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인 여러분, 뭐 하고 계세요?
3화-사회적 목소리 편
전 세계적으로 많은 경우, 만화는 정치 및 사회문제를 풍자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19세기 초 신문에 풍자만화를 실어서 현대까지 신문에 풍자만화를 싣는다는 전통을 이어올 수 있게 했던 프랑스의 샤를 필리퐁도 정치적으로 억압당하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꾸준히 사회와 기득권층을 풍자하는 만화를 그렸으며, 근대적 한국 만화가의 시초로 볼 수 있는 이도영 화백 또한 대한민보에 일제의 탄압에 대한 풍자만화를 실었다. 최근에는 만화를 예술의 한 갈래로 보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고, 유명한 웹툰 작가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만화는 저급한 매체로 여겨져서 탄압을 받아온 역사가 많으며, 만화가들이 청소년 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실 만화는 만화만의 방법으로 꾸준히 사회적인 시사점들을 조명해 왔으며, 웹툰의 시대가 된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적지 않은 만화가 사회적인 시사점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실을 배경으로 한 웹툰들을 보면 현대 한국이 어떤 사회 문제를 겪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흔히 만화는 자유롭게 작가의 상상력을 펴나가는 장르로 알려졌지만, 만화는 상상력을 펴나가는 동시에 현실에도 발을 디디고 서 있을 수도 있다. 최근 한국 웹툰 장르 중에서는 ‘마흔 즈음에’ 등 주인공의 삶을 노골적으로 보여줘서 불편할 정도로 현실감을 주는 장르인 하이퍼리얼리즘 장르가 인기를 끄고 있는데, 이러한 작품들이 현대 사회에 와서 상업화된 사회풍자 만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이퍼리얼리즘 장르 외에도, 신문에 시사를 풍자하는 만화를 싣는 형태인 만평, ‘며느라기’나 ‘단지’처럼 자신의 일상을 통해 현실의 사회 문제를 드러내는 일상툰 등 만화를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할 방법은 많지만, 이번 ‘만화인 여러분, 뭐 하고 계세요?’의 3화, ‘사회적 목소리 편’에서는 르포르타주 만화를 작업하는 르포르타주 만화 작가를 만나보았다.
"오늘을 위한 영양분" - 르포르타주 만화 작가
르포르타주(Reportage)라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탐방 기사, 현장 보도’라는 뜻이다. 즉, 르포르타주 만화, 줄여서 르포 만화란, 어떤 사회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심층적으로 취재해서 보도의 형식으로 제작한 만화로, 만화의 형식에 르포의 현장성과 사실성이 더해진 만화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건조한 말투로 작성된 신문 보도와는 달리, 르포 만화에서는 사건에 개입된 주인공의 눈을 통해 사건을 생생히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르포 만화는 삶과 사회를 가장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는 저널리즘 형식이다. 한국 르포 만화의 원형은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민중미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민주화 투쟁의 활발했던 그 당시에는 선전물 형태로 민중미술이 쓰였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한국 르포 만화는 부조리를 고발하는 비판적 기능을 갖게 되었다.1 나치 치하 유대인 강제수용소 생존자인 아버지를 취재한 만화인 아트 슈피겔만의 ‘쥐:한 생존자의 이야기’가 저널리즘적 가치를 인정받아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처럼, 르포 만화에는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힘이 있다. 이번 화에서 소개할 르포 만화 작가이자 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전공의 교수인 ‘고경일 작가’ 또한 만화의 이러한 사회적 힘을 믿고 만화를 통해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 작가이다.

