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된 만화, 산업이 된 웹툰의 길 찾기 : K-웹툰 경제사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1화-자본주의의 발전과 위기에서 발견하는 웹툰 산업의 데자뷔

생산 방식의 변화와 웹툰 흥망성쇠의 방정식 찾기

2025-08-18 이철호

문화가 된 만화, 산업이 된 웹툰의 길 찾기 : K-웹툰 경제사

1화-자본주의의 발전과 위기에서 발견하는 웹툰 산업의 데자뷔
_생산 방식의 변화와 웹툰 흥망성쇠의 방정식 찾기

독일의 사회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문화가 산업적 구조에 의해 상품으로서 생산된 것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대중문화라는 용어 대신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여러 유형의 인기 가요나 인기 배우, 멜로물들이 돌고 돌지만 실제로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것처럼, 오락물의 내용들도 겉보기에는 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변화 없는 반복일 뿐이며, 세부 사항들만이 대체 가능하다. 문화산업이 오직 효과에만 매달리게 됨으로 말미암아, 마음대로 주물러지지 않는 것이라는 효과의 고유한 특성이 무시되고 작품이라는 관념을 대체해버린 상투화된 형식에 효과는 종속된다.” ‘계몽의 변증법’ (문학과지성사)

 

이제 예술과 콘텐츠의 미학적 가치를 중요하게 내세우지 않는다. 오직 문화산업으로서의 성공과 확장만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었고, 만화 또는 웹툰이라는 예술이자 미디어는 상품으로 논의되고 있다. 상품은 생산과 유통의 일상적 변환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변환이 성공하기 위한 단순한 방정식을 세우는 것에 인류는 수많은 성공만큼 실패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적인 가치 속에 편입된 만화라는 예술과 웹툰이라는 상품이 이룬 오늘의 성공에 환호하기보다 알 수 없는 내일에 더 고민하는 이유이다. 이는 경제가 산업 생태계에 몸담은 이들의 삶을 좌우하는 가장 근본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웹툰의 전성시대, 위기의 발아를 기록하다

▲ 한국콘텐츠진흥원 '웹툰산업 실태조사'

2023년은 한국 만화·웹툰계에 가장 인상적인 해로 기억될 듯하다. 웹툰 산업의 매출액이 전년 대비 3,600억 원 증가하면서 6년간의 성장 끝에 2조라는 상징적인 수치(21,890억 원)를 드디어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제 웹툰 전성시대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렇지만 겨우 2년을 지난 지금, 현장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연재할 곳을 못 찾겠다는 푸념부터 요즘 웹툰 다 똑같다라는 시큰둥한 반응, 여기에 문을 닫는 중소 플랫폼까지 속출하고 있다.

원인은 많을 것이다. 이미 성공한 작품과 비슷한 제목, 세계관, 캐릭터를 내세운 양산형 웹툰이 그중 하나로 주목받는 것도 당연하다. 몇 년 전 발표한 자료를 보면 네이버웹툰을 기준으로 CP(Contents Provider) 명의로 연재하는 비중이 전체의 40%이며, 그중 인기 많은 로맨스와 판타지를 전문으로 하는 CP가 전체의 73.1%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다양성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로까지 연결되고 있으며, 특히 웹툰과 웹소설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노블코믹스는 산업을 더욱 가속화·대량화하면서 문제를 심화시키는 듯하다.

사실 경쟁사회에서 기업이 성공 확률 높은 분야에 집중하고, 정해진 공식에 맞춰 실패 확률을 낮추고, 계속된 생산으로 매출을 높이는 활동에 누가 뭐라 하겠는가? 다만 이런 대량화가 초래한 실패의 경험이 반복적이라는 게 진정한 문제의 핵심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불과 30여 년 전이었다.

이현세 작가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80년대는 한국 만화의 전성시대이자 공장프로덕션 체제가 자리 잡은 시대로 기록된다. 신문 만화, 잡지 만화, 대본소로 이어지는 만화 시장의 확대는 휘하에 팀제로 구성된 수십 명, 혹은 백 명 이상의 제작진을 운용하는 프로덕션도 양산해 냈다. 마치 공장처럼 만화를 생산하기 시작한 프로덕션은 점차 그 생산 방식까지 가져왔다. 규격화를 통한 끊임없는 생산은 이전에 발간된 비슷한 스토리와 결말의 만화를 재생산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다. 독자들은 급격히 흥미를 잃어 갔고, 당시 새롭게 대두되던 새로운 놀이와 문화 등 다른 매체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이야기이지 않은가?

