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월드컵에 나가 골문 앞 일대일 상황에서 어이없이 공을 차는 선수를 보고,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고등학생을 보고, 쇼프로에서 립싱크하는 가수를 보고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학문의 영역에서 스포츠, 예술까지 기본기는 미래의 발전을 지탱하는 토대가 된다. 그렇다면, 만화의 기본기는 어떠한가? 좋을까? 튼실할까? 아는 사람들은 다 한결같이 ‘답답하다’고 말한다.
답답한 기본기로 인해 한국만화의 오늘은 참혹하다. 불길한 징후는 주위에 가득한 유령처럼 나를 떨게 한다. 《에스콰이어》 3월호에 기고한 <한국만화시장의 몰락, 그 불길한 징후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인용한 대목을 다시 인용한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2000년 문예연감에 만화부문을 최초로 포함시켰는데, 그 글에서 90년대 들어 한국 만화는
“뒷골목 문화라는 오명을 접고 새롭게 대중문화로, 특히 문화산업의 중요분야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같은 글에서
“만화의 주변환경은 유래 없이 전폭적 관심으로 떠올랐지만, 만화시장은 1998년의 5,000억원에서 1999년은 4.050억원으로 줄어”들었으며, 그 중 일본만화의 시장점유율은 약 80까지 추산된다고 위기를 제기했다. (백정숙 <천덕꾸러기에서 당당한 ‘대중문화’로의 도약>, 2000년 문예연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www.kcaf.or.kr/yearbook/2000/)
한국의 만화 시장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근대 만화가 도입된 이후 만화는 우여곡절의 길을 걸었다. 지배자들은 만화에서 불온한 상상력을 읽었고, 만화를 통제했다. 1950년대와 60년대를 관통하는 혼란한 현대사의 한 대목에 한국 만화는 최초의 붐을 맞이한다. 어린이들의 삭막한 마음을 위로한 만화는 인기작가와 인기작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군복을 입은 자들은 문화는 통제되어야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심의에 걸린 만화는 출판이 반려되었고, 한 달, 두 달을 그린 만화가 하루 아침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작가들은 억지라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소녀 만화에서 파마머리와 목걸이, 반지가 사라졌고, 전쟁만화에서 피와 패배가 자취를 감추었다.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도 만화와 독자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소년잡지에 연재된 만화와 주간지에 연재된 성인만화는 70년대 한국 만화를 어렵게 지탱했다. 80년대로 접어들며, 희망이 좌절되자 극도의 민족주의와 직선적인 세계관으로 무장한 이현세의 만화나 성공을 향한 신화가 모자이크된 박봉성의 재벌만화 등이 대본소에서 큰 인기를 끌며 장편 극화시대를 개척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만화는 여전히 만화였다.
‘만화(漫畵)’라는 용어는 넘치고, 질펀하며, 정도를 걷지 못하는 ‘일탈(逸脫)’과 ‘비주류’를 뜻하는 것이었다. 인기 작가가 라디오와 TV 쇼에 나간다 해도 만화는 여전히 만화였다. 어린이날이 있는 5월이면 ‘불량’한 매체인 만화를 정화하기 위한 궐기대회가 열렸다. 만화가들은 숨을 죽였고 가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90년대가 되었다. 일본 만화 최고의 호황기를 이끌어간 빅히트작인 <슬램덩크>, <드래곤볼>, <유유백서>는 바다를 건너 한국 만화의 체질을 바꾸어버렸다. 청소년들은 그동안 외면했던 만화에 열광적으로 매달렸고, 이들 만화는 청소년 문화를 이끌어갔다. 일본 만화에 힘에 의해 우리나라에도 잡지와 단행본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다.
80년대를 끌어간 대본소 만화는 서너명의 작가가 이끌어가는 룸펜의 공간으로 전락했고, 잡지와 단행본, 이른바 코믹스(comics)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 순간, 영상산업이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후끈 달아올랐고, 만화는 컨텐츠(contents)라는 다른 이름을 얻었다. 패러다임의 변화 그때부터
만화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만화는 애니메이션과 게임, 캐릭터를 이끌어가는 컨텐츠 산업의 핵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만화는 앞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 것이며, 세계를 재패할 힘이 있다는 달콤한 주문에 빠져들었다. 만화는 예전의 만화가 아니었다. 만화에 대한 신문 지면이 탄생하고, TV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으며, 만화에 대한 정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IMF가 되자 주춤하는 듯했지만, 벤처열풍은 만화 컨텐츠를 더욱 가치있게 만들었다. 속속 만화 사이트가 개설되었다. 만화를 스캔해서 올리고, 신작을 연재하며, 다양한 웹진을 개설했다. 10년! 10년 동안 만화는 일탈과 비주류에서 일약 지식정보산업의 핵심 컨텐츠로 새롭게 탄생했다.
