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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만화공모전을 말하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의미의 만화공모전이 도입된 것은 1987년 성인만화잡지 [만화광장]을 통해서였다. 1회 공모부터 박흥용이라는 거장을 배출했으니 4년 단명이었다하더라도 제 역할은 톡톡히 한 셈이다. 1989년부터 3회에 걸쳐 운영된 순정만화잡지 [르네상스]의 공모전은 신인 등장이 쉽지 않았던 순정만화계에 이강주, 문계주, 권선이, 유시진, 강모림 같은 작가들을...

2005-06-01 김병수


<커버스토리>

만화잡지 공모전의 시대 


만화잡지 공모전의 시대

▲공모전 사냥꾼으로 불렸던 박응용의 초창기 작품이 실린 만화집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의미의 만화공모전이 도입된 것은 1987년 성인만화잡지 [만화광장]을 통해서였다. 1회 공모부터 박흥용이라는 거장을 배출했으니 4년 단명이었다하더라도 제 역할은 톡톡히 한 셈이다. 1989년부터 3회에 걸쳐 운영된 순정만화잡지 [르네상스]의 공모전은 신인 등장이 쉽지 않았던 순정만화계에 이강주, 문계주, 권선이, 유시진, 강모림 같은 작가들을 발굴하면서 잡지만화공모의 비전을 보여줬다.

그러나 만화잡지공모전의 전성기를 연 것은 서울문화사와 대원으로 대별되던 메이저 만화잡지사들에 의해서였다. 1988년 [주간아이큐점프(서울문화사)] 창간과 뒤이은 1990년 [소년점프]의 탄생은 국내만화시장의 중심축을 대본소에서 잡지로 바꾸어 놓았다. 만화시장 변혁은 공모를 통해 발탁된 신진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본소 시스템 하에서는 이현세, 허영만, 박봉성, 이재학, 고행석, 천제황 등 입지를 구축한 작가들의 브랜드 파워에 밀려 신인이 발탁될 기회가 극히 드물고 어려웠다. 그러나 만화 잡지는 애독자 엽서라는 순위 시스템을 바탕으로 작가의 교체가 끝없이 이루어지고, 이 때문에 신인의 수혈이 계속 되야 했다. 이를테면 대본소시대의 만화작가인프라가 거대한 저수지라면 잡지시대의 만화작가는 끊임없이 흐르는 급류와도 같았다.

마치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코미디프로인 개그콘서트나 웃찾사와 같은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인기 있는 작가는 계속 살아남지만 인기를 끌지 못하면 몇 달도 채 못가 도태되는 무한 경쟁의 시대가 열렸다. 한때의 인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자기 복제에만 몰두해온 대본소 공장시스템과는 체질적으로 달랐기 때문에 잡지시스템은 만화시장의 재편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그 정점에는 공모전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 잡지만화계의 중견 작가로 인정받는 작가들이 대부분 이 시기에 공모전을 통해 배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화잡지 공모전의 긍정적인 면은 인맥을 활용한 소개 중심의 작가 발굴에서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투명한 작가 선발의 장을 열었다는 것이다.

1억원 현상공모의 허상
 
 
그러나 만화잡지사의 공모전이 좋은 평가만 받는 것은 아니다. 초창기의 긍정성을 무색하게 할만한 부정적인 측면이 해를 거듭하면서 드러나 오늘날에는 공모전으로서의 의미나 명분이 상당히 퇴색됐다. 대표적인 폐해는 ‘그렇고 그런, ‘그게 그거인 공모전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각 잡지사에서 모집하는 작품은 기준이나 형식이나 특전이 문구 몇 개만 빼고는 흡사하다는 것이다. 단지 모집 시기만 겹치지 않도록 서로 피하고 있을 뿐 만화가 지망생이 작품 완성 시기에 따라 ‘아무데나내면 그만이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잡지의 성격이 각각 뚜렷하지 않고 단지 작가와 작품에만 의존해서 싣기 만하는 편집부의 무기력한 기획력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일본에서 최근 유행하는 스타일대로 뽑아 줄 수 있는 작가와 작품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배치하다보니 응모작의 대부분도 일본풍의 천편일률적인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한 만화잡지기자는 “ 지망생들의 80~90가 비슷한 주제의 그저 그런 작품을 들고 오기 때문에 특별한 것을 뽑고 싶어도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그나마 독특한 10~20의 작품은 완성도가 현격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결국 그저 그런 스타일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을 고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잡지사 스스로 초래한 측면이 더 크다. 응모자의 경우 잡지에 실린 작품의 경향을 일정부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기성작가조차도 잡지의 성격과 다른 작품을 시도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 아마추어에 불과한 응모자들에게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일찍부터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수용해 오고 발굴해 왔더라면 지망생들 역시 그 경로를 따라올 것은 인지상정이다.

