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된 만화, 산업이 된 웹툰의 길 찾기 : K-웹툰 경제사
웹툰의 미디어믹스를 위한 필요충분조건
- 웹툰의 산업적 확장과 오류 그리고 존중에 관한 이야기
요즘은 노블코믹스라 불리는 웹툰이 주류가 되었고, 드라마의 웹툰 원작이 목록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많아졌다. 웹소설>웹툰>드라마, 영화라는 K-콘텐츠의 파이프라인이 일상화된 것이다. 이는 아마 수요와 공급이라는 가장 단순한 순환 논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만화가 대여점과 서점을 벗어나 디지털 미디어로 진입해 플랫폼의 입구 역할을 자임하면서 ‘웹툰’은 다수의 대중을 목표로 하는 대량생산의 콘텐츠로 진화했다. 마니아 중심의 수요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광범위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모델은 몇몇 작품의 히트 이후 경계를 허물고 도전하는 작가(또는 예비 작가)들의 자발적인 기획과 개발을 통해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웹툰’이 하나의 문화이자 산업으로 발전하고, 플랫폼의 정기적인 순환생태계와 결합하자 심화된 경쟁과 함께 양적 질적인 가이드라인이 생기면서 자발적인 공급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히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결국 웹툰은 가장 친근한 웹소설을 기반으로 한 노블코믹스로 양적인 공급망과 스튜디오를 통한 양산체계라는,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시스템을 발굴, 정착했다. 이는 웹툰 산업의 규모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또한 시각예술이자 콘텐츠로서 ‘웹툰’의 정체성을 희석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처음 ‘웹툰’이 창작, 공급되기 시작한 지 약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독자들은 나이를 먹었고, 시장의 규모는 커졌지만, 창작자이자 공급자들 역시 현 한국이라는 생태계에서 포화상태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되었다. 게다가 웹툰을 성장시킨 투자의 규모가 작아지진 않았을지 모르지만, 공급자에게 인색해지고 단위 작품에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의 규모 역시 산업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새로운 시장을 찾거나, 단위 IP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다른 듯한 두 개의 해결책은 코로나19와 글로벌 OTT의 활성화에 따라 같은 방향을 보면서 흐르고 있는 듯 보인다. 다만 여기에는 웹툰이 가지는 태생적 특징과 고려가 필요할 듯하다. 그리고 매체와 채널이 많아지고 경쟁이 격화되면서 질적인 문제보다 먼저 양적인 순환과 통로를 만들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스튜디오의 산업 논리 역시 검토되어야 한다. 그것은 반복되어 온 산업의 실패가 반복되는 한국 만화계의 고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장르 간 벽과 편견이 적지 않은 한국 문화산업계의 특징에 대한 이해도 필요할 듯하다. 속도와 경제성 및 뿌리 깊은 편견이 실질적인 구조와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례를 중심으로 실패의 원인과 함께 이런 반복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몇 가지 가능성과 제안을 담아보고자 한다.
