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에서 제작, 유통까지 온라인 - 온라인 만화의 긍정적 사례들

만화라는 표현방식이 종이라는 수단을 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생각만큼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다. 연속된 그림의 흐름을 통하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은 멕시코의 피라미드, 바이뢰의 태피스트리에서 나아가 이집트 벽화까지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즉, 만화가 종이에 묶여있으라는 법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다 -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 만화는 아예 물리적인 평면체를 떠나서, 전자의 영상 공간 속에 새로운 자리를 마련했다. 더욱이 전자 공간은 단순한 저장기능 뿐 아니라 컴퓨터 통신이라는 방식을 통한 네트워크의 형성으로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개념적으로 설명하자면 복잡하지만, 의외로 이미 온라인 만화라는 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친숙해져 있다. 한국사회에서 PC방, 전용선 등의 폭발적인 보급력은 온라인을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로 만들었고, 온라인과 만화의 결합된 형태에 전혀 낯설어하지 않는다. (특히 지난 1-2년간 업체들의 과도한 무료 서비스 경쟁으로 인하여 온라인 상에서의 만화 보급은 놀라우리만치 넓게 퍼졌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온라인 만화라는 개념은, 그 양적인 규모에 비해서 질적인 차원에서는 아직은 비교적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다행히도,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들이 여러 곳에서 진행중이다). 우선 형태면에서 기존 출판된 / 혹은 기존 방식으로의 출판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종이 만화를 스캔해서 온라인 상에서 열람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극히 일부분의 경우 Flash 등을 사용해서 동영상 혹은 소리 효과를 입힌 작품들이 등장했다(아직 대부분의 경우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고, 오히려 만화라기보다는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개념에 가깝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유통을 위한 만화의 체계적인 분류라는 측면에서도, 여러 작품들이 1회 단위로 기존의 종이출판에서처럼 연령별 취향에 맞춘 잡지의 개념으로 묶여져서 나오는 현실이다. 또한 아직 페이지뷰 나 다운로드 회수 같은 시스템으로 작품의 흥행을 산출, 작가와 분배하거나 혹은 작가와 독자가 직접 거래를 하는 형태보다는, 여전히 온라인 잡지사가 지급하는 원고료 개념으로 움직인다. 즉, 만화가 온라인 상에서 서비스가 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를 제외하자면 아직 온라인 만화는 형태에서나, 유통에서나 그 잠재된 가능성들을 거의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온라인 만화가 가지는 잠재성을 구체적으로 지적해주고, 그것을 실제로 실천에 옮겨내는 시도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 온라인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작은 시도들은 가장 먼저 유통의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미 많은 젊은 작가들이 개인 홈페이지를 구축,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홍보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중견 만화가 고유성의 경우, 작가가 직접 자신의 신작을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서 서비스를 하고, 자신의 작품들을 CD-ROM으로 제작하여 직접 독자들과 거래를 하겠다는 시도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 (
members.tripod.lycos.co.kr/Dr_KO). 중간유통 단계의 생략, 즉 유통에 대한 작가 자신의 지분 확대야 말로 온라인 만화가 유통 측면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 가운데 하나다.

온라인 만화의 형태적 가능성에 대한 시도는 미국 만화가 스콧 맥클루드(만화의 이해의 저자)가 단연 돋보인다. 그는 일련의 온라인 만화를 발표하면서 온라인의 특성을 반영하는 새로운 만화문법을 만들어내는 데에 주력하여, 화면을 무한캔버스로 이용, 각 칸을 무한 공간 상에서 자유롭게 배치한 후, 연결선(trail)으로 이야기 순서를 묶어 내는 방식을 도입했다. 또한 그의 저서 만화의 재발명(Reinventing Comics: 현재 국내 미발간) 및 그 온라인 후속편인 생각이 멈추지 않아요(I Cant Stop Thinking: 한글판은 웹진 고구마에서 연재중)를 통해서 온라인 만화의 여러 가능성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적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러한 온라인 만화의 가장 큰 특징은 종이출판을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은 형태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온라인 만화의 경우, 종이출판을 통한 수익창출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 형태상으로도 종이지면이라는 큰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맥클루드의 온라인 만화들은 온라인이 아니라면 제대로 감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들이다(하이퍼링크, 스크롤에 의한 무한 캔버스 효과 등을 종이지면에서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온라인 만화는, 위의 두 가지 요소 - 즉 형태와 유통 - 이 모두 적극적으로 활용될 때 새로운 가능성들을 잉태한다. 스콧 맥클루드의 생각이 멈추지 않아요 한글판의 경우, 모든 과정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100 온라인 만화로 봐도 과언이 아니다. 종이원고 없이 완전히 컴퓨터로 제작된 작품이, 출판사나 에이젠시 등의 중간과정 없이 한국의 웹진 제작진과 미국의 작가 간의 직접 협약에 의하여 - 모든 연락과 서류 교환도 이메일로 이루어지고 있다 - 특약 연재되고 있다( 물론 한글화 작업 또한 컴퓨터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는 모든 과정이 실시간으로 직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불필요한 경비와 시간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인터넷이라는 이름값에 걸맞는 국제적인 비젼이 가능하다. 즉, 온라인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어딘가에 이런 작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 세계적인 대형 출판사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서 전세계에 이 작품을 널리 알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이 사례를 적극 참조해서 한국 만화가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것도 단순한 공상이 아니게 될 것이다.

온라인 만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놓고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현재의 구도 속에 담긴 불합리한 관계들을 바로잡는 것이다(저작권/수익분배 문제 해결, 합리적인 수익모델 구성, 지면 안정성 확보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 - 아니, 심지어 위의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온라인이 가지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그 극한까지 실험하고 시도해보는 것이다. 유통면에서나 형태면에서나, 온라인은 만화라는 표현양식에 있어서 하나의 큰 전기가 되고 있고, 이러한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만화를 만드는, 유통시키는, 감상하는 모든 이들이 모두 함께 각자의 영역에서 추구해 나가야 할 과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