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풍선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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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시뮬레이션으로서의 만화, 치유로서의 만화

만화는 불안 해소와 자아 성장을 돕는 안전한 심리 시뮬레이션이자, 치유적 양가성을 지닌 매체이다.

2025-09-22 전운

말풍선의 심리 (임상심리사의 만화 읽기)

2회-시뮬레이션으로서의 만화, 치유로서의 만화

청소년기가 되고 나서도 나는 전보다도 더 깊게 만화에 빠졌다. 나는 왜 만화에 그토록 몰두했을까. 그건 단순히 재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사춘기라고 부를 10대 시절의 대부분, 나는 사회적 불안에 시달렸다. 등교하든 귀가하든 외출하든 누군가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과잉 의식에 시달렸고, 나만의 심리적인 시공간을 보장받기 어렵게 느꼈다. 불안을 유도하는 시선들은 다수였지만 불안을 진정시켜 주는 대상은 부재했다. 그래서 타자의 존재로 인한 피로감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해방/고립의 환상과 언제 어딘가에서 만나게 될 누군가와는 더욱 긴밀한 교류 관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연결/의존의 환상 사이를 오갔다. 삭막했던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그 환상들과 현실 사이를 오갈 수 있던 것은 만화를 비롯한 여러 매체 덕분이었다.

그림1 <시노는 자기 이름을 말하지 못한다>, 오시미 슈조
출처: 레진코믹스·리디북스

이제 와서 돌아보았을 때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건 내가 사회적 불안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전문가에게 털어놓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시노는 자기 이름을 말하지 못한다의 주인공과 유사한 경험(그림 1), 그것이 사회불안 장애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대학에 와서이다. 인지행동치료 효과를 알고 있는 지금은, 상담을 통해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불안이 개선됐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상담을 선택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향상된 상담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외부 압력 없이 아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효과성이 낳는 역 부담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담은 문제 해결에 효과적이지만, 어느 정도 목적 지향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빨리 나아져야지라는 보호자의 기대, ‘나는 나약하지 않다라는 자기 증명의 욕구가 겹치면 그 자체가 또 다른 긴장을 발생시킨다. 설령 그렇게 증상을 완화하고 확보된 여력으로, 현실 경쟁의 학업 레이스 자리로 되돌아갈 뿐이라면? 자율적 선택지가 빈약할 때, 스트레스가 조금 줄어든다는 사실만으로는 괜찮아져야 하는충분한 사유가 되기 어렵다.

만화를 비롯한 매체들이 나의 현실 문제 어느 것도 직접 해결해 주진 않았지만, 방황 속에서 나의 불안과 모순, 열등감과 욕망을 그대로 바라보도록 했다. 거리에서든 버스에서든 침대에서든 내킬 때면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그 가벼움과 일상성은, 방황하던 어린 내가 언제든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고를 수 있는 선택지였다. 어떤 어른조차 제공해 주지 못하던,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을 느끼게 해주며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내가 다시 청소년이 되어도 난 여전히 만화를 비롯한 매체들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자 시도할 것이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청소년기에 발생하는 위기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의 대립을 다루는 모든 과정이 자아 발달을 돕는 것으로 보았다. 그렇게 보면 청소년들이 겪는 여러 심리적 고민도 단순히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한 목적보다는, 결국 자신을 이해하도록 돕는 그 무언가를 찾으려는 노력과 그 과정 자체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뮬레이션으로서 학원 만화

그래서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그들이 고민하는 어떤 문제들을 담아내려고 시도하는 장르인 학원물은, 단순한 서브컬처의 하위 장르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가진 여러 고민을 이해하고 다루고자 노력하는 심리적 시뮬레이션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겪었다시피, 청소년에게는 제약과 구속이 많다. 학생이라는 신분, 학업이라는 평가, 보호자 의존적인 생활, 결핍된 심리사회적 독립. 그 시기 안에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상황을 변화시킬 만한 자율적 선택의 기회를 찾기 어렵다.

