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된 만화, 산업이 된 웹툰의 길 찾기 : K-웹툰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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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다양성과 젠더의 정치경제학

젠더 갈등을 '단순한 대립'이 아닌 성장을 위한 '입체적 모순'으로 파악하고, 웹툰 산업 내의 혐오와 대상화를 넘어선 성숙한 소통과 서사가 필요하다.

2026-03-01 이철호

문화가 된 만화, 산업이 된 웹툰의 길 찾기 : K-웹툰 경제사

다양성과 젠더의 정치경제학 

- 모순의 경제성과 비판의 생산성에 관한 소통의 제안


[그림 1] 2022 대한민국 젠더 의식 조사


지난 23년 조선일보와 서울대 사회발전 연구소에서는 대선 직후 공동으로 진행한 ‘2022 대한민국 젠더 의식 조사를 발표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우리 사회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전체 응답자(1786)66.6%한국 사회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는데, 20대가 79.8%로 가장 높았다. 20대 중에서도 여성이 82.5%가 동의했는데, 지난 대선에서 투표할 후보를 정할 때도 10명 중 4명이 후보의 젠더 공약이 영향을 미쳤다’(40.9%)고 답할 정도였다.

그리고 20대 남성의 절반 이상(53.6%)은 평등한 세상에서 군대는 왜 남자만 가느냐며 반발했다. 할당제, 적극적 고용 개선 조치 등 여성의 사회 진출을 위해 고안된 모든 정책 또한 남성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20대 여성의 70.1%취업이 남성에게 유리하다며 구조화된 성차별에 분노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 사회 젠더 갈등에 대해 외신들도 놀랍다고 표현한 것이다. 기사를 보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한국에선 중·장년층보다 젊은 세대의 젠더 갈등이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이 유럽 독자들에겐 놀라운(mind-blowing) 현상이라는 외국 특파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놀라움 보다 우리의 당황스러움이 더욱 크다는 사실이다. 세대 격차와 가부장제 사회라는 오랜 문제가 여전히, 아직도, 더 격렬하게 젊은 세대에 나타나고 있다는 건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일 수밖에 없다.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차별과 편견은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 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인 시각 콘텐츠에서 이는 비하와 혐오 그리고 대상화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콘텐츠산업에서 성인콘텐츠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미 상업적으로 검증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웹툰 관련 사이트와 매체는 무슨 내용을 다루는지 보기 힘들 정도로 성인 콘텐츠 광고로 도배가 되어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자극을 통해 생존을 도모한다는 게 비판을 받을지언정 비난을 받을 대상이 되는 건 좀 억울하기도 할 듯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산업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콘텐츠는 상업적인 계산만으로 경제적인 성공과 문화적 파급력을 논하기에는 그 깊이와 남다른 지속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에 관한 몇 가지 우려와 장면을 찾아 나름의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갈등'이 만드는 이야기, 성장을 위한 모순과 선택

사실 최근 몇 년 동안 웹툰계는 젠더 갈등과 혐오 논란으로 상당히 시끄러웠다. 가장 최근 여성 혐오 표현으로 논란이 된 웹툰 <이세계 퐁퐁남>2024년 말 네이버 지상최대 공모전 1차 심사를 통과하면서 시작된 여성 창작자 및 독자들의 반발과 네이버 웹툰 불매 운동이 대표적이다. 결국 해당 작품은 공모전에서 탈락하였고, 네이버 웹툰은 사과와 함께 해당 논란 이후 혐오 표현 콘텐츠를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는 등 대응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림 2] 이세계 퐁퐁남


