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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버지에게 치매가 왔다. <우두커니> 심우도 작가 인터뷰

2020 부천만화대상 수상작 치매걸린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을 담백하게 전달하는 공감과 성장 이야기

2020-09-22 최선아

어느날 아버지에게 치매가 왔다. <우두커니> 심우도 작가 인터뷰


2020 부천만화대상 수상작 
치매걸린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을 담백하게 전달하는 공감과 성장 이야기



Q. 안녕하세요, 작가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우두커니>를 그린 심우도입니다. 심우도는 ‘심흥아와 우영민이 그린 그림’이라는 뜻을 담고 있고, 저희는 부부입니다. 심흥아는 주로 이야기를 만들고, 우영민은 주로 그림을 그려요.

Q. <우두커니>를 통해 부천만화대상을 받으셨습니다. 수상 결과를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작업했던 시간들이 떠올랐어요.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심우도로 활동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가 데뷔한 지는 13년 정도 됐거든요. <우두커니>로 받은 상이지만, 그동안 꾸준히 작업해 온 시간들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Q. ‘심우도’는 심흥아와 우영민이 그린 그림이라는 팀명입니다. 불교용어 ‘심우도’와도 발음이 같은데요, 이름을 지을 때 불교용어를 생각하고 만드셨나요?
A. 네. 제가 마음공부에 관심이 많아서 알고 있었어요. 깨달음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그림의 내용도 좋았고, 마침 저희 성이 ‘심’과 ‘우’여서, ‘심우도’로 정했습니다.

Q. ‘심흥아, 우영민 저’가 아니라 ‘심우도’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제가 주로 이야기를 만들고, 남편이 주로 그림을 그리긴 하지만, 이야기와 그림 작업에 서로가 영향을 주고 있어요. 이야기를 만들 때 남편이 아이디어를 주기도 하고, 그림 작업에 제가 관여하기도 하거든요.


Q. 부부 작가로 활동 중이신데 작품을 하시면서 두 분의 의견이 다를 때가 있으셨는지, 그럴 땐 어떻게 조율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지금까지는 의견이 크게 다른 적은 없었어요. 서로가 의견을 내면, 잘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제가 만화 작업의 경험이 많다 보니, 남편이 제 의견을 많이 수용하고 있어요. 저희의 취향이나 안목이 비슷해서 비교적 갈등이 적은 것 같아요.

Q. 작품 <우두커니>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루기 참 어려운 소재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작품에 쓸 일화를 추려내고 각색하면서 가장 중점에 두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직접 겪은 일을 만화로 담아내는 방식이 제가 늘 해오던 작업이에요. 그래서 에피소드를 추려내고 각색하는 일에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경험 자체가 힘든 시간이어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 당시의 분위기와 감정들을 반복해서 마주해야 했거든요. 단순히 경험을 나열하는 데서 끝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고, 제가 느꼈던 것 중에서 나눌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메시지를 담아보려고 노력했어요.

Q. 제목을 <우두커니>로 지은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목을 지을 때 특별한 일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아버지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우두커니’라는 단어가 그냥 떠올랐어요. 평소에 아버지가 창가에 우두커니 서 계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늘 쓸쓸했거든요. 백발노인이 된 아버지의 뒷모습이 슬퍼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충분히 마음을 나누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우두커니’라는 말에 담겨있는 느낌이 만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됐어요.


Q. 거의 모노톤에 가까운 채색을 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매화 주요 컬러는 어떻게 정하셨나요?
A.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단순하게 그림 컨셉을 잡았어요. 필요한 선만 넣고, 색도 한 톤만 넣었고요. 흑백으로 할까도 생각했는데, 과거 장면을 흑백으로 넣어 현재와 구분 짓기 위해서 색을 입혔어요. 매화 달라지는 분위기를 표현하려고 주요 컬러도 바꾸었는데요. 승아와 영우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차가울 땐 푸른 계열의 색을 쓰고, 좀 따뜻할 땐 붉은 계열의 색을 썼어요.

Q. 많은 분이 담담한 이야기 방식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는 평을 남겨주셨습니다. 담담하고 담백한 표현은 <우두커니>뿐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두 분 작가님의 특징인 거 같습니다.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풀어내는 노하우는 무엇인가요?
A. 특별한 노하우가 있지는 않은데, 쉽게 풀어내려고 하다 보니 담담하게 표현되는 것 같아요. 제가 콘티를 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잘 읽히도록 하는 것이에요. 막히지 않고 술술 읽히게 하는 걸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잘 읽히려면 복잡하면 안 되거든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다 보면, 이야기가 담백해지는 것 같아요.

