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인가 검열인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싸움
작년 네이버 웹툰 ‘헬퍼2’가 완결을 맞았습니다. 1부부터 시작하여 무려 15년의 여정 끝에 대장정을 마쳤지만, 대다수의 팬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10위권 밖을 벗어나지 않는 인기작이었던 해당 작품은 한동안 휴재를 했었는데요. 시즌2에 접어들면서 수위가 계속 높아져 보기 불편하다는 댓글들이 많이 달리다가, 가수이자 배우인 아이유를 닮은 외모에 아이유의 본명인 ‘이지금’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여성 캐릭터가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독자들의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거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인 BTS의 RM(랩몬스터)를 닮은 ‘잽몬스터’ 캐릭터도 등장했습니다. 아이돌 그룹 위너의 멤버이자 랩퍼인 송민호가 쓰는 ‘마이노’라는 랩네임을 차용한 듯한 ‘마이너’ 캐릭터와 함께요. 이 두 캐릭터가 음란물을 보고 흥분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 팬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아무리 만화라고 하더라도, 공인을 이런 식으로 희화화하는 것은 명예훼손이라는 지적이 이어져 결국 작가 입장 표명까지 이어졌습니다.
‘헬퍼2’에서 지적 대상이 되었던 것은 특정인에 대한 명예훼손뿐만이 아니었는데요. 여성 노인 캐릭터를 나체 상태로 결박해 약물을 주입하는 장면, 깡패가 돈을 주고 사들인 여성의 성기에 금테를 박고 성노예로 쓰는 장면, 여중생을 납치해 성인 방송을 시키려고 하는 장면 등 19세 관람가라고 할지라도 보기 힘든 고수위의 성적, 폭력적 표현에 심지어 팬 커뮤니티에서도 비판하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왔습니다. SNS에서는 ‘웹툰 내 여성혐오를 멈춰달라’, ‘종이인형이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등의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고, 여성 회사원이 남자 상사와 성관계를 하여 정직원이 되는 것처럼 묘사했다가 엄청난 비판을 받고 결국 수정에 이르렀던 ‘복학왕’ 웹툰 사건도 다시 한번 수면에 올라왔습니다. 당시 네이버 웹툰 측은 “심각한 수준의 선정성·폭력성은 작가에게 수정 의견을 전달하고 있지만 자칫 검열로 느껴질 수 있어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가이드라인을 보완하겠다.”라고 입장을 밝혔는데요. 작가에게 주어지는 표현의 자유와, 동시에 작가에게 주어지는 심의 준수 의무 사이에서 매번 고난이도의 줄타기를 하며 고민해야 하는 플랫폼의 고뇌가 엿보이는 문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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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사실 대한민국 헌법전에 나오는 단어는 아닙니다. 대신 헌법 제2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에서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헌법 제22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유는 인간 권리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고, 이를 외부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맞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의 이 말을 정말 좋아합니다. “당신이 하는 말은옳지 않다. 하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누군가 침해한다면, 나는 죽도록 싸워서 그 권리를 지켜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하며 숨죽여 살아야 했던 어둠의 시대를 겪어본 국가에서, 나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는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특히 문화예술인의 경우 창작활동을 통해 자신의 인격과 정체성, 사상을 발현하기 때문에, 예술의 자유 또한 널리 보장되어야 마땅합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그 어떤 자유주의자들도, 역사적으로 무한정한 표현의 자유를 요구한 적은 없었습니다. 가령 히틀러와 같은 반인륜적인 사상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되겠지요. 영국의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를 제한하는 근거를 아주 간단명료하게 표현했는데요. 바로 ‘위해 원칙’, “개인의 자유는 타인에게 해가 될 경우에만 제한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한법 또한 제21조 제4항에서,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제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서도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게 지나치게 불필요한, 비합리적인, 과도한 규제여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법령에서는 다시 형법의 모욕죄, 명예훼손죄, 정보통신망법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죄, 음란물유포죄,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 등을 두어, 특정 요건이 충족되는 불법적인 표현에 대하여 형사처벌이라는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령 미국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처벌하지 않고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만 처벌하는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든가, 모욕죄는 없애버려야 한다는 등의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해마다 악플로 인한 자살자가 나오는 걸 보면 아직 전면 폐지는 요원한 것 같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 뒤에 숨어 타인을 공격하고 상처 입히고 인권을 짓밟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웹툰 작가에게는, 형법보다 더 엄격한 규율이 적용됩니다. 바로 도덕과 윤리입니다. 