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이냐, 장르 문법이냐, 머니게임과 피의 게임
2024년도 대한민국을 달구었던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사건 중 가장 핫했던 것을 꼽으라면 ‘하이브VS어도어’ 사태였을 겁니다. 하이브의 방시혁 대표가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에 대하여 경영권 탈취 시도 등으로 감사 절차를 개시하고 형사 고소까지 진행하면서 그야말로 업계는 물론이고 온 대중이 발칵 뒤집어졌는데요. 시작은 어른들의 싸움이었던 이 분쟁의 불꽃이 엉뚱하게 아이들에게 튀기도 했지요. 물론 그냥 동네 아이들이 아니라, 총 앨범 누적 판매량 약 45만장에 육박하는 역대급 인기 걸그룹, 뉴진스 이야기입니다. 뉴진스의 크리에이터인 민희진 대표가 특정 신생 걸그룹을 지목하며 ‘뉴진스를 베꼈다, 표절이다’라고 지적하고, 해당 그룹의 관련자들 및 일부 네티즌들은 ‘뉴진스도 90년대 멕시코 걸그룹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면서 오랫동안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좀처럼 공식 입장을 내지 않는 편인 하이브의 자회사 ‘빌리프랩’에서 이와 관련된 공식 분석 영상을 내놓기까지 했는데요. 그만큼 ‘표절’이라는 단어는 음악계뿐만 아니라 모든 창작자에게 있어 엄청난 힘과 파장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표절’이라는 게 정확한 법률적 용어는 아닙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몰래 따다 쓰거나 공표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표절’이라는 단어는 剽(겁박할 표)자에 竊(훔칠 절)자로 구성되어, ‘남을 겁박하고 훔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Plagiraism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이 단어는 라틴어로 ‘유괴’를 뜻하는 Plagium이 그 어원이고, 일본에서 표절을 뜻하는 속어인 ‘파쿠리’는 무려 메이지 시대부터 사용된 ‘들치기(도둑질)’를 의미하는 단어라고 하니, 저작물을 베끼는 행위에 대하여 사람들, 특히 창작자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단어 자체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표절’과 외견상 비슷해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다른 것으로 ‘오마주’와 ‘패러디’가 있는데요. ‘오마주’는 존경하는 마음에서, ‘패러디’는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풍자하거나 희화화하려는 목적으로 ‘어느 것을 차용했는지 대놓고 알게 하면서’ 차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미국 현대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고대 그리스 장편 대서사시인 ‘오디세이’의 오마주이며, 방송인들이 특수부대 체험을 하는 유튜브 시리즈 ‘가짜사나이’는 연예인들의 입대 체험을 다룬 예능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물론, 프로그램의 컨셉이나 진행 방식을 가져오는 것도 원작자의 동의 없이, 몰래, 자신의 것처럼 속이면서 한다면 당연히 표절이 됩니다.
그러면 표절이 성립되려면 어떤 요건들이 필요할까요? “저작권이 인정되는 타인의 저작물 중 구체적이고 창작적인 표현을 고의로 베껴서 자신의 저작물을 만들었을 때” 표절이 됩니다. 먼저 ‘구체적인 표현’ 부분을 보겠습니다. 단순히 저작물의 제목, 아이디어, 소재를 가져다 쓴 것은 표절이라 하지 않습니다. ‘해리포터’처럼 제목 자체가 브랜드나 상표가 되는 것이 아닌 한, 타인의 작품 제목만 가져다 쓰는 것은 위법행위가 아닙니다. 물론, 위법성 여부를 떠나 윤리적인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요. 마찬가지로 아이디어, 주제 의식, 모티브, 아이템이나 컨셉이 비슷하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내 아이디어는 한 줄만으로도 너무나 기똥차다고! 비슷한 것은 절대 존재할 수 없어!”라고 외치는 창작자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쩔 수 없습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태운다‘는 말처럼, 표절의 기준을 너무 낮게 잡아버리면 오히려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절대 존재할 수 없어‘라는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가령, 조앤 롤링을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만들어준 레전드 작품인 ‘해리포터’를 예로 들어볼까요? 그 모티브는, ‘일반인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마법사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입니다. 이렇게 줄여 놓고 보니, 비슷한 모티브가 너무도 많아 당장 열 개 넘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무척 좋아했던 만화, ‘카드캡처 체리’도, ‘평범한 소녀였지만 알고 보니 대마법사의 힘을 반쪽 물려받은 마법 소녀’라는 컨셉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해리포터’가 ‘카드캡터 체리’를 베꼈다고 비난하지는 않지요. 두 작품은 구체적인 서사와 표현이 너무도 다르니까요.