현실의 사회문제를 다루는 만화를 주로 제작하는 고경일 작가는 베트남전쟁을 다룬 만화인 ‘붉은돌단풍’과 ‘아기진달래:베트남전 참전 용사의 비망록’ 등 르포르타주로 유명한 만화가지만, 현재는 직접 겪은 경험과 취재를 기반으로 장르적인 조미료를 더해서 상업적으로도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현재 팝아트와 웹툰 스토리를 주로 작업하고 있다. 만화와 캐릭터들이 한번 소비하고 버리는 유행처럼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고, 그런 것들에 의미를 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을 계기로, 작가는 팝아트를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풍자하는 전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문제와 가자 지구의 어린이 사망 문제 등을 팝아트로 녹여낸 작품들이 작가의 팝아트 대표작이다. 이 프로젝트는 왜 미술을 이렇게 어렵고 진지하게만 다루냐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작가는 예술이라는 것이 두 가지 성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화려한 장식과 오락의 측면, 다른 하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측면이다. 작가는 예술 작품에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작가가 진행하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웹툰 스토리 제작으로, 작가가 제작 중인 웹툰 스토리 또한 폭넓고 깊이 있는 사회 문제들이 반영되어 있다. 작가는 그동안 르포 만화를 주로 제작했다가, 독자들에게 만화를 좀 더 와닿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팩션(Faction; Fact, 즉 ‘사실’과 Fiction, 즉 ‘허구’의 합성어로, 실존 인물이나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이야기)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 밴쿠버의 한 한인 교회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죽음을 통해 캐나다의 사이비 단체 등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과 사립대학 내에서의 파벌 문제를 다루며 한국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는 작품 등 직접 겪은 사건들을 기반으로 한 고경일 작가의 팩션 작품들은 현재 기획이 모두 끝난 단계로, 제작 준비 중이라고 한다.
고경일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주로 해외의 역사나 해외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다루는 작품들이 많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경일 작가가 한국보다는 해외에 관심이 많아서 이렇게 외국 사회를 만화의 주요 소재로 삼는 것이라고 오해했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통해서 작가가 해외 문제를 만화 소재로 삼는 이유는, 작가가 한국보다 외국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국 사회에서도 한국적임을 발견할 정도로 한국 사회에 큰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외국에서 사회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곳들이 한국이 축소판이라고 생각했고, 외국에서 발생하는 문제에서 한국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가는 어떤 대상을 비판할 때는 대상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보다는 그 대상과 유사한 것을 비판함으로써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한국 사회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서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것과 비슷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외국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고경일 작가는 역사나 사회 문제를 전달할 때, ‘만화’라는 매체가 가진 가장 큰 힘이 바로 ‘흡입력’이라고 보았다. 만화는 처음에는 가볍고 재미있게 시작되지만, 독자가 작품과 인물에 이입하고 난 후에는 엄청난 흡입력을 가지게 된다. 또한, 만화에는 등장인물을 식별시키고, 데이터를 축적하는 힘이 있다. 실제 사건에는 여러 사람이 개입되어 있는데, 이를 신문 보도를 통해 읽을 경우, 각각의 인물들을 식별하는 것이 어렵고, 각 인물이 겪은 사건들의 데이터를 축적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만화는 그림으로 인물의 개성을 묘사할 수가 있기 때문에 각각의 인물들을 구별하기가 쉽다. 그리고 만화가 가진 흡입력이라는 장점을 통해 독자가 등장 캐릭터에 이입해서 실제로 자신이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등장 캐릭터들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관계자들과도 대화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이 가슴에 남을 수 있다. 신문 기사를 읽듯이 머리로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가슴으로 사건을 이해하게 되면, 인물 관계나 사건이 복잡해지더라도 독자는 모든 사건을 따라가며 발생하는 사건들의 데이터를 축적하기가 쉽다. 그리고 가슴으로 작품을 느낀 독자들은 해당 만화가 다루는 사건을 공론화하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하는 운동가들이 사람들에게 조 사코의 르포 만화 ‘팔레스타인’을 읽도록 격려하는 등, 만화책이 사회 운동의 보조도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만화에는 다른 매체가 낼 수 없는 만화만의 힘이 있기 때문에, 고경일 작가도 계속 만화를 통해 사회 문제를 조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르포 만화를 그릴 때는 창작 만화를 그릴 때보다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작업이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경일 작가도 르포 만화나 팩션을 작업할 때, 언제나 소재주의를 경계한다고 한다. 소재주의라는 것은 멋지고 자극적인 소재 자체에만 집중해서 표현 방식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르포 만화의 경우, 실존 사건의 아픔을 소재로만 쓰는 것을 소재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미숙한 작가들은 실제 사건을 가볍게 다루거나,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도하기 위해서만 실제 사건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과거의 아픔을 단순히 승화시켜야만 할 것으로 보거나, 과도한 흑백논리로 이쪽 진영은 무조건 착하고, 저쪽 진영은 무조건 나쁘다고만 다루는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소재에 대해 깊이 있는 취재나 철학 없이 실제 사건을 다루게 되면, 그것은 실제 사건의 관계자들을 모욕하는 일이 될 수가 있으며, 그저 자신의 사회적 지식을 뽐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고경일 작가는 이렇게 소재주의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인물에게 실제 사건에 담긴 철학을 부여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5.18 민주화운동의 핵심 정신은 주먹밥이라도 나눠 먹는 공존과 연대다. 만약 5.18 민주화운동을 취재해서 르포 만화를 그리고 싶다면, 인물에게 5.18 민주화운동에 담긴 공존과 연대의 철학을 부여해 줘서 독자들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독자들이 인물에 깊게 공감하게 되면, 르포 만화는 단순히 사실을 나열 외에 더 깊은 가치를 지닐 수가 있게 되어 단순 소재주의 만화로 전락하는 것도 막을 수 있게 된다.