웹툰 작가는 대중의 사랑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직업이기 때문에, 불법적인 수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중이 받아들일 수 없는 표현은 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아무도 없는 산 속에서 혼자 웹툰을 그리고 혼자 감상할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웹툰의 주된 소비 계층이 10대와 20대이고, 처음 웹툰을 접하는 연령층이 갈수록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웹툰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어린 미래의 새싹들에게 미칠 영향까지도 고려하고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웹툰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면서 특히 주의하여야 할 부분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출판물 심의위원회의 심의 규정 등을 통해서 그 개략적인 기준을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선, 특정인의 명예훼손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Public figure’ 이론이라고 하여, ‘공공의 인물’에 관한 표현에는 일반 사인의 경우보다 명예훼손이 인정되는 범위를 더 좁게 해석하는 법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기준을 판례에서 쓰고 있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공인에 대한 표현이 항상 안전한 것은 절대 아닐 뿐만 아니라, ‘공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해석 또한 명확하지 않습니다. 또한 공적 관심사나 공적 인물에 관한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그 주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표현 수위와 표현 범위, 표현 횟수, 공개적인 정도 등에 따라 명예훼손의 미필적 고의는 충분히 인정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웹툰에서 특정 인물을 특정할 수 있게 표현할 때는, 해당 표현이 작가 본인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해석했을 때도 사회적 평판이나 이미지를 실추시키거나 폄하하는 면이 없는지 면밀히 따지고 신중히 포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다음은 성적인 표현입니다. “성은 아름다운 것이고 숨길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원래부터 음란물에 대한 허용범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좁은 편이었습니다. 음란한 표현을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편입시켜 준 것이 고작 이십 년도 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웹툰의 등급을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 15세 이용가, 전연령가 이렇게 셋으로 나누고 있는데, 15세 미만이 15세 이용가를 보는 것이 시스템상 충분히 가능하고 아무런 인증 절차가 없다는 점에서 성적 수위 표현에 작가들이 먼저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간행물 윤리 위원회에서는 1) 음란한 내용을 노골적으로 묘사하여 사회의 건전한 성도덕을 뚜렷이 해치는 것, 2) 남녀의 성기나 음모를 노골적으로 노출시키거나 성행위 및 성기 애무 장면을 극히 음란하게 묘사하여, 정상인의 성적 수치심을 현저하게 유발하는 것, 3) 동물과의 성행위, 시신과의 성행위, 집단 성행위, 가학성(加虐性)ㆍ피학성(被虐性) 음란증 등 각종 변태적 행위와 근친상간(近親相姦) 등을 흥미 위주로 극히 음란하게 묘사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성윤리를 현저히 왜곡하는 것, 4) 강간(强姦), 윤간(輪姦) 등의 성범죄를 극히 음란하게 묘사하여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어긋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니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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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즘 성적 표현만큼이나 대중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바로 ‘혐오 표현’입니다. 누가 어떤 손 모양을 했다느니, 누가 무슨 책을 읽었다느니 하는 문제로 인터넷이 발칵 뒤집히는 시대인 만큼, 웹툰 작가들도 본인의 생각을 떠나 작품 활동을 할 때만큼은 주의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서 제정한 ‘혐오표현 자율정책 가이드 라인’, 이른바 KISO 가이드라인을 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KISO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혐오표현이란 특정 속성 즉, 인종·국가·민족·지역·나이·장애·성별·성적지향이나 종교·직업·질병 등을 이유로 특정 집단 또는 특정 집단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하거나 폭력을 선전·선동하는 표현”을 의미합니다. 어떤 인물을 그릴 때 그 인물 자체의 성격이나 성품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 부정적인 요소의 근원을 해당 인물의 연령이나 성별, 출신 지역, 직업, 학력, 종교, 질병 때문인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외에도 심의 기준에서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이에 대한 전복을 선동하는 것,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를 명백히 부정하여 국가의 존립 자체를 크게 위협하는 것, 보편타당한 역사적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민족사적 정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 불법ㆍ폭력적인 계급투쟁과 혁명을 선동하여 극심한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것, 살인, 폭력, 전쟁, 마약 등 반사회적 또는 반인륜적 행위를 과도하게 묘사하거나 조장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건전한 사회질서를 뚜렷이 해치는 것, 잔혹한 살인ㆍ폭행ㆍ고문 행위 등 각종 물리적 형태의 폭력 행위를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같은 종류의 범죄를 명백히 조장하는 것, 마약 등 중독성 약물의 복용ㆍ제조 및 사용을 조장하여 사회 전반의 건전성을 크게 악화시키는 것 등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원치 않는 표현에 노출되지 않을 자유’도 하나의 자유권이라는 주장이 나올 만큼 인터넷의 건전한 문화 조성에 모두가 집중하고 있는 요즘, 웹툰 작가들 또한 자신과 자신의 작품이 갖는 파급력을 인식하고 펜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