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풍선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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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말풍선의 의미, 그리고 다른 존재들이 말하는 것들

만화 속 말풍선과 생각풍선의 의미

2025-08-18 전운

말풍선의 심리 (임상심리사의 만화 읽기)

1회-말풍선의 의미, 그리고 다른 존재들이 말하는 것들

만화를 읽는 행위는 보이지 않는 생각과 감정을 눈앞에 펼쳐 보이게 하는 경험이다. 여섯 살 무렵부터 만화책을 읽기 시작한 뒤로 내 곁에는 항상 만화책이 있었다. 글자도 잘 읽지 못하던 작은 아이가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같은 만화를 보며 동네 문방구 앞에 쪼그려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어머니는 그런 나를 발견해서 집으로 데려가곤 했다. 어린 시절, 문득 현실에서는 왜 말풍선이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말로 대화를 나누면서 말풍선이 만화만의 의도된 표현 방식임은 알았지만, ‘생각풍선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어서 언제쯤 경험하게 되는 건지 궁금했다. 그 의문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불안한 현실 속에서 떠올린 바람이었다. 현실을 견디기 위해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어른들의 생각과 속마음을 알 수 없었기에, 나는 멋대로 유추하며 내 안에서 혼자 질문과 대화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기와 나속의 주인공처럼,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들에서 내가 되고 싶은 롤 모델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림 1 아기와 나9. 라가와 마리모. 대원씨아이. 리디북스 캡쳐.

더 자라면 언젠가 나에게도 생각의 경계선이 그려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풍선을 갖고 싶다는 희망이 타인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고 싶다는 관심으로까지 이어졌고, 결국 임상심리학을 전공하며 상담을 직업으로 삼는 단초가 되었다. 상담사로 일하면서 매일 만화를 보다 보니, 상담 중에 말풍선을 떠올리기도 하는 등 만화와 현실 사이를 연결 짓는 일은 필연적으로 이뤄졌던 작업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이 질문들왜 현실에는 말풍선이 없는가, 생각풍선은 어디에 있는가는 만화 연구자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다뤄져 왔을까?

 

연구자들의 말풍선론

만화 연구자로 유명한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의 이해에서 말풍선을 시각적으로 구체화된 소리이자 만화가들이 시각 매체에 소리를 담아내고자 하는 필사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보았다. 만화의 창작에서 말풍선은 소리라는 무형의 요소를 잡아내고 시각화하는 시도라는 윌 아이스너의 정의를 소개하는데, 그는 기본적으로 말풍선과 생각풍선, 효과음 등을 크게 구분하지 않고 만화의 칸 안에서 전달되는 정보는 어떤 감각이든 결국 모두 시각 정보라는 태도를 보인다.

국내의 만화 연구자 한상정은 만화의 해부학에서 칸 내부에 존재하는 여러 요소를 크게 등장인물군, 배경군, 문자군으로 나누었는데, 그중에서 문자군의 대표 형식으로 말배너, 효과음, 효과태 등의 세부 요소와 함께 말풍선을 소개하며 등장인물의 말이나 생각을 담는 것으로 정의했다. 만화에서의 문자군은 등장인물군과 배경군 모두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발화자의 의사와 감정을 제시하며, 사건의 진행을 도와주는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만화 연구자인 요모타 이누히코는 만화원론에서 여러 예시를 통해 말풍선의 기능을 1) 등장인물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기능, 2) 등장인물과 독자 사이의 의사소통을 위한 기능, 3) 등장인물을 소리의 주체로 정립하는 기능, 4) 독백의 내면화로 이야기적 주체를 결정하는 기능으로 소개한다. 특히 그는 소리의 주체나 의사소통 기능을 넘어 말풍선이 등장인물의 지각이나 내면 심리를 묘사하는 예시를 통해 언어적 메시지로는 표현하기 곤란한 심리적 소망이나 이상한 지각을 간단히 묘사해 버리는 의의가 있음을 말했다. 여기에서 메시지를 누군가에게 보낸다는 행위로서의 기능을 가장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만화라는 매체에 대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가장 실험적인 영역이라 생각하는 관점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맥클라우드는 소리의 시각화, 한상정은 형식의 해부학, 이누히코는 소통을 위한 메시지라는 다른 강조점을 가진다. , 같은 말풍선을 두고도 서로 다른 요소를 강조하는 이런 다층적 해석들이, 말풍선이 가진 매체적인 힘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말풍선

