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사랑 ‘소원’을 따라 무작정 동물원 ‘주파크’에 입사한 ‘철수’. 하지만 그녀는 수의사와 결혼해 떠나 버리고, 설상가상으로 동물원마저 경영난으로 폐장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소원과의 추억이 가득한 이곳을 지키고픈 철수는 마침내 동물 한 마리 없는 기상천외한 동물원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작가 hun(본명 최종훈)이 어느 날 화장실에서 생각해냈다는 이 기막힌 이야기는 “처음부터 어처구니없는 작품을 그리고 싶어 시작한” 작품. 순식간에 꼬여 버리는 상황과 그에 대처하려 발버둥치는 인물들의 사투가 유쾌하고, 매회 마지막 컷은 기어이 폭소를 터뜨리고야 만다.
아이를 입양 보낸 후 한국을 찾은 조선족 여성과 백수 4년차 폰덕, 음주 문제로 교직을 박탈당한 전 교수, 과거 전설의 극장 간판장이였지만 지금은 가족을 잃고 치매에 걸린 노인, 아버지에게서 버림받고 노숙자 신세가 된 천재 공학도까지 동물원을 구성하는 철저한 ‘비주류’들의 가슴 짠한 이야기가 만만찮다. 이제 결말만을 앞두고 있는 ‘해치지 않아’의 hun 작가를 만났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이 싫고, 자유직을 하고 싶은데 만화에 관심이 좀 있었죠.”
꿈의 시작’을 묻자 이렇게 단순한 답이 돌아온다. 기똥차게 그림을 잘 그린 것도 아니고, 만화에 미쳐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만화가는 그의 오랜 꿈이었다. 치기어린 ‘헛소리’라 여기는 가족들이 미워 오락실에서 하루 몇 시간씩 숨어 지내며 반항 아닌 반항도 부렸지만 마음속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터울 많은 형들이 더 이상 매로 다스릴 수 없게 된 스무 살, 그에게도 갑작스런 자유가 찾아왔다. 대학을 1년쯤 다니다 김수용 작가 화실로 찾아갔다. “초등학생만도 못한 그림” 때문에 이미 다섯 군데 화실에서 확실한 거절을 당한 상태였다.
무엇을 보았는지 스승은 제자를 말없이 받아주었다. ‘남들보다 2배는 늦었으니 3배만 노력하라’는 말씀대로 화수목금 화실마감에 잠을 쪼개며 일하고, 집에 가서도 2시간 이상 잔 적 없이 그림에만 매달렸다. “그때의 노력이라면 아마 판사도 됐을 것”이라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남모를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서다. 화실에 입문한 지 1년 9개월쯤 지나 1999년 그는 마침내 《아이큐점프》에 단편 킬러로 데뷔했다. 오해를 받을까 두려워 스승도 모르게 가명으로 지원한 공모전에 입선한 것이다.
곧 군대 영장이 나왔지만 손이 굳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방위산업체에 지원, 복무했다. 군 복무중에도 시간을 쪼개 1년에 2~3편씩 계속해서 단편 작업을 진행했다. 제대 무렵, 회사는 안정적인 생활에 대한 유혹적인 제안을 해왔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만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여전히 생활은 팍팍해서 원고지 살 돈도 구하기 힘들었지만, 온전히 만화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그는 피곤한 줄 몰랐다. 2004년에는 《아이큐점프》에 첫 장편 그래피티를 연재했는데, 독자들은 가장 재미있는 연재물로 그래피티를 첫 손에 꼽을 정도로 당시 인기가 상당했다. 그렇게 작가 hun은 승승장구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장장 1년을 준비한 차기작의 연재가 갑작스레 취소되면서 그는 한동안 패닉 상태에 빠져 지내야만 했다. 당시 연재를 고사하던 유명 작가가 연재에 응하면서 그의 순서가 뒤로 밀린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그를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그는 웹툰이라는 ‘신세계’를 접했다. 함께 지내던 후배가 인터넷에 올린 만화를 보게 된 것. 당시만 해도 “출판만화는 웹만화의 우위에 있다”는 생각에 젖어 있던 그는 후배가 하는 일들이 모두 쓸데없는 짓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한 작품에 3~4만 회의 조회수가 기록되는 것을 보고는 문화적 충격마저 받았다. 인기는 많았다지만 자신의 만화는 과연 몇 만의 사람들이 봤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일을 계기로 그도 재미삼아 유머 사이트 등에 만화를 올리기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다음 계열 모 에이전시로부터 연재 제의가 들어왔다. 웹툰 데뷔작은 천사와 사신의 사랑을 그린 데자뷰. 이후 그는 샴, 항해, 향연상자, 지옥에서 웃어라,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 강렬하면서도 다양한 색채를 가진 작품을 발표하며 hun이라는 이름을 깊이 새겨 넣었다.
웹툰은 출판만화와 달랐다. 연출과 그림은 물론, 심지어 발상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그 역시 처음에는 출판만화에서의 습관을 버리기가 힘들었다. 더욱이 ‘출판만화인’이라는 자부심은 오랜 시간 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웹툰은 그의 작품에 날개를 달아준 공간이 됐다.
“물론 초기에는 돈이 안 되어서 여전히 만화 말고도 다른 알바를 많이 했어야 했지만 어느날 정신차려 보니 스트레스 없이 일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 사이 잡지 만화와 웹 만화의 경계도 사라지고, 자부심이라는 것도 무의미해졌죠. 모든 매체가 동등한 입장이 되다 보니 오히려 제가 편하게 일할 수 있었던 곳이 웹이었던 거죠. 잡지에서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웹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미디어 다음과의 첫 계약작인 <향연상자>를 계기로 웹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아, 나는 이제 웹에서 죽어야겠다고.(웃음)”
한없이 설렜지만 상처도 많았던 출판만화를 떠나온 그는 비로소 웹툰으로 오롯이 섰다. 그리고 대중은 그의 쉼없는 노력에 화답했다. 작가 hun을 웹툰계의 알아주는 이야기꾼으로 인정하게 된 것.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탁월한 이야기 솜씨는 많은 영화 제작사들의 러브콜 역시 불렀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이미 영화 제작에 들어간데다 <향연상자>, 아직 연재중인 해치지 않아 역시 영화화 논의가 진행중에 있다.
지난 십수 년, 그는 오로지 한 가지 꿈을 향해 치열하게 달려왔다. 하지만 그 노력은 꿈을 이룬 지금,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스스로 “질투가 많아서” 주변 후배, 동료 만화가들과 매일 소리 없는 경쟁을 치르고 있다는 그다. 한편 위기도 느끼고, 또 한편 질투도 느끼지만 노력이라는 무기로 그는 오늘도 묵묵히 한 컷, 한 컷에 최선을 다한다.
“(스스로 평가하자면) 스토리나 그림이나 마감일이나 지금은 50, 50, 50 정도인 것 같아요. 앞으로 모든 면에서 70 이상 만족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앞으로의 작품들 역시 그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지금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나도, 선생님도, 독자분들도 모두가 만족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