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보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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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작가와 에이전시, 플랫폼 행동강령

웹툰 보는 변호사 – 만화를 만드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알아야 할 법 이야기 6화

2024-08-11 서아람

표절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작가와 에이전시, 플랫폼 행동강령

  저번 칼럼에서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표절인지 그 의미와 범위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표절을 당했을 때’, 또는 표절했다고 문제 제기를 받았을 때대처할 수 있는 방법과 그 절차에 대해 알아보아야겠죠.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표절을 당하거나 표절하거나 표절했다고 오해받는 일은 창작자에게는 당연히 평생 없는 게 좋겠지만, 만일의 상황에서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해 명확히 알아둘 필요는 있습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법적으로 표절저작권 침해를 의미합니다. 저작권을 침해하는 방식에는 무단 복제, 무단 변형, 무단 배포 등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오늘은 그중에서도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자신이 창작한 것처럼 위장하고 공표하거나 판매하여 경제적 이익을 보는 행위인 표절에 한정하여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불법 업로드나 불법 캡쳐도 창작자에게 정당한 수익이 돌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또 창작자의 창작 의욕을 꺾어놓는 것이지만, 표절에 의한 저작권 침해만큼 창작자로 하여금 뒤목을 잡게 하는 것은 아마 없을 겁니다. 엄청난 산고를 겪어가며 힘들게 낳아 키운 내 자식을 누가 몰래 데려가 키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죠.

  대부분의 창작자, 아니, 사실 법률 전문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뭔가 피해를 입으면 생각하는 방향은 비슷합니다. 이거 고소할 수 있을까? 경찰서에 신고할까? 변호사를 찾아갈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에서 법률사무소를 검색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합니다. 나 또는 나의 가족, 지인이 법률적으로 뭔가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변호사 검색이 아닙니다. 바로 증거 수집입니다. 증거수집은 경찰관만 하는 게 아닙니다. 사건 당사자도 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사건 당사자가 가장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증거 수집에는 적절한 타이밍이 있습니다.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법률상담을 할 때 자주 쓰는 표현처럼,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증거들이 사라져 버리면, ‘김앤장에 있는 변호사가 몽땅 몰려온다고 해도죽은 사건을 살려내지 못합니다. 그때는 이미 땅을 치고 후회해도 늦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웹툰 작가나, 웹소설 작가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인터넷상에서 내 작품과 너무도 비슷한, 아무래도 내 작품을 표절한 것 같은 웹툰이나 웹소설을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뭘까요?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여러분은 그 작품을 당장 구매하셔야 합니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말입니다. 그 작품이 진짜 표절작이라면, 표절 작가는 표절로 의심된다는 지적을 받거나 제보가 이루어질 경우,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해당 부분을 얼른 수정하거나 삭제해 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한 마디로 증거인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소장아니면 대여의 개념으로 작품을 보게 되는 웹툰이나 웹소설 플랫폼에서는, 사전에 구매해두지 않았다면 수정이나 보완이 있기 전 작품의 상태를 일반 독자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화가 나고 피가 거꾸로 솟더라도 일단 내 돈을 지불하고 표절 의심작을 전체 구매하여 낱낱이 뜯어보고, 분석하고, 내 작품과의 유사점을 하나하나 찾아서 표시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분석할 때는 저번 칼럼에서 배운 두 가지를 명심하세요. ‘단순한 아이디어 차용은 표절이 아니다’, ‘장르적 클리셰의 활용은 표절이 아니다.’. , 내 작품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이야기 전개라든가, 세부적인 장면, 대사 등을 위주로 살펴보시면 됩니다.

  분석 결과 표절이라는 확신이 섰다면, 본격적인 조치에 들어가야겠죠. 그런데 제 경험상, 작가 중에서는 이런 사태가 생겼을 때 곧장 경찰서나 법원으로 달려가기보다는 가급적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미 창작에 쏟고 있는 시간과 창작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누군가와 싸울 만한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럴 때 선제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용증명이고, 하나는 플랫폼 신고입니다.

  내용증명, 상대방에게 당신이 현재 불법행위 및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저작권 침해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알리고, ‘당장 침해를 중단하라. 그러지 않으면 법률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따끔하게 경고하는 내용의 서면을 보내는 것입니다. 변호사를 통해서 보내는 게 보통이지만, 반드시 변호사 명의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논리와 주장을 적합한 단어로 표현할 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다면, 작가 본인 명의로 내용증명을 만들어서 보내도 효과는 동일합니다. 내용증명 자체에 법적인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나중에 본격적인 민사 또는 형사적 분쟁이 벌어졌을 때 내용증명이 일종의 증거가 되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이름도, 전화번호도, 주소도 모르는데 내용증명을 어떻게 보내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용증명을 보낸다는 것은 어떤 공식적인 절차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원칙은 상대방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등기우편으로 발송하는 것이지만, 그게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면 이메일이나 SNS로 보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플랫폼 신고는 문자 그대로 해당 작품이 연재되고 있는 플랫폼에 표절 의혹에 대해 알리고, 작품 연재나 공개를 중단해 줄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표절작이 출판사나 에이전시를 통해 플랫폼에 들어간 것이라면, 해당 회사에도 같은 요구를 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회사나 플랫폼 입장에서는 이런 종류의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매우 난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표절 의심작이라고 해서 곧바로 비공개 처리하거나 작품을 내려버리거나 계약을 해지했다가 혹시 나중에 표절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표절한 것으로 억울하게 의심받았던 작가를 플랫폼과 회사가 신중한 확인 절차도 없이 매장해 버린 꼴이 되기 때문에, 단순히 비난을 받는 수준을 넘어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문제작을 그냥 남겨두었다가는, “작가의 권리보호에 관심이 없다”, “돈밖에 모른다”, “비윤리적인 업체다”“라며 몰매를 맞기 십상이라, 그야말로 진퇴양난입니다.