Part 01. 성공과 실패의 사례로 보는 웹툰과 미디어믹스
_ 박연조 교수

웹툰의 미디어믹스는 단순한 IP 확장이 아니라, “연출 언어를 옮기는 과정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살릴 것인가”를 가르는 번역 작업이다. 그리고 이 번역에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가 흥행을 좌우한다. 성공한 작품들은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버렸는가. 먼저 성공 사례부터 보자. 첫 번째, 메시지를 잃지 않은 번역의 사례로 〈D.P.〉와 〈이태원 클라쓰〉를 들 수 있다. 〈D.P.〉의 힘은 군대 내 폭력 구조를 불편할 정도로 정직하게 보여주는 태도에 있다. 실사화 과정에서 이 메시지를 옅게 만들었다면, 그냥 평범한 군대 드라마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드라마는 대사 사이의 정적, 병영의 폐쇄된 공간감, 인물들의 억눌린 표정을 영상 언어로 치밀하게 재구성했다. 웹툰이 가지고 있던 ‘고발성’을 순화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성으로 밀어붙인 선택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클라쓰〉도 원작의 과감한 인물성, 직진하는 서사를 그대로 가져오되, 드라마는 군더더기 갈등을 덜어내고 ‘한 인물의 정의감 vs 기득권’이라는 축을 선명하게 남겨 놓았다. 두 작품 모두 “원작을 충실히 재현했다”가 아니라 “원작의 핵심 신념만 남기고 나머지를 재조립 했다”는 점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두 번째, 세계관을 ‘전시’가 아니라 ‘엔진’으로 쓴 경우는 YLAB의 크로스오버 시도, 네이버·카카오의 글로벌 전략에서 공통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먼저 〈부활남〉, 〈테러맨〉, 〈신석기녀〉의 크로스오버는 각각의 서사가 서로를 추진시키도록 설계했다. 네이버·카카오의 글로벌 전략은 “일본·미국·동남아 동시 공급”이라는 유통 확장에 머무르지 않고, 출판·굿즈·게임·OTT를 밸류체인으로 묶으려는 것이었다. “세계관을 넓혔냐”가 아니라 “세계관이 실제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느냐”인 것이다. 성공한 프로젝트들은 세계관이 장식이 아니라 엔진으로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 실패한 작품들은 무엇을 착각했는가를 살펴보자. 첫 번째, “원작 그대로만 가면 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웹툰의 코믹한 과장, 데포르메 표정, 만화적인 묘사를 실사에서 그대로 따라 하다 보면, 2D에서는 매력적이던 요소가 3D 현실에서는 유치함과 어색함으로 변질될 수 있다. ‘직역’에 집착한 나머지 번역으로서의 충실성을 완전히 실패한 케이스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캐스팅 = 성공’이라는 위험한 공식은 캐릭터와 배우를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팬덤을 의식해 ‘원작 캐릭터랑 최대한 닮은 배우’를 내세워도, 그 배우가 그 만화적 감정선·톤을 실사에서 자연스럽게 구현하지 못하면 결과물은 오히려 원작을 반박하는 수준이 된다. 웹툰에서의 비현실적인 미형·성격은 만화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스팅의 기준은 결국 “닮았냐?”가 아니라 “이 드라마의 톤 안에서 설득력 있게 숨 쉴 수 있느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세계관만 확대하고 스토리 동력을 잃어버린 경우이다. 시즌2를 염두에 두고 떡밥만 잔뜩 뿌린다든지 외전·설정 자료집에서나 나올 법한 정보들을 본편에 억지로 끼워 넣거나 팬서비스식 연결 고리를 늘려 놓았다면 정작 현재 시즌의 갈등과 결말이 흐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는 “설명만 하다가 끝난 드라마”가 되고, 팬이 아닌 시청자는 중간에 이탈하게 된다. 세계관은 넓어졌는데, 이야기를 앞으로 밀어주는 힘은 약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성공·실패 사례들을 보면서 미디어믹스 실패를 막는 제작을 한다면 어떻게 할까? 그것은 원작의 핵심 가치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서, 그 문장을 위해 나머지 요소를 과감히 버릴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웹툰을 직역하지 말고 ‘번역’하는 것으로 문법적 스토리텔링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을 말해준다.
실사에서는 연기·조명·편집·음악으로 다시 써야 하고, 캐스팅은 ‘닮은 꼴’이 아니라 ‘톤의 합치’를 봐야하는 것이며, 원작 팬이 아니라 ‘원작을 모르는 시청자’를 먼저 그렇게 될 거라고 보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장르별로 실사화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고, 에피소드 구조를 시즌 아크 구조로 재설계하며, 예산·기술·일정을 냉정하게 보고 ‘축소 전략’을 먼저 세워야 한다. 그래서 “그대로 옮기려 하지 말고, 새 매체의 언어로 다시 써라”라는 것이다.