<이세계 퐁퐁남>이 보다 적극적인 행동과 다양한 논란을 보여주었지만, 네이버 웹툰을 비롯해 웹툰계는 지속적으로 여성 혐오(여혐) 논란과 선정성 논란으로 홍역을 치러 왔다. <복학왕>(작가 김희민)<헬퍼2: 킬베로스>(작가 신중석)가 여혐·폭력적 표현으로 큰 논란이 됐고, <체인지>(작가 장진원)는 여성 신체 일부를 부각한 그림체로 도마 위에 올랐다. 어찌 보면 조금씩 그 형태를 달리하면서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표현과 작품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갈등은 웹툰이 다양해지고, 산업으로서 활성화되면서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갈등에서 시작하라.”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에서 대부분 첫 번째로 언급하는 말이다. 그리고 만화와 웹툰은 이야기를 만드는 산업이다. 갈등은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해야 하는 사안이고,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이세계 퐁퐁남>과 관련된 갈등은 그 내용의 불편함을 통해 문제를 노출하고, 창작과 산업의 발전을 위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불편한 것은 하나의 이슈로만 소화하고 있는 대중매체와 그에 편승해 수렴과 조정 그리고 성장이 아닌 비판과 공격으로만 활용함으로써 갈등구조를 단순화하려는 모습이다. 단순화된 문제와 갈등은 역시 그 정도의 해결을 제시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갈등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 쉽고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야기를 만들 때 이미 갈등의 해결 방법만을 생각한다면 그 이야기의 구조와 재미는 항상 제자리일 것이다. 필요한 건 그 갈등이 벌어지는 이유와 최초의 장면을 생각하는 것이고, 그걸 또 상대방의 관점에서 한번 돌려보는 것이다. 그러면 갈등의 모습과 형태가 자기의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듯하다. 이런 입체적인 생각과 소통은 갈등의 변화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고, 아주 불편한 갈등과 고민이라도 전혀 다른 공감과 이야기로 발전하게 해주는 것이다.

갈등이라는 건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목표와 방해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데 갈등이라고 하면 (외부와의) 충돌과 대립만을 생각하고, 마치 어떤 물리적, 심리적인 격렬한 부딪힘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다 보편적으로 모순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더 나을 듯하다.

모순이란?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것에는 모순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 어렵지 않은 개념인 듯하지만, 실제 이해하고 자신의 사고와 창작에 적용하는 건 쉽지 않다기원전 5세기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현실은 모순의 체계로 유지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차가운 것은 데워지고, 뜨거운 것은 차게 식으며, 젖은 것은 마르고 마른 것은 젖는다.” 열기와 냉기가 합쳐져 온도를 만들어 내고, 마른 것과 젖은 것이 합쳐져 습도가 되고, 출생과 사망이 인생을 구축한다. 모든 물리적 역학이 작동해 대립항들의 통합을 만들어 낸다인류에게도 이 원칙이 적용된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기 시작한다. 인생의 시점마다 진화했으면서 또 진화하고, 깨어 있으면서 꿈을 꾸고, 꿈꾸는 동안에도 깨어 있다. 나이와 무관하게 젊기도 하고 늘기도 한다. 성적 지향이 어떻든 여성성과 남성성을 모두 갖는다.

잘 설계된 조화로운 배역 안에는 항상 살아 있는 모순들이 교차한다. 따라서 대립항들의 통합은 캐릭터의 복잡성을 구축하는 기본 원칙이다.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생동하는 스토리는 미학적으로 정제된 형식 안에 추함과 아름다움, 폭정과 자유, 선과 악, 진실과 거짓 등을 결합한 본질적 모순을 담아낸다. _ <로버트 맥키의 캐릭터>

모든 것에는 모순이 있다. 이걸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지만, 실제 이해하고 자신의 사고와 창작에 적용하는 건 쉽지 않다. 생물에도 무생물에도 그 내부적인 모순이 있고, 항상 외부요인과 모순 발생이 벌어진다. 그건 필연적인 법칙이다. 내 주위를 스쳐 가는 사람들도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 중에 있다.

내 모든 행동과 사고에는 대립항이 있고, 그것의 통합인 선택이 있는 것이다. 비록 지금 올바른 방향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역시 내부적인 모순을 통해 나아갈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다. 다리가 버티다가 그 반대의 힘이 세지면 부서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런 선택과 모순의 극복은 항상 외부요인과 만나게 된다. 내가 갈지를 선택하는 순간 반대편에서 갈지를 선택한 사람과 부딪히게 되면서 외부모순, 갈등 또는 화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나도 그렇고, 내 주위를 스쳐 가는 사람들도 매순간, 매상황마다 대립적인 모순 속에서 선택과 통합 그리고 화해를 하면서 다른 모순이나 상황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 역시 주인공뿐만 아니라 빌런 그리고 주변에 있는 조연들도 역시 복잡한 생각과 선택이 있고, 그 선택이 다르게 이루어지거나 외부적인 요인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이야기와 캐릭터의 변화 가능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선사함으로써 기대와 극적 해결에 따른 재미를 더해주게 된다. 또한 대립의 선택과 그 이유의 공감과 행동의 예측은 이야기에 개연성, 즉 필연성도 만들어주게 된다.