잡지만화 공모의 더 큰 폐해는 허상에 불과한 상금규모다. 각 출판사별로 통합 공모로 변한 이래 1억원 현상공모가 일반화된 지 오래지만 대상, 금상, 은상 뽑아 상금주고 곧바로 연재를 보장하리라는 생각은 주최 측도 하지 않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공모요강에 처음부터 ‘대상작은 없을 것임이라고 새겨 넣지 않는 것이 의아할 정도로 이러한 관행은 이제 전통이 되어 버렸다. 어차피 가작, 특선 정도로 선발하여 관리를 하다가 싹수가 보이면 연재 시키면 그만인데 대상 뽑아 몇천만원씩 지급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라는 게 만화잡지사의 생각인 것이다. 

새로운 공모전의 출현
 
 
만화잡지사들의 공모전이 관성화되고 ‘뻔해지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들어 새로운 형식의 공모전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3년부터 95년까지 개최된 신한은행의 신한새싹만화공모전은 기존의 만화잡지 공모와는 확실하게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선 공모전 요강대로 대상, 금상, 은상 등 시상 약속(?)을 정확히 지켰다(!). 공모 작품의 스타일도 일본풍에서 벗어나 다양한 내용과 그림체를 지닌 신인들이 대거 응모하여 역량있는 작가가 대거 배출됐다. 유승하, 최호철, 조남준, 이우일, 홍승우 등 오늘날 자기 분야에서 독자적인 작품스타일을 선보이는 작가들이 신한 새싹만화공모전 출신인 점은 이 공모전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최호철 을지로 순환선
 
신한 새싹 만화공모전은 아쉽게도 3회만에 간판을 내리고 1997년에는 동아LG만화 공모전이 그 바톤을 이어받았으며, 1999년에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사전제작지원공모라는 새로운 형식의 공모전을 선보이기에 이른다. 기존의 공모전이 완성작을 대상으로 시상을 하는 데 반해 사전제작지원공모는 콘티와 캐릭터, 제작능력 등 기획 단계를 심사하여 상을 주는 참신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공모전들은 만화잡지사처럼 고정 지면을 보유하지 않아 작가에 대한 사후 관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등 1회성 행사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실용적으로 진화하는 만화공모전
 
 
이에 대한 대안으로 채택된 것이 만화단행본을 출판해 주는 제도다.

애니센터에서 시작된 이 시스템은 출판사와 연계를 통해 단행본을 발간하도록 의무화했으며, 덕분에 기존 만화잡지 시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실험성 짙은 작품들이 대거 시중에 나오게 됐다. 또 응모 자격의 문호를 아마추어 신인뿐만 아니라 일선 작가들에게도 열어, 기성과 신인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기도 했다.

애니센터의 사전제작지원공모가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자 한국 문화 콘텐츠 진흥원은 우수만화기획제작지원이라는 사전제작지원과 유사한 공모 제도를 마련하여 2005년만하더라도 무려 15편에 달하는 만화작품에 2000만원씩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국만화가협회가 2003년부터 문화관광부의 후원을 받아 일간스포츠와 함께 개최하는 대한민국창작만화공모전은 상금외에도 해외연수라는 특전을 내놓고 있어 더욱 관심을 모았다.

