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웹툰 원작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으로 돌아온 이준익 감독

본 인터뷰는 이준익 감독의 작업실인 ‘아나키디오’에서 7월 19일 갤럭시S25를 통해 녹음되었다. 인터뷰를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옮겨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아버지의 집밥>이 숏폼으로 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관)의 시대가 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영화와 영화관은 인프라 차원에서 그 필요성을 잃어가고 있다. 한때 대규모 집객시설이라는 명목으로 백화점이나 민자역사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던 영화관은, 각종 브랜드 팝업에 그 자리를 내줬다. 독과점 체제가 아니면 영화관 산업 규모를 유지하기 힘들고, 영화는 유효한 트래픽을 생산할 만큼 매력적인 콘텐츠라고 보기 어려워졌다.
대신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욕망은 남아있어, 트래픽은 다른 콘텐츠들로 분산되었다. 넷플릭스 역시 더 이상 AMC나 시네마크(Cinemark)와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틱톡과 경쟁하고, 유튜브와 경쟁한다. 오랜만에 포스트 코로나 이후 극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쇼박스는 아예 숏폼 사업부를 새로 차렸다.
매체가 변화하는 순간에 숏폼을 만들기로 결정한 생산자의 입장과 심정을 포착해 기록할 수 있다는 건, 글쟁이로서는 놓치기 힘든 기회였다. 기회를 최대한 살려서 상세하고 날 것 그대로 담아놓고자 했다. 다만, 그 이야기가 생생하게 포착된 게 맞는지, 질문이 적절했는지, 인터뷰이의 반응이 인터뷰어에 의해 유도된 것은 아닌지, 지금 이 이야기가 필요한 건 맞는지 여전히 고민된다.

〈아버지의 집밥〉은 어떻게 숏폼으로 만들게 되셨나요?
추천받은 거지, ‘키다리’(키다리스튜디오)가 투자해서. ‘영화사 두둥’이라는 내가 속해 있는 영화사에서 제작을 했고….
영화로 데뷔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졌으니까, 후배 감독들, 조감독 출신들이 숏폼으로 연출 데뷔를 하는 그런 무대가 된 거지.
나는 굳이 이거 하려고 한 게 아닌데…. 투자사에서 기다리지, 왜 후배들만 자꾸 전쟁터에 보내고 본인은 안 하냐, 해달라고. 내가 그거 하면 잘돼야 본전이고, 못하면 완전히 ‘흑역사’ 되는데…. 그래도 워낙 주변에 후배들이 “감독님이 해주면 후배들도 심정적으로 응원하는 느낌이 있지 않겠냐. 숏폼이라는 게 마이너 장르라서 마이너들끼리만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이름이 있는 사람이 해주면 숏폼이라는 장르도 사업적으로 좀 더 확장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냐”고… 명분에 떠밀린 거지. (웃음)

몇 개를 추천해 줬어요. 그 중 하나가 〈아버지의 집밥〉이에요. 〈아버지의 집밥〉을 보는데 고리타 작가의 〈아버지의 집밥〉의 정서나 주제나 소재, 또 다른 가치관 이런 것들이 숏폼이 아니어도 하나의 이야기로서 영화가 됐든 숏폼이 됐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후배 작가한테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했지. 원작대로 찍을 수는 없고 영화 혹은 숏폼에 맞게끔 이야기 설정이나 구조에 대한 가이드를 줬고. 시나리오를 한 달 만에 써왔는데 (한 달 만에) 너무 잘 썼어. 그래서 바로 한 달 후에 찍어버렸지.

촬영 기간 봤을 때는 기간도 되게 짧았을 것 같기도 하고…. 14회차인가요? 한 달?
14회차. 프리(프로덕션) 한 달, 프로덕션 한 달. 두 달이지. 후반은 단독으로 하는 거니까. 근데 나는 좀 유리한 편이기 때문에….
다른 숏폼을 하는 신인 감독들은 7회차에, 촬영 기간이 2주 정도. 나는 4주 걸렸고, 두 배로.
제작비도 다른 감독들은 1억 5천밖에 안 되는데, 다른 배우들도 있고 규모도 있고 해가지고 제작비 5억에 맞췄지. 다른 숏폼 제작비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거지.