그럼 우리가 웹툰 내에서 차별과 혐오라는 갈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대립항은 무엇이며,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자리하고, 또 극복되고 있는가? 하지만 우리는 문제를 바라볼 때 모순적 사고와 성장가능성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다. 어쩌면 해결되지 않은 문제의 반복은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 이유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세 가지 실수이다. 첫 번째는 회피이다. 복잡한 갈등을 싫어하고, 갈등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유치원생들에게도 갈등이 있고, 또 세 살배기 아이들에게도 저 장난감을 꼭 사고 싶은 절박감이 있는 법이다. 문제는 갈등을 바라보는 깊이와 시선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쉽게 가져오고 싶은 유혹이다. 웹툰과 드라마와 영화가 넘쳐나고, 그곳에서 보는 갈등을 자기도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익숙한 캐릭터와 편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마음이 급하다는 것이다. 바로 갈등을 비판이나 비난하고 그 해답을 강요하는 것이다. 내재된 모순, 상수로서의 갈등이 아닌 오로지 해답, 자신이 제시한 정답으로 정리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 이 세 가지가 각각 나타나기도 하고,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결국 이는 이야기에 금방 흥미를 잃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런 문제가 나타나면, 과거는 잊고 다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미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알고 있고, 또 익숙해져 있으니까.

 

나와 너, 남과 여 그리고 근본 모순

어떤 이야기가 설득력과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복잡한 갈등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다양한 장치와 소재를 생각하고 집어넣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기계적으로 대입하거나, 외부에서 편하게 가져오거나 그도 아니면 (본인이 선호하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단순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그게 편리하니까. 사실 극단적인 캐릭터가 필요하기도 하다. 가끔 개연성 없는 이야기도 인기와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202412월 초 대한민국의 정치도 극단적인 캐릭터와 개연성 없는 드라마로 사람들을 온통 빠져들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런 만화적 상상이 항상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사회는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하며, 그 안에 품고 있는 모순과 갈등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런 만화 같은 상황을 옹호하는 이들이 적지 않고, 또 그 상황마저 정리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런 사회에서 개연성과 필연성으로 다가오는 해답과 선택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갈등을 바라보는 방법, 생각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자신에게 질문하고, 주변과 사물을 관찰하는 연습을 해보는 게 좋다는 말이다. 쉽고 편한 이야기와 쉽고 편하게 이야기를 만드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다. 좋은 고민은 좋은 이야기를 만든다. 누가 보더라도 현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혹시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는 걸 깨달은 적이 있나? 그리고 그날 아침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행적과 만남 등을 되새겨 생각해 보고, 자신의 성격과 충돌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 적이 있나? 누군가 지나가면서 자신을 노골적으로 쳐다본 장면이 생각나거나, 버스나 지하철 옆자리 사람들의 대화가 불편한 기억을 건드렸을 수도 있다. 이런 질문과 생각은 우리와 주변 모두에 모순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예측 불가능성이 자신의 이야기와 현실의 해답 만들기에 스며들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안의 차별과 혐오 그리고 젠더 갈등을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간접 체험하고 있다. 특히 남과 여가 바뀌는 설정은 익숙하다. 설정만 들어도 생각나는 만화가 있고, 영화 <왓위민원트><스위치>도 생각난다.

<왓위민원트>에서는 어느 날 여성들이 생각이 들리기 시작한 마초남이 나온다. 그에게 심리상담사는 금성어와 화성어를 사용하는 남과 여를 이해하게 된 지구상의 유일한 남자라고 말한다. 이런 판타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남과 여의 아득한 거리를 쉴 새 없이 만나고 있다. 이제는 고전이 된 영화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에서는 한 부부가 영화를 놓고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톰 행크스와 그 아들의 시애틀 집으로 친했던 부부가 놀러온다. 그들은 한 편의 영화, 캐리 그랜트와 데보라 커가 주연인 <러브어페어>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자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서 만나기로 했던 두 남녀, 택시에 치여 못나오게 된 여자와 엇갈린 운명 그리고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여자와 남자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톰 행크스는 뻔한 영화라고 말하고, 남편은 울고 있는 여자(부인)를 비웃고 타박하며, 꼬마 남자애는 아줌마를 걱정한다. 당연히 여자는 분노한다.