다음으로 기억해야 할 요건이 ‘창작적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야기의 전체 흐름이나 캐릭터, 장면, 구체적인 표현이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표절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창작성’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면 표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단어들이 바로 ‘클리셰’, ‘장르 문법’ 등입니다. 소재의 특성이나 장르의 특성상 매우 흔하게 나오는 표현에 대해서는 누구도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으므로, 표절로 인정받기가 어렵습니다. 실제로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등에 대하여 표절 시비가 벌어졌을 때, 표절한 것으로 지목되는 사람 측에서 가장 많이 하는 해명 중 하나가 바로 이 ‘장르에서 뻔질나게 나오는 클리셰’라는 것입니다.
클리셰를 표절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진짜 표절 사례에서 악용되는 일부 경우만 제외한다면, 실은 매우 합리적인 기준입니다. 가령, ‘A작가의 드라마 대본은 B작가의 드라마 대본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과 줄거리, 심지어 스무 개 넘는 장면을 그대로 베꼈다’라는 기사가 나왔다고 해 볼까요. 저 문장만 놓고 본다면 A작가는 빼도 박도 못하는 표절 작가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A작가와 B작가의 드라마는 둘 다 아침 드라마로 40~50대 여성을 주 시청자로 하는 로맨스 장르이며, 주요 등장인물은 가난하지만 예쁘고 착하고 꿋꿋한 여주인공, 재벌3세에 잘생겼지만 싸가지 없는 남자 주인공, 우아한 척하지만 한 성질하는 남자 주인공의 엄마(재벌 사모님),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을 이어 주면서 중간중간 웃음을 주는 여주인공의 여자친구와 남자주인공의 남자친구 구성이라고 해 봅시다. 줄거리는 우연히 마주친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처음에는 서로를 싫어하면서 싸워대지만, 한 직장에 근무하게 되면서 결국 사랑에 빠지고,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한다는 겁니다. 유사하다고 지적된 장면들은 회사에 지각해서 급하게 달려가던 여주인공이 남주인공과 부딪쳐 넘어지는 장면, 덜렁이 여주인공을 남주인공이 잡아주려다가 껴안는 장면, 여주인공이 사준 삼각김밥을 남주인공이 먹으면서 맛있어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면, 극장에서 공포 영화를 보다가 둘이 처음으로 손잡는 장면, 여주인공에 대해 알게 된 남주인공의 엄마가 여주인공을 카페로 불러내 돈 봉투를 내미는 장면, 이런 씬들의 나열이이라면 어떨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아직도 A작가가 표절작가라는 생각이 드실까요?