물론 청소년들은 어느 정도 적응한다. 인간의 뇌는 현실에 바로 적응해 버림과 동시에, 현재의 적응된 감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맹점을 가진다. 그래서 지금 겪는 부정적인 현실 인식이 언젠가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는데, 삶의 경험이 적은 청소년들은 더욱 그렇다. 결국 반복된 일상에 절인 청소년들이 무기력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렇게 보면 청소년들이 여러 매체를 찾는 동기는, 무기력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이 겪는 일상과 다른 대체 경험을 찾기 위한 본능이다. 안전한 시뮬레이션으로서 여러 매체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 만화는 언제나 청소년들의 욕구에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매체였고, 직접적으로 학교와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학원물은 그 선두였다. 청소년과 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게임, 영화 등도 많지만, 어떤 매체도 학원만화만큼의 시대성과 다양성을 품지는 못했다. 요컨대 학원만화는 청소년들이 현실에서 겪는 외로움이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다루면서도, 현실의 한계 안에서 대체할 수 있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게 한다.

등굣길, 교문, 교실, 복도, 음악실, 미술실, 양호실, 학생회, 교무실, 화장실, 급식실. 모든 배경이 현실에서 겪는 학교라는 장소의 표상이자 설득력을 더해주는 무대이다. 입학식, 체육대회, 중간고사, 기말고사, 방학, 문화제, 동아리, 졸업식 등은 인물들이 경험하는 사건을 제공하는 동시에 현실과는 조금 다르게 장식된 대체 경험의 기회가 된다. 학생이라는 동일한 역할을 부여받았음에도 각자 다르게 그려지는 인간군상과 그들에게 펼쳐지는 사건들은, 궁극적으로 오해와 화해의 과정 사이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한계에 맞닿는 시험이다. 이 모든 이야기의 규모는 대부분 학교라는 시공간 안에서 벌어질 법한, 어찌 보면 연극 무대처럼 안전한 경계를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그림2 무궁무진한 학원만화의 범주
출처: 리디북스


학원만화의 지향점 스킵과 로퍼

여러 이유 덕분에 학원물은 남녀노소의 팬들을 갖고 있지만, 앞서 살펴본 의미들을 통해서 바라보면 청소년기를 경험한 독자들에게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학창 시절을 보내거나 지나왔던 모든 이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추천할 수 있는 학원만화, 타카마츠 미사키 작가의 스킵과 로퍼이다. 시골에서 도쿄로 상경한 미츠미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벌어지는 학원 청춘 로맨스 코미디물로, 주인공 미츠미와 친구들의 관계를 따라가며 청춘의 성장과 발달적 심리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일본의 청년 만화 잡지에서 연재되어 남성 독자층을 상정하고 연재되면서도, 소녀 만화의 섬세한 표현법을 계승한 연출로 여성 독자 비율이 더 많은 이 작품은 일견 가볍게 볼 수 있는 하이틴 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만화가 보여주는 인물들에 대한 시선의 깊이는, 등장인물들이 가진 각자만의 심리 구조를 핀셋으로 섬세하게 마음의 외피를 열어낸 후, 그 내면을 현미경으로 확대하여 보여주는 듯한 심리 사례 모음집이라고 묘사할 수밖에 없다.

모든 등장인물은 주인공의 서사를 전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시골 출신 학생이 도쿄로 전학을 가서 정말로 겪을 수 있을 법한 시뮬레이션의 대상들이다. 고등학생이 보내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미츠미가 친구들과 얽혀가는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미츠미에서 시작된 주체적 시선은 사건을 함께 겪는 친구들에게 옮겨가며 다양한 시선들까지 통섭하고자 시도한다. 이러한 점에서 스킵과 로퍼역시 군상극의 성격을 띤다. 물론 이전에도 대부분의 학원 청춘물은 시간이 흐르고 등장인물이 많아지며 자연스럽게 군상극 모습으로 확대되고는 했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자극을 제공하고 신규 독자를 끌어당길 수 있지만, 적절한 균형으로 잘 다루지 못하게 될 때는 이야기의 초점이 흐려지거나 일회성으로 소모된 캐릭터만 넘쳐날 수도 있다.