그런데 변한 것은 없다. 이야기는 많고, 기대는 높지만 현실은 조악하다. 패러다임은 변화했지만 토대는 바뀌지 않았다. 변화한 패러다임은 만화의 새로운 위상을 강제하려하지만, 변화하지 않은 토대는 아무런 협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만화는 여전히 기대주일 뿐이다.
2001년에는 만화의 과거와 미래를 되돌아보아야한다. 왜? 기본기를 무시한 채 진행된 수많은 드라이브들 때문에 만화 시장의 토대는 형편없이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세기적 빅히트작에 기댄 한국 만화시장의 재편은 한국 만화의 대안없는 혼란을 가져왔다. 원로작가와 중견작가 그리고 신인과 아마추어들로 탄탄하게 구성되어 움직여야할 시장은 스타일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원로작가와 중견작가들은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지 못했고, 새로운 꿈을 펼치지 못했다. 새롭게 등장한 신인들은 한국 만화의 전통 대신 일본의 히트작을 모범 텍스트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시장 환경을 분석하지 않고 정착된 일본식 잡지 시스템은 매년 빠른 속도로 축소되기 시작했다. 출판사들은 결국 질이 떨어진 자리를 양으로 밀어붙였다. 기획과 마케팅? 또 다른 부가가치들은 검증되지 않는 도전이었고, 한정된 대여점 시장에 공급하는 물량이 중요했다. 대여점이 폭증하자 독자들도 잡지와 만화책을 외면했다. 불과 1/10만으로 만화가 주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삐걱삐걱,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제각각 돌아갔다. 학과는 수십여개로 늘어났지만 제대로된 커리큘럼은 찾아보기 힘들다. 수십여개의 전공 학과에서 배출된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학과는 개설되고 말았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학과를 담당할 전임 교수는 학과를 개설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뽑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제 우리는 10년 동안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질주를 멈추어야한다. 폭주를 멈추고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살펴보아야한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만화는 무엇인가? 이 만화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 한국만화자료의 데이터베이스 
이 반성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주목하는 것은
한국만화자료다. 그리고 그것의 집적화와 체계적인 분류 및 활용을 꿈꾼다. 만화에 대해 글을 쓰고, 연구하고,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제일 큰 불만은 우리나라에서 만화를 보는 것, 정리된 만화 자료를 만나는 일이 엄청나게 힘들다는 점이다. 만화가 각광받고 있던 10년 동안에도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구해 보는 일은 ‘미션임파서블’ 혹은 ‘다이하드’였다. 시장에 나온 만화는 두달만에 절판되어버린다. 최근까지 출판되고 있는 <은하철도 999>의 전권을 구해달라고 서점에 부탁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불가능하다’, ‘꼭 필요하면 출판사의 창고를 뒤져야한다’였다. 일본 같으면 만화 전문 서점에 들어가 들고 오면 되는 <은하철도 999>가 말이다. 출판된지 이삼년지 지난 박흥용의 <경복궁 학교>는 희귀본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90년대 자료, 80년대 자료, 70년대 자료, 60년대 자료를 구하는 일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개인적으로 만화를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을 수배해 온갖 아쉬운 소리 해가면서 빌려봐야한다. 그런데 그분들이 가지고 계신 만화도 일부분에 불과하다. 현재 여러 글을 통해 새롭게 조명된 한국만화사의 부분들은 단언하건데 전체 만화사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우리는 만화사의 일부분을 가지고 짜맞추어 전체를 짐작하는 것이다. 이런 인프라가 전무한 상태에서 학과의 설치나 만화의 진흥을 논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기본을 다시 시작하는 일은 누군가에 의해 시작되어야한다. 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 추진하는 만화규장각 프로젝트는 그래서 반가운 일이다.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그것을 체계적으로 일반인들에게 제공하는 일은 한국 만화의 기본을 세우는 일이다. 2000년 여름, 나는 만화규장각 프로젝트의 마스터플랜을 마련하는 일에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한국 만화 자료의 집적과 체계적인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