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된 만화, 산업이 된 웹툰의 길 찾기 : K-웹툰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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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플랫폼과 웹툰의 여정, 그 화려함과 공허함 사이의 오늘

플랫폼 독점과 규율 속에서 웹툰 노동의 소외 극복 및 창작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 확보하기

2025-09-29 이철호

문화가 된 만화산업이 된 웹툰의 길 찾기 : K-웹툰 경제사

2화-플랫폼과 웹툰의 여정, 그 화려함과 공허함 사이의 오늘
_웹툰 노동과 플랫폼 권력의 시작과 창작 생태계의 위기

시대와 미디어의 변화는 스토리와 장르뿐만 아니라 미학과 산업의 구조 그리고 노동의 방식을 변화시켰다. 99년부터 시작된 한국 작가들의 디지털 만화 적응기는 특유의 개성과 유연한 적응력으로 세로 스크롤의 웹툰이라는 장르이자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이는 인터넷 보급과 디지털 시대의 산업구조와 예술의 적절한 타협을 전제로 한다21세기 문화예술은 디지털과 플랫폼을 기반으로 신박하게 발전하는 듯 보였고, 거기서 K-웹툰은 새로운 모델이자 엔터산업의 원천으로 주목받았다.

그렇지만 경쟁의 기회이자 자유는 곧 책임과 관리의 부재이거나 새로운 통제이기도 하다. 독과점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위기를 가져왔지만, 디지털 시대의 플랫폼 독점은 교육되고, 감시에 적응한 개인(과 욕망)에 의해 용인되고 있다비록 그 통제와 향락의 달콤함 간 거래를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위기가 어디서 준비되고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은 필요할 듯하다. 그게 바로 플랫폼과 웹툰 노동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지털의 스밈, 플랫폼의 전성시대

우리는 디지털 시대이자 플랫폼의 시간에 살고 있는 듯하다. 초고속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은 일상과 플랫폼의 거리를 없애 버렸다. 우리는 손바닥 안을 보면서 물건을 구입하고, 음식을 배달시키며 택시를 호출한다. 남는 시간에는 웹툰과 웹소설을 보고, 여행을 위한 숙박을 예약하며, 만나지 않고도 친구들과 일상의 고민을 공유한다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플랫폼은 이제 일상과 산업 그리고 미래까지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단어가 되었다. 단어에 적용해야지만 스마트한 일상도, 스마트 리치의 성공도, 자유로운 시간과 재능을 과시하는 셀럽도 될 수 있게 되었다그런데 플랫폼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알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기 위해 설레던 마음으로 기다리던 기차역의 플랫폼은 어떻게 우리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게 되었나?

 ▲ 유럽 기차역 플랫폼

플랫폼이란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평평하거나 바닥보다 높게 돋워 만든 대(), 다수가 수용하는 원리/정책, 의견/정보를 나누는 매체, 뭔가를 덧붙일 수 있는 기반/근거, 공통 구성품, 서비스 제공자 등을 가리킨다고 한다현실에서 플랫폼은 상황에 따라 기술, 인프라, 유무형의 상품, 사업, BM, 기업, 기업생태계(Business Ecosystem) 등을 가리키는 복잡한 개념이기도 하다. 이런 복잡성이 또한 플랫폼의 특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처음 아마존이 도서 유통업을 시작할 때(1994년 창업)만 해도, 실패를 예견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류비용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저주와 같은 선언은 몇 년째 무섭게 쌓이는 적자를 통해 입증되는 듯했다. 하지만 쿠팡의 몇 년 전 상황과 같이 아마존은 인터넷서점 유통업을 넘어 모은 영역을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성장하였다. 단지 현대적인 기술과 인프라를 활용한 세련된 중개업에 가깝던 기업이 현대 디지털 경제와 일상을 연결하는 단어의 상징으로 성장한 것이다.

 

1990년대 인터넷의 상용화와 더불어 플랫폼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하는 정류장에서 디지털 경제를 상징하는 생태계로 발전했다. 이제는 수단이었던 플랫폼(platform)’이 목적인 경제를 주도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가치로 평가받는 애플, 아마존, 구글, 메타(구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의 기업은 모두 플랫폼 기업이다. 맥킨지(McKinsey)2050년까지 전 세계 기업 매출의 30% 이상이 플랫폼 비즈니스를 통해 이루어지리라 예측했고, 한 조사에서는 2024년 기준 전 세계 100대 유니콘 중 48개가 플랫폼 기업으로 나타났다.

