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인 여러분, 뭐 하고 계세요?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2화-만화가 편

웹툰 시장의 상업적 안정성을 가진 노블코믹스 작가와 자기표현을 중시하는 독립만화 작가의 대조적 세계를 다루다

2025-09-15 배현지

만화인 여러분, 뭐 하고 계세요?

2화-만화가 편

만화학과에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의 대부분은 만화가가 되기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중 많은 학생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하는 오리지널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할 것이지만, 사실 만화가라는 카테고리도 구체적으로 어떤 만화를 그리는가, 연재 방식이 어떠한가, 연재 플랫폼이 무엇인가 등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일본 출판사로 작품을 투고하여 일본에서 잡지 연재를 하는 만화가도 있고, 학습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도 있다. 요즘 유행하는 숏폼으로 만화를 제작하는 만화가도 있고, 인스타툰 작가도 있고, 광고나 공익광고 외주를 작업하는 만화가도 있다. 이번 ‘만화인 여러분, 뭐 하고 계세요?’의 2화에서는, 다양한 만화가 카테고리 중에서, 웹소설의 대중화와 함께 발전한 웹툰 시장인 노블코믹스를 제작하는 만화가와, 대중적 인기를 추구하기보다는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독립만화 작가를 소개한다.


"순간의 공기를 화면으로 전달하기" - 노블코믹스 작가

해리 포터’, ‘미생’ 등 소설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되는 것처럼, 소설을 원작으로 웹툰이 제작되기도 한다. ‘김 비서가 왜 그럴까’, ‘나 혼자만 레벨업’, ‘전지적 독자 시점’ 등 대중적으로 성공한 웹툰 중 많은 수가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렇게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웹툰을 ‘노블코믹스’라고 한다. 웹소설을 웹툰화하게 되면, 상업적인 이득을 많이 취할 수 있다. 원작 웹소설의 팬이 노블코믹스도 읽게 되고, 노블코믹스를 먼저 접한 독자도 원작 웹소설을 읽게 되어 웹소설과 웹툰의 트래픽이 모두 증가하는 선순환 효과가 발생한다. 또한 투자되는 노동력과 시간이 상당함에도 작품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오리지널 웹툰에 비하여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노블코믹스는 제작하기 전부터 어느 정도 성공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노블코믹스는 주로 이미 인기가 증명되고 팬층이 존재하는 웹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리지널 작품이 작가 한명 한명의 개성을 중시하는 것과는 달리, 노블코믹스에서는 작가 개인의 개성을 살리는 것보다는 기존의 원작을 잘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대체로 노블코믹스는 팀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팀원 한명 한명이 자신이 가장 잘하는 작업 공정만 담당하게 되어서 개별 공정에 대한 작가들의 전문성이 깊어지고, 혼자 모든 작업 공정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작가들의 부담도 적어진다. 이렇게 노블코믹스는 상업적인 이점이 많고, 팀으로 작업을 하여 작품의 전체적인 질을 높일 수가 있기 때문에 오리지널 웹툰보다 웹툰 시장에서 유리한 점이 많다. 그래서 오리지널 웹툰을 주로 취급하는 네이버 웹툰을 제외한 리디북스나 카카오페이지 등 많은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되는 작품 중 대다수가 노블코믹스일 정도로 노블코믹스는 현재 웹툰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장이 되었다. 이번 화에서 처음 소개할 만화인은 이러한 노블코믹스를 전문적으로 작업하는 ‘DD’ 작가다.

DD 작가는 현재 네이버웹툰에서 노블코믹스를 연재하고 있다. DD 작가의 대표작은 아포칼립스물과 헌터물의 클리셰에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소재를 더해서 현실적인 전개로 서사를 풀어낸 작품인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으로, 작가는 이 작품에서 각색, 연출, 명암 부분을 맡고 있다.