부천만화정보센터는 2003년부터 우수만화동인지 공모라는 독특한 형식의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기존의 공모전이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데 반해 우수만화동인지 공모는 말 그대로 동인지를 바탕으로 다수의 작가에게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나름대로 신선한 시도로 볼 수있다.

국내 만화공모전 역사의 새장을 연 것은 2003년 말 모집을 시작한 경향신문의 신춘문예에 만화부문이 신설된 것이다. 기존의 언론사에서는 시사만화작가를 선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국민일보 등에서 단발성 만화공모를 실시한 적은 있지만 신춘문예에 만화가 들어간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경향신문 김택근 편집 부국장은 월간 우리만화와 인터뷰에서 ‘만화도 창작분야로 인정해야한다는 점과 ‘천편일률적인 신춘문예공모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조용상 사장이 처음 제안했다고 밝힌바 있다.

경향신문 신춘문예 만화부문 신설은 공모전 하나가 더 늘어났다는 의미를 뛰어 넘어 우리 문화전반에서 만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전환점이 됐다는 면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나도 작가 - 누구라도 만화가가 될 수 있는 시대
 
 
지금까지 살펴본 공모전이 지망생 중심의 전통적인 방식이었다면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공모전은 웹의 특징을 살린 색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인 다음의 나도 만화가 코너는 누구라도 자유롭게 작품을 올릴 수 있고 네트즌으로부터 직접 평가를 받는 공모전 아닌 공모전이다. 기간이나 상금이 정해진 것이 아니며 완성된 작품을 편집자에 보내어 채택 되면 코너에 등장하는 방식이다. 누구나 작품을 낼 수 있듯이 아무나 심사위원이 될 수 있다. 이 코너에서 인기를 끌면 만화 메인 코너로 옮겨 갈 수 있어서 신인 만화가의 새로운 등용문 구실을 하고 있다.

인터넷 만화가 점점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세로 볼 때 향후 우리나라 만화공모전의 양상도 변화가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애써 편집부를 찾지 않아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작품을 소개할 수 있고 또 이를 통해 인기를 얻는 작가가 속출하는 환경에서 전통적인 만화 공모전은 점점 그 위상이 축소 될 수밖에 없다.

만화 잡지 공모전에는 최근 주목받는 신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있다. 반면 순정만화의 강도영, 파페포포메모리즈의 심승현, 마린블루스의 정철연 같은 소위 요즘 뜨는 작가들은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데뷔한 경우다.
 
 
확산되는 만화공모문화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위상이 높아지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공모전도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기도 하다. 올해 각각 5회째를 맞은 불교만화공모전과 기독만화공모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양대 종교계에서 개최하는 만화공모전이고, 전국장애인 창작만화페스티벌은 기쁜우리복지관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대표적인 문예행사로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올해로 7회째를 맞았다.

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 개최하는 전국학생만화공모전과 부천국제대학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주최하는 전국고교만화애니메이션대전은 응모대상이 학생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공모전과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두 단체에서 치르는 학생 대상 만화공모전은 예선을 거쳐 본선에서는 실기대회를 직접 연다는 점에서 일선 대학에서 개최하는 학생만화공모전 보다 훨씬 엄격하고 공정한 룰을 적용하고 있다.

90년대 말부터 여기저기 생기기 시작한 일선 대학 주최의 학생만화공모전은 현재 상명대학교, 세종대학교, 공주대학교, 광주여대, 청강대학, 인덕대학 등에서 열고 있으며, 해당대학 입시에 특전이 있어 수험생들의 참여율이 굉장히 높다.

이밖에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에서 주최하는 통일만화공모전,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서 개최하는 한국전통 캐릭터 만화 영상공모전, 울산지역환경기술개발센터에서 열고 있는 울산환경만화공모전 등이 학생 대상의 만화공모전으로 알려져 있다.
 