스킵과 로퍼역시 주인공인 미츠미에 반 친구들인 시마, 에가시라, 유즈키, 쿠루메, 무카이, 야마다를 중심으로 다양한 조연과 단역들이 등장한다. 다만 다른 만화들처럼 새로운 인물을 소개하기 위해 한 에피소드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반적인 전개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사건은 고교 생활의 시간적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며, 거기에 관여하는 인물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교차하는 이야기를 담아낼 뿐이다. 그 때문에 신규 캐릭터가 등장하더라도, 작위적인 이벤트가 만들어지거나 금방 속내를 털어놓는 핍진성 부족한 접근을 따르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을 사귈 때 몇 마디의 말로 시작해 천천히 친분이 쌓여가는 것처럼, 인물들은 지나가듯이 얼굴을 비추다가 미츠미와 교차하는 일이 생길 때 각자의 이야기가 드러나게 된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등장인물의 숫자 역시 늘어나지만, 기존의 친구들에게는 각자의 고민과 관계 속에서 더욱 깊은 심도의 이야기가 펼쳐질 기회가 주어진다.

이처럼 다양한 인물들 사이에서 미츠미가 그들과 교류하며 마주하는 지점이 발생하고, 시점이 미츠미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인물로 옮겨가면서 처음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던 그들의 모습 뒤에 담긴 욕구와 콤플렉스들이 드러난다. 여러 인물이 수시로 교차하고 생각과 감정이 얽히며 전개되는 이 만화에서, 등장인물 각자의 사정과 심리를 넓게 묘사하면서도 심리적 깊이까지 적절하게 표현하는 심미성은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작가가 장르에 구속되지 않고 다양한 만화의 연출 기법들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만화에서 좋은 연출들은 거의 매화마다 발견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내적 언어를 둘러싼 연출에 적용된 작가의 섬세한 접근 방식은 들여 볼수록 감탄하게 된다. 작가가 만화에서의 내적 언어 요소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만화의 초반 스토리를 따라가며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연출 소개를 위한 말 배너

그림3 <스킵과 로퍼> 1권, 타카마츠 미사키
출처: 시프트코믹스·리디북스(우→좌)

첫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 미츠미의 말투로 이뤄진 말 배너 내레이션을 통해, 미츠미의 출신과 도쿄로 상경한 배경, 가족 등을 소개한다. 가족에게 쓰는 편지처럼 1인칭으로 서술하는데, 이후 이어진 고향 친구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실수는 전달하지 않았기에 이것이 일기장에 쓰는 글임을 유추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고 미츠미 혼자서 마음을 기록한 것을 보여줌으로써, 겉보기엔 독자와 미츠미를 연결해 주는 의도만으로 읽힌다. 하지만 첫 번째 에피소드를 여러 번 읽다 보면, 간결하게 구성된 도입 에피소드의 흐름 안에서 주인공의 소개와 배경의 소개, 상황의 소개까지 필요한 정보를 전부 정리해 주는 필수적인 장치로 말 배너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내레이션 덕분에 첫 화에서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냈음에도, 다음 화부터는 말 배너의 사용 빈도를 줄인다.