이런 디지털 경제와 플랫폼을 현실로 다가온 건 아무래도 애플의 아이폰영향이 크다. 허공을 떠다니던 디지털 세상이 손안으로 들어왔고,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기업이 그들만의 무대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만으로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그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진입한 이들은 또 다른 생태계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하였다그러면서 단지 정보검색의 통로이자 메일을 주고받던 포털과 사이트들도 점차 플랫폼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두 명 이상의 그룹들이 상호작용 하도록 만드는 디지털 기반 시설인 플랫폼은 재화, 서비스 및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주체가 아니라 단지 개인들의 생산 및 소비 활동을 중개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즉 우리 일상의 모든 범위를 연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플랫폼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규모의 경제범위의 경제와 같은 것들이다. 플랫폼 규모의 경제는 플랫폼에 더 많은 참여자(공급자와 수요자)가 모일수록 플랫폼의 가치와 효용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플랫폼에 더 많은 수요자(: 구매자)가 모이면 공급자(: 판매자)에게도 매력적인 시장이 되고, 반대로 더 많은 공급자가 참여하면 수요자에게도 다양한 선택지와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는 데이터 축적과 활용을 통해 맞춤 서비스가 가능하게 하고, 거래 비용을 절감시키며, 새로운 사업자들이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해준다.

범위의 경제는 기업이 단일한 생산 시설이나 운영 방식을 통해 여러 종류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여 발생하는 비용 절감 효과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구글의 안드로이드 OS는 수많은 스마트 기기에 포함되어 생산 비용/시간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타 기업이 그것을 활용해서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개발-판매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가 있다. 플랫폼은 이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의 활동 기록을 데이터로 가공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또한 플랫폼의 콘텐츠나 서비스를 소비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추가 이용자들이 유입된다.

플랫폼은 이를 위해 때로는 이용자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메일이나 정보검색과 콘텐츠 제공 등을 무료 또는 조건부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이용자를 모으는 한편 이들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광고 등을 상업적 이득을 획득하는 것이다. 또한 네트워크 효과는 플랫폼을 독점기업으로 만든다. 플랫폼 서비스는 이용자가 많아야 가치가 커지기 때문에 특정 플랫폼으로 수요자가 집중되는 경향성이 있고 그래서 플랫폼 신규진입이 까다로워진다. 이때부터 플랫폼은 단순한 매칭 기능을 넘어 경쟁의 규칙과 원칙을 정하는 등 지배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전에 자본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주체였다.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이들의 작업을 조직하며 시장에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이윤을 획득한다. 이에 반해 플랫폼 소유자로서의 자본은 시장영역 외부의 사적인 영역에 존재하는 여유 재화, 자원, 시간, 노동력 등을 포섭하고 이로부터 수익을 창출한다.

문화산업도 플랫폼화되면서 사람들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듣고, 만화와 소설을 구독하고, 유튜브(Youtube)로 개인 방송을 청취한다.

이때 플랫폼은 이용자의 데이터에 대한 배타적 접근권을 가지는데 이 데이터를 가공분석하여 상품화하며, 이용자들은 플랫폼 활동 중에 각종 정보를 남긴다. 이렇게 집적된 정보들을 가공 및 분석하여 개인맞춤형 광고 상품 등을 개발함으로써 수익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구글(Google)과 유튜브의 전체 수익 중 8090%가 광고 수익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플랫폼은 이용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요금을 책정하기도 하고, 자본시장에서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수익을 내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플랫폼은 스타트업으로 출발하며, 플랫폼 이용자들의 규모와 그에 따른 미래 가치에 근거해서 자본시장에서 투자를 유치한다. 이 투자의 금액은 종종 플랫폼이 현재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더 크기도 하기에 오히려 이 경로가 궁극적인 목표인 창업자도 적지 않다. 그를 위해 플랫폼은 가능한 한 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이다.

