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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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웹툰작가의 이중생활, 당분간 계속 도전해보고 싶어요.

올해 7회째를 맞은 ‘네이버 웹툰 최강자전’이 얼마 전 막을 내렸습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네이버 웹툰이 공동주최하는 이 대회는 웹툰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일종의 등용문 역할을 하는 대회입니다. 입상하면 정식 연재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2018-11-21 홍지민



올해 7회째를 맞은 ‘네이버 웹툰 최강자전’이 얼마 전 막을 내렸습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네이버 웹툰이 공동주최하는 이 대회는 웹툰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일종의 등용문 역할을 하는 대회입니다. 입상하면 정식 연재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반드시 입상하지 않더라도 픽업되어 웹툰 매체로부터 정식 연재 제안을 받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2015년 대회 8강 작품으로 최근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한 ‘내 ID는 강남미인’이 대표적입니다.

올해는 모두 107개 작품이 예선에 출품되어 오로지 독자투표로 선택받은 작품들이 32강-16강-8강-결승 대결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두 달 간의 토너먼트 끝에 오리 작가의 ‘칼가는 소녀’가 196,355표를 얻어 박서진 작가의 ‘달리는 노루발처럼’(153,976표)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칼가는 소녀’는 어려서부터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관심 대상이 됐던 여고생 채사랑과 그녀를 곁에서 지켜주게 된 검은 머리 소녀 구은조의 미묘한 관계를 섬세한 심리묘사와 그림체로 그려내 독자들의 지지를 받은 작품입니다.
 
원래 대학생이 참가 대상이던 최강자전은 지난해부터 일반인으로까지 문호를 넓혔습니다. 마침 올해 우승을 차지한 오리 작가는 직장인입니다. 고등학교 교단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오리 작가를 만나 최강자전의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먼저 최강자전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A. 최강자전에 참여한 두 달이, 그 순간이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우승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거든요.


Q. 이번이 첫 도전이었나요?
A.  네, 첫 도전이라 더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 최강자전이라는 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였어요. 지난해에도 준비했었지만 공모 날짜에 맞추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간신히 턱걸이한 것 같아요.

Q.  예선 때부터 꾸준히 최다 득표를 했습니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요.
A. 원래 ‘한낮의 괴담이설’이라는 작품이 더 많은 지지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 작품이 32강에서 기권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말 기대도 못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원래 목표는 16강이었어요. 그런데 투표수가 많이 나와 적지 않게 놀랐죠. 댓글을 받아본 것도 처음이었어요. 악플도 많아서 당황하기도 했고요. 왜 이 작품이 1위인지 모르겠다는 글도 많았죠.


 


 


Q.  경쟁 작품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꼽아본다면.
A.  32강 토너먼트에서 만났던 모든 작품이 다 인상적이었습니다. ‘달리는 노루발처럼’, ‘겟 백’ 등 예선 각조에서 유심히 봤던 작품들은 모두 올라왔어요. 100% 투표로 결정되다 보니 아쉽게 떨어진 작품이 한 두 개가 아니에요. 급식 만화라고 하는데 저는 학원물, 10대 풍이어서 장르적인 면에서 버블, 버프도 받았다고 생각해요. 공포물이나 추리물은 그런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Q. 언제가 가장 고비였나요.
A. 2화 때가 가장 고비였던 것 같아요. 보면 알겠지만 작품 퀄리티가 떨어져요. 집을 이사하던 시기였는데, 24시간 만에 그렸어요. 끝내 마감을 못하는 줄 알았지요.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올라가더라고요. 직장에 다니면서 그리다 보니 힘들었어요. 돌이켜보면 매화가 고비였던 것 같습니다.


Q. 어떤 일을 하시는지요.
A.  교사입니다. 여고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어요. 7~8월 방학 때는 괜찮았는데 개학 이후에는 퇴근 이후에 작업을 해야 해서 시간이 빠듯했습니다.


Q. 미술 선생님이라면 대학 때 전공이 혹시?
A. 만화를 전공하긴 했는데 무늬만 전공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에 가서 만화가 전공이 되자마자 정말 거짓말처럼 관심이 뚝 끊어졌어요. 학교도 열심히 다니지 않았고요. 한때는 장난감으로 넘어가서 베어브릭 같은 귀여운 장난감을 모으기도 하고, 해피밀을 줄서서 사기도 했지요. 이후에는 애니메이션에 빠져서 요일별로 골라 보던 시기도 있었고, 지금은 아니지만 모바일 게임에 푹 빠졌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Q. 사회에 진출해 뒤늦게 마음을 바꾼 계기는 무엇일까요.
A.  2년 쯤 다시 만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지금 현역 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대학 친구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덕택이 아니었나 싶어요. 고3 담임을 맡아 진로 상담을 하게 됐는데-만화 쪽으로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었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저 또한 어릴 때 품었던 반짝반짝 빛나던 꿈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무엇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니, 아, 나도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것이 만화였고요.