남편은 톰 행크스에게 편지를 보낸 여자들이 정신이 나갔거나”, “사랑에 굶주렸거나 욕심이 과한거라고 단정 짓는다. 대화가 단절된다. 하지만 그 남편은 톰 행크스가 전쟁 영화인 더티 더즌(특공대작전, 1967년 영화)을 이야기하자 흥분하고, 슬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장렬히 전사하는 모습을 묘사하자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방금 전 여자들이 감정적이라고 비웃던 그가 너무도 감정적으로 우는 모습을 보며, 여자는 어이없어하며 웃어버린다. 영화가 선사하는 깨알 같은 반전과 재미이지만, 아마 일상에서 너무 쉽게 만나는 남과 여의 모습이지 않을까? 항상 같이 살아가는 부부마저도 서로 다른 언어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대학 때 여학생부 세미나를 잠시 참여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학교와 학과에는 여학생부가 있었고, 대부분 여학생들은 자체적인 세미나와 여성의 권리와 인식에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곳의 부장과 대화하다가 내가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지점에서 차별적인 사고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게 너무 충격이었다.

이게 차별적인 사고였다고?”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스스로 그곳에 들어가 한동안 교육 아닌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게 자라왔고, 그렇게 성장하고, 그런 환경 속에 있으면서 내 사고가 몇 번의 교육으로 바뀔 리는 없다. 다만, 내 사고의 시작점을 돌아볼 여유와 이유 정도를 찾은 듯했다당시 그나마 인지를 했던 건 젠더 갈등이 가장 근본적인 모순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모순이 존재하고, 또 그 모순들은 서로 연결되면서 우리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여성과 관련 '모순'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사회 시스템 내에서 여성이 겪는 구조적 불평등과 비합리성을 가지며, 같은 목표의 공동체 내에서도 가치와 현실의 삶 사이에서 겪는 괴리감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사회는 여성에게 특정 '여성성'(아내, 어머니 역할)을 강요하면서도, 동시에 경제 활동을 통한 생산력 증대를 요구하는 것이다. 또 더 큰 사회적 목표 속에서 여성 문제를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하거나, 여성 문제의 특수성을 분리하여 파악하거나 양비론적 관점에서 불평등을 해석하려는 시도 등도 나타난다.

결국 연결된 문제의 해결 가장 안쪽에 젠더의 문제와 사고가 있었고, 이는 개인과 사회 전체가 연결된 근원적이며, 주요 모순임을 알게 된 정도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당시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우리 내부에 숨겨졌던 모순과 갈등은 이제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비판받고 또 해결을 위한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도 여전히 불편함은 가시지 않는다. 그 행동과 분출이 놀랍고, 또 우리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지켜 보는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했듯이 근본적이고 가장 깊숙하게 자리 잡은 갈등임에도 단순화하고, 급하게 해결하려고 하고, 일방적으로 나아가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편함이었다. 단정 짓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대화도 어렵게 하지만, 그것 역시 또 다른 차별이고, 편견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에 맞춘 듯 이제 갈등과 차별은 은근하게 스며들고 있으며, 결코 반성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있는 두 진영으로 나누면서 더욱 고착화 하려고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


불편함과 놀라움 사이의 장면들

만화 웹툰에서의 젠더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몇 가지 장면에서 느낀 어색함과 불편함 그리고 놀라움이었다. 먼저 만화 아니 애니메이션 <일곱 개의 대죄>를 보고 느낀 어색함과 불편함이 있었다. 그리고 연초의 겨울 남태령에서 보고, 느낀 풍경과 감정 때문이기도 하다. 더불어 소통에 대한 갈증 도 있었다.

 


[그림 3] 25년 1월 남태령역, 앉아서 쉬고 있는 사람들

 

사실 <일곱 개의 대죄>는 너무나 유명한 만화이다. 하지만 그 만화가 유행할 때, 내 주변에 만화방이 없었다. 가끔 일에 지칠 때, 머리가 너무 복잡할 때 몇 시간씩 동네 한구석에 있는 만화방에 틀어박히는 게 내 루틴 아닌 루틴이었다. 거기서 새로운 만화를 발견하기도 하고, <베르세르크>처럼 정말 가끔 나오는 만화의 새로운 화를 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만화방이 사라지면서 한동안 새로운 만화를 보거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참 뒤 인터넷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유행하면서 <일곱 개의 대죄>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기대가 컸지만, 앞부분을 보다가 스위치를 꺼 버렸다. 좋아하는 그림체였지만, 왜 저렇게 그릴까라는 의문이 보는 내내 내 감각과 시선에 더해졌다.