DD 작가는 원래 오리지널 작품을 지망했지만, 대학교 졸업 전시회에서 졸업 작품을 좋게 본 회사들과 인연이 닿았고, 이것을 계기로 노블코믹스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DD 작가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원작의 팬이기도 했고, 팀을 이루어 한 공정만 집중적으로 작업하게 되면 전 공정을 혼자 작업할 때보다 해당 공정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노블코믹스 제작사들의 제안에 긍정적이었다. 직접 연재에 들어가게 되니, 실제로도 노블코믹스 작업이 만화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DD 작가는 처음부터 노블코믹스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노블코믹스만의 매력을 찾으면서 즐겁게 작업을 하고 있다. DD 작가가 생각하는 노블코믹스의 가장 큰 매력은 독자와의 소통에서 오는 기쁨이라고 한다. 노블코믹스의 작가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결국 한 명의 원작 팬이기도 하다. 그래서 DD 작가는 자신이 원작을 보고 느낀 감상을 재해석해서 만화라는 형태로 재구성하면, 그것을 독자들이 감상하며 작가와 비슷하거나 다른 감상을 내놓는 구조에서 자신이 창작자인 동시에 감상평을 공유하는 입장이 된 것 같다는 독특한 느낌을 느끼며, 여기에서 노블코믹스 작업만의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최근 웹툰 플랫폼의 홈페이지를 보면 노블코믹스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DD 작가의 말에 따르면, 노블코믹스 시장은 웹툰 시장의 성장과 궤를 함께한다고 한다. 최근 십 년간 웹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팀 단위의 작업 공정이 자리를 잡았고, 그 과정에서 인기 있는 웹소설을 웹툰으로 각색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노블코믹스 시장이 웹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다만 노블코믹스가 웹툰 시장의 주된 사업 아이템이 된 만큼 현재는 경쟁작이 매우 많아져서, 현재로서는 소재와 장르로만 우위를 잡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는 소재, 작화, 연출 등의 보편화된 공식을 따랐던 초기의 노블코믹스와 달리, 현재는 ‘웹툰화’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는 것도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고 한다.

노블코믹스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은 주로 팀 체제로 작업이 진행된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팀 작업의 구성 인원 및 작업 공정은 팀마다 다르다. 모든 작가가 한 작업실에 모여서 다 함께 전 공정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받는 경우도 있고, 외주를 통해서 각자 따로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 DD 작가의 팀은 PD를 가운데 두고 소통하면서 외주형태로 작업하는 팀이다. 각색과 연출을 담당하는 DD 작가가 먼저 원작을 읽고 각색, 연출을 끝낸 콘티를 PD에게 전달하면, 이후 작업 공정은 PD의 관리 아래에서 다른 팀원들에게도 전달되며, 다른 팀원들의 작업이 끝나면 DD 작가는 마지막으로 명암 작업 겸 최종 검수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외주 형태로 작업하는 DD 작가의 팀은 팀원들 간에 소통이 긴밀하지 않은 편이라서 소통 오류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 주간 연재의 일정을 관리하기 위한 PD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노블코믹스 팀과 원작자와의 관계도 원작자의 성향에 따라 팀마다 다른데, DD 작가가 맡은 작품의 원작자는 가공을 너그럽게 포용해주는 성향이라 DD 작가가 자신의 해석대로 원작을 가공하는 것에서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이렇게 팀을 이루어서 여러 명이 한 작품을 작업하게 되면, 팀원 개개인이 한 공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평균적으로 주당 70컷을 그려내야 하는 웹툰 주간 연재 일정은 몹시 가혹하다. 1인 작가가 혼자서 스토리, 시나리오, 콘티, 스케치, 선화, 밑색, 명암, 보정, 편집 등의 모든 작업 공정을 하다 보면 아무리 시간 배분을 잘하더라도 매 회 스스로 퀄리티에 타협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팀 작업을 하게 되면, 작업 공정별로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들여서 더욱 좋은 작업물을 낼 수 있다. DD 작가는 특히 팀 작업의 장점으로 원작이 스토리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에서 오는 ‘안정감’을 꼽았다. 각 공정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주는 팀원들이 있기 때문에 혼자 작업할 때는 엄두도 못 내던 수준의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기쁨도 상당히 크다고 한다. 다만 팀 작업은 다른 팀원들과 일정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유동적으로 작업 시간을 조절할 수 없고, 전 공정을 혼자 할 때보다 벌이가 적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또한, 팀 작업의 특성상 어떤 팀원을 만나느냐에 따라서도 팀원과의 작업 스타일 차이에서 오는 마찰을 겪을 수도 있다는 문제도 있다. DD 작가는 도전이 어렵다는 것도 단점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웹툰은 주 1회를 연재하며 주 5~7회 연재하는 웹소설의 템포를 따라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전개를 압축해야 하고, 버릴 요소들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런 촉박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할 분량이 물리적으로 모자라진다. DD 작가에게는 이런 상황에서 ‘좀 더 재미있는 작품을 위해서 전개를 희생하고 모험을 해볼 것이냐’, ‘도전을 포기하고 전개와 템포를 챙길 것이냐’의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고민 사이에서 재미있는 작업물을 내놓았을 때의 희열이 상당하기 때문에, DD 작가는 노블코믹스 작업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럼 노블코믹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원작이 있다고는 하지만 노블코믹스 작업 자체는 오리지널 작품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니 물론 스토리텔링력, 작화력, 연출력 등 만화 전반에 필요한 기본기는 필수로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노블코믹스의 경우 원작을 파악하여 작업해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추가로 웹소설과 웹툰의 매체 차이를 이해할 필요도 있다고 한다. 처음 작업에 들어가면 원작을 최대한 그대로 뽑아내는 것이 좋은 웹툰화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설과 웹툰의 매체 차이는 절대 극복할 수가 없다. 소설을 웹툰화할 때, 소설을 그대로 옮기면 재미도 없고, 아이러니하게도 원작답지도 않아진다고 한다. 노블코믹스는 노블코믹스 작가가 원작 소설을 읽고 작가의 감상을 정제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할 때, 작가의 감상이 독자들의 것과 가까울수록 독자는 원작 재현이 잘 되었다고 느낀다. 노블코믹스는 원작을 각색하되 독자들이 원작보다 더 원작 같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하며, 혹은 아예 과감한 시도를 해서 본인만의 스타일을 가미해서 재창작해야 한다. 이 부분은 공부해서 알기보다는 실무 작업을 해봐야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DD 작가는 좋은 노블코믹스 작가가 되기 위해서 많은 작업을 해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무조건 많은 작품을 읽어보는 것도 중요한데, 노블코믹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원작과 노블코믹스를 동시에 읽어봐야 한다. 이때 노블코믹스에서 얼마나 많은 가공과 계산이 들어갔는지 파악하면, 막연하기만 했던 각색 작업이 좀 더 수월해 진다고 한다.

