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국 만화, 아니 한국 대중문화예술은 중요한 작가 한 분을 떠나보냈다. 고 고우영 선생은 오랜 세월동안 고르게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받아왔으며 나아가 만화라는 양식 자체의 사회 문화적 지분을 확장시켜온 명실상부한 거장이다. 한 작품 아니 한 페이지라도 더 창조해내시기를 바라게 되는 분이었건만, 선생과 오랜 기간 함께해온 불청객 ‘지병이라는 녀석은 그다지 좋은 만화독자가 아니었는 듯 싶다. 세상을 떠나신 후 여기저기서 들려온 추모의 목소리들이 거장의 빈 자리를 증명해주었고, 필자 역시 만화로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무슨 고우영 전문가도 아닌 주제에 여러 지면에서 그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리고 약간 사람들의 애석해하는 마음이 다소 진정된 지금, 이번에는 약간 차분하게 애도도 추모도 아닌 만화 자체를 다루어보는 이야기를 좀 꺼내볼까 한다. 이런 만화였고, 이래서 재미있었구나, 이래서 약간 부족했지만 또 다음 작품에서 분발해주기를 바라게 되었구나... 라는 이야기들 말이다. 한마디로, 고우영 만화가 세상을 즐겁게 해준 그 흐름을 한번 다시 짚어보자.

- 고우영

-짱구박사
<짱구박사> : 추동성 명랑만화
<짱구박사> 는 사실 온전히 고우영 만화는 아니다. 둘째 형 추동식(예명)이 연재하던 작품을 추동성(*참고로 고 고우영 선생의 출신 고등학교가 동성 고등학교다)이라는 작가가 1958년 어느 틈에 이어받은 것일 뿐이다. 하지만 말끔한 명랑만화로서, 매력적인 캐릭터 극으로서, 전업만화가 고우영의 시작으로서 <짱구박사> 는 분명한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헐렁한 듯 멍한 짱구박사 부자의 이야기는 일상생활의 공간에서 좌충우돌 ‘과학모험을 만들어내어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자체로서 엄청난 걸작이거나 또는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혁신성을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명랑만화의 고유 문법의 가장 충실한 재현력을 자랑했다. 나아가 짱구박사와 아들 짱짱이는 추동식 추동성 형제의 이야기 속에서 탄탄한 이미지를 구축했고, 40년 넘게 지난 지금 봐도 여전히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70-80년대 명랑만화의 전성기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떠오르는 명랑만화 작가 추동성은 이런저런 이유로 인하여 60년대 만화계를 지배하던 대본소 체제 속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고우영이 추동성이라는 명랑만화가의 길을 계속 걷지 못하게 된 불행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만화계로서는 큰 축복이었다. 72년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문극화 연재를 시작하면서 고우영 만화의 틀거리는 대변신을 했고, 한국만화는 큰 발전의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임꺽정> 에서 <일지매> 를 찍고 <삼국지> 로: 고우영 만화의 확립
스포츠신문 <일간스포츠> 에 72년 연재를 시작한 <임꺽정> 은 최초의 신문 연재극화니, 해당 신문의 판매량을 3배 이상으로 늘려놨다느니 하는 숱한 전설적 수식어들이 따라다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확고부동한 히트는 스포츠신문과 만화 사이의 파트너십이라는 공식을 새로이 발명해냈고, 그 공식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임꺽정> 으로 시작해서 후속작 <수호지> 를 거치며 신문 일일 연재에 적합한 만화 이야기 진행의 배분이라는 하나의 문법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창작사극 <일지매> 를 거치면서 그의 극 전개와 해학의 방법론들이 거의 완성되었고, <삼국지> 에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러한 신문 일일연재 극화의 히트는 대중들에게 고우영 만화의 대표적인 개성으로 자리매김했고, 흔히 ‘고우영만화라고 할 때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라면 바로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되었다.
스포츠신문 일간연재에 걸맞는 이야기 서술 방식이란, 바로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유연함과 지속성이다. 작가가 마치 고전극의 변사, 또는 판소리의 소리꾼 마냥 이야기 속에 직접 개입하며 해설을 붙여주는 방식이 고우영식 능청 해학과 만나면서 최고의 필살기로 발돋움했다. 이것은 특히 작중 상황들을 현실 세태에 빗대어 풍자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데, 마치 술자리에서 입담 좋은 선배 하나가 “노가리를 까듯이” 작품 속 이야기와 현재 현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노가리만화”의 방식은 이후 강철수 등의 작가들로 이어지면서 스포츠신문 연재만화의 중요한 맥을 이루게 되었다. 그림체 역시 헐렁함과 세밀함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이야기의 완급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어가도록 발전했다. 덕분에 캐릭터들의 시각적 쾌감은 극대화되었으며, 맷돼지 여포나 외계인 유비, 중성미소년 일지매 등 매력적인 인물들이 한층 더 매력이 더해졌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명실상부한 고우영 만화의 확립기이자 전성기였다. <일지매> 의 탁월한 이야기성, <삼국지> 의 멋진 인물해석, <임꺽정> , <수호지> 의 민중적 정서는 만화는 물론 당대 대중문화 전체를 통틀어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리고 신문사의 입김이 작용하여 치중하게 된 역사물들 덕분에 사극 전문, 고전 전문이라는 이미지가 이 때 형성되었다.