연구자들이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른 만큼, 독자 역시 만화를 읽을 때 말풍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나는 심리학 전공자의 시선을 가진 독자로서 말풍선에 대한 정의를 심리학적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소리의 시각화라는 측면에서 말풍선은 만화 속 등장인물들, 그리고 독자가 함께 공유하는 사유이다. 이는 말풍선이 독자가 상정되지 않아도 등장인물끼리 메시지를 주고받는 기능으로 충분히 작동한다는 뜻이다. 그와 비교해서 생각풍선은 등장인물이 만화 속의 외부 세계에 표현하지 않았었던, 내면 사유의 시각화라고 할 수 있다. 생각풍선은 말풍선과 동일하게 주체로서 자기표현의 경계(외부와 구분 짓는 선)를 갖고 있으면서도, 독자를 상정하지 않으면 메시지의 기능을 충분히 갖지 못한다. 다시 말해 만화 속 등장인물의 내면세계가 현실에 위치한 독자의 내면세계로 직접 연결되는 통로의 기능을 갖는다. 이 점에서 생각풍선은 단순한 만화적 표현 도구를 넘어서, 독자를 위해 준비된 내면화된 대화(inner dialogue)’에 가깝다.

내면화된 대화는 '개인의 머릿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재현하거나 자신의 여러 생각이나 감정을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하며, 혼잣말과는 다르다. 일상에서 혼잣말은 대상이 없는 순간적인 발화라면, 내면화된 대화는 누적될수록 자기 자신과 관계 맺은 방식을 묘사하게 된다. 예를 들면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라며 자책을 이어갈 때, 우리는 내면화된 대화를 경험하는데 이어지는 대화는 각자마다 달라지는 것이다. 대화가 누적된 결과로 스스로가 화자이자 청자로 반응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흔히 인물의 마음 안에 존재하는 여러 자아상 또는 대상관계상들이 반영된다. 이를 다시 만화로 비유하면, 등장인물 마음속에 천사와 악마가 나타나 갑론을박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이 내면화된 대화가 자아를 부정적인 관념으로 이끌 때,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인 신념 체계로 이끄는 사고방식이라고 하여 자동적 사고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림 스파이 패밀리』 7엔도 타츠야학산문화사리디북스 캡쳐.

물론 현실 삶에서는 발성 없이 내면화된 대화만으로 소통이 이뤄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만화 속에서는 생각풍선의 존재 덕분에 독자만을 향한 소통이 가능해진다. 생각풍선은 인물이 가진 감정의 심도를 구조화하는 시각적 장치이자 서사를 만들어 가기 위한 도구이면서, 독자를 유일한 이해자의 위치로 만들어 주기도 된다. 만화 속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한 주인공의 독백이, 독자에게만큼은 생생하게 전해질 수 있다. 그로 인해 현실의 독자는 등장인물의 속마음을 공감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등장인물에 대한 유일무이한 이해자가 되어 자신의 존재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 풍선은 단순한 만화의 구조적 프레임을 넘어, 심리적 공간의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이렇게 독자의 내면 대화와 직접 연결을 해주는 생각풍선이라는 이 장치가 현실의 장면, 특히 상담실에서는 어떻게 구현될까?