“원작 팬이 원하는 건 ‘충실한 실사화’ 아닌가?” 흔히 나오는 반론이다. “그래도 팬들은 원작 그대로를 보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과감하게 바꾸면 팬들이 떠나지 않겠냐?”라는 것 또한 일부분 맞는 말이다. 실제로 팬덤은 특정 대사, 특정 장면, 특정 캐릭터 구도가 그대로 나오는 것에서 큰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웹툰 팬덤의 크기는 한계가 있는데 드라마·영화 제작비를 회수하려면, 반드시 “원작을 모르는 시청자” 층이 유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작을 그대로 옮겼는데 결과물이 어색하면, 팬도 만족하지 않겠지만, “그 장면은 나왔지만, 전체적으로는 별로였다”라는 평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번역은, 원작과 다르지만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결과물’을 만다는 것이다. “팬이 원하는 건 직역이 아니라, 그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번역”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재차 강조하지만, 웹툰 미디어믹스의 본질은 ‘확장’이 아니라 ‘번역’이다. 좋은 미디어믹스란, 원작의 가치를 다른 매체 언어로 다시 쓰는 일이다. 웹툰은 세로 스크롤, 텍스트와 이미지의 혼합, 여백의 활용, 심리묘사, 사각형 연출이라는 언어를 쓰는 예술이지만, 드라마·영화는 빛과 시간, 배우의 표정과 움직임, 음악과 공간이라는 완전히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다른데 사전을 안 펼쳐보고 “그냥 옮기면 되겠지”라고 믿는 순간, 실패가 시작된다. 앞으로 웹툰 기반 미디어믹스를 기획하는 PD·작가·제작사라면 “얼마나 크게 확장할 것인가?” 보다 먼저 무엇을 살릴 것인가, 무엇을 버릴 것인가, 어떤 언어로 다시 쓸 것인가 등 이 세 가지 질문을 놓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Part 02. 웹툰 산업과 미디어믹스에서의 존중과 융합의 조건
_ 이철호 평론가
일본은 누구나 인정하듯이 만화 왕국이다. 그렇지만 최근 일본 만화잡지가 고질적인 적자 상태라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슬램덩크>나 <원피스> 이후 소위 ‘메가 히트’작이 나오지 않으면서 일본 만화잡지의 판매량이 정체된 반면, 제작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기 작품의 애니메이션화라는 일본 만화 산업의 가장 대표적인 파이프라인이 글로벌 OTT와 함께 더욱 중요해지고,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다만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의 태생적인 한계와 우려는 산업과 문화계에 여전하다. 산업적인 구조 재편을 넘어 문화적 취향과 선택마저 제한하는 플랫폼에 대한 우려가 점점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자본과 글로벌 유통만을 자랑하는 넷플릭스는 각 지역의 IP 선점과 함께 ‘워너브라더스’ 인수라는 초강수로 이러한 우려를 극복하려고 한다. 그 투자의 결과(계약의 실현 여부부터)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현재의 융합이 위기에 대한 우려를 부식해 줄 단 하나의 묘수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여기서 웹소설>웹툰>드라마, 영화라는 한국적인 파이프라인과 만화>애니메이션이라는 일본의 그것이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직면할 것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미디어믹스? OSMU? 용어와 역할

[그림 1]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와 원작인 일본 라이트노벨
웹툰의 2차 사업화나 망가의 애니메이션화라는 ‘미디어믹스’는 수익의 극대화를 넘어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사실 ‘미디어믹스’라는 건 참으로 다양한 부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채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용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한국은 언어의 유행이 무척 빠른 나라이기도 하다. 불과 10년 전에는 대부분 OSMU를 외쳤었다. 그리고 잠시 ‘융합’과 ‘창의’라는 용어가 유행했었고(물론 지금도 사용하지만, 당시와의 조금 차이를 가지는 듯), 최근에는 ‘미디어믹스’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는 듯하다. 처음 미디어믹스라는 용어를 강하게 인식했던 게 <엣지오브투모로우>라는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때문이었다. 너무 재미있게 봤고, 그 영화가 일본의 라이트노벨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고는 더욱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그때 ‘미디어믹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자, 일본식 조어라면서 불편해했던 이들이 있었음도 역시 기억하고 있다.