결국 현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대량생산 시스템 속 만화와 만화가는 갈 곳을 잃고, 한국 만화계는 다시 암흑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다행히 그 어둠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디지털 강국에서 생존한 만화가들은 웹툰이라는 상품과 산업을 개발하고,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시장과 종이 지면의 한계를 넘어 주머니 속의 스마트 폰까지 시장과 독자를 확장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라떼는 말이야~!”라는 영웅담처럼 들리는 이 경험담이 사실은 필연적 흐름이 아닌가를 이제부터 함께 살펴보려 한다. 거기에 왜 매번 똑같은 방정식에서 실패하는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클로저에서 포드를 건너 도요타로: 황금기의 시작과 종말

지리상의 대발견(비록 그들의 시선이지만) 이후 세계는 거대한 시장이 되었다. “수요는 공급을 창출한다.”라는 오래된 격언처럼 새로운 상품을 찾는 세상 덕분에 새로운 운송 기술과 장비가 빠르게 준비되었다. 이제 가내수공업은 도시나 공장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기술과 자본은 공장에서 임금을 받으며 일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농촌 역시 시장의 확대로 면직물의 수요가 늘어나 땅을 가진 지주와 부농들이 일손이 적게 드는 양 목축지를 선호하게 되면서 농경지를 목축지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소유 개념이 모호한 공유지(共有地)나 경계가 모호했던 사유지에 울타리가 쳐진 것이다. ‘울타리 치기 운동인 인클로저(Enclosure, 종획운동)였다. 결국 농촌에서 울타리 밖으로 내몰린 농민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도시로, 공장으로 몰려들었다. 공장과 임금노동자라는 자본주의의 풍경이 만들어졌고, 도시의 항구와 철도를 통해 그들이 만든 제품들이 전 세계로 뿌려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각 공장에서 제각각 제품을 생산하다 보니 같은 제품이라도 품질이 일정하지 않았고 낭비되는 시간과 자원도 많았다. 그래서 프레더릭 테일러(Frederick W. Taylor)는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을 구상하고 편성하는 기획 단계와 이를 실행하는 노동 활동 단계로 분리했다. 또한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을 단순화·세분화하여 표준화했다. 그런 다음 제품을 생산하는 공정마다 단순 반복적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을 배치했다. 이리하여 공장은 숙련 노동자 중심의 생산 현장에서 제품을 구상하고 기획하는 소수 기술자와 이를 실행하는 다수의 단순 기능공이 공존하는 형태로 바뀌기 시작했다.

점차 단순화, 기계화된 당시의 모습을 우리는 찰리 채플린의 고전 중 고전인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만날 수 있다.

 

▲ 영화 '모던 타임즈'

영화에는 톱니바퀴와 컨베이어벨트가 나오는데, 이는 포드주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의 구축과 그 성공의 신화를 세계로 확장한 이가 바로 포드 자동차의 창립자인 자동차 왕헨리 포드였기 때문이다.

포드는 테일러주의에 컨베이어 벨트라는 이동식 생산 공정을 도입함으로써 노동과정을 하나의 라인으로 통합하였다. 벨트를 따라 제품이 이동하는 단계마다 해당 부품을 조립하는 방식의 일관 생산 공정이 탄생한 것이다. 재미있는 건 포드가 20세기 초 미국 시카고 도축장의 시스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은 골드러시, 서부 개척, 그리고 광활한 농장의 설립으로 노동자도 소고기를 먹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소고기가 유럽 이민자들과 유럽의 대규모 자본을 끌어오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도축장은 좀 더 세분화·전문화되었다. 그때 포드가 본 시카고의 도축장은 소의 도살, 절단, 분류, 세척, 손질, 포장 구역으로 구분됐고, 모든 과정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해 처리되었다고 한다. 포드는 도축장의 소 해체 과정을 자동차 조립 과정에 정반대로 적용하였고, 그 방식으로 대량 생산된 첫 포드 자동차가 '모델 T'였다.