 

 


 


Q. 제자들도 선생님이 최강자전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A. 올해는 1학년 반에 들어가는데 처음에는 비밀로 했다가 결승 때 살짝 공개하며 “우리들만의 비밀이야”라고 하니까 비밀을 잘 지켜줬지요. 아이들이 자기 일처럼 축하해줘서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일찌감치 주변에 알려야 토너먼트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는데 투표수가 만 명 단위를 넘어가다 보니 알린다는 게 큰 의미가 없겠더라고요. 친구, 가족, 친인척 등을 동원해봐야 100표가 안돼요.


Q. 요즘 청소년들은 웹툰을 즐기고, 웹툰 작가 또한 선호 직업으로 꼽힙니다. 제자들이 정말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A. 정말 많이 좋아해줬어요. 그 뒤로 아이들이 조금 더 말을 잘 듣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하하. 수업 시간에 제가 그림을 직접 그려서 보여주기 보다는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주문을 하고 그려보게 하는 쪽인데 제 웹툰 그림을 보고 와서 그런 지 잘 따르더라고요.


Q. 동료 선생님들도 알고 있으신가요?
A. 몇몇 분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웹툰의 세계를 자세히는 모르시니까. 그냥 그림 그리나 보다, 열심히 해라, 애들이 좋아하는 거 하네요, 이런 반응이 많으시죠.


Q. 정식으로 처음 그려본 솜씨가 아닌 것 같습니다. 습작을 많이 했나요?
A. 그렇지는 않습니다. 작년에 도전을 준비했을 때가 제대로 처음 해본 거예요. 이전에는 일러스트처럼 한 장씩 그려본 적은 있어도, 이야기를 길게 그려 본 적은 없었어요. 작년에 처음 이야기를 만들어서 주변 반응을 살피니 혹평이 많았어요. ‘재미없다’, ‘그림에 성의가 없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등등. 그때도 출퇴근을 하며 그리다 보니 무척 힘이 들었는데 몇 화 그리고는 접었죠. 그래도 그렇게 작업을 해보니 그림도 그림이지만 스토리텔링이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Q.  ‘칼가는 소녀’는 소재가 신선하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우승의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A. 안 읽을 줄 알았는데 댓글을 다 읽게 되더라고요. 아마 그게 유일한 칭찬이었던 것 같아요. ‘칼가는 소녀’는 ‘칼을 갈다’라는 문장에서부터 출발했어요. ‘마음속으로 칼을 간다’는 그런 의미를 가진 관용구 있잖아요. 그러다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검은 머리 여자아이 은조의 이야기를 떠올렸고, 사랑이 캐릭터를 추가하는 등 틈틈이 이야기를 다듬어 주변에 들려줬더니 작년보다 반응이 좋았지요.


 


 


Q. 사랑이와 은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A.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는 거창한 생각은 없었지만 첫 번째로는 사춘기의 ‘성장통’ 같은 느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사랑을 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과하게 상처와 미움을 주기도 하는 양날의 검 같은 대중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죠. 대중의 관심이 상처가 되지만, 한편으론 그런 관심이 필요한 주인공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Q. 대회 방식이 토너먼트이고 오로지 독자투표를 통해 승자를 정해지는 방식이라 매회 이야기를 짜는 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A. 1화 때는 혼자 고민했는데 2, 3화에서는 남동생이 조언을 해줬습니다. 이쪽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워낙 웹툰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동생인데 작품 분위기와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됐지요.


Q. 작가인 친구 분은 어떤 조언을 해주었을까요?
A. 이야기를 짜는 것도 문제지만 그림으로 풀어내는 게 또 어렵잖아요. 그런 면에서 조언을 많이 받았죠. 특히 제가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 툴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는데 친구의 이런 저런 팁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고맙다고 밥을 사기는 했습니다. 하하하.


Q. 본인 스스로도 마음에 품고 있는 칼이 있나요.
A. 그렇게까지 갈고 있는 것은 없는 것 같고요, 사실 최강자전에 나가면 순위권에 들지 못하더라도 잘만하면 웹툰 담당자에게 픽업되거나 도전 만화 등에 작품을 올릴 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전하게 된 거에요. 그랬다가 예상치 못하게 우승을 하게 됐는데, 그런 면에서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이 큽니다. 부담이 되기도 하네요.