내레이션을 담고 있는 말 배너는 사각형으로 생긴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그림 3). 내레이션은 이야기의 설명을 위해 사용되는 전지적 해설이며, 만화를 포함해 다른 매체에서도 흔히 사용된다. 하지만 대중 만화에서는 전개와 연출 사이의 교차점에서 도저히 이야기가 풀리지 않을 때 작가가 고려하게 되는 선택지일 것이다. 전지적 해설을 지양하는 이유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정보 전달을 위한 화면과 해설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다큐멘터리 영화는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 내레이션은 관람자를 이야기에 참여시키기보다는 정보를 관전하게 만들며, 정도에 따라서는 해석적 주체성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 스토리텔링에서는 전지적 해설을 위한 제3의 목소리가 등장할 때, 작품에 대한 몰입을 저하하기도 한다. 만화라는 매체에서 해설을 지나치게 자주 사용하게 된다면, 독자로서는 글과 이미지의 균형이 깨진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스킵과 로퍼에서는 내레이션의 형식적 기능에 미츠미의 목소리를 씌운 1인칭 서술을 더해서, 말 배너가 가지고 있는 해설적 감각을 희석함과 동시에 미츠미의 성격을 가깝고 친근하게 느끼도록 해주었다. 더불어 말 배너를 사용할 때 글이 지나치게 지배력을 갖지 않도록 문자 분량을 줄이고 그림을 크고 다양하게 제시했다. 그래서 첫 번째 에피소드는 말 배너가 가진 기능은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도 약점들을 상쇄하려 노력한 결과가 된다. 이렇게 미츠미가 드러내는 명랑하지만 실수투성이인, 그러면서도 속이 깊은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주며 소년 만화와 소녀 만화 독자들 모두로 하여금 익숙하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했다. 1인칭 형태 말 배너의 채널을 한번 열어둔 덕분에, 이후 시간이 흐르거나 사건이 벌어진 후 설명이 필요할 때마다 유사한 내레이션이 등장하는데도 전개를 방해하는 어색함이 전혀 없다. 말 배너가 줄어드는 대신 조금씩 늘어나는 것은 말풍선 밖에서 전개되는 열린 내레이션이다.


연출 심상을 위한 열린 내레이션

림4 <스킵과 로퍼> 1권, 타카마츠 미사키
출처: 시프트코믹스·리디북스(우)

생각 풍선이 인물의 감정이나 사유의 언어화된 서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생각 풍선 밖의 열린 내레이션은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사용된다. 한 가지는 순간적인 감각 및 느낌, 충동 등을 강조하는 용법이다. 미츠미가 사귀게 된 친구 쿠루메는 낯을 가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여러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게 된 자리에서 유즈키가 말을 걸자 움츠러든다. 미츠미는 그제야 쿠루메와 유즈키가 친하지 않은 것을 깨닫는데, 이때 미츠미의 내적 충격은 생각 풍선이 아닌 열린 내레이션으로 표현된다(그림 4 우하단). 요컨대 생각 풍선의 강도를 변화시킨 버전으로, 여기서 글과 이미지는 서로를 보완 설명하는 결합 형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 가지 용법은 관념의 주체인 인물이 다른 대상에 관한 사유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내레이션의 주체가 되는 인물을 먼저 보여주면서 인물의 생각을 연 뒤, 주체가 사유 대상을 보여주면서 주체의 관념들을 보여준다. 유즈키에게 움츠러든 쿠루메의 마음에 스쳐 지나간 것은 촌스럽다고 다른 친구들에게 무시당했던 과거의 잔상이다(그림 4 우상단). 생략된 이야기에서 쿠루메는 미츠미의 언행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본 결과로 유즈키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바꾸어간다(그림 4 ). 둘 다 1인칭 내적 서술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후자의 방식이 보여주는 이미지와 글의 관계는 상호 의존 결합으로, 이미지와 글이 상호작용을 해 관념 주체의 사유와 심상의 묘사를 단순 결합 형식보다 더욱 깊이 있게 발생시킨다. 이는 결국에는 열린 생각으로 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1화에서 너와 우주를 걷기 위하여로 설명했던 예시와도 유사한 방식이다. 1화에서는 생각 풍선이 독자를 등장인물에 대한 유일한 이해자의 위치로 만들어 주는 장치가 되며, 풍선 밖으로 개방된 내레이션을 통해 등장인물의 깨달음이 독자에게까지 연결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로, 애초에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결론들이 독자에게 지지받을 만한 것이 아니게 된다면 어떨까?