 

▲ 만화웹툰 상품 구매경험: 만화규장각 굿즈 

웹툰 창조와 노동의 자유

플랫폼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유인으로 예술과 콘텐츠만큼 좋은 것은 없다. 당연히 창작자들이 플랫폼 주변에 모일 다양한 무대가 마련되고, 이는 우리 일상의 소비 영역만이 아니라 창작 노동의 방식 역시 크게 변모시켰다아직 플랫폼이 활성화되기 전인 90년대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 통신의 시대였다. 그때 이미 94년부터 만화 서비스가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시각적인 콘텐츠가 공유되기 시작한 것은 초고속 인터넷서비스가 시작된 90년대 말부터였다. ADSLVDSL 등이 등장한 이후인 90년대 말부터 아마추어 작가들이 인터넷에 웹툰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즈음,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스노우캣><마린블루스>, <파페포포 메모리즈>, <포엠툰> 등과 같은 인터넷 만화가 등장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 파페포포 메모리즈
출처: 교보문고

<파페포포 메모리즈><포엠툰>은 온라인에서 인기를 바탕으로 오프라인 출판으로 이어져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감성적인 이미지의 서사가 인기가 있음을, 그리고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터넷 만화 서비스는 단편 에피소드 중심이거나 기존 만화를 올리는 방식이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3년에 다음에서 다음 만화 속 세상이라는 포털 웹툰 연재 서비스부터였다. 그리고 그해 10월 강풀의 <순정만화>가 첫 번째 장편으로 연재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 강풀 순정만화
출처: 교보문고

이때부터 당시 경쟁 중이던 엠파스파란’(파란 카툰), ‘네이버’(네이버 웹툰), ‘야후! 코리아’(야후! 카툰 세상)와 같은 포털에서 웹툰 서비스를 잇달아 열었고,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 양영순의 <1001> 등 히트작도 이어졌다. 본격적으로 웹툰의 시대, 콘텐츠 플랫폼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 네이버웹툰 (좌)메인화면, (중)베스트도전, (우)요일별 웹툰

단지 기성작가들의 공간 이동뿐만 아니라 만화가와 만화가 지망생들이 거기에 모이면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거대한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했다. 이런 집중의 시작은 유희의 자유, 기회의 보장 그리고 비대면의 익명성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한국 만화계는 90년대 접어들면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누군가는 암흑기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출판만화 시절에는 전문 작가로 등단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경로, 또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유명 작가의 문하생이 되는 것이었다. 등단 자체도 쉽지 않고, 그때까지 참고 견뎌야 하는 시간도 길었다. 그런데 그 경로마저도 협소해진 것이다.

그때 누구나 만화를 올릴 수 있는 인터넷 세상이 열린 것이다. 본인의 가장 즐거운 유희를 세상에 내보일 수 있게 되었고, 자신과 취향이 같은 이들과 소통하였고 가끔 그것만으로 등단도 가능해진 것이다. 게다가 독자들의 비판이 있지만, 누군가를 마주 볼 필요도 없으며, 비판과 인고의 시간이 감수할 필요도 없이 자신의 기획과 스토리 그리고 그림으로 경쟁 또는 놀이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다 웹툰의 탄생과 정착에 주도적 역할을 한 포털 사이트인 다음네이버에서는 아마추어 작가의 도전과 참여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냈고, ‘도전 만화’, ‘웹툰 리그는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새로운 무대가 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예비 작가가 플랫폼의 사용자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점차 아마추어 작가로서 창작 활동을 하여 독자를 끌어들이고 그리하여 정식 연재 기회를 얻는 방식은 점차 대세가 되어갔다. 몇몇 작가들은 연재를 넘어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했다. 이때부터 예비 작가들은 꿈과 욕망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단순한 유희로 지겨운 임금노동자에서 벗어나 부와 명성이 있는 셀럽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거기에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투여하는 게 아깝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본인의 능력이나 기회 또는 운의 부재와 경험만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들 개인의 무모한 경쟁과 유희로서의 도전은 플랫폼의 범위를 확장하고, 데이터와 경쟁력은 강화해 주었다.