대체 불가능한 작가가 되어서 평생 만화 그리는 것이 꿈인 DD 작가는 이 칼럼을 읽는 독자에게 만화에 도전하는 걸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만화는 어려운 것이 맞다. 만화는 기본적으로 작가 혼자서 스토리, 연출, 작화를 전부 구상하고 모든 요소를 조합하여 결과물을 얻는 종합예술인 만큼, 다양한 분야의 능력치를 기르는 일이 어렵지 않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만화를 무서워하지만 않는다면 확실하게 이 일을 사랑할 수 있다. 만화가 많은 분야의 역량을 요구하는 만큼, 작가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오늘 그린 원고는 반드시 어제 그린 원고보다 좋으며, 내일 그릴 원고는 더 좋아질 것이다. DD 작가가 생각하는 만화 연재란 종착점으로 향하는 게 아니라 끝없이 발전하는 여정에 오르는 것이다. DD 작가는, 그러니 발걸음 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겁게 만화를 만들어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하겠다고 나서서 고통받는 일" - 독립만화 작가

개인적으로 독립만화는 노블코믹스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주로 스튜디오에서 꾸린 팀을 위주로 작업이 진행되는 노블코믹스와 반대로, 독립만화는 높은 확률로 1인 작가에 의해 창작된다. 그리고 독자들이 이미 좋아하는 이야기인 원작 웹소설을 바탕으로 각색하는 노블코믹스와 달리, 독립만화는 독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보다는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노블코믹스가 상업성으로 무장한 반면, 독립만화는 비상업적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기도 하다. 독립만화에서 ‘독립’은 ‘제도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독립만화는 장르적 관습을 따르지 않고, 대중적 인기를 좇지 않으며, 거대 웹툰 플랫폼의 힘을 빌리지도 않는다. 독립만화는 플랫폼의 순위권에서 경쟁하기보다는 꿋꿋하게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 나가는 독립적인 만화다1. 이번 화에서 두 번째로 인터뷰한 작가는 올해 4월에 첫 책을 발간한 신인 독립만화 작가인 ‘한영헌’ 작가다.