 


 


Q. 예선부터 결승까지 모두 6화를 그렸습니다. 전체 이야기 중 어느 정도 인가요?
A. 초입이라고 보면 됩니다. 원래는 은조와 사랑, 두 주인공이 서로 부딪히며 친해지는 과정을 길게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보다는 우선 사랑이 캐릭터부터 먼저 보여주는 게 좋겠다는 남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사랑이 이야기를 먼저 가져왔어요. 이제 은조가 왜 사랑이를 도와주는지, 은조는 도대체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 캐릭터인지, 은조에 대한 이야기를 잘 풀어야 하는 숙제가 남았지요.

Q. 선생님이라 작품에서 교실 풍경 묘사가 생생한 것 같습니다.
A. 제가 철이 좀 없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저를 좋아해주는 편이에요. 친구처럼 지내고 있죠. 학교에선 개인 시간이 없을 정도에요. 아이들을 지켜보다 보면 다들 각자 입장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고민한다는 것을 느껴요. 아이들이 사용하는 신조어도 거의 다 아는 편이에요. 어느 날 선생님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데, 한 분이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빼 때린다’라는 말을 해서 놀랐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곡을 찔렀다는 표현을 요즘은 그렇게 말한다며 통역사 역할을 하기도 했지요.


Q. 최강자전에 입상하면 정식 연재의 특전이 있습니다. 언제쯤 ‘칼가는 소녀’를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을까요. 정식 연재는 장기전이라 단기전인 최강자전과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A.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리 10화 이상 세이브 원고를 그려놔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직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어요. 제 목표 시점은 내년 3~4월인데 벌써 위험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최대한 빨리 시작하고 싶지만 제가 의지가 강한 타입이 아니어서…. 어서 빨리 방학이 왔으면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살면서 정말 독하게 그림을 그려본 것은 최강자전이 처음이에요. 태어나서 카페인 음료도 처음 마셔봤을 정도로 대회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답답하기도 했어요. 원하는 만큼 그림이 안 그려져서요. 그러다가도 다양한 댓글에 일희일비하게 되더라고요. 현재는 그림 작업보다는 스토리를 다듬고 있고요.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듬어 다시 시작할지 6화 뒤부터 이어갈지 고민도 하고 있고요.



 

Q. 필명이 재미있습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A. 이렇게 좋은 결과가 있을 줄 모르고 그냥 제 별명 중에서 가볍게 정했어요. 예전에는 지금보다 목소리 톤이 더 특이 했는데 오리 목소리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주변에서는 필명을 바꿔도 된다고 하기는 하는데 편안한 이름이라 고민을 조금 하고 있지요.


Q. 학창 시절에는 어떤 작품을 즐겨 봤나요.
A. 장르를 가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특히 소년물과 스포츠물은 다 본 것 같아요. 가장 기억이 오래된 작품은 사촌 오빠 네 놀러가서 보게 됐던 ‘드래곤 볼’이에요. 아디치 미츠루의 ‘H2’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제 그림이 순정체이긴 한데, 조금 더 선을 딱딱하게 쓰면 그래서 소년물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댓글에 제 그림체에 대한 지적도 있었는데 중국 작가와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림 자체는 다른 것 같은 데 파스텔톤 색감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카드캡터 체리’를 정말 좋아했는데 지금 제 그림체에 영향을 줬다면 ‘카드캡터 체리’가 아닐까 합니다. 정말 많이 따라 그렸거든요.

Q.  전업 작가를 염두에 두고 있으신가요?
A. 전업 생각은 아직 없어요. 주변에서는 불가능하다고 걱정하지만 ‘투잡’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매주 연재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그냥 일상을 포기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두 가지 일을 할 때의 순기능도 있는 것 같아요. 최강자전 때 동시에 해보니까 느끼게 됐는데 평소 일만 했을 때는 이따금 일하기가 싫었는데 웹툰을 그리다가 출근하면 오히려 일이 덜 힘들더라고요. 일종의 환기가 되는 것 같아요.


 


 

Q.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또 언젠가 그려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A. 만약 제가 ‘칼가는 소녀’를 무사히 완결 짓게 된다면 작년에 처음 만들어 보려 했던 이야기를 다시 살려서 그려보고 싶어요. ‘칼가는 소녀’는 제가 처음으로 초능력이나 판타지 요소 없이 짜본 일상물이에요. 작년에 하려고 했던 작품은 신, 또 신과 이웃하게 된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였는데 그 작품을 본 언니의 말이 지금은 많이 생각납니다. 첫마디가 ‘안 궁금해’였거든요. 궁금하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궁금한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찾아보게 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A. 이렇게 좋은 결과가 있을 줄 모르고 그냥 제 별명 중에서 가볍게 정했어요. 예전에는 지금보다 목소리 톤이 더 특이 했는데 오리 목소리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주변에서는 필명을 바꿔도 된다고 하기는 하는데 편안한 이름이라 고민을 조금 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