  그래서 플랫폼에 표절 신고를 할 때는, 이런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하여 최대한 구체적인 근거 자료를 함께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실제로 상담한 사례 중에는, 상대방의 작품 ‘A’와 자신의 작품 ‘B’가 고작 10회차가 전개되는 동안 무려 50여군데가 넘게 유사하다는 것을 분석한 자료와 함께, ‘A를 구상하면서 B를 가져다 썼다는 내용이 담긴, 표절 작가가 다른 동료 작가와 나눈 DM 내용을 캡쳐해서 플랫폼에 보내 곧바로 연재를 중단시키는 데 성공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두 작품의 경우 주요 등장인물의 특이한 말투라든가, 의상과 체격에 대한 묘사를 하는 작가 특유의 어휘까지 그대로 본따서 표절임을 매우 명백히 알아볼 수 있는 사례에 해당했는데요. 이에 대한 상대방 작가의 반응은 어땠느냐고요? 반성하기는커녕, 자신과 일대일로 나눈 DM을 표절 피해 작가에게 제보한 동료 작가를 배신자라고 비난하면서 고소하겠다고 난리였다고 하네요.

  이렇게 신사적인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들이 그런 경우보다 항상 더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운데요. 다행히 본격적인 고소와 소송으로 가기 전 한 가지 단계가 더 마련되어 있습니다. 바로 조정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저작권등록을 관리하는 기관이 바로 한국저작권위원회인데요. 이 기관은 단순히 저작권 등록만 받아주는 게 아니라, 저작권으로 인해 분쟁이 생겼을 때 이를 중재하고 해결해주는 역할까지 맡고 있습니다. 저작권위원회가 개입할 수 있는 분쟁 사안은 저작권을 누가 먼저 등록했는가, 누가 진정한 저작권자인가 하는 문제도 있지만, 표절에 관한 문제도 해당합니다. 우선 조정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저작권위원회에 방문해 상담을 하고 조정신청을 하면, 위원회 내부 조정부에서 조정기일을 지정해줍니다. 조정신청료는 10만 원 상당으로 정식 소송 비용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편입니다. ‘조정이 뭔지 감이 잘 안 오시는 분들은, 2000년대 재연 프로그램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장면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사건 당사자들이 출석하고, 조정위원들이 중간에 앉아 양쪽 당사자들의 입장을 들어보고 타협점을 찾아주는 겁니다. 기억하시죠? 다만, 저작권 분쟁조정에서는 “4주 후에 뵙겠습니다.”가 나올 일은 없습니다. 조정안을 양측이 받아들이면 그 자리에서 조정이 성립하고, 어느 한쪽이라도 거부하면 불성립될 뿐입니다. 또한 조정안에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일단 그 자리에서는 동의한다고 해놓고 이후 조정 조건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지키게 만들 방법은 따로 없습니다. 다음 단계는 결국 고소와 소송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표절에 의한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형사 고소를 하는 것도, 민사소송을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두 절차의 목적과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도 되고 둘 다 해도 됩니다. 우선 형사 고소는, ‘상대방을 처벌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만일 저작권법위반 혐의가 인정되어 상대방이 벌금형을 받게 되더라도, 그 벌금은 국가에 납부하는 것이지 표절 피해 작가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상대방으로부터 보상은 받고 싶지만, 상대방에게 전과까지 안겨주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된다면, 그때는 형사는 하지 않고 민사만 진행하면 됩니다. 상대방에 대한 처벌까지 원한다면, 이때는 ‘112신고가 아니라 고소장이라는 서류를 작성해 관할 경찰서에 제출하셔야 합니다. 서류를 작성하는 게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법무사나 변호사에게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서류 대행만 맡기는 방법이 있으니 도움을 받으시면 됩니다.

  반면 민사 소송의 경우 상대방으로부터 피해보상을 받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물론 손해배상청구소송 외에, ‘출간금지처분신청’, ‘판매중지신청등 특정한 처분을 이끌어내기 위해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손해배상청구를 하고 싶지만 얼마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사실, 상대방의 표절로 인하여 내가 정확히 얼마나 손해를 입었는지 경제적으로 계산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다행히 저작권법에서는 상대방의 이득액을 손해액으로 추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 상대방이 표절작을 판매하거나 출간하여 얻은 이득액을, 나의 손해액으로 고스란히 주장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상대방의 표절 행위로 인하여 내가 느낀 정신적 고통이 심각하다면, 이에 대한 위자료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작가에게 있어서 작품은 자식과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표절 사태가 일어났을 때 많은 창작자 분들은 충격에 빠지고, 이성적 대응보다는 감정적 대응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공론화한다면서 상대방 작가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식입니다. 이런 식의 대응은 당장 속이 시원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최악의 경우 상대방으로부터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당하는 역풍이 불어올 수도 있습니다. 피해를 입은 것도 억울한데, 가해자 딱지까지 붙이게 되는 일은 있어서는 절대 안 되겠죠? 내 권리를 수호할 때야말로, 작가의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차가워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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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람

필자 서아람은 전직 검사이자 현직 변호사로서, 카카오페이지 추미스 공모전 2회 수상으로 웹소설 작가로 데뷔한 후 에세이, 웹소설, 동화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서 출간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로서 주로 다루는 분야는 사기, 성범죄, 보이스피싱 등 형사사건과 학교폭력, 저작권 관련 분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