그렇게 만화 산업은 변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만화 산업의 온라인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단지 연재뿐만 아니라 웹툰은 드라마나 영화의 원천으로 주목을 받았고, 글로벌 OTT를 통해 전 세계로 유통되고 있다. 이제 작가나 예비 작가는 자유롭다. 고용주도 없고, 시간을 관리하는 이들도 없다. 하고 싶을 때 자유롭게 작업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플랫폼도 자유롭다. 그들이 무대를 열면 예비 작가들이 알아서 채워준다. 그중에 그들의 기준에 맞는 작품을 선택해 연재를 올리거나 2차 콘텐츠로 확장하면 된다. 책임져야 할 작품도, 작가도 없다. 플랫폼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집합과 선택의 장이 되는 듯하다.

 

소외와 통제 그리고 책임과 부담의 외부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해진다. 웹툰 작가의 노동은 예술일까 유희일까 노동일까? 그들은 자유롭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이 행하는 콘텐츠는 플랫폼 수익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계약이 되기 전까지 그들의 작업은 아무런 문제 없이 무료로 행해진다.

이런 자유로움은 어떤 면에서 근대 이후 자본주의가 정착하던 과정에서의 노동자들과 같다. 농촌에서 풀려난, 신분제의 제약을 떠나 도시로 온 노동자들은 봉건제에서 자유롭고, 생산수단에서도 자유롭고, 본인의 노동에 대해서도 자유롭다. 그들은 자유롭게 자신들의 노동력을 판매하면 되는 것이고, 이들의 노동력은 자본주의와 공장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팔지 않으면 그들은 생활할 수 없기에 그들 자유의 행선지는 매일 아침 공장으로 향하는 정류장의 노동자와 같을 수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더욱 불리하다. 예전의 노동자들은 최소한 무급으로 일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교환 또는 거래의 관계에서 애초부터 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사회는 이런 불평등과 그게 초래하는 결과를 배워가면서 그 관계를 가능한 한 보호하고,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웹툰 작가들의 창작 활동, 즉 노동 역시 마찬가지다. 문화 이론가인 이동연 씨는, 예술가에게 '노동''창작'과 분리해 설명할 수 없고, 창작은 노동의 일부이지만 미적 가치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특수한 노동이고, 미적 가치를 생산하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결합된 노동이라고 정의하였다.

따라서 '예술 노동'은 노동과 별개가 아니라 특수한 노동의 형태로서 창조적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며, 일반 노동과는 달리 창의 노동(creative labor)으로 개인의 창의성을 활용한 문화적,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런 문화적 가치의 창출이라는 점, 그 가치의 측정과 활용이라는 점에서 더 특수하고,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로서의 노동은 노동이 아닌 유희로서 취급되면서 플랫폼을 위한 무급노동이 되었다. 웹툰이 거의 전적으로 플랫폼에 의해서 서비스되기 때문에 작가는 플랫폼을 벗어나서는 작품 수요자를 만나기 힘들다. 플랫폼의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플랫폼과 작가의 관계는 불평등하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플랫폼 이용자들의 활동은 데이터라는 자원을 산출하는 디지털 노동(digital labor)이 된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작가는 플랫폼의 기술적 장치와 제도에 의해서 제약을 받으며, 그래서 온전히 자유로운 노동 활동도 하지 못한다. 먼저 대부분의 플랫폼은 연재 결정이 내려지면 그때부터 세이브 원고이자 비축분을 웹툰 작가들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관례적으로 종종 플랫폼이 이를 요구하면서 작가에게 선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웹툰의 채색과 완성은 작가의 책임이 된다. 웹툰은 칼라로 제작된다. 세로 스크롤에 이전과는 다른 식자 작업이나 편집 작업 그리고 배경 작업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출판사나 편집자가 지원해 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제는 온전히 작가 개인의 책임이 된다. 작가는 어시스턴트를 쓰던, 인공지능을 활용하든 아니면 배경 이미지를 구입하고, 결정하고, 행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게다가 작품의 연재 주기는 플랫폼의 기술적 장치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다. 다수의 플랫폼은 요일별로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플랫폼이 이렇게 기술적으로 구현해 놓으면 그 주기는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불변의 법칙처럼 다가가게 된다. 작가는 일주일에 한 화라는 고강도의 노동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플랫폼은 또한 인기 작품의 순위를 공개하고 있다. 작품의 조회수, 독자가 부여하는 작품의 별점, 그리고 가장 인기 있는 작품 10순위 등이 플랫폼의 메인에 나타나도록 하고 있다. 플랫폼의 이러한 디자인은 웹툰 작가가 작품 순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며 이는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 활동을 규율(self-discipline)하게 만든다.