상담실의 풍선

현실의 상담실은 타인에게 말하지 못한 독백을 전달하는 공간이며, 상담자는 메시지의 유일한 수신자라는 책임을 지게 된다. 상담실에서 내담자의 언어는 때로 침묵으로 단절되며 감정은 표정과 불온한 안색, 분위기를 통해 말에 앞서 전달된다. 이때 상담자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말풍선 속 줄임표를 떠올리며, 상담실을 보이지 않는 생각풍선을 수용하고 이어지지 못한 마음의 조각을 해석하는 자리로 만든다. 어떤 말을 하려다 멈췄는지, 어떤 감정이 억눌려 있는지, 침묵이 붙잡고 있는 꺼내기 힘든 그 마음이 무엇인지 추론해야 한다. 만화의 생각풍선은 내담자의 내적 세계를 드러내는 장치이며, 이 점에서 상담 장면과 깊이 닮아 있다. 이런 측면을 구현한 만화가 있을까?

필리파 페리 박사의 심리치료극장은 항상 일대일의 관계여서 미스터리한 공간으로 여겨지던 상담실 내부를 묘사한 작품이다. 상담을 있는 그대로 만화로 표현하려 한다면 말풍선만 주고받을 것이라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상담 관계를 과장 없이 정직하게 시각화하여 해설까지 덧붙인 이 만화는, 말풍선에 그림을 넣거나 내담자의 감정에 따라 말풍선의 형태가 배경과 교차하는 등 다양한 시각적 장치를 글과 결합해 상담 과정을 더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말풍선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만화적 연출들을 통해서 보이는 것(사건과 대화)’보이지 않는 것(내면과 변화)’을 동시에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이 만화에서 내담자가 보내는 생각풍선의 메시지와, 수신받는 상담자의 생각풍선 양쪽을 모두 알 수 있는 이는 오로지 독자뿐이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신만의 사유로 상담에 참여하고 있을 뿐이지만, 독자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와 사유들을 지켜본 결과로 상담 과정의 기승전결을 어떤 미화나 과장 없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림 3 『필리파 페리 박사의 심리치료극장』. 필리파 페리/준코 그라트. 서해문집

 

다름을 드러내는 풍선들

필리파 페리 박사의 심리치료극장이 보여준 것처럼 메시지를 보내는 발신자와 메시지를 받는 수신자의 관계 구조로 말풍선 및 생각풍선의 영향력을 발견하기 시작하면, 다양한 작품들이 개성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중에서도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말풍선의 형식과 구조 자체를 흔들어서 다름을 드러내는 만화들이다.

2024년은 특별한 한 해였는데, 독자가 평소 겪지 못하던 어떤 종류의 다름을 전달받는 예시가 되는 만화가 국내에 두 가지나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2022년 방영된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발달장애를 배경으로 두고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의 매력을 대중에게 소개하면서부터 생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첫 번째로 소개할 만화는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에밀리 글리슨 작가가 아스퍼거 진단을 받았던 남동생을 모델로 삼아 그린 이상한 녀석 테드이다. 테드 구구스라는 주인공의 이름은 전반적 발달장애를 뜻하는 프랑스어 ‘Trouble Envahissant du Développement’의 약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주인공 테드의 의도와 달리 어긋나는 사건들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상한 녀석 테드』 – 제한적인 능력을 갖춘 이의 제한 없는 말풍선

이상한 녀석 테드는 표지에서부터 자유분방한 펜 선과 원색적인 색감의 드로잉을 볼 수 있다. 페이지를 펼치기 시작하면 유독 긴 팔다리와 솟아오른 어깨로 묘사되는 테드의 외형적 모습 이상으로 독특한 인상을 갖게 된다. 이 만화는 동서양을 막론한 일반적인 만화 구성 요소의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홈통이나 칸의 구분이 있다가도 없고, 코믹스(연쇄만화)의 흐름을 가지면서도 카툰처럼 한 컷 안에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담아내거나 한 컷에서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등장인물, 배경, 효과음 등에 대해 각기 다른 선명한 색깔의 펜 선이 다양하게 사용된다. 또한 이 만화에서 만화적인 기호·상징·이미지는 말풍선의 안과 밖에서 자주 혼재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만화를 보며 독자로서 일정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과잉된 감각을 일으키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만화는 왜 이렇게까지 과도한 감각 유발을 고수하였을까?