 

▲ (좌) 헨리 포드 / (우) 포드의 '모델 T'

이로써 자동차 1대당 조립 시간은 약 6시간에서 1시간 40분으로 줄었고, 생산량은 191019천 대에서 191427만 대로 급증했다. 사족을 붙이면,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인 '캐피털리즘(capitalism)'''를 뜻하는 '캐틀(cattle)'에서 파생된 단어라 하니 가 미국과 자본주의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당연히 포드주의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자본주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그런데 승승장구할 것 같던 포드주의는 1960년대 후반에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동차가 드물었던 시대에는 소비자들이 포드 자동차의 T 모델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가 대중적으로 보급되자 사정은 달라졌다. 소비자들은 각자의 기호에 맞는 색상과 기능을 갖춘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 획일화된 상품만을 쏟아내는 포드주의 시스템이 아니라, 소비자 기호에 맞게 제품을 생산하는 유연한 생산 체계(FMS)가 필요해졌다.

결국 산업현장은 언제나 그렇듯이 새로운 해답과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도요타에서 시작되어 일본의 성공 신화를 대표하던 린(Lean) 생산 방식이 주목을 받았다.

은 간단히 말하면 JIT(Just-in-Time),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제품을 생산해 내는 방식으로, 다른 표현으로는 유연생산방식이라고도 한다. 린의 핵심은 공정 단계를 아주 세분화하고, 각 단계에서 재빠르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사실 유연생산방식은 기존 방식의 대안이라기보다 보완이나 새로운 경로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80년대부터 90년대 자본주의 심장을 강타했던 일본 제조업의 성공을 설명해 주던 방식이었고, 이후 50년간 제조부터 경영, 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활용돼 온 이론이자 시스템임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이 시스템의 성공을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린 생산방식은 기업과 여러 납품업체 간의 끈끈하면서도 장기적인 유대 관계(Single source/Long Term commitment)안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시장에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협력업체를 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그 협력업체가 자체적인 혁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더욱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의 상징과도 같던 도요타마저도 최근 협력업체를 기만함으로써 일본 경제를 충격에 몰아넣은 게 그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문화산업의 진화와 웹툰 생태계가 경험한 데자뷔

이렇게 인류가 생활과 그 범위에서 거대한 변화를 겪던 시기, 중상주의가 발현되며 세계가 하나가 되고 놀라운 기술과 도시의 마천루가 솟아오르는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한국 웹툰 산업과 묘하게, 어쩌면 당연하게 데자뷔를 이루고 있다.

먼저 한국의 창작자들은 디지털 세상이라는 신대륙을 발견한다. 19993월 말 ADSL 기반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고 7개월 후인 10월 말에 국민 PC가 국가 주도 아래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초고속 인터넷과 PC가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텍스트만 넘나들던 가상의 공간에서 나아가, 만화와 이미지도 올리고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빨라진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덕분에 서점이나 만화방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만화는 인터넷을 통해 안방의 PC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새로운 시장과 공간이 발견되었으니 이제 필요한 건 거기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웹툰의 어원은 World Wide Web() + Cartoon(만화)으로 1999년 초 처음 만들어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2003년 포털 다음(DAUM)’은 기존 다음 만화서비스와 별개로 다음 만화속세상이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파페포포 메모리즈>, <포엠툰>, <스노우캣> 등 가능성을 보여주는 성공이 몇 년간 이어졌다. 그리고 200310월 강풀의 첫 번째 장편인 <순정만화> 가 대단한 흥행을 기록하면서 웹툰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 이후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개이다. 한국의 작가들은 디지털 미디어에 최적화된 세로 스크롤과 스토리텔링 방식을 통해 웹툰이라는 상품과 그 생산, 유통(독서 및 스트리밍 등) 방식을 표준화·대중화 해낸 것이다.