이게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나오는 현상들인 것 같기는 한데, 조직도 그렇고, 인프라도 그렇고, 카메라도 그렇고, 다 이제 가벼워지고 있잖아요, 경량화되고. 그리고 점점 소규모로 작업하는 데 굉장히 익숙해지고 있고.
특히 카메라라는 매체가 이런 ‘가벼움’이라는 데 취약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이거는 콘텐츠 업계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는 고민 같아요. 만화도 마찬가지죠.
가벼워진 작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가벼워지는 것은 디지털화되어 간다라는 또 다른 표현인 거죠, 사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패러다임 전환은 모든 것이 콤팩트해 진다는 거예요. 콤팩트해 진다는 것은, 압축화 된다는 것은 가벼워진다는 뜻이지. 과거에 “크다, 무겁다”라는 개념이, 기능이 더 크고 거대한 건 아니죠. 같은 기능을 갖고 있는데 가벼워진 거죠.
그런데 이제 (중요한 것은) 보여지는 디바이스가 됐든, 윈도우가 됐든, 이게 ‘세로’라는 거야. 세로라는 프레임과 가로라는 프레임의 차이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태가 바뀐 것 같아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긴 하겠지만, 크게 내용의 편차 없이 형식의 변화 속에서도 내용을 온전하게 심을 수 있었던 게 〈아버지의 집밥〉 같은 것이다.
숏폼의 내러티브는 영화나 시리즈와 달리 짧게 ‘화’마다 하는데, 그 화의 구분이라는 게… 영화가 시퀀스 단위로 이야기를 전달했다면, 이제는 씬 단위로 전달하는 이야기.
자체로 콤팩트해지는 부분이, 뭐랄까 …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데 이야기를 씬 단위로 표현하면 (영화와) 다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숏폼 매체는 말씀하신대로 영화랑은 좀 다르잖아요. 그리고 특히 숏폼은 서사가 (시퀀스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에 있는 영화와는 굉장히 다른 것 같고요. 또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내러티브의 특성들과도 다른 것 같아요.
이쪽은 시트콤에 가깝다고 봐야지. 시트콤이라는 게 시추에이션 코미디의 약자잖아요. 어떤 시추에이션, 상황이 던져지고 그 상황에서 다양한 변주를 연이어서 하는 것. 일종의 시트콤적인 내러티브를 갖고 있지.
이것은 불과 1분 30초에서 2분 단위로 반복되는 상황극인 거죠. 실제로는 50부작, 60부작 이야기가 무한 반복처럼 … 어느 순간 또 끊어버리는 거죠. 〈아버지의 집밥〉 같은 경우는 영화 내러티브의 시나리오를 숏폼으로 쪼갠 거라서, 정례의 숏폼은 내러티브의 전개방향이 좀 다르지 않나.
(인터뷰어가 보기에 〈아버지의 집밥〉은) 어땠어요?
처음에는 잘 쪼개져 있는데, 중간 쪽으로 갈수록 에피소드가 길어지더라고요.
그건 뭐냐면 붙여서 그래요. 다 쪼개서 보여주자니, 영화제(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니까, 스크린을 보니까 관객들한테 관람에 불편을 줄까 봐. 이것이 숏폼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위해서 초반에는 쪼개다가, 나중에는 감정적 방해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다 붙여버리는 거지.
영화제 이후에 반응이 괜찮아서 투자사에서 극장 개봉을 추진했는데 9월 9일에 개봉하기로 했어요, 극장에서.
이 형태(버티컬 스코프)로요?
이 형태로 재편집을 좀 해서. 화별로 뚝뚝 끊기는 것도…. 화별 암전은 2초 줬었는데 1초로 당겨서, 숏폼이라는 형식을 그대로 전달하되 또 극장에서 보는 관객들의 편의를 위해서 극장용 버전으로 재편집을 지금 하고 있지. 극장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파라마운트에서 〈퀸카로 살아남는 법〉(〈Mean Girls〉, 2004) 그거를 숏폼으로 올려가지고 수익을 꽤 내기도 했었고, 바이럴을 일으키기도 했고요. 또 숏폼을 드라마의 그릇으로 진지하게 보려는 움직임들도 있는 것 같은데, 그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시나요?