그림 4 『이상한 녀석 테드』. 에밀리 글리슨. 이숲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들이 경험하는 세상은 규칙성이 강한 무감각한 세계관이 아니라, 외부 감각에 대한 과민성과 과잉 각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 유발되는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강박적인 행동 또는 상동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글이 그림의 일부가 되는 몽타주식 기법이 빈번하게 적용된 것은, 테드가 경험하는 청각 정보가 다른 내·외부 감각 정보와 구분되지 않는 주관적 지각에 대한 묘사로 보인다. 너무 많은 자극으로 독자에게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는 이러한 표현 방식은 어찌 보면 독자로 하여금 테드가 경험하는 것과 유사한 시선을 통해 감각의 동일시를 유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요컨대 이 작품의 과잉된 감각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테드가 겪는 세상을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다.

다른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들과 유사하게 테드는 과감각 속을 살고 있다. 그 안에서 안정감을 위해 자신만의 규칙을 지키려는 강한 욕구와 충동을 드러내다 보니 사회적 의사소통과 자기 조절에는 대부분 실패한다. 일상에서 테드는 남들과 똑같은 말풍선의 형식으로 본인이 원하는 것과 자신의 관심사를 말하지만, 테드의 의도가 남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타인들의 의도 역시 테드에게 전달되지 못하면서 교류에 실패한다. 그리고 그 결과 단순한 오해나 트러블을 겪는 수준에서부터, 자기를 돌보지 못하거나 자기 파괴적인 활동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어려움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말풍선은 사회적 소통 규범의 상징으로, 테드는 규범에 따르지만 그럼에도 그의 소통은 항상 실패하고 마는데, 이는 규범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소통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함을 보여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테드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가 상호 교류에 실패하고 있으며, 말풍선에 담긴 메시지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등장인물과 독자가 테드의 고통을 그나마 이해할 수 있을 때는 그가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동할 때다. 다시 말해 이 만화에서 말풍선은 사회적 규범이자 모든 이의 의사 표현의 실패를 보여주는 도구가 되며, 역설적으로 거기에서 벗어날 때 테드만의 고유한 자기표현이 되어주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이 테드의 메시지를 올바르게 수신하지 못하던 것은 그의 진단명 때문이 아니라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던 시선 때문은 아닐까. 전체 맥락에서 만화를 보고 있는 독자만큼은 테드가 겪었던 모든 사건의 연속 속에서 테드가 겪었을 심경과 행동들의 까닭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라고 해서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이 다른 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한편, 이상한 녀석 테드와 유사한 장애가 있는 주인공을 묘사하면서도 조금 더 형식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너와 우주를 걷기 위하여』 – 말풍선을 극복해 나가는 일상

고등학생 코바야시가 새로 전학 온 우노를 만나면서 변화를 시작해 가는 이야기인 너와 우주를 걷기 위하여는 약점이 있는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다룬 작품으로, 여기에서 말풍선은 자기 극복의 내면화된 대화를 위한 기능으로 사용된다. 주인공 코바야시는 학습력과 기억력이 약하다는 열등감으로 고민하고, 그것을 들킬까 봐 불량배스러운 성향을 갖게 된 학생이다. 이 작품은 누가 봐도 사회성이 떨어지고 자신만의 규칙대로만 하려는 별난 성향을 가진 전학생 우노가 다른 학생들처럼 지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코바야시가 자신이 약점이라고 여기던 모습들을 수용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이상한 녀석 테드와 비교하면 전형적인 일본 만화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개성적인 주인공들 못지않게 독창적인 만화적 형식이 시도되고 있다.