지금은 범접할 수 없는 글로벌 아이돌이 된 BTS 역시 이 만화 때문에 한차례 곤욕을 치렀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브이라이브 채널플러스를 통해 방송된 유료콘텐츠 'Run BTS!'(달려라 방탄)에서 한 멤버가 자신이 재미있게 본 일본 만화책 두 권을 선택했다. <원피스><일곱 개의 대죄>였다. <일곱 개의 대죄>가 재미있느냐는 또 다른 멤버의 질문에 이를 읽은 멤버들은 "재미있다"고 해당 만화책을 고르기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그림 4] 일곱 개의 대죄

 

그런데 2014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일곱 개의 대죄>는 종종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여성 혐오 요소를 지적당해 왔던 만화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만화 속 남자주인공은 쓰러진 여성 캐릭터의 가슴을 주무르고, 허벅지 냄새를 맡는가 하면, 이후 여성이 정신을 차린 후에도 갖가지 이유를 대며 치마를 들추는 등 성추행을 반복한다. 그러나 여성 캐릭터는 수줍게 얼굴만 붉힐 뿐, 이에 반항하거나 대응하지 않는다.

사실 모든 인간이 그렇지만, 남자들은 특히 시각적이면서도 이중적이다. 대놓고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이 말하듯이) 살짝 가려서 은밀하게 보는 것에 더 흥분하기도 한다. 또한 어느 정신과 의사가 말하듯이 남성들은 24시간 성적인 상상을 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릴 때 요술 공주가 변신하면서 보이는 엉덩이에 키득거리며 좋아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환한 만화방의 구석에서 <교과서에는 없어> 같은 일본 성인 만화를 몰래 보면서 부끄러워하며 흥분하기도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불편한 것들이 있다. 대중매체이자 상업적인 콘텐츠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또 사실 그런 콘텐츠 중에 가끔 정말 놀랍도록 독자를 흥분시키는 작품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족이지만, 요즘 너무 똑같은, 너무 가학적이거나 일방적인 이야기와 캐릭터가 반복적이라는 느낌은 없지 않다. 취향 중 하나를 건드린다는 느낌보다는 마치 반복 암기와 같이 유행처럼 강요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 만화가 아님에도 불편함을 느끼는 작품이 있다는 게 개인의 취향 문제일까 아니면 상업적인 콘텐츠에 대한 문화적인 합의의 부족 때문일까? 선정적인 것에 목말라하는 남자들도 무조건 선정적인 것에 환호하지만은 않는다.

 


[그림 5] 판타지 애니메이션 속 선정적인 용사

 

예전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이 참으로 선정적인 복장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점점 경쟁이 심해지더니 어느 날, 한 게임 회사에서 모든 등장 캐릭터를 눈요기로 만들어 발표하였다. 제법 성공했던 회사였고, 개발자였다. 하지만 그 게임은 결국 제대로 시작도 못 하고, 선정적이라는 공개적이고, 분노한 대중들의 비판에 사과하면서 조용히 퇴장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성인 만화처럼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는 적당하고 은밀한 기준을 넘어선 것이다. 물론 그 기준이 일관되게 작동하지는 않지만,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는 하다. 어쩌면 그 감춰진 기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조금씩, 그리고 관행적으로 그 기준이 잠식되어 가고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작가별로 스타일이 명확한 편이었다. 장르별로 캐릭터, 그 복장과 신체가 다양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만화 웹툰의 여성들이 육체적으로 너무 발달하고, 복장은 묘하게 선정적이게 됐다. 마치 패티시물을 보는 듯한 민망한 야릇함을 전해주고 있는 듯하다. 판타지 결투의 긴박감보다 살짝 스쳐가는 은밀한 부위가 더욱 강조되기도 한다. 가끔 집에서 유행하는 (결코 성인물이 아닌)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부엌을 오가던 와이프가 한마디를 한다.

어머, 여자 가슴이 수박이야.”

집중을 방해할 정도의 과한 표현은 점차 익숙해지고, 또 그래야 한다는 듯 유행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무섭다. 언어는 생활과 사고를 좌우한다. 만화는 시각언어이고, 그 시각언어를 통해 성장한 아이들(작가도) 역시 그렇게 보고, 소통하는 데 익숙해진다는 게 두렵기까지 하다. 남자인 나조차도.


<성인 웹툰이 20대와 30대 성인 이용자의 바람직하지 않은 성 태도와 성평등 의식에 미치는 영향>(유홍식 중앙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도현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과정, 한국정보사회학회ㆍ한국미디어경영학회 <정보사회와미디어> (2024년 제253)라는 보고서가 있다. 성인 웹툰 이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해 알아보고, 성인 웹툰의 이용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성 추구 태도와 성평등 의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탐색하는 연구보고서였다. 성인 웹툰 이용률이 높은 20~30대 성인 이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를 다섯 가지로 정리한 것이다.