르포 만화의 핵심은 ‘취재’다. 그런데 고경일 작가는 주로 해외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만화에 담기 때문에 취재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술이 발달해서, 어느 정도의 취재는 해외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거의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고경일 작가는 ‘모두의 국제전화’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추천했다. 물론 해당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는 있어야 하겠지만, 이렇게 무료 인터넷 전화를 이용하면 해외의 전문가에게 직접 전화를 걸 수 있기 때문에 해외 취재도 훨씬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장감이 중요한 취재의 경우 전화를 통한 취재만으로는 충분히 자료를 수집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작가도 직접 현장을 방문한다고 한다. 베트남전쟁에 대해 다루는 르포 만화들을 작업하기 위해 작가는 평화 기행을 통해 직접 현장취재를 가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베트남에 방문한 적도 있고, AP통신 기자와 함께 통역가를 고용해서 한 달간 오토바이를 타고 베트남 일대를 다니며 직접 취재를 한 경험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발로 직접 현장을 뛰어서 생생한 취재를 해나가는 것이 르포 만화 작가의 정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르포 만화를 작업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꾸준히 시사 자료를 모으는 습관이 중요하다. 평소에 주제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견하냐는 질문에 고경일 작가는 네이버 카페 하나를 보여주었다. 해당 카페는 작가 한 명만 가입된 개인 카페로, 카페에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고, 카테고리별로 수많은 자료가 정리되어 있었다. 뉴스 카테고리에는 매일매일의 뉴스가 모아져 있었고, 로그라인 카테고리에는 짤막한 로그라인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작가는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고 쌓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매일의 뉴스를 모으고, 꾸준히 로그라인을 작성하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는 현실에 기반해서 나오지만, 현실이 전부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얻기 위해서는 재미없다고 생각되는 이야기까지 전부 수집해야 한다. 그중에서 작가는 특히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들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끌어내기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분노하는 사건, 인물 등에 대한 뉴스를 주로 수집한다고 한다. 로그라인 또한 마감에 쫓길 때 억지로 쓰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꾸준히 써두다가 원고를 해야 할 때 하나씩 골라서 쓰는 것으로 생각하고 꾸준히 로그라인을 모아두는 편이 훨씬 양질의 아이디어를 얻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미리 모아두면 실전에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대처해나갈 수가 있다. 모아둔 아이디어로 단편소설을 쓸 수도 있고, 모아둔 로그라인들을 결합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고경일 작가는 영화감독에게 미리 써둔 로그라인을 제안해서 콜라보 제안도 받은 경험도 있다고 한다. 웹툰 제작업체에게 미리 써둔 로그라인으로 작품 제안을 했을 때, 만약 해당 업체가 이미 비슷한 스토리로 작업을 하고 있더라도, 미리 써둔 로그라인이 탄탄하다면 그 업체에 보조 시나리오 작가로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렇듯 르포만화나 팩션을 제작하고 싶은 지망생은 평소에 뉴스와 로그라인을 꾸준히 모으는 습관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또한, 고경일 작가는 좋은 르포 만화 작가가 되고 싶다면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30대가 되기 전에 다양한 일을 해 보는 것이 좋으며,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최대한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게 좋다. 학원 아르바이트처럼 늘 같은 사람만 만나는 아르바이트보다는 주유소, 배달, 서빙처럼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아르바이트가 훨씬 경험 쌓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것은 르포 만화 작가 지망생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의 만화 작가 지망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인데,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양한 인물상을 경험해 보면 다음에 작품활동을 할 때 여러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캐릭터들의 입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고경일 작가 또한 20대 때 학비를 벌기 위해 한 술집 웨이터, 배달, 기름통 닦기, 심지어 시체 닦기 등의 고된 일들이 작가가 작가로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작가 활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르포 만화는 현장에서 직접 취재를 해야 하는데, 그 취재의 과정이 고될 때가 많다. 만약 20대 때에 고된 경험을 충분히 해보지 않았다면, 나중에 취재를 할 때 어려움이 생길 수가 있다. 