한영헌 작가는 주로 퀴어, 청소년, 가족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를 그린다. 작가가 최근 발간한 첫 책, ‘포카를 훔쳤어요’는 K-POP을 좋아하는 16살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제목과 소재만 보면 아이돌을 향한 팬심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자본주의 산업에 휘말려있는 현대의 청소년들에 관한 이야기다. 한영헌 작가가 소재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요소는 ‘작가 자신이 그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영헌 작가는 그 소재를 다른 작가가 아닌 자기 자신이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주로 작가가 가진 응어리와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대상들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한영헌 작가는 만화보다 영화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입시생 시절에 애니과 입시를 준비했었다. ‘너는 애니메이션보다는 만화에 더 잘 어울린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입시생 때는 그런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영헌 작가는 그렇게 첫 입시를 치렀지만,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여 재수를 준비하게 되면서 간 다른 학원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고, 반쯤은 오기로 만화를 시작했다. 만화 입시를 시작해보니 애니메이션보다 만화가 훨씬 적성에 맞아서, 지금 작가는 당시에 그 말을 했던 선생님들께 깊게 감사하고 있다고 한다. 한영헌 작가가 본격적으로 독립만화의 세계에 뛰어든 계기는 ‘다양성만화 제작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던 일이었다. 작가는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전에 짧은 상업 만화 원고를 작업했었지만, 상업 만화 작업은 펜을 꺾어야 하나 고민될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상업작 원고를 끝낸 후 독립만화 작업에 들어가자마자 한영헌 작가는 자신의 적성이 독립만화에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다양성만화 제작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독립만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그때부터 작품 성향도 점점 독립 만화에 가까워지게 되면서 새로 구상하는 작품들은 ‘작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더 근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독립 만화 작가로서 일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작가가 작업 공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혼자서 작업한다는 점이다. 순수하게 만화를 제작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홍보, 유통, 판매의 과정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최근 다른 모든 분야도 그렇듯이, 독립만화 시장 또한 작가 개인의 SNS 인기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이미 인지도가 있는 작가들은 바로 펀딩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독립만화 작가들은 포스타입이나 딜리헙 같은 1인 창작 플랫폼에 작품을 게시해두고, SNS에 작품을 홍보하며 반응을 얻는 과정을 거친다. 한영헌 작가는 SNS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이 잘 맞지 않는 성향이기 때문에 원고 자체보다도 작품을 홍보하고 유통하는 것에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SNS를 통해 작품을 홍보하고 유통하는 방식 외에도, 독립 서점에 직접 책을 입고시킬 수도 있고, 독립만화를 주로 취급하는 출판사를 통해 책을 출판하는 경우도 있다. 기존에는 독립 만화 전문 행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보통 앞서 언급한 포스타입, 딜리헙 등의 1인 창작 플랫폼에서 먼저 인기를 얻은 후에 작품을 통신 판매하는 것이 보편적인 독립만화의 유통 구조였는데, 최근에는 ‘칸새’나 ‘하고싶은 만화전’같은 독립만화 전문 행사들이 열리면서 오프라인에서도 독립 만화를 직접 읽어보고 구매할 기회가 많아졌다. 특히 아직 안정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신인 독립만화 작가들은 더더욱 그런 행사에서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한영헌 작가 또한 다가오는 11월에 열리는 독립출판만화행사인 ‘하고싶은 만화전’에서 퀴어와 소프트 BL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는 새로운 신간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다는 점도 한영헌 작가가 꼽은 독립만화 작가 활동의 어려운 점이다. 독립만화 작가는 프리랜서인데다가 상업 웹툰처럼 PD가 작품을 피드백해 주거나 팀원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단점을 감수할 정도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고, 상업작보다 타협을 덜 해도 되고, 독자를 덜 의식해도 된다는 것이 작가가 생각하는 독립만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한다.

한영헌 작가가 만화학과에 다닐 때, 학교 수업은 웹툰 수업이 대부분이었고, 독립 만화 수업은 선택 과목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그 수업을 통해 독립만화 작가 활동에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만화학과에서는 웹툰 수업을 주로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한영헌 작가는 독립 작가 성향이 강한 사람은 만화학과의 커리큘럼에 실망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교에는 수업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도 많다. 한영헌 작가는 학교에서 좋은 동료 작가들을 많이 만났다. 만화학과가 주로 웹툰 수업을 하긴 하지만, 필연적으로 만화를 하고 싶은 학생들이 잔뜩 모이면 그중 몇은 독립만화를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한영헌 작가는 그런 학생들끼리 힘을 모아 독립만화 동아리와 팀을 만들어서 앤솔로지를 내고 부스를 여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영헌 작가는 독립만화 작업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하겠다고 나서서 고통받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냉소적인 대답 같기도 하지만, 이 대답에서 독립만화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느껴졌다. 인간은 생존본능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니다. 그냥 써도 되는 물건을 ‘굳이’ 조금 더 예쁘게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디자인이 발전하고, 그냥 먹어도 되는 식재료들을 ‘굳이’ 조금 더 맛있게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요리가 발전했다. 조각가, 화가, 작곡가들이 ‘굳이’ 더 예술적으로 풍부한 삶을 추구했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 가치 있는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굳이’라는 단어가 바로 우리 삶을 더욱 풍부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예술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한영헌 작가 또한 독립만화를 작업하다 보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고 한다. 노동량에 비해 터무니없는 돈을 벌고 있다는 생각과 ‘이런 걸 누가 보지? 이 원고가 세상에 나온다고 무슨 의미가 있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영헌 작가는 원고를 그리다가 자신도 몰랐던, 자신이 하고 싶었고 할 수 있었던 장면이 원고에 그려지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감상이 든다고 한다.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굳이’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독립만화의 매력이자 많은 독립만화 작가들이 독립만화를 그리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꼭 봐야하는 독립만화, 웹툰의 시대! 독립만화 이야기”, 한국콘텐츠진흥원, 네이버 블로그, 2021122,https://blog.naver.com/koccablog15/223734055896.

필진이미지

배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