하지만 초고속인터넷이 울릉도와 마라도까지 깔리던 시절, 대중은 환호하며 더 많은 작품, 아니 상품을 소비하고 싶어 했다. 그렇다고 상시로 제공할 수 있는 제품, 즉 만화를 바로 생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 한국만의, 웹툰만의 인클로저가 필요했다. 전문적이고 숙련된 만화작가가 아닌 자유롭게 참여하고 반복해 생산할 수 있는 절대다수의 작가와 스토리 같은 재료가 필요해진 것이다. 먼저 다음카카오가 2015~16년에 노블코믹스를 처음 시작하면서 웹소설에 기반을 둔 웹툰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소스의 공급 방식이 도입되면서, ‘노블코믹스는 웹툰의 대량생산과 함께 2000년대 이후 몇 년간 웹툰 업계에 대표적인 먹거리를 만들어주었다.

이제 창작 생태계에 투입된 무수히 많은 스토리를 매주 새로운 웹툰을 제작하는 과정, 즉 컨베이어 벨트가 필요했다. 작가 중심의 마감으로는 매달 천 편에 가까운 연재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했다. 연재는 지켜져야 하고, 공급은 계속되어야 했다. 공정을 세분화·표준화하면서 납기를 맞추는 스튜디오가 빠르게 생겨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만화계는 그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편이었고, 또 디지털 시대에 맞게 무척 유연했다. 매달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이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배경과 함께 플랫폼에 등장하였다. 그리고 그건 포드주의의 신화처럼 2조 원이라는 놀라운 매출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 부천 웹툰융합센터를 찾은 망가주쿠

지난가을, 일본 도쿄의 만화학교 망가주쿠가 부천 웹툰융합센터를 찾았다. ‘칸 만화 제작의 모든 것이라는 주제의 워크숍과 함께 망가주쿠의 비전과 시스템을 듣는 시간도 함께 준비되었다. 그때 재미있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망가주쿠에서 한국 웹툰의 세분화·전문화된 협·분업 시스템을 일본에 정착시키고 있다는 말이었다.

일본은 북미와 더불어 가장 거대한 만화시장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만큼 양적·질적으로 탄탄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 웹툰 플랫폼 역시 일본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글로벌화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의 만화 산업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작가 중심의 창작과 편집자가 참여하는 출판 중심의 유통이 여전하다. 어찌 보면 길드 형식이 여전히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요즘 유행하는 중세 판타지 속의 시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에 비해 기획과 스토리, 콘티, 선화, 채색, 배경, 후보정이라는 단계별 역할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작업이 이루어지는 한국 웹툰의 방식은 확실히 자본주의적인 생산방식에 가깝고 현대적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의 필요와 한국에서의 시스템은 약간 차이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일본 역시 시장의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 최근 몇 년간 일본의 IT 기업과 더불어 한국, 그리고 아마존, 애플과 같은 북미의 글로벌 플랫폼이 일본의 디지털 만화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예전 같은 메가 히트작이 드물어지고 독자 및 소비층 문화가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 생산방식은 점차 수익률이나 가성비가 낮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구축된 비용의 구조는 유지되면서 치열해진 경쟁에 지친 젊은 작가들이 등단과 연재보다는 어시스트나 기타 보조적인 역할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보조적인 일도 열심히만 하면 충분히 저녁이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효율화의 일환으로, 동남아 등이 참여하는 글로벌 분업화를 꿈꾸는 망가주쿠가 한국적인 웹툰 공정의 세분화를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 당시 비전 발표에서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의 저녁이 있는 삶은 사뭇 다르다.

무한히 자유로운 도전의 기회와 다르게 무한히 좁아지는 등단의 기회. 간신히 등단하더라도 소수 플랫폼에서마저 상위권이 아니면 어시스트 비용조차 감당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등단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꿈의 직업에서, 불확실하고 모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예술가의 삶이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많은 학생은 직장인으로서의 안정적인 생활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플랫폼이 사라지면서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구축된 스튜디오들도 생존 위기에 내몰렸다는 사실이다. 최소한의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해 줄 공간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결국 한국 웹툰 생태계는 새로운 생산의 공식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새로운 생산방식을 위한 문화상품만의 방정식 찾기

한국 웹툰 산업의 위기는 상품 자체, 즉 웹툰을 비롯한 예술 작품이 가지는 고유의 특징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다시 자본주의 초기의 비판과 우려로 돌아가 보자.