고경일 작가 또한 20대 때 했던 수많은 아르바이트 경험이 없었다면, 베트남에서 한 달간 취재를 했던 것이 굉장히 힘들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좋은 경험을 쌓기 위해서 해외 유학을 가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자신이 멋진 이력을 쌓았더라도 해외에서는 그것들을 전혀 경력으로 인정해 주지 않으며, 그저 한 사람으로 취급받게 된다. 그래서 해외 유학 생활은 굉장히 힘들고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데, 이러한 고생의 경험이 전부 미래의 만화 활동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일단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유학의 가장 좋은 점이다. 어차피 작가는 혼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그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뭐든지 혼자 해결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해 두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유학이 어려운 상황인 학생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교로 진학해 보는 것도 고려해 볼만한 사항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직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학생들은 공부하고 만화를 그리는 틈틈이 역사나 사회 문제와 관련된 콘텐츠를 즐겨 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미 현대 사회는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꼭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영상이나 SNS를 통해서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인문학적 지식을 얻고 관심을 가지며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해두면 좋을 것이다. 이렇듯 사회를 풍자하는 만화를 작업해 보고 싶은 학생들은, 무엇보다 뉴스를 많이 보고, 언제나 깨어있는 자세로 명민하게 우리 사회의 본모습에 다가가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특정 문제에 대한 자기만의 가치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고경일 작가는 앞으로도 계속 르포 만화를 작업할 계획이라고 한다. 작가는 만화를 통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세상에 알리는 것을 작가로서 평생 과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조명해야 한다. 과거의 문제가 명확히 밝혀지고,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과거에 발생했던 폭력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에도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과거의 폭력 사태 중에서 특히 제주도, 오키나와, 타이완, 베트남의 아픔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이 지역들은 공통적으로 세계 2차대전 때 식민 지배, 전쟁, 국가 폭력, 학살 피해 등의 엄청난 희생을 겪었던 지역들이다. 작가는 이 지역들에 아직 전쟁의 끔찍함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여, 해당 지역들의 역사를 취재하여 만화를 작업하고, 만화를 각국에 출판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아직까지 명확히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에 대해 해당 국가에 만화를 출판하게 되면 여러 논란을 빚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경일 작가는 진실을 밝히는 만화를 그려서 그렇게 논란을 빚게 되는 것까지가 작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나서서 비난을 받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고경일 작가는 과거의 진실에 다가간다는 것은 오늘을 위한 영양분이라고 표현했다. 작가는 지금까지 르포 만화를 작업해 오면서 과거의 아픔을 파낸다며 비판 섞인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과거의 아픔을 자꾸 덮어두면 더 아파질 것이고, 과거의 아픔을 파내서 그것과 제대로 마주해야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상처를 덮어두면 더 곪아갈 것이고,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상처를 들춰보고 제대로 치료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과거의 진실에 다가감으로써 과거가 오늘을 위한 영양분이 되어서 보다 건강한 오늘을 마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고경일 작가의 이 말을 듣고, 한강 작가가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내놓은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한강 작가가 말했듯이, 인간이 존엄성으로 나아가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고경일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말을 더 실감하게 되었으며, 실존하는 역사와 사회 문제들을 취재하여 그것을 만화로 재구성하는 르포 만화 작가가 하는 일의 중요성과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만화를 좋아하고, 정치, 역사, 사회 등의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르포 만화 작가의 길을 고려해 보는 것이 어떨까?
1 “치밀한 저널리즘의 만화, 르포만화”, 최홍, 명대신문, 2010년 9월 26일, https://news.mju.ac.kr/news/articleView.html?idxno=1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