그러니까 뭔가 공격적으로 시도를 했는데 어쨌든 수익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보았다는 거야. 그건 아마 미국 영화, 극장 산업이 그야말로 침체기를 넘어서 이제 거의 뭐 쇠퇴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미국 극장 영화 산업이 거의 붕괴됐다고 봐야지.
그 첫 번째는… 미국의 AMC 극장의 주식 지금 1달러 하나? 한 2, 3년 전에 6달러였거든? 주식이. AMC 치면 나와.

AMC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티켓 값을 올리기 위해서 극장에 있는 의자들을 다 이동 가능하게 만들어놨어요. 그러고서 거기를 이제 ‘아레나’처럼 쓰는, 공연장처럼. 그런 식으로.[1] 티켓 값을 올려가지고서 매출을 다시 올리기는 했죠.
인터뷰어 주석[1]
AMC는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아레나 원(Arena One)과 협력하여 영화관을 실시간 라이브 콘서트 공연장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라이브 음악 사업을 론칭했다.
https://investor.amctheatres.com/news-events/press-releases/detail/424/arena-one-and-amc-theatres-launch-a-first-of-its-kind-shared-live-concert-experience-nationwide-beginning-in-june)
AMC 주식이 지금 1.94달러야. 한 3천 원씩? 한 3천원. 그 이전에 수년 전에 그래프를 보면 거의 붕괴된 거야, 이미. 그럼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대체재가 넷플릭스로 획일화돼버렸는데, 넷플릭스가 영원한 제국이 될 것인가는 의문이고. 또 다른 어떤 플랫폼들이 끊임없이 생겨날 텐데, 그 새로운 플랫폼의 시장은 뉴 디바이스에 의해서 변화 혹은 확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
예를 들어서 극장도 있잖아요. 그야말로 씨어트리컬 플랫폼은 관객들이 시간과 돈을 내서 한자리에 모여서 같이 즐기는, 지난 100여 년 동안의 소비 형태였는데. 그 사이에 TV나 비디오나 DVD나 다양한 어떤 홈 비디오 시대를 거쳐서 결국에는…. 넷플릭스도 홈에서 자기 모니터로 뉴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소비 패턴은 어쨌든 빠르게 전환한다. 빠르게 전환하는 것도, 생산자 자체도 빠르게 전환시키는 콘텐츠로 업데이트 시키지만, 소비자도 빠르게 핑거 스피드로. 엄지도 마우스의 스피드 못지않은 거지. 마우스는 검지 스피드였는데 틱톡은 엄지 스피드로 최적화되어 있는 소비를 갖다가, 그 틱톡의 세로 포맷과 핑거 스피드가 상품화로 만들기 위한….
틱톡 같은 경우는 생성된 콘텐츠를 대량으로 한 플랫폼 안에서 소비하게 만들어가지고, 무한정 새로운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패턴을 만들게 했고. 그것을 계획경제 안으로 집어넣어가지고 생산을 해서 소비를 유발시키기 위해서 만들어낸 포맷이 숏폼 드라마 아니냐, 드라마박스 같은 거 아니냐.
숏폼은 가로는 안 찍잖아요. 가로는 웹드라마나 웹시리즈. 세로라는 포맷이 주는 새로움이나 혹은…. 가로를 주로 보던 기성세대한테는 세로가 새로움이지만, 지금 초등학생들은 처음부터 세로로 봤기 때문에, 뉴제너레이션한테는 원래 이런 거야, 원래.
관련해서 조금 더 질문을 드리면… 사실 영화의 오랫동안 아이디얼한 이미지가 가로로 된 호라이즌이었잖아요. 지평선과 같은 이런 거였었는데. 지금은 이제 버티컬 스코프로 바뀌면서 사람을 담는 방식도 그렇고.
예전에는 니콜라스 레이 영화를 봐도 얼굴 두 개를 이렇게 극단에 놓던가 했었는데, 버티컬 스코프로 바뀌면 사람을 한 명밖에 이렇게 못 두잖아요.
〈아버지의 집밥〉에서도 옆으로 패닝을 하잖아요, 그러려면 고정 프레임이 있어야 되고.
이런 방식으로 이미지들이 변하고 있는데, 감독으로서 그 변화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겠다라고 작업하면서 느끼신 게 있는지?