그렇다. 한없이 자유로운 창작의 생태계이자 무한할 듯한 인터넷 세상에 규율이 작동한다. 너무나 당연하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푸코는 우리가 기율 사회(disciplinary society)에 살고 있다고 보았다.

 

▲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출처: 교보문고

감옥이 공장이나 학교, 병영이나 병원과 흡사하고, 이러한 모든 기관이 감옥과 닮은 것이라 해서 무엇이 놀라운 일이겠는가?” 우리는 매 순간 끊임없이 훈육 받으며 살고 있다. 항상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사회에 나서면 더욱 교묘한 훈육의 세례가 더해진다. 푸코는 효과적인 훈육 방법으로 위계 질서적인 감시규범화한 제재’, 그리고 이 두 가지 기술을 결합한 것으로써 시험을 들고 있다우리 삶의 조건을 이루는 시공간 자체가 이미 근원적 감옥을 구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욱 무서운 것은 많은 사람들은 거기에 포섭되거나 설득되거나 세뇌되었다는 사실조차 감지하지 못한 채, 또는 그 질서에 편입되거나 갇혀 있는 걸 그다지 나쁠 것 없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푸코는 근대 권력의 미시적 특성이 덩어리로서의 집단을 더 작은 단위로 개인화하고, 또한 덩어리로서 개인을 미세한 단위로 구분하여 훈련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학교, 병원, 공장, 군대, 감옥과 같은 규율기관에서의 감시, 규범화, 시험 등과 같은 기술을 통해 신체를 매개로 정신을, 행위가 아닌 개인 자체를 처벌하고 훈육하며 더욱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규율기관들은 개인에 대한 지식이 수집되고 개인을 대상으로 한 학문이 가능해지며, 그것은 다시 개인을 통제하고 활용하기 위한 규율을 강화함으로써 권력-지식을 구현한다.

여기에 현대의 규율 권력이자 일상의 질서가 된 플랫폼을 대입해 보자. 개별 기관에서 작동하던 규율 권력은, 어떤 기능과도 통합될 수 있고 사회의 더 중요하고 생산적인 부문을 차지하게 된 판옵티콘(panopticon-개인에 의해 운영되는 감옥)의 메커니즘에 의해 일반화된다. 감옥 체계는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권력 장치에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이며, 이런 질서 즉 감옥의 일반화는 감시와 처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질서의 집행을 통한 권력의 실행, 이는 플랫폼의 확장을 가져오지만, 그것의 자유를 빼앗지 못한다. 플랫폼은 책임질 필요가 없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 서대문형무소 전경 및 내부

웹툰 작가들은 본인들의 유희적 본능이자 욕망에 따라 자발적으로 위계질서에 편입된다. 이전 출판사-작가의 구조에서 발생하는 편집과 프로듀싱을 받을 기회도 없이 매주 새로운 100컷의 웹툰을 연재해야만 한다. 일본 만화는 여전히 1명의 편집자가 1명의 작가와 등단과 연재를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최소한 이거 괜찮다”, “이거 나쁘다정도의 코멘트만으로 연재를 이어가는, 130~40명의 구조는 결국 콘텐츠 질적 저하의 원인이자 된다.

플랫폼은 이런 문제의 해결을 외부의 소스에서 찾는다. 웹소설을 가져와 노블코믹스를 만들거나, ‘플랫폼-제작사(CP)-창작자등과 같은 수직구조를 정착시킨다. 이는 위험의 외부화이기도 하지만, 플랫폼의 장점이자 성장 동력인 혁신과 소통을 가로막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기 마련이다.