그들의 말처럼 미디어믹스(メディアミックス, media mix)는 하나의 상품 또는 미디어 소스를 여러 미디어 형태로 확장하여 판매 및 판촉하는 것을 일컫는 일본식 영어 조어임이 틀림없다. 원래 일본에서 미디어믹스(Media Mix)는 상품을 광고하기 위해 여러 매체를 조합해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였지만 현재는 OSMU와 같은 의미로 확장된 것이다. 영어권의 미디어 프랜차이즈Media franchising이나 Merchandising가 이와 비슷한 표현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 지역과 분야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조어가 그렇듯 가변적이고 확장적이기 때문에 그 뜻 자체에 얽매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일단 현재 미디어믹스라는 개념을 사업화 모델로 만들어낸 미국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1920년대 월트 디즈니가 제작한 《증기선 윌리》가 대박이 나면서 단숨에 스타가 된 미키 마우스는 다양한 상품들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다양한 디즈니의 상품은 관련 콘텐츠와 테마파크로까지 확장되었다. 그 결과 영화 그 자체보다 영화의 캐릭터를 통해 부가적으로 얻는 수익의 비중이 더 커지게 된 경우도 적지 않게 되었다. 스타워즈의 경우 장난감 판매 수익으로 속편을 제작했다고 알려질 정도이다. 이것은 오늘날 마블과 DC 시리즈나 영국의 해리포터 시리즈와 같은 프랜차이즈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라이트노벨 > 망가 > 애니메이션 > 게임 또는 그 순환의 성공 공식이 확고히 자리 잡은 나라다. 게임에서 시작해 다양한 분야로 확장된 <포켓몬스터>나 <나루토>, <유희왕> 등 성공 사례들이 놀랍도록 다양하다. 일본의 서브컬처 시장은 2010년 이후로 미디어믹스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이전의 사례를 보면 미디어믹스는 국민소득이나 문화적 기반 및 시장의 존재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나라가 그렇게 많지 않다. 콘텐츠는 최신 하드웨어처럼 생산의 효율화를 이루기가 어렵고, 소비도 승자독식 형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거대화, 글로벌화 된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자본과 인력 그리고 유통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미디어믹스에 있어서 조금 애매한 면이 적지 않다. 일단 인구수도 너무 적고, 언어적인 장벽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가성비 높고, 스타일이 독특한 한국 콘텐츠는 진입장벽을 넘어 음악과 영화 그리고 만화, 웹툰의 글로벌 시장까지 넘나들었고, 자연스럽게 OSMU 또는 미디어믹스로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특히 2000년대 웹툰 시장의 급성장으로, 웹툰을 축으로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게임 간에 미디어믹스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한 분야는 웹툰이 드라마, 영화로 되는 경우이다.
평론가로 최근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라이너’는 지난 10월 부천국제만화마켓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만화의 영상화, 실사화에 관해 발제를 하였다. 일본은 예전부터 만화의 실사화에 적극적이었고, 한국도 지난 몇 년간 놀라울 정도로 많은 작품을 영화와 드라마로 실사화 했다. 비슷한 과정을 지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라이너 평론가는 한국과 일본은 그 길과 대상이 상당히 다르다고 평가하였다.