이거는 대응이 아니라 적응이야. 대응이라는 단어는 너무 자기 주도형 단어고, 적응하는 거지. 왜냐하면 그 생태계 자체가, 버티컬 생태계랑 가로 와이드 생태계랑은 생태계가 다른 거야. 우리가 미술에서 그림을 그려도 풍경화는 다 가로야. 그런데 초상화나 인물화는 수백 년 전부터 세로였다고. 가로와 세로의 문제는 현대 디지털의 디바이스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 원래 인간이 어떤 시각적 표현을 할 때는… 뭐 의도한 건지, 아니면 그야말로 자연 발생적으로… 가로는 풍경화, 세로는 초상화. 이거는 천 년 전쯤. 그야말로 성화. 성화도 천 년 넘은 거지. 천 년 된 것도 있지.
그야말로 르네상스 이후에 인간이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 때 가로와 세로의 용도가 그때부터 이미… 지금 버티컬과 와이드의 형식은 500년 전부터 존재했다. 조선시대에도 초상화는 세로고 산수화는 가로예요. 〈몽유도원도〉는 가로고 윤두서 자화상은 세로예요. 그러니까 이 세로와 가로의 개념이 과거의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을 건너와, 최근에 와서 세로에 주목하게 된 시대가 왔다.
세로로 주목한다는 것은 뭐냐면, 철학적 개념으로 보면, 가로는 풍경이기도 하지만 사실 군중이라고. 군중을 묘사할 때 가로로 묘사하는 거예요. 집단사회, 농경사회나 산업사회까지는 집단사회지. 그런데 이 산업사회가 후기로 오면서 집단 공동체보다는 개인주의로 많이 전환돼서, 이제는 뭐 완전히 개인주의 압승한 거 아니야. 밥도 같이 안 먹으니까 집안에서. 심지어 각자 배달시켜서 먹는 집안이야.
서울시는 1인 가구가 40%라며. 가족끼리 밥도 같이 안 먹는 인구가 40%야. 아버지 집 따로 살고, 아들 집 따로 살고, 모두가 각자 다 따로 살아. 이미 개인주의화 돼 있기 때문에 이 세로의 플랫폼의 생태계에는 개인주의의 반영이다.
누가 요새 거실에서 온 가족이 TV를 봐. 더러 있긴 하겠지. 아주 레거시한 패밀리는 더러 온 가족이 모여서 거실에서 드라마 보는 가족이 있겠지만, 몇 퍼센트일까? 각자 자기 방에서 핸드폰 보든가, 아이패드 보든가, 자기 노트북으로.
이게 비교가 안 되잖아. 생태계의 변화는 인간 문명의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버티컬 포맷은 인간 생태계의 반영이고, 기술문명의 전환은 생태계를 따라오는 거지. 기술이 문명을 선도하는 시대에 왔기 때문에 생태계가 기술을 따라가는 것일 수도 있겠지.
어쨌든 결론은 개인주의가 더 심화될수록 버티컬 포맷은 점점 더 자연스럽게 일반화 될 것이다.
연장된 질문이기도 한데, 사실 버티컬 스코프로 찍은 작품들을 볼 때 좀 난감한 거는, 인물을 한 번에 담을 수가 없으니까… 독백이 굉장히 많고, 그리고 인물을 성적으로 붙여놓는 작품들이 굉장히 많고요. 이거는 사실 형식 때문에 이런 것 같거든요.
걔네들이 이제 러브신을 찍는다거나 이런 거는 안 하더라도 선정적인 작품을 만드는데, 그게 단순히 산업적인 논리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잡아야지 화각에 다 잡히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걔네들이 붙어있으면서 이야기를 하진 않아요. 그러면 이제 콘텐츠에서 대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콘텐츠에서 어떻게 서로 인물 간을 연결을 해야 갈등을 만들고, 또 갈등이 있어야 드라마를 만들 수가 있잖아요. 버티컬 스코프에서는 인물들을 어떻게 연결을 해야 할 것인지…
버티컬 스코프라고 말하면, 그 포맷으로 건너가면서 내러티브 전달 방식이 가장 대별되는 것이 소위 아까 얘기한 내레이션. 가로, 와이드한 쪽, 가로 포맷 안에서는 인물의 관계를 동시적으로 보여줄 수가 있는데, 세로로 하다 보니까 둘을 담기가 쉽지 않거든요.