제가 재밌게 시청했던 MBC 예능 프로그램 중 ‘피의 게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다양한 특성을 가진 연예인과 일반인 참가자들이 폐쇄된 집에 갇혀 상금을 두고 서로 경쟁하고 게임하는, 생존형 서바이벌을 섞어놓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인데요. 네이버의 인기 웹툰 ‘머니게임’의 작가와 네이버가 포맷 표절이라면서 항의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머니게임’은 의문의 주최 측에 의하여 정체를 알 수 없는 게임에 초대된 다양한 일반인 참가자들이 어마어마한 상금을 걸고 생존형 게임을 벌이는 내용입니다. ‘머니게임’ 웹툰 작가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설정과 스토리를 고안하느라 엄청난 고생을 했는데 무단으로 도용당해 속상하다는 심경을 밝혔었는데요. ‘피의 게임’을 제작한 MBC는 “내용 진행이 완전히 달라서 절대 표절이 아니다.”라고 맞섰고요. 이 논쟁은 달리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최근 넷플릭스에서 ‘머니게임’을 정식으로 각색한 ‘더에이트쇼’가 방영되면서 다시 한번 떠오르긴 했습니다. ‘피의 게임’, ‘머니게임’, ‘더에이트쇼’, 그리고 이들과 비슷한 느낌이라는 ‘오징어게임’까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자주 비교되고 있는데요. 어디까지가 ‘장르적 문법’이고, 어디까지가 ‘도용’인지는 결국 시청자들에게 판단을 맡기게 된 셈입니다.
클리셰의 예외는 어문저작물이나 영상저작물에만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죠. ‘머니코드’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분 있으실까요? ‘E - B - C#m – A’로 진행되는 캐논 변주곡의 상업적인 변주 코드인데, 대중에게 그만큼 쉽게 느껴지고, 친숙하고, 대중이 좋아해서 반드시 인기를 모은다는 의미로 ‘머니코드’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따라서 머니코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두 곡이 비슷하다, 표절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공식적인 통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전세계적인 히트곡 중 최소 수천 곡이 이 머니코드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엘리시아 키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마룬5, U2, 마이클 잭슨, 엘튼 존, 더 콜링, 미카 같은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머니코드를 사용했죠. 이 정도가 되면 머니코드를 사용한 노래보다, 사용하지 않은 노래를 찾는 게 빠르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호주의 한 그룹은 ‘머니코드’가 들어간 곡들만 모아서 메들리 형식으로 불렀다는데, 이른바 ‘머니코드송’이라고 하네요.

표절의 마지막 요건은, 바로 ‘고의’입니다. 가장 당연하면서도 가장 입증하기 어려운 요건인데요. 표현의 유사성처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외부 증거가 있는 게 아니라, 창작자의 ‘내심’을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의가 없는 표절은 다시 두 종류로 나눌 수 있겠는데요. 첫 번째는, 정말로, 우연히, 두 창작자가 서로 접점이 없는 상태에서 유사한 저작물을 만든 경우입니다. 또는 그 시기에 일어난 특정한 사건이나 그 시대에 유행한 특정한 문화에 의하여 동일한 영감을 받아 매우 유사한 창작물을 만들게 될 수도 있겠지요. 이건 표절이라 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나오는 독특한 개념이, 미국 법원의 판결에서 언급된 ‘Subconcious copying’, 즉 ‘의식하지 못한 표절’인데요. 과거 원작을 접하고 잊어버렸지만 무의식적으로 그 내용이나 표현을 기억하고 있다가, 자신의 저작물을 만들면서 자신의 고유한 아이디어인 것으로 착각하고 차용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조지 해리슨, 샘 스미스, 유희열 등 음악계 아티스트들이 무의식적 표절 관련 논란에 휘말렸던 사례가 있는데, 실은 문학계나 학계, 심지어 종교계에서도 정말로 무의식적 표절이냐, 아니면 의도적으로 표절 해놓고 비겁하게 변명하는 것이냐에 대한 언쟁은 자주 벌어지곤 합니다.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있듯이, 저작권 있는 곳에 표절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표절을 근절해야 한다’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창작물이 만들어지고 팔리는 곳에는 항상 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이야기의 종류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아이디어라는 것은 무한으로 나오는 게 아니며, 우리는 결국 어딘가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작이라는 작업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표절이라는 게 무슨 판독기가 있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 읽는 사람, 듣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창작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가져와서 써도 되는 것과 가져와서 쓰면 안 되는 것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주의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