600만 불의 사나이와 함께라면 그런 일이 다반사일 것이라고 예상은 되지만 늘 지혜와 순발력으로 도움을 주기에 외모마저도 똑순이다운 모습이다. 작은 체구로 근무를 수행하고, 악당 캐릭터들을 무찌르고 선량한 시민들을 구하는 모습에서 얄숙이같은 동생이 있다면 든든할 거 같다는 언니·오빠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얄숙이가 한없이 여리고 순수한 모습으로 보였기에 늘 언니·오빠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 하는 어른스러움이 안쓰러울 때가 많았다. 얄숙이가 등장하는 작품 중 최고인 무지개 행진곡에서는 만화를 보는 독자를 ‘울렸다’, ‘웃었다’ 등 가슴을 찡하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얄숙이는 늘 모험 속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많았기에 의리 있는 멋진 여성으로 커갔으리라 상상된다. 아마 이제는 얄숙이도 많은 나이 속에 지난날을 회상하며 그 시절 활약상을 돌아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학생들에게 당하고 사는 여학생들을 대신하여 남학생들은 혼내주던 ‘심쑥이’는 명랑캐릭터 중에 악동으로 등장하는 여성캐릭터이다. 남학생들의 장난에 늘 당하고 살고있는 여학생들을 대신하여 동급의 심술 실력을 보여줌으로써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다. 다소 과장된 면도 있었지만 평범한 일상을 지내면서 착하지만, 친구들과도 싸우고 심술도 부리면서 웃음을 주는 해결사 캐릭터이다. 여성캐릭터들은 사고를 치는 입장보다는 해결하는 입장을 보여줄 때가 많다. 어린 소녀 심쑥이도 그런 심술 해결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었다. 다소 아쉬운 것은 심똘이가 심술 1000단이라면 심쑥이는 1단이 모자란 999단이었기에 어서 1단을 쌓기를 바라기도 했다.
심똘이와 심쑥이의 심술은 보통 어른들을 능가하는 실력이지만 심술 가족의 심술 도사와 심술 노파에게는 명함도 못 내미는 실력이다. 심쑥이의 999단에 비교할 수도 없는 심술 10000단의 심술 도사와 7000단의 심술 노파의 이야기는 지금도 궁금하다. 그리고 그런 가족을 둔 심쑥이의 현재 심술은 과연 몇 단이나 되었을지도 궁금하다.
성인을 혼내줄 수 있는 심쑥이와 심똘이지만 가족들 앞에서는 어린 소년, 소녀의 모습도 만화를 읽고 나서의 반전 재미이다. 읽기 전의 웃음 기대,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 읽고 나서의 또 다른 상상은 만화의 존재가치는 언제나 행복하고 건강한 웃음으로 입가에 주름을 남겨주고 있다.
고전 명랑만화 속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시대 상황과 사회적 배경 속에서 탄생하여 현시대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모습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즐거웠던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존재하는 친구들이기에 늘 그립고, 생각만 해도 반가운 캐릭터들이다.
집들이 붙어있던 담벼락을 사이로 그 골목길엔 다양한 명랑만화 속의 친구들이 살았다. 이제는 그 친구들의 모습을 다시 보는 마음으로 복간된 고전 명랑만화를 들추지만, 만화 속 캐릭터들은 어린이들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이제 그들도 나이든 모습으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덕분에 이렇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었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나는 지금은 어떤 캐릭터로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며 그때 대리만족으로 세계를 일주하고 온갖 장난으로 친구들과 재밌었던 시간을 보내주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모험을 경험하게 해주었던 그 만화 속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