[그림 2] <강철의 연금술사> 만화와 실사영화

[그림 3] <진격의 거인> 만화와 실사영화
라이너 평론가는 <강철의 연금술사> 등 몇몇 일본 만화 원작의 영화를 예로 들면서 팬으로서 실사화된 그 영화를 보는 게 고통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일본에서의 (만화의 실사화) 방향이 (튼튼한 시장이 있기에) 오타쿠 팬들에게 어필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은 그 시장 자체가 작다. 인구로도 그렇고, 실질적인 구매력 면에서도 그렇다.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웹툰의 힘에 한국 영화의 흥행 공식과 관객을 결합하면서 성공의 길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게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상업적인 성공 가능성을, <이끼>는 작품성으로 웹툰 원작 영화가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라이너 평론가는 ‘쌍 천만’의 신화를 기록한 <신과 함께>를 이야기하면서 한국 미디어믹스의 과제를 언급하였다. 놀라운 영화의 성공은 원작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었지만, 그 성공이 또한 원작의 존중과 문법의 융합이라는 고민을 남겨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의외로 만화를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된다. 만화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역시 만화(또는 망가) 마니아들의 상식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품에 대한 이해가 얕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본인들은 콘텐츠의 전문가라고 자신하고 있으며, 그건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가장 거대한 문화산업의 중추에서, 놀라운 스토리텔링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본인의 장르와 문법으로 만화와 웹툰을 해석, 각색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물론 그게 정답일 때도 있지만, 문제는 만화나 웹툰 역시 고유의 서사구조와 팬과의 소통과 몰입을 위한 연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 가족과 같은 출판만화와 웹툰 역시 그 변환이 만만치 않음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 미디어의 차이가 주는 소통의 방법은 미묘하고도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원작 작가가 팬들과 이룬 소통과 서사의 특징과 창의성보다 본인 분야에서 경험하고 쌓은 기술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콘텐츠는 원작의 팬과 새로운 관객에게 외면당할 수 있다. 그렇게 최근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실패로 귀결되고 있고, 이는 변환과 믹스에 대한 회의로까지 이어질 정도로 상당한 양과 충격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믹스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웹소설을 웹툰으로 하면 평균적으로 웹소설 트래픽이 한 14% 정도 올라가고, 웹소설이나 웹툰이 드라마로 방영되면 그 기간에 트래픽이 보통 300%~400% 정도 폭증한다는 데이터 때문이다.
이는 분야의 확장뿐만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웹툰은 웹툰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만큼 2차 콘텐츠를 통해 새로 유입되는 독자가 많기 때문이다. 드라마 <여신강림(True Beauty)>이 흥행한 이후 원작 웹툰의 프랑스 구독자는 62만 명으로 급증했으며, 싱가포르 웹툰 독자들은 K-드라마, 영화 등 영상화된 2차 콘텐츠를 통해 웹툰을 처음 접하고 관심이 증대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와 <마음의 소리>가 싱가포르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원작 웹툰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게 대표적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웹툰은 드라마를 바라보고, 또 더욱 당당하게 새로운 각색과 방향, 캐릭터의 수정이 멈춰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정을 막지를 못하고, 또 막을 필요도 없지만 그 실행의 조건과 가이드는 충분히 인식, 공유되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2차 사업화, 미디어믹스는 결국 단순한 직독직해가 아닌 번역의 문제이다. 번역에는 기술과 함께 존중의 자세가 꼭 필요한 것은 이미 상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좋은 번역은 결국 번역가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는 과연 우리가 좋은 번역가, 미디어믹스 전문가나 글로벌 코디네이터가 제대로 양성되고 있는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미디어믹스의 여정과 가능성
미디어믹스는 본질적으로 다양한 경로와 글로벌화를 지향하기 마련이다. 영화와 드라마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굿즈 등에 대해서도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림에 기반을 둔 만화와 웹툰의 특성과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애니메이션은 그중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그림 4] <나혼자만 레벨업> 웹툰과 애니메이션 컷 비교
그렇지만 매력은 두 가지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애니메이션이 웹툰의 독자, 관객층의 확장이라는 기대효과로 이어지기 위한 조건이고, 다른 하나는 제대로 만들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작년 개최된 ‘케이컬처트렌드’에서 서은영 만화평론가는 학생들이 <나 혼자만 레벨업>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거나, 보다가 포기한다는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여기서 한국 웹툰 IP가 애니메이션으로 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의 결핍을 발견하게 된다.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10대부터 40대까지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성장했다. 당연히 기대치와 기준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되기 마련이다. 여기서 과연 만들 수 있는가라는 두 번째 질문이 던져지기 마련이다. 편집자 출신인 한국의 대형 만화출판사의 대표는 한국에는 애니메이션 제작 능력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물론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지만 그게 또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힘들다.