 
학생 대상의 만화공모전, 잇단 잡음
 
 
올해 4회째를 맞이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의 통일만화공모전이 최근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대상수상작이 함량미달이다는 식의 댓글이 해당 기관 인터넷 사이트에 5월 3일부터 9일까지 일주일새에 약 700건 가량 올라 온 것이다. 네티즌들은 대체로 심사위원의 자질과 심사기준, 대상수상자에 대한 출신 배경에 대해 의문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주최 측에서는 만화를 그린 응모자의 연령층에 맞는 수준에서의 만화적 발상과 기발한 내용에 대한 배점이 컸다는 등의 해명자료를 내 놓았지만 좀처럼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선대학에서 주최하는 학생만화공모전이 ‘판권을 해당 대학이 갖고 작품을 반환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도 서서히 표면화 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모 만화단체 사이트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회원들 간의 의견교환이 이루어지며 공론화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문제가 공식화 될 경우 입시 특전을 내걸고 무리하게 진행되어 온 학생대상 만화공모전의 운영방식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학생만화공모전이나 통일만화공모전이 심사나 작품반환 정도에서 잡음이 일고 있지만 지난해 말 모 무료신문에서 개최한 만화공모전은 공모전의 근간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어 만화계 안팎의 분노를 샀다. 사건의 내막은 다음과 같다.
 
‘ㄷ 무료신문의 어처구니없는 만화공모행태 
지난 2004년 12월 무료만화신문인 ‘ㄷ신문에서는 신인만화공모전을 실시하고 ‘일정기간의 연재자격부여 및 그에 따른 원고료 지급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만화잡지들이 위축되면서 연재지면이 대폭 줄어든 마당에 -비록 일정액의 상금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프로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는 ‘연재와 원고료만으로도 도전해볼 만한 기회로 여겨졌다.

사건은 공모전이 무사히(?) 끝나고 나서 시작됐다. 당선되어 연재 기회를 얻게 된 작가들이 ‘ㄷ 신문과 맺은 계약이 노비문서 내지는 신체포기각서 수준이라는 지적이 만화관련 단체 등을 통해 터져 나온 것이다. 1페이지당 원고료가 1만7천5백원에 불과하고 ‘ 복제권, 공표권, 방송권, 전송권, 배포권. 2차적 저작물 등의 작성권 등의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일체의 권한(3조)을 해당 신문사가 갖는 계약서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계약서 5조는 더욱 가관이다.
 
1.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경우 "갑(출판사-필자 주)"은 "을(작가-필자 주)" 에게 1주간의 기간을 정하여 최고하고 그럼에도 시정이 되지 아니하면 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가) 위 만화의 인기도가 하락하여 계속 연재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나) 위 만화가 "갑"의 편집방향과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
다) "을" 이 본 계약의 각 조항에 위반한 경우

2. "갑"이 편집방향을 전환하는 등으로 위 만화의 연재중단이 결정된 경우

3. 위 연재만화의 인기가 높을 경우 "갑"은 "을"의 동의를 얻어 제 1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연재기간을 1개월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 
 
5 조의 내용에 의하면 "갑"의 사정에 따라 임의로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더욱이 3항의 내용은 신인공모의 결과로 연재되는 이 작품의 연재 기간 이후에도 이 작품의 인기가 높으면 다른 조건으로 이후 재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본 계약을 1개월 단위로 더 연장할 수 있다고 못박고 있어 저작권자의 권리를 명백하게 침해하고 있다. 인기가 올라 독자의 반응이 좋아도 1페이지 1만7천5백원에 계속 연재에 붙들어 두겠다는 발상 아닌가.

페이지당 한 컷 삽화료 수준도 안되는 고료로 모든 권리를 가져가고 마음에 안 들면 자유롭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신문사의 배짱은 계약서를 들여다 본 만화인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평소 한국만화시장의 흥망은 우리 손에 달렸다고 공언하던 이 신문의 큰소리가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리는 씁쓸한 대목이다.
 