자본주의의 정착과 확산은 생산방식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에 기대고 있다. 그 발전은 점차 크고,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예술을 비롯한 문화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1900년을 즈음해서 기술복제는 이미 일정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즈음의 기술복제는 전래적인 예술작품 전체를 복제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또 이러한 영향을 통하여 예술에 깊은 변화를 끼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적 처리과정 속에서도 그 자체의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바가 되었다. _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현대에 접어들면서 예술과 콘텐츠의 변화는 기술 발전, 특히 디지털 미디어의 영향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창작 예술과 콘텐츠는 물리적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해졌다. 그 안에서 이루어진 복제와 확장은 새로운 재미와 가치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내고 있다.

이런 예술과 콘텐츠의 확산, 즉 대중화는 곧 상업화이기도 하다. 새로운 공간에서의 활용과 복제는 예술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변모하는 과정이며, 이는 예술의 소비 패턴과 생산 방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술의 소비가 일반화되면서 예술 작품은 이제 미적 가치뿐 아니라 판매 가능성과 소비자 취향을 고려한 창작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상업화는 어떤 면에서 예술 산업의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이다. 산업은 예술 작품을 다양한 방면에서 수익을 발생시키는 상품으로 생산·유통하고, 이는 다시 작가들의 창작활동에 마중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술의 상업적 성공은 창작과 그 향유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될 위험을 항상 내재하고 있다. 특히, 대중문화의 강세는 문화 다양성의 축소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대중들이 선호하는 특정 스타일이나 장르가 시장을 지배하면 그 외의 다른 예술 형태나 소수 문화 또는 장르가 시장에서 밀려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묘한 아이러니는, 예술이 상업적 성공을 위해 대중의 취향에 맞추다 보면 본래 가치인 창의성과 독창성이 간과되고 손상될 가능성을 늘 인지해야 함을 뜻한다. 그만큼 예술이 가지는 가치는 독특하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예술이 시장에서 거래된다는 것은, 그것이 상품이기 때문이다. 상품이 상품으로서 기능하려면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가 있어야 한다.

사용 가치는 상품이 실제로 사용될 때 얻는 유용성이나 만족감이다. 빵을 먹어서 얻는 배부름과 같은 것이다.

교환 가치란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가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와 교환될 때 가지는 비율, 즉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치를 의미한다. 교환 가치는 상대적이며 주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형성· 변동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사용 가치는 같은데, 교환 가치는 다른 경우가 발생한다. 같은 가방이라도 명품이 수백 배 비싼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은 예술로서의 독특한 사용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며, 그 가치를 교환한 수 있는 가격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예술은 예술로서의 고유한 가치,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완벽한 복제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한 가지 요소가 빠져 있다. 그 요소는 시간과 공간에서 예술작품이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 다시 말해 예술작품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에서 그 예술작품이 지니는 일회적 현존성이다. (중략)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성에 함께 포함되는 것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예술작품이 겪게 되는 물리적 구조의 변화와 소유관계의 변화이다. (중략)

원작 Original의 시간적 공간적 현존성은 원작의 진품성이라는 개념이 내용을 이룬다. (중략)