- (왼쪽부터)임꺽정,일지매,만화삼국지
<대야망> : 고우영 만화와 공존하는 소년 모험물
<대야망> 은 극진가라데의 창시자 최배달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75년 <새소년> 잡지에서 인기리에 연재되었다. 일본에서 <공수바보일대> 라는 제목의 만화로 이미 다루어진 적 있던 이야기를 당시의 한국 소년지 실정에 맞추어 태권도로 바꾸고, 일본적인 아이템이 많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인생 초반의 수련과정을 상당부분 생략하고 등장했다. 작품 자체로서는 탁월한 재미를 지닌 청소년 극화지만, 고우영 만화 특유의 풍자정신과 해학, 다양한 밀도를 오고가는 그림체의 변화무쌍함은 그다지 들어있지 않아서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굵은 선과 역동적인 질감은 이후에 당시 문하생으로 참여하고 있었던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 에서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이렇듯, 신문 연재 성인만화로 전성기를 구가하면서도 고 고우영은 잡지지면 또는 단행본으로 청소년 대상 만화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80일간의 세계일주>, <아라노와 오가녀> 등 여러 작품들이 젊은/어린 독자들을 끌어들였다. 형식적으로 특이하거나 신문만화에서 만큼 노골적인 유머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뚜렷한 기승전결과 끊임없이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도록 만드는 팽팽한 이야기의 끈은 이쪽에도 여전히 작용하고 있었다. 질을 신경 안쓰고 양적 생산에 매달리는 오랜 대본소 생활을 거치며 선이 단순화되어버린 여러 동시대 작가들과는 달리,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수준의 공들인 작화를 고집하고 있던 것 역시 특징이다.