 
 
 
만화공모전의 환골탈태를 위한 제언 
 
2001년 동아LG만화공모전, 2002년 스포츠 서울 만화공모에 연거푸 당선된 바 있는 [휴머니멀]의 작가 박순구씨는 “초년병 시절에는 메이저 만화잡지의 공모에도 냈었으나 상금을 거의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몰랐다. 그 후 만화계에 있으면서 메이저만화잡지사의 공모전 운영 행태를 알게 됐고 더 이상 응모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공모전에만 작품을 내게 됐고 계속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메이저만화잡지가 아닌 공모전은 상금을 주는 것 빼고는 후속관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일회용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매체를 보유하지 않은 곳에서는 매체와 연계를 통해서 작가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일정기간 보장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씨의 이러한 지적은 비상업적인 공모전의 한계를 정확히 드러낸 것이다. 만화계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공감하며 대안마련을 위해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현세 신임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온라인 웹진 창간에 관해 언급을 하면서 “...(중략) 20 정도는 공모전 수상자들의 작품 발표지면으로 활용했으면 해요. 공모전에서 입상한 유망한 신인작가들이 지면이 없으니까 상금사냥꾼화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거든요.”라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우리만화연대의 김신애씨는 공모전의 기능을 신진에만 국한하지 않고 기성세대에까지 넓히는 대책이 필요 하는 점을 역설하기도 했다. 김씨는 월간 우리만화 11호에 실은 ‘국내 만화공모전의 현황과 역할이라는 글에서 신진 뿐만아니라 “실력이 검증된 기성작가들이 기획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장이 별로 없다”고 지적하고 대안마련을 주문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작가연재 지원제도는 바로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하여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아 가는 중이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신인과 메이저잡지 지원 중심이었으나 기성작가와 인터넷매체 등으로 확대시켜 나가면서 ‘공모전을 통한 안정적인 연재지면 확보라는 결실을 착실히 맺고 있다.

그러나 공모전의 환골탈태는 보다 근원적인 부분에서 출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만화비평웹진 두고보자의 원종우씨는 ‘작가를 만드는 공모전, 작가를 망치는 공모전이라는 글에서 “ 숱한 공모전의 남발이 아닌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권위 있는 만화상, 혹은 공모전이 필요하다. 단지 상금만으로 권위가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동네잔치가 아닌, 만화가 문화로서, 예술로서, 타 장르의 전문가에게도 그리고 많은 대중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이 필요하며, 이런 작품을 선정하기 위한 공모전이 우리나라에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모전은 행사를 빛내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좋은 작가를 발굴하여 육성하는 등용문으로써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할 때 비로소 빛이 난다. 그것이 곧 공모전의 권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화공모전시대를 연 만화잡지를 비롯하여 오늘날 인터넷 만화공모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만화공모는 본분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

‘ㄷ 신문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나 학생 대상의 만화공모전이 내는 잡음 역시 주최자가 만화에 대한 애정보다는 사사로운 이익과 과시형 이벤트에 집착했기 때문에 빚어진 사건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다행히 만화관련 기관 단체를 중심으로 의미있는 공모전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어 만화인들의 의욕을 북돋우고 있다. 만화공모전은 어찌되었던 간에 계속되어야하고 신인의 등용문으로 계속 자기역할을 해나가야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주요 만화공모전을 휩쓸며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장수진씨의 공모전 예찬론을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2001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제작지원공모 만화시나리오 우수상, 2003년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제작지원공모 단편만화대상, 2003 제 1회 대한민국창작만화공모전대상 등 화려한 공모전 수상경력을 가진 장수진씨는 월간 우리만화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조건으로 만화잡지에 연재하게 됐어요. 공모전에서 입상을 했기 때문인지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저만의 형식을 인정해 주고 믿음을 가져주더라고요. 원고에 대해 간섭도 거의 없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어요. 또 수상을 계기로 이름도 알려지고, 언론사 인터뷰도 많이 하고, 여러 군데에서 원고 청탁도 들어오고 그래요”라고 말해 공모전의 효용성과 가치에 대해 높은 점수를 매기고 있다. 만화공모전은 여전히 유효하다.

참고문헌
월간 우리만화 2004년 4호 ‘만화공모전 진정한 등용문으로 거듭나라
만화비평 웹진 두고보자 ‘작가를 만드는 공모전, 작가를 망치는 공모전
오마이뉴스 ‘천국의 신화 신명이 없어 졌어요

필진이미지

김병수

만화가
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 교수, 前 목원대 웹툰애니메이션·게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