더 근본적인 건 흑백으로 발간되는 일본 만화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시각화되지 않은 것을 시각화시킴으로써 원작 독자들에게 ‘괜찮다’는 만족감을 선사한다. 그에 비해 올 컬러로, 주인공 중심의 속도감을 장점으로 하는 웹툰은 오히려 애니메이션에서 그 섬세함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컷 단위의 정밀함을 연속 이미지가 따라가는 건 비용과 시간 그리고 미디어의 특성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 애니메이션과 웹툰 그림의 비교는 그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웹툰의 애니메이션으로의 전략은 이전 만화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건 웹툰이 가지는 시각적인 특징과 서사구조 자체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에 어렵지만 결코 불가능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경로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다양성의 징표가 아니라 미디어믹스의 다양한 경로 중 하나로 준비되고, 활용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역시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웹툰을 선별하고, 그에 맞게 각색, 융합하고, 또 제작할 수 있는 인력과 시스템을 우리가 갖추고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이를 준비하지 않고 오로지 필요에 의해 애니메이션을 외친다면 결국 예전 되풀이한 실패의 반복으로 귀결될 것이다.
미디어믹스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관심인 굿즈의 영역을 보자. 역시 작년 케이콘텐츠트렌드에서 강태식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굿즈는 서사와 관련된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 웹툰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해서 빠른 진행을 하는 서사를 가지고 있거든요. 보면 <슬램덩크>나 <하이큐>나 <드래곤볼>이나 각각의 캐릭터들을 다 기억할 수 있고 그 캐릭터들의 서브 스토리를 기억을 할 정도로 캐릭터성이 확실하게 부여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근데 웹툰 같은 경우에는 몰입감 있는 빠른 전개를 세로 스크롤 형태로 진행하기 위해서 서사를 주인공 중심으로 맞춰놓은 경우들이 많은데 그런 경우에는 굿즈를 만들었을 때 잘 안될 가능성이 높은 거죠.”
단순히 인기가 있다고 굿즈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굿즈의 기획과 산업의 특성을 어떻게 ‘믹스’시킬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굿즈 사업이나 미디어믹스를 거대한 상업적인 성공만으로 보는 게 아닌가도 묻게 된다. 보통 상업화를 추구할수록 수익만을 치중하느라 본질을 놓치는 경향이 있는데, 미디어믹스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에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이, 현재는 서사나 캐릭터 구축의 시간과 스타일이 굉장히 짧아졌다는 부분이다.



최근 독립만화 마켓이나 독립 출판 관련 행사를 보면 참여나 관람객 모두 생산과 소비의 과정 자체를 축제처럼 즐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생산과 창작이 초기의 신선함과 달리 반복적인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가볍게 자신이 가진 것을 다양하게 분출하고, 나누고, 유통한다. 확장의 모델, 특히 예술과 콘텐츠의 개별적이면서도 숏한 미디어믹스의 사례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경험이 축적되고, 그렇게 분출되는 서브컬처 또는 언더그라운드의 자생력이 분야를 활성화하고, 거대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모델과 인프라가 되는 역주행 방식도 상상할 수 있을 듯하다.
결국 장르와 분야의 결을 이해하고 융합할 수 있는 인력과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는가라는 문제가 (그것을 발견하는 것도 포함하여) 향후 한국의 미디어믹스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최근 웹툰 교육의 글로벌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그게 단지 웹툰의 기술적인 영역에만, 개별적인 경험에만 머문다면 결국 금방 소진되거나 복사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우리 내부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발견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교육과 양성의 프로세스를 고민해 볼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 유행 자체가 교육과 생산이 되는, 좀 더 다채로운 라인들을 만들고, 융합적이고 입체적인 통로를 설계, 안착시키는 미디어믹스를 정착시킬 수 있을 듯하다.
[공동 저자]
박연조
- 만화출판, 웹툰, 애니메이션 창작자
- 광운대학교 정보과학교육원 만화예술전공 주임교수
- 광운대학교 스마트융합대학원 메타융합콘텐츠학과 교수
- 공공기관 웹툰 및 AI 교육자
- <웹툰연출기법>, <다음 화가 궁금해지는 웹툰 연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