하나하나를 담게 되니까 둘의 관계를 동시에 보여줄 수 없으니까, 상대를 생각하는 심리적 표현을 독백을 통해서 빠르게 전달하는 형식이 지금 아주 일반화돼버렸어요.
만약에 극장에서 그래버리면, ‘뭐 하는 거야, 그 상황을 보여 달라고. 네가 말로 하지 말라고’ 요구를 하게 되잖아.
이 버티컬에서는 빠른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라도 굳이 그 상황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말 몇 마디로, 단어 몇 마디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거지.
근데 이게 점점 더 개인화, 개인주의를 가속화시키는 어떤 작용을 한다. 개인주의를 가속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게 결국에 인류 문명이… 그러니까 어떤 형태든 진화를 하는데, 그 진화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극단적 개인화로 갈 수밖에 없다.
극단적 개인화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까요?
글쎄, 이거는 문명의 변화가 극단적 개인화로 오지 않았나? 지난 수천 년 동안. 이건 관성이라고 보는데. 원래부터 개인을 추구했다, 인간은. 그렇지, 모든 존재가.
관성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건너오면서…농경사회라는 게 공동체의 의식이 강할 때야. 씨족끼리, 부족끼리, 심지어 같은 씨족이 같은 마을을 형성하는 공동체의 결속력이 가장 강한 게 농경사회였다.
산업사회에 오면서 도시로 오면서, 서로 간에 배경을 모르고 만났기 때문에 생계를 목적으로 집단화되기 시작한다고. 노동자, 자본가들 다 계급화 되는 거지. 그러다가 이제 개인화되는 것은 디지털 문명의 발달 자체도 사실은 개인화를 가속화시키는 문명의 변화인데.
그 동력은 애초에 존재는… 개인의 존재 증명을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진화해왔다는 거야. 과거에는 집단의 가치에 개인이 종사하는 것이 우선했다면, 현재로 올수록 미래로 갈수록 집단의 가치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문명으로 지난 수천 년을 왔는데, 이게 거꾸로 갈 일이 있겠냐고.
그걸 뒤로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어, 수천 년 동안. 그 인간 본성의 본연의 욕망의 관성이 결국에는 디지털까지 만들어낸 거 아니냐.

그러면 원래 다른 쪽의 질문이었긴 했는데…숏폼이라는 매체 자체가 사실 만화가 구축해온 에피소드 중심의 내러티브를 체계화하고, 버티컬로 된 UI가 합쳐진 그런 거였었는데…드라마를 만들 때도 그런 거를 신경을 써서 캐릭터들 간에 주제의식을 분명하게 부여하고, 배우들에게 디렉션을 주고, 또 시나리오를 그렇게 디자인한 부분들이 있나요?
내가 찍는 영화의 대부분은 나만의 내러티브를 반복적으로 적용시키는데, 모든 인물이 주인공을 향해서 종사하진 않아. 〈라디오 스타〉도 마찬가지로 거기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안성기, 박중훈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물론 그들은 그들대로 자기만의 독립적인 요소가 있지만, 그 옆에 있는 노브레인이 됐든 국장이 됐든 누가 됐든 각자의 어떤 자기 주체적 존재성, 이런 것들이 항상 내용 안에 많이 내포돼 있다.
그런데 가로이기 때문에 주연을 향해서 모든 것이 종사하는 것처럼 형성될 수밖에 없는데, 이게 숏폼으로 보다 보니까 인물의 배치나 관계를 맺어가고 연장해가는 방식이 다 자기 주체적으로 표현되게 되더라고요. 신기하더라고요.
따로 디렉션을 한 것은 아니지만 세로이기 때문에. 어차피 투 샷이 안 들어가니까. 에로틱한 영화에 둘이 대사 없이 투 샷으로 밀착하는 것 말고, 일반적인 가족끼리 밀착할 일이 뭐가 있어. 얼굴을 맞대야 할 일이 뭐가 있겠냐고. 서로 마주보고 말하든가, 그것밖에 뭐가 있어.
