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묵처묵, 처무루룩~’. 한밤, 공허한 위장 벽을 긁어내며 식탐을 자극하는 통통한 코알라 한 마리. 보는 이들을 위산과다로 쓰러뜨리는, 미각이 남다른 코알라의 식탐일기 <코알랄라>가 최근 시즌 4를 마치며 독자들에게 적잖은 아쉬움을 안겼다.
1주일에 2편. 소재는 순전히 ‘먹는’ 이야기다. 그만큼 중독성이 커서일까. 이 만화에 대한 독자들의 충성도는 뜨겁다. 직장인들은 연재 다음날 점심이면 해당 메뉴를 찾아다니게 될 정도다.
먹음직스런 그림도 좋지만 이 만화의 진짜 매력은 ‘추억’이 버무러진 이야기 자체에 있다. 작가 본인의 경험과 패러디, 적절한 유머를 녹여 음식에 얽힌 공감대와 추억을 살살 긁어낸다.
방방 혹은 퐁퐁이라 불리던 트램펄린과 짝패를 이뤘던 뽑기 혹은 달고나, 경양식집의 ‘로망’ 돈가스, 통통한 핫도그 속 사무치던 소시지의 향긋한 살냄새까지.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음직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또, 닭갈비의 유래나 카레의 역사, ‘얌이표’ 티라미수 레시피 등 음식에 대한 온갖 잡담들이 맛깔나게 뒤엉킨다.
맛있는 음식과 아련한 추억이 한데 어우러진 그녀만의 에피소드가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모두 비슷하게 먹고 비슷한 추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제 맛있는 음식을 발견한 자들은 이렇게 외칠지니. ‘코알랄라!’.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얌이(본명 최지아) 작가의 작업실. 눈에 띄는 것은 방대한 양의 책들이다. 그리고 서가 한 면을 꽉 채우고 있는 것은 온통 <식객>, <심야식당>, <여자의 식탁>, <라면서유기> 등등의 음식만화들. 과연 ‘식탐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의 책장 답다.
그녀의 가계부에 엥겔계수 급상승을 부른 만화 <코알랄라>는 아주 우연하게 시작됐다. 데뷔작인 <블랙 마리아>의 연재를 마치고 쉬던 아침, 포털 만화 편집 담당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은 것.
“마감하고 10시 반인가 자고 있었는데, 담당자가 전화해서는 블랙마리아 후기만화로 붙은 코알라가 인기가 있다며 ‘먹는 것 좋아하시죠? 코알라로 먹는 얘기 하죠.’ 하길래 ‘네네’ 대답하고 잤는데 그게 시작이 됐죠.”
<식객>처럼 전문적인 이야기는 무리라고 여긴 그녀는 대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골라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처음 계획은 24회. 하지만 시즌 4 후기까지 120회를 넘겼으니 꽤 오래 연재가 이어진 셈이다. 실은 이렇게 오랫동안 연재하게 될 줄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그녀. 그만큼 큰 사랑에 감사하다.
그런데 그녀는 독자들이 상상했던 그 ‘코알라’와 조금은 다르다. 뚱뚱하기는커녕 오히려 왜소하고, 식탐은 있지만 식욕이 많지 않다. 제일 잘하는 메뉴는 냄비밥과 프라이드 에그 덮밥 그리고 시행착오 끝에 익숙해진 티라미수 케이크다.
그녀가 음식만화를 시작한 이유 역시 의외로 단순하다. 한때 홍대 근처 출판사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 성산동 리치몬드 제과점에서 만난 프렌치 토스트와 치즈볼, 롤 케이크에 눈을 뜬 그녀는 차츰 홍대 주변 맛집을 탐방하는 체질로 변해갔다고 한다.
스스로 ‘보물섬 세대’라 말하는 얌이. 그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작품은 <세인트 세이야>와 <피구왕 통키>로, 그녀가 지향하는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
“언니랑 어렸을 때 연습장에 만화를 많이 그렸어요. 특히 초등학교 5학년 때 ‘통키’를 보면서 구체적으로 만화가라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죠.”
독자들은 모두 짐작하고 있지만 <코알랄라> 속 최강의 손맛을 자랑하시는 ‘엄마 코알라’와 도도하고 새침한 ‘속눈썹’은 실제로 그녀의 엄마와 한 살 위 언니 그대로다.
“온가족이 만화를 좋아했어요. 아빠가 먼저 화장실에 ‘보물섬’을 갖고 들어가고, 안 나오면 언니랑 나는 문을 두드리곤 했죠. 엄마 아빠도 만화 그리는 것을 한 번도 반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만화가가 된 것에 기뻐하세요. 지금도 제 만화를 모니터링 해주시고요.”
만화가가 되고 싶어 만화학과에 진학했지만 막상 만화가로의 길을 걷지는 못했다. 오히려 만화가와는 상관없는 직업들과 엮였다. 재학 중에 천안중 애니메이션 강사를 하거나 졸업 후 만화학과 입시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홍대에 있는 한 출판사에 취직을 했는데 어느 날 그곳이 망하면서 슬슬 결혼 이야기가 나왔고, 그즈음 그녀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던 그 일을 시작하겠노라 다짐했다. 1년만 데뷔 준비를 해보고 안 되면 결혼이든 다른 직장을 택해야겠다고. 그러다 꼭 1년 후 2009년 8월에 포털사이트에 <블랙마리아>를 연재하면서 만화가로 본격 데뷔한다.
만화가로 산 지 3년이 채 못 되지만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특히 <코알랄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가끔 협찬에 대한 의심을 받을 때도 있었고, 얼마 전에는 모 죽 프랜차이즈 가게 문제로 오해를 받아 속상하기도 했다. 실제로 몇 번인가 협찬 제안이 들어온 적은 있지만 단 한 회도 ‘협찬 만화’를 그린 적은 없다. 그녀의 작품 의도가 불순하게 보이는 게 싫어서다.
이렇게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오해로 힘들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당장 달려들지 못하고 사진을 남기고 메모를 남겨야 하는 고통도 따르는 데다 때론 ‘저질 체력’의 문제로 몇 번 몸살같이 슬럼프가 지나가기도 하지만 만화가란 참 행복한 직업이다. 그녀는 자신의 만화를 봐주고 사랑해주는 독자들을 느낄 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독자 반응이 좋을 때 자부심이 생겨요. 내가 세상에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7천 원짜리 밥 사먹어도 돼!’ 하는(웃음) 안 그럴 때는 밥 먹기도 살짝 미안하죠.”
그녀가 4월부터 연재를 시작하는 공기놀이를 소재로 하는 만화가 궁금하다. 내용을 살짝 들어보니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가는 남자아이를 주인공으로, 더 정확히는 ‘본격 공기로 대학가는 만화’다. 작화는 아마도 <코알랄라>와 <블랙마리아>의 중간 정도가 될 듯. <피구왕 통키> 풍 정도가 될지 모르겠다.
“막 내지르며 제 색깔을 드러내 보이려고요. 제 입장에서는 기대도 되고 즐거워요. 이번 작품이 그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재미있을 거예요. 기대해 주세요.”
물론 <코알랄라>와 <블랙마리아>도 각각 시즌 5와 시즌 3으로 머지않아 다시 독자들을 찾아올 예정이다. 매 작품별로 다양한 색으로 독자들도 교감하고 싶은 얌이. 그녀의 야무진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