이 만화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요 장치는 주인공 코바야시의 내면화된 대화이다. 그가 마음속에서 혼잣말처럼 떠올리는 이야기는 생각풍선에 갇힌 형식으로 드러나지만, 풍선 없이 그림 옆의 개방된 여백에 내레이션 형식으로도 제시된다. 등장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두 가지 방식이 한 화면 안에서도 혼용되어 사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차점들은 독자로 하여금 어째서 이 장면에서는 생각풍선을 사용하지 않았을까를 역으로 고민하게 만들어 준다. 여기에서 생각풍선은 다른 만화에서 사용되던 용법과 다른 독자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닫혀 있는 생각의 기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코바야시는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던 고민과 열등감에 기인한 감정들을 생각풍선에 가둬둔 채 지내왔었다. 학습력이 부족했던 코바야시의 대처는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불량배스러운 언행을 하거나 배움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외부의 가르침에 반항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림 5 『너와 우주를 걷기 위하여』 1. 도로노다 이누히코. 학산문화사. 리디북스 캡쳐. 

그림 5의 장면은 코바야시가 아르바이트하던 중 어려워하던 부분을 포기하지 않고 끝내서 보람을 느끼던 직후, 자신이 한 실수에 대해 동료들이 험담하는 것을 듣게 되는 장면이다. 코바야시는 감정이 분출되듯 강렬한 자동적 사고가 튀어나왔다가 어려운 일을 포기하지 않는 우노를 떠올리게 되고, 감정을 다스리면서 내면의 대화를 따라가 생각을 다잡아 간다. 남들이 뭐라든 약점을 극복하려 애쓰는 우노와의 만남 덕분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닫혀 있던 코바야시의 관념에 균열이 일어나게 되었고, ‘약점을 감추기 위해 때려치우거나 불량스럽게 행동하라는 자동적 사고에 저항하며 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자라는 새로운 인지가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문제 해결적인 메타인지는 기존 생각의 경계선을 탈피하여 개방된 내레이션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만화는 비고츠키(Vygotsky)가 말한 내적 언어 발달 과정의 증명처럼, 주인공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자동적 사고를 스스로 반박하며 새로운 메타인지에 도달해 나가는 심리적 성장의 과정을 보여준다. 경계 없는 내레이션은 등장인물 내면의 고민과 깨달음을 독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느끼게 하듯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독자는 코바야시의 깨달음에 동기화되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닫힌 생각풍선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는 독자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우주를 걷기 위한작가의 교신 시도로 읽힐 수 있다. 이누히코 작가는 이 만화가 어떤 이들에게는 만화 속에서 우노가 언급했던 테더(우주비행사가 우주 공간에서 활동할 때 사용하는 생명줄)’처럼 작동하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요컨대 작품에서 생각풍선은 주인공이 자신을 가두던 틀이며, 내레이션은 그 틀을 깨고 독자와 인물, 작가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다. 혼자만의 닫힌 생각에서, 열린 대화로 건너가는 성장의 은유를 보여주는 장치인 것이다.

이런 만화들을 보고 얻을 수 있는 감동이나 깨달음은, 상담실에서 전달하는 어떤 말보다도 더 강력한 변화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일상에서는 말풍선도, 생각풍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대방의 언어와 비언어에 담겨 있는 표정, 눈빛, 몸짓, 침묵의 길이 등을 통해 심리적 이해에 도달하고자 노력한다. 일상과 마찬가지로 만화에서도 표현되지 않은 마음을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이해에 닿게 된다. 만화 속의 다양한 연출 요소들은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구조를 보이게 하고 느끼게 만드는 장치이며, 독자들은 만화 속 말풍선을 읽음으로써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연습한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의 복잡다단한 관계 안에서는 이 연습이 어떻게 나타날까? 이것이 다음 회차의 질문이다.

필진이미지

전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