- 대양망(좌), 80일간의 세계일주(우)
<서유기> 에서 <가루지기> 까지: 80년대, 퇴화도 발전도 더딘

숨가쁜 70년대를 지난 후, 80년대의 작품들은 다소 쉬어가는 느낌이 강하다. 작품을 낼 때마다 큰 발전을 거듭했던 이전 시기보다는 훨씬 안정된 모습으로 작품이 세상에 선보여졌다. 그러나 안정이라는 것은 큰 발전도, 그렇다고 해서 실망스러운 퇴화도 없는 일종의 답보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70년대에 쌓인 명성 때문에 고우영 작품에 대한 수요가 너무 높아진 것이 하나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컴퓨터학습> 이라는 컴퓨터 전문 잡지에 사무실 전산화 관련 만화를 연재를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하튼 그 답보의 모습이란, 예를 들어 중국 고전의 맥을 이어갔던 <서유기> 의 경우에서 명확하게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이전 <삼국지> 에서 확립된 유머러스한 전개방식이나 캐릭터들의 속물성과 하지만 미워하기 힘든 인간성을 큰 발전의 모습 없이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능청스러운 화법과 농밀한 그림체가 만들어내는 원숙함은 분명 큰 힘이 되고 있지만, 작품 자체가 가지는 서사적 힘은 중반을 넘어가면서 급속하게 소진되었다. 작품을 통해서 결국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사를 이야기하기에 생동감을 만들어냈던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이야기 자체만을 전개시키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실력으로도 충분히 멋진 시작을 할 수 있는 초반과는 달리, 뒤로 갈수록 추진력이 없어지고 작가도 독자도 맥을 놓게 되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대작이 나오기 힘들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본격적인 슬럼프로 악화되지 않은 것은, 80년대 후반에 <21세기 아리랑 놀부뎐>, <가루지기> 등을 통해서 한국 고전 민담의 고우영식 소화를 시도하는 등 그래도 창작자로서의 도전정신을 잊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십팔사략> : 90년대 새로운 발돋움
90년대 초 개시한 <십팔사략> 은 80년대의 답보를 일거에 날려버릴 화려한 컴백이었다. 이번에는 교양학습만화의 형식으로 출판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그 발표형식 속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 방식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원래 증선지가 편저한 고전 <십팔사략> 은 창세부터 송나라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고대사를 다룬 역사서다. 전설과 역사가 뒤섞였으며, 수많은 난세의 영웅들이 피고 졌던 광대한 줄거리인데, 이 정도 이야기를 만화로 제대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적임자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장 단위로 가기보다, 이번에는 개별 일화로 나뉘어지는 방식을 취했다. 덕분에 학습/정보성과 고우영 만화 특유의 서사성이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여전히 녹슬지 않는 탁월한 해학으로 감싸안은 명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십팔사략> 은 작품으로서의 예술성, 대중문화로서의 오락성, 나아가 지식서로서의 학습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작품이다. 이로써 고 고우영은 과거의 인기작가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작가로 다시금 시동을 걸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한국만화의 흐름에서 80년대와 90년대 사이에 있는 커다란 단괴를 고려할 때, 자신의 색을 잃지 않고도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에 통하게 만들어낸 이러한 복귀는 더욱 의미 있다.
복간 붐과 새로운 출발의 2000년대
90년대의 단괴를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게 만든 사건이 2000년대에 발생했다. 바로, <삼국지> 무삭제 복간 프로젝트였다. 인터넷 신문인 <딴지일보> 와 손잡고 이루어진 이 프로젝트에서, 기존 판본에서는 모두 검열의 잣대로 쓰러졌던 각종 원본 그대로의 표현들이 다시 일일이 손으로 복구되었다. 그리고 그 완전판은 인터넷에서 연재되어서 새로운 젊은 독자층에게 노크했다. 그런데 시기적 분위기가 한편으로는 80년대 문화에 대한 향수가 시작하던 무렵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 연재만화가 확고하게 자리잡아가고 있던 때였다. 특히 스포츠신문 연재극화를 매일 인터넷으로 4페이지씩 열람하는 것이 젊은 세대에서 보편화되어간 그런 시기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온라인 연재 <삼국지> 는 큰 인기를 끌었고, CD-ROM의 형식으로 완간 발매되기에 이른다. 고우영 만화의 재미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음이 증명된 것이다. 그러자 고우영 만화 원형 복구 복간본들을 책으로 묶어내는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뒤를 이었고, 수년 만에 전성기 주요 작품들이 차례대로 계속 박스 세트 전집으로 복간되었다.
이에 힘입어, 작가 자신의 창작력 역시 다시 불이 붙었다. 제작상의 문제로 이미 2번이나 중도하차했던 <수호지> 만화가 다시 한번 <수호지2000> 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했으며, 스포츠신문 <굿데이> 가 창간되면서 조선 개국 이야기를 담은 <수레바퀴> 라는 신작에 지면을 주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인하여 이전만큼 활발하게 움직이기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새로운 의욕으로 창작열이 불타오른 셈이다. 물론 시련도 적지 않았다: 수호지에 대한 3번째 도전 역시 만족스러운 결말을 내지 못했고, <수레바퀴> 도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야사로 빠지면서 뒷심부족을 드러냈다. 설상가상으로 두산동아 출판사에서 <십팔사략> 의 원고 전량을 분실하는 사태가 발생해서 법정 싸움으로 번지고, 멋진 신작을 내밀었어야 할 <데일리줌> 창간지면이 <십팔사략> 의 원고 복원에 할애되는 것에 그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자 교육만화를 내놓는 등 여전히 도전정신을 발휘했고, 50여년을 온전히 만화에 바친 원로이기에 이야기할 수 있는 <한국만화야사> 라는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교육부 지정 상용 한자 1800, 수레바퀴
오장원, 아니 일산에 진 큰 별
거장은 떠났다. 별이 졌다는 흔하디 흔한 표현을 다시 쓰자니 참 부끄럽지만, 그보다 더 적합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양한 만화로 다양한 독자들을 즐겁게 한, 한국만화의 기둥이 이제 소임을 다하고 떠났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숱한 활동과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유파로서 ‘고우영류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고우영 만화가 하나의 장르로 발전하기보다는, 고우영이라는 개인의 우수함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거장을 떠나보내는 최고의 예의는, 그 거장의 씨앗을 고루 흡수한 밭을 일구어내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제부터의 임무는 온전하게 후배 세대에게 떨어졌다. 한국만화의 힘을 보이는 것은 고 고우영 선생을 추모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유산을 이어받고 그것을 뛰어넘는 모습 속에서 비로소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