그러니까 나는 계속 다 1 대 1 대 1 대 1이야. 1 대 다(多)가 아니라, 1 대 1 대 1 대 1이라고. 진짜 ‘아나키’한 거지. 그렇지 않아? 각자의 존재가 서로에 종속되지 않는다, 이게 아나키한 거잖아.

작은 공동체로 작업공동체를 운영하신지가 10년 정도? 〈평양성〉 때 상업영화 은퇴하겠다고 말씀하시고서, 그 이후로는 조그마한 공동체로 운영을 하셨다고 알고 있거든요. 조그만 공동체를 꾸려나가면서 작업하는 기쁨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밀도. 디테일의 차이. 숫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어떤 집중의 에너지가 크기는 하지만 섬세하지 못해요. 그런데 사이즈가 작으면 집중의 에너지만 작은 대신 섬세하지. 그러니까 연기도 굉장히 몰입하는 밀도가 섬세해지고.
규모가 크면 아무래도 섬세하기가 불리하지. 그런데 〈동주〉나 〈아버지의 집밥〉 같은 경우는 규모가 작으니까. 〈동주〉도 굉장히 섬세하잖아요. 이것(〈아버지의 집밥〉)도 보면 2시간 36분이야. 러닝타임이. 그것도 숏폼이야. 스크린에 3분의 1밖에 없어. 근데 다들 보고 나서 안 지루하다는 거야. 혹시 지루했어?
사실 지루하다고 느끼는 거는, 제가 이야기를 이해하는 속도와 영화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속도가 안 맞으면 지루하겠다고 느끼는데, 그건 이야기를 얼마나 빨리 흘려보내느냐와는 다른 얘기죠.
근데 〈아버지의 집밥〉 같은 경우에 그 이야기의 지표랑 표지판이 명확했어요. 그래서 다음에는 이 장면이 나오겠다고 기대를 하면 그 장면이 나오고. 저는 여전히 그런 영화 되게 좋아하고, 만들기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쉬운 영화를 만드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데.
굉장히 고전적이구나.
숏폼 제작이라는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그 작업장을 볼 때, 이 조그마한 공동체가 그런 지속적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의구심이 저는 많아요.
그거는 당연히 해체될 거야. 왜 해체되냐면, 뉴 테크놀로지에 대치되는 순간 해체돼.
이게 뭐냐면 숏폼이 결국은 AI의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과정 안에서, 지금 하고 있는 숏폼의 제작 환경, 특히 콤팩트한 〈아버지의 집밥〉에 이러한 제작 시스템은 소멸될 거야. 없어질 거라고.
과도기에서 영화라는 일류가 어쨌든, 지난 100년 동안 영화를 만들어 오던 그 메커니즘이 버티컬로 새로운 포맷에 적용되면서 가동된 그 콤팩트한 시스템은 그냥 잠깐 건너가는 브리지처럼 소멸될 거라고. 왜? 결국은 이 상품의 지향점은 저비용 저효율이라고.
박리다매?
그렇지. 박리다매. 이 생태계 자체가. 그러니까 비용을 줄이는 데 있어서는 모든 가치가 무시되는 현장이라고. 비용을 줄인다. 이게 자본주의의 아주 극단적 현상이 적용되는 거라고.
공동체 작업에 대해서 말씀드렸던 게, 사실 웹툰 쪽도 공장식으로 돌아가는 그런 블록버스터 웹툰이 있는가 하면 소규모 스튜디오로 작업되는 작품들도 많거든요.
다만 웹툰이 만화 매체라는 특성 때문에 기획부터 연재까지 그 팀이 한 10년 넘게 가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아요.
오 좋네.
그게 이제 좋기만 한 건지는…
소공동체가 10년 가는 게 좋은 거 아닌가?