 

분업과 협동 그리고 기술과 예술

디지털 기술력을 가진 플랫폼 기업의 경쟁 우위는 기업 내/외부 경계를 초월해서 시장/고객 요구에 빠르게 부응하는 역량에 의해 좌우된다. 그를 통해 규모의 경제나 네트워크 효과를 발생시키지만, 이런 전략 중 일부는 불공정 거래와 혁신 지연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플랫폼 생태계의 리더/오너인 플랫폼 기업은 초기에는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지만, 계속해서 생태계 운영 전반을 장악, 통제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과 생태계를 괴멸시킬 위험 요소를 키울 수도 있다. 그래서 플랫폼 기업이 만든 경제 측면의 역기능을 기업 스스로 또는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이나 EU에서 아마존과 MS를 독과점한 불공정 거래로, 애플은 앱 스토어의 불공정한 거래 조건으로, 메타와 구글 등은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로 규제를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그리고 근로자도, 사업자도 아닌 플랫폼 노동자인 유튜버, 웹툰작가, 문화예술가 등 콘텐츠 창작자를 제3의 창업을 통해 산업역군으로 전환한 핀란드나 스웨덴의 사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플랫폼의 가장 주요한 특징이자 위험 요소는 소수 플랫폼이 살아남는 승자독식 구조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21세기 자본주의의 추진 원료가 되는 데이터는 많이 쌓일수록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경쟁과 독점은 필연적이다. 아마존은 2018년 미국 전자상거래 절반을 차지했고 구글은 검색엔진의 88%를 차지했다우리나라 웹툰 플랫폼은 이미 네이버카카오두 개 업체가 과점하고 있다. 이러한 과점 현상은 전 세계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 외의 다른 플랫폼이 창작자에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창작자들은 이용자 수가 많은 네이버나 카카오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점시장에서 대형 플랫폼과 개인에 불과한 창작자의 관계가 공정하게 형성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니 플랫품의 역기능이나 한국 웹툰 산업에서의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보의 불균형의 해소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플랫폼과 창작자가 서로 정보를 교환해야 하는데, 개별 창작자들이 그러한 요구를 할 힘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그 주장과 요구를 플랫폼이 수용할 필요도 없다. 독립적인 게약자이고, 플랫폼은 당사자들을 위한 무대만 제공하기 때문이다. 결국 작년 웹툰계를 흔들었던 공모전 혐오 표현과 이어진 불매운동은 이런 책임의 자유가 방기가 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들이며, 필연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시도 그리고 계약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를 교섭이라고 표현한다면, 창작자들에게 교섭, 특히 개별 창작자가 아닌 창작자 집단에 교섭할 권한과 힘을 주어야 한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독점과 불공정을 제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래 상대방에게 동등한 위치에서 교섭할 힘을 법적으로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왜 그래야 하는가? 문제의 핵심은 웹툰 시장의 불공정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콘텐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창작자들이 더 이상 좋은 창작물을 내놓을 유인 자체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창작물의 교환가치와 사용 가치가 떨어진다면, 더 이상 네트워크효과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 플랫폼은 새로운 무대를 조성하게 되고, 그 생태계의 노동자들은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는 자본주의 세계가 완전하게 물신화, 추상화된 상황에서 예술 노동은 자본주의 내부 모순의 적폐를 가장 노골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역으로 그러한 자본주의의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해방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토픽이라고 말했다플랫폼이 만들어지고, 그 네트워크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웹툰 산업의 활성화가 예술가와 지망생의 유희적 노동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현재 그들의 유희적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소외되기 시작했다. 소외라는 것은 실질적인 집행자, 창작자가 그 결정과 향유에서 배제되는 것을 말한다. 창작의 의지와 혁신이 배제되면 결국 복제로만 끝나게 되고, 예술로서의 교환가치라고 할 수 있는 아우라 역시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이런 지적은 웹툰 산업의 정체기라는 말이 점차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웹툰 산업 전체의 매출의 높아졌지만, 웹툰시장의 평균 매출(작품당 매출, 특히 신작 매출)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런 과포화와 질적 저하와 반복 그리고 수익률 저하를 극복하기 위해 아무래도 완성도가성비중심의 재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이런 방향 역시 개인의 자유에 맡긴다면 책임은 회피될 것이고, 위험의 외주화는 개인의 일탈과 연결의 상실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네그리의 말처럼 해방의 계기 역시 작품과 그 속에 담긴 창작의 노동력과 가치에 의해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산업과 미디어의 활성화를 보여주는 어제이며, 생태계의 위기를 걱정하는 오늘이며, 또한 예술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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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만화웹툰전문매거진 위클리툰 대표기자 
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