일반적으로 진품성은 위조품이라는 낙인이 찍힌 손으로 만든 제품의 복제에 대해서는 그 권위를 백퍼센트 유지할 수 있으나 기술적 복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완전한 권위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기술적 복제는 원작에 대해서 수공적 복제보다 더 큰 독자성을 지닌다. 예컨대 기술적 복제는 사진에서, 인간의 육안으로는 미치지 못하지만, 시각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는 있는 렌즈에 의해서는 포착할 수 있는 원작의 의도를 두드러지게 나타낼 수도 있고, 또 확대나 고속촬영술과 같은 기계적 조작의 도움을 받아 자연적 시각에 의해서는 포착될 수 없는 이미지를 고정시킬 수가 있다. 기술적 복제가 독자성을 지니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기술적 복제는 원작이 포착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원작의 모상을 가져다놓을 수가 있다. 기술적 복제는 수용자들로 하여금 사진이나 음반의 형태를 통하여 무엇보다도 원작의 모상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만든다. _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예술의 교환 가치는 작품의 미적 가치와 다르며, 시장 상황, 작가의 명성, 작품의 희소성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대중 예술은 상업적인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기에 대량 생산 및 소비를 통해 교환 가치를 창출하면서 금전적 가치를 극대화하려고 한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예술의 교환 가치와 상업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대중 예술이 이윤 추구에 매몰되어 예술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의 생산·유통 방식에서 창작과 콘텐츠만은 예외라고 여기는 자부심이 있었다. 무한 공급되는 제품에 의해 유지되는 자본주의 상품시장과 달리 예술과 콘텐츠는 무한 반복과는 다른 차별화된 서사와 이미지, 그리고 공감으로 그 가치를 보전한다는 것이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산업에서는 똑같은 장면이나 내용을 다시 소비하지 않는 소비의 비반복성이 중요한 기준이 되어 왔다. 그런데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이런 상식과 자부심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느낌이다. 생산과 소비 사이의 희미해지는 경계가 창작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복제의 일반화와 그 고유의 독자성이 발현되면서 소비의 비반복성이라는 신념은 약화·수정되고 있는 추세다. 언제부터인가 익숙한 캐릭터가 나오면 환호하기 시작했고, 쥬라기 공원의 공룡은 수없이 복제되고, 스파이더맨과 슈퍼맨 역시 세대에 맞춰 다시 태어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복제의 통제력 자체가 상실되고, 오히려 방조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대량생산 시대의 웹툰 역시 복제의 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환생의 환생이 다시 환생하거나, 회귀로 또 다른 세계와 캐릭터가 반복되는 미로에 빠져 있는 듯하다.

다만 같은 듯 다른 이 차이는 예술 작품 또는 콘텐츠가 가지는 독자적인 아우라에 기인한다. 복제의 독자성이 인정받는가 하는 문제라는 뜻이다. 이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 예술과 콘텐츠를 통해 얻으려는 사용 가치의 효용성은 급격히 떨어지게 되고, 교환가치 역시 평가 절하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결국 문제는 환호와 기피나 싫증을 가르는 기준이고, 이는 이전 실패의 공식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미 한국 웹툰 산업과 창작의 생태계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연재 중인 작품을 위주로, 작가와 소수 인원만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현재와 같은 시장 상황에서 이쪽의 수익률이 높고 생존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는 포드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던 유연생산시스템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책임과 신뢰 그리고 지속적인 혁신이다. 창작이 비록 복제라 해도 아우라를 담을 수 있는 시간과 비용에 대한 책임, 그리고 새로운 차별성·다양성을 만들어내려는 끊임없는 내부 혁신의 시스템과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다면 그건 요즘 자주 언급되는 위기의 외부화일 뿐이다. 고용이나 책임이 아닌 경쟁과 선택을 통해 수익률과 위기를 넘기는 것이고, 책임을 작가에게, 개별 창작자에게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기계 복제 시대의 총아는 어쩌면 K-콘텐츠 업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한국의 콘텐츠와 제작자들은 놀라운 가성비와 유연성으로 한류의 돌풍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빠른 디지털 보급률과 그에 기반한 유연하고 속도감 있는 창작·스토리텔링으로 세로 미학과 웹툰 산업을 일궈낸 것이 대표적 예다.

복제품은 그 자체로 고유의 아우라를 만든다고 했는데, 이 당시 한국의 콘텐츠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만화의 예술성은 논하는 게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콘텐츠로서 대체 불가능한 교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본연의 차별성과 아우라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이를 논할 때이기도 하다. 살펴보았듯 속도전의 현대에서 한국 웹툰 산업은 자본주의 이행기와 성장기를 빠르고 압축적으로 지나왔고, 이제 위기 속에서 지속 가능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컨베이어 벨트의 수명이 끝나가면서 다양한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 글로벌 전략이나 구조 개편 등도 그중 하나다. 여기서 이전의 실패가 다시 환생하는 걸 막기 위해서는 해답의 전제조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 단지 눈앞의 성공과 수치상의 매출에만 매달리게 된다면, 그래서 지원과 환호를 킬러 콘텐츠에만 보낸다면 (사전에 알 수 없음에도), 결국 몇몇 재기 발랄한 작가만 살아남고 국외 자본에 의해 하청공장이 되는 글로벌 분업에 강제 편입되는 과거가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진이미지

이철호

만화웹툰전문매거진 위클리툰 대표기자 
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