그러니까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죠. 왜냐하면 서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헤어질 수가 없으니까요.[2]
인터뷰어 주석[2]
대본소 시절부터 라이브 연재를 했던 작가들이라면 알 수도 있지만, 도제식 작업의 병폐는 만화·웹툰 산업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문제는 도제식으로 돌아가는 작업장이 아직 있다는 것이고, 레드아이스 스튜디오 수퍼코믹스 등 공장식 대규모 작업장의 등장은 도제식 작업장의 병폐를 어느 정도 해소해주기도 했다. 다만, 공장식 대규모 작업장이라고 그림만 그릴 수 있는 곳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공장식 작업장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오늘날 웹툰 산업의 문제점 중 하나인 ‘웹툰 공장’ 형태의 노동 착취가 형성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기도 했다. 일례로 레드아이스 스튜디오를 설립한 장성락 대표는 살인적인 작업량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우리 아티스트의 운명 아니야? 공장형이 이상이라는 거야?
장단점이 있는 거죠.
공장형은 테크니션을 기르는 것이고, 소규모 창작자들은 아티스트를 기르는 거야. 아티스트와 테크니션은 우열을 나누는 게 아니라 서로 경쟁관계 안에서 새로운 문을 여는 방식일 뿐인 거라고.
공장형은 기술자를 계속 양성시키는 거야. 시나리오를 기술적으로 써야 하고 그림도 그렇고. 작화나 극화나 어쨌든 공장형으로 계속 트렌드를 맞춰주는 거 아니야. 자극적인 거, 복수가 됐든 하는 거야.
그리고 또 반대쪽에서는 자기들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좀 더 큰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10년을 왔으나 비전은 점점 멀어지고, 그 비전을 버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렸고.
테크니션으로 가기에는 경쟁력이 떨어지고… 그런 존재를 얘기하는 거야. 그들이 아티스트라고. 얼터너티브.
이거를 마지막 질문으로 잡기는 했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닿아가지고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가 있었는데, 사실 제가 이 기회를 통해서 묻고자 했던 거는… 감독님 하면 아직까지는 제가 알기로는, 크리에이터들 중에서 사실 어른이라고 할 만한 세대가 거의 없어요. 그래서 굉장히 희귀한 포지션을 잡고 있는데, (어른으로서) 어떻게 느끼세요?
그런 생각 없어. 난 어른으로 남겠다는 어른의 자의식이 없어. 어른이라는 자의식 자체가 없어. 어른에 대한 구분이 없어. 예나 지금이나. 개별적 존재일 뿐이지.
신분이나 계급으로 나누질 못해. 애, 어른. 어른이라는 것 자체가 신분이고 계급이잖아. 그 정의가 없는 사람이야.

그래도 이번에 후배들의 앞날을 책임지기 위해서…
그건 뭐냐. 동료. 후배라는 것은 후배로 지칭되지만 사실은 동료야. 동료가 다시 말하면 동지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동료이면서 동지인 거야. 동지라는 것은 뜻을 같이 하는 거거든. 나이에 상관은 없는 거야. 뜻이 같은 게 동지야. 같은 뜻으로 모인 사람끼리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 동지들이 모여 있는 게 동료고. 그 동료의 생태계가 어쨌든 우리는 영화 찍는 집단이었고.
영화라는 것은 그저 스토리텔링 인더스트리의 한 파트지. 나는 영화 지상주의자가 아니야. 영화도 이야기 산업의 한 파트고, 웹툰도 이야기 산업의 한 파트고, 숏폼도 마찬가지고, 시리즈도 마찬가지고, 소설도 마찬가지고 다 이야기 산업의 한 파트라고.
그러한 하나의 기능인으로서 창작자지. 창작자로서의 하나의 존재일 뿐이지.
애, 어른, 후배들을 위한 비전…이런 거 없어. 관심이 없어. 의지도 없고. 그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 것을 표상화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오만하고 안 좋은 거다.
그냥 나의 생존 입장이 중요하다.
생존이야, 생존.
그러면 창작자로서 살아남는 것이 어떤 건지 개인적인 의견을 드릴 수 있을까요?
창작자로서 살아남는 것…
(잠시 침묵)
"공동창작은 견제와 감시, 협력과 보완, 그리고 무한한 신뢰를 쌓는 길이다."
저걸 찍어, 저걸 찍어라. 시나리오만이 살길이다. 처절히 공부해라.

직접 쓰신 거예요?
도토리가 내 별명이야. 대가리가 도토리같이 생겼어. 우리 애들 다 도토리라고 불러.
(웃음)
시나리오만이 살길이다. 처절히 공부해라. 처절히 공부하는 거지. 다른 길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