연구 결과, 첫째, 20~30대 여성은 남성에 비해 성인 웹툰의 내용과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더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의 성적인 표현물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주장과 유사하게 성인 웹툰의 일부 또는 다수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성인 웹툰 이용 정도에서는 성별에 따른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둘째, 성인 웹툰 광고에 대한 노출이 성인 웹툰 이용량에 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웹툰 광고의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성적 표현이 사회적으로 큰 비판을 받으면서 구글 등 디지털 플랫폼이 성인 웹툰 광고 정책을 변경하였고, 이에 따라 부적절한 성인 웹툰 광고는 줄었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여전히 선정적인 성인 웹툰 광고에 노출되고 있고, () 선정적 성인 웹툰 광고가 성인 웹툰 이용에 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확인하였다. 셋째, 심리적 특성 중 자기효능감은 성인 웹툰 이용 정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반면, 감각 추구 성향은 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각 추구 성향이 높을수록 폭력적이고 음란한 콘텐츠를 찾아서 이용하는 경향이 높다는 선행연구들의 결과와 일관되게, 감각 추구 성향이 성인 웹툰 이용에 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성인 웹툰이 자신 또는 타인에게 해롭다고 인식할수록 이용 정도가 감소했다. 이는 성인 웹툰의 부정적 효과 인식 변인이 성인 웹툰 이용 정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임을 의미한다. 다섯째, 성인 웹툰 이용은 구속받지 않는 성 추구 태도, 성폭력에 대한 허용 태도의 증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음란물 등 성 콘텐츠 이용이 구속받지 않는 성 추구 태도를 증가시키고 성폭력에 대한 허용적 태도를 형성한다는 기존 연구의 결과와 일치한다. 이는 성인 웹툰 이용이 성 도구성 태도, 성 허용성 태도보다 더 '심각'하게 평가될 수 있는 바람직하지 않은 성 태도(구속받지 않는 성 추구 태도, 성폭력에 대한 허용 태도)를 형성하거나 증가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성인 웹툰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성 태도는 성평등 의식을 저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성인 웹툰 이용으로 인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성 태도는 남성과 여성의 능력, 속성, 역할에 대한 편견이나 인지 왜곡으로 이어져 성차별적 인식의 수용이나 성평등 의식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성인 웹툰이 가지는 효과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미 표현에 있어서 성인 웹툰과 일반 웹툰의 차이가 묘하게 흐려지고 있다는 경계심 때문이다. 그렇게 조금씩 잠식되고, 나이가 어려지면서 (성숙도가 낮은) 웹툰은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확신 아닌 확신이 생기기도 한다.

<이세계 퐁퐁남> 같은 논란과 그에 따른 분노와 행동 그리고 다양한 자정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은근히 스며들 듯 다가오는 차별과 혐오의 자극들은 더욱 위험하고, 노골적으로 변한 듯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은 자기검열과 산업적인 고려에 의해 내재된 상황이 아닌가 생각된다물론 이에 대한 공개적인 분노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또 다른 검열이자 강요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겨울 우리는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계엄의 밤, 많은 소년 소녀가 BTS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눈 내리는 도로에서는 키세스 소녀들이 피어났고, 그리고 남태령에서 늙은 농부와 밤새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성장하는 지혜와 용기를 보여 주었다. 일방적인 분노로 보였던 열기가 나눔과 이해의 에너지로 만나는 정치의 현장을 본 것이다.

어쩌면 몇몇 장면과 편견으로 인해 공포와 우려라는 스스로의 덫에 갇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대화의 준비는 되어 있지만, 그걸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보다 세밀하고, 일상적으로 우리 안의 선정성과 그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차별과 혐오의 표현을 찾아내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야 될 때인 듯하다. 그게 바로 산업적인 요구에도 맞기도 하다. 차별에 따른 효과는 결국 시장의 축소로 이어질 게 뻔하고, 또 그런 현상이 이미 현실화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경제적인 대안이 아니라, 참여를 통한 재미, 서사적인 몰입을 위한 입체적인 캐릭터와 배경을 만들어야 할 때라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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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만화웹툰전문매거진 위클리툰 대표기자 
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 회원 
한국출판만화가협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