Q. ‘모두들 늙어가는 부모님과 그렇게 살아가나 보다’ 만화 속 여러 문장이 있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이 문장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이 문장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가장 잘 쓴 문장이 있으신가요?
A. 말씀하신 문장은 실제로 검진 결과 들으러 가던 버스 안에서 생각했던 문구예요. 뒷자리에 앉은 어른들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했고, 수첩에 적어 놨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문장은, 추석 연휴에 아버지와 산책하러 갔다가 잠시 평온해진 아버지의 얼굴을 본 승아의 내레이션이에요. ‘나는 눈을 떼지 못하고, 아버지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Q. 작품 속에서 승아는 마지막 장면으로 아버지에게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승아가 생각한 마지막 장면과 작가님이 그린 마지막 장면이 조금 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실제로 처음 <우두커니>를 기획했을 때만 해도 승아가 생각한 마지막 장면이 <우두커니>의 마지막 장면이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버지의 병세가 급격히 나빠지셨고, 실제 연재를 시작했을 땐 요양시설에 가신 뒤였어요. 연재 시작하고 한 달 뒤에 돌아가셨고요. 상황이 예측할 수 없이 많이 변했습니다.


Q. 연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이 있으시다면?
A. 아버지를 요양 시설에 모실 때와 돌아가셨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돌아가셨을 때는 연재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됐을 때였는데, 임신 8개월쯤 이어서 몸이 많이 무거웠거든요. 아버지와의 이별로 마음도 추슬러야 했고, 작업도 계속해야 했기 때문에 힘든 시간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정신으로 연재를 했는지 모르겠네요.

Q. 작품 속에서 이 작품을 시작한 이유로 ‘속에 담아두면 썩어서 안돼’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웹툰을 그리고 나서 작가님 마음에는 어떤 변화가 있으셨나요?
A. 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굉장히 컸는데, 작업을 마치고 나니 스스로에게 조금 위로가 됐어요. 잘 하진 못했지만 나름 애를 많이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한편으론 잘못한 부분들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Q. 선우가 자라 할아버지에 대해 질문한다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A. 저는 아버지와 한집에 살았던 시간이 굉장히 길어요. 어릴 땐 아버지와의 추억도 많았고요. 무뚝뚝한 분이셨지만, 저한테만큼은 한없이 따뜻한 분이셨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런데 할아버지한테 잘 못 해 드린 게 많이 후회된다고, 할아버지한테 받은 사랑 선우한테 다 주겠다고 말하고 싶네요.

Q. 웹툰을 읽으면서 많은 분이 댓글로 공감 간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댓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다면?
A. 각자의 사연을 올려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독자님들의 글 보면서 저희도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많은 댓글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만화를 보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부모님을 만나러 갔다는 이야기, 부모님과 싸웠는데 먼저 가서 화해했다는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아요. <우두커니>를 통해 독자님들의 실제 삶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작가로서 참 보람된 일이에요.

Q.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많은 공감과 위안을 얻으신 독자분들께 읽어볼 만한 다른 책을 추천해주세요.
A. 세상에는 좋은 책이 많은데, 그중에 만화책 두 편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다니구치지로의 <열네 살>과 소복이 작가의 <소년의 마음>입니다. <열네 살>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이 이야기가 아름다운 만화예요. 여기서도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제가 감동받았던 작품입니다. <소년의 마음>은 어린아이가 바라본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색연필로 그려진 그림도 아름답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읽기 좋은 따뜻한 그림책입니다.

Q. <우두커니> 첫 단행본을 펀딩을 통해 만드셨습니다. 단행본 제작 과정에서 어떤 점이 힘들고 어떤 점이 즐겨우셨을까요?
A. 남편 우영민 작가가 출판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 독립출판을 결심하게 됐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저희 생각대로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반면에 생각했던 것보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도 꽤 있었어요. 돌아보면 좀 힘들긴 했지만, 펀딩 했던 것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고, 우리가 직접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Q. 부천만화대상 수상을 기념해 <우두커니>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작년에 나온 책과 올해 나온 책의 표지가 다른데요, 표지는 어떻게 선정하셨나요?
A. 초판은 펀딩을 통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제작비 부담이 적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저희 욕심껏 다 담아서 양장본에 하드 커버로 제작했죠. 그러다 보니 책값이 좀 비싸졌어요. 책값을 2만원 아래로 내리려고 개정판은 제본과 표지를 바꿔 제작비를 낮췄습니다. 초판 표지 디자인은 무게감 있는 양장본에는 어울렸지만, 무선제본으로 바꾼 개정판에는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책의 느낌과 맞게 밝은 색감과 시원한 구성으로 다시 디자인하게 됐습니다.

Q. 언젠가 이별할 우리 모두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A. 매일 매 순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함께 있다면 따뜻한 눈빛을 아끼지 말고, 멀리 있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자주 나누면 좋겠습니다.

Q. 이 인터뷰를 읽을 독자분들께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우두커니>를 사랑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독자님들의 관심과 응원이 큰 힘이 되어 <우두커니>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고, 여러분들이 깊이 공감해 주신 덕분에 이렇게 큰 상도 받게 되었습니다. 보내주신 사랑에 힘입어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만화 그려나가겠습니다. 코로나로 많은 분들이 힘든 시간 보내고 계신데요. 부디 건강하게 잘 견뎌내시기를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