연출 닫힌 생각, 닫힌 내레이션

림5 <스킵과 로퍼> 2권, 타카마츠 미사키
출처: 시프트코믹스·리디북스(우)

독자로서는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태도가 공감할 만하지 않을 때, 등장인물로부터 사유가 침범당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런 등장인물의 단편적인 편견, 오해, 고정관념 등은 닫힌 생각이 되어야 하고, 등장인물의 생각을 경계선으로 가둬두어야 하는것이 된다. 이는 일반적인 용법이며 스킵과 로퍼작가 역시 그런 연출을 자주 사용하지만, 조금은 다른 점이 있다. 에가시라가 시마와 친해질 계기로 미츠미를 이용하던 중에 자신의 콤플렉스를 마주하는 이야기에서, 에가시라가 미츠미를 상대로 우월감을 유지하려는 모습의 이면에는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은 평범하기에 선택받을 수 없다라는 자기비하적 사고가 있었다(그림 5). 여기서 에가시라의 독백은 사각형의 말 배너 속에 갇혀있다. 현재의 부정적 감정으로 자신과 세상, 미래 가능성까지 전부 회의적으로 예측하는 에가시라의 관념은, ‘우울증의 인지 삼제라 불리는 자동적 사고와 다르지 않기에 경계선을 그려야 하는 닫힌 생각으로 구획된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에가시라의 닫힌 생각조차도 작가는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가시라가 열등감으로 인해 자신을 갈고 닦으며 끝없이 노력해 왔다는 것을 미츠미가 발견해 주는 이야기로 전개해 나간다. 닫혀 있던 에가시라의 관념조차도 작가가 평가절하하지 않는 것은, 독자들이 주인공 미츠미나 인기인 유즈키보다 에가시라의 관념을 가깝게 느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일 것이다. 시마는 에피소드의 끝에서 에가시라를 향해 응원을 해주는데, 이 말은 독자들을 향한 응원이기도 하다(그림 6). 개인들의 노력은 어지간한 성취로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기에 각자에게만 남겨져 있는 것들인데, 작가는 독자들의 그런 평범한 노력의 모습을 조명하고 격려해 준다. 즉 인물의 닫힌 생각조차도 비판적인 결론을 짓거나 가치 판단의 대상으로 남기기보다는, 오히려 독자의 관념으로까지 연결시켜 독자를 응원해주기 위한 장치로 확장한다.

림6 <스킵과 로퍼> 2권, 타카마츠 미사키
출처: 시프트코믹스·리디북스(우)

이는 결국 인물이 가진 어떤 속성이든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해 주게 된다. 어떤 인물을 이해하는 것은 그 인물이 승리자이거나 올바르거나 정당하거나 다수인 것과 전혀 무관하다. 등장인물이 모순적이거나 양가적일수록, 오히려 이해의 필요성은 더 커진다.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목격되거나 체험되는 인생사적 고민의 본질은, 결국은 양가성이기 때문이다.


스킵과 로퍼에 담긴 양가성

처음에는 그다지 매력이 느껴지지 않은 제목이라서 이것보다 더 나은 제목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제목의 의미에 대해 자기를 크게 보이려고 하지만 실패하기도 하는 사춘기의 학생들을 그리면서 경쾌한 기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경쾌한 걸음이라는 의미의 스킵과 학생의 아이콘인 로퍼를 연결했다고 한다. 첫 에피소드에서 지각을 앞둔 미츠미가 로퍼를 벗은 채 내달리는 장면을 통해 그런 의미가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그림 7). 로퍼, 즉 학생이라는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필요하다면 신발이라는 역할에 갇혀 있지 않고 달려 나갈 수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청소년들이 일상적 관념에 갇혀있기보다는 새로운 길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견하고 수용해 나가길 바라는 희망이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담겨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독자들 역시 역할이나 관념에 갇혀있지 말고, 세상을 열린 하늘처럼 바라보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진다.

림7 <스킵과 로퍼> 1권, 타카마츠 미사키
출처: 시프트코믹스·리디북스(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스킵과 로퍼라는 제목부터 양가성은 담겨 있다. 양가성(ambivalence)이란 대상에 대한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거나 쉼 없이 오가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학생화인 로퍼는 무겁고 불편한 신발이다. 불편한 신발과 가벼운 걸음. 애정과 증오. 관심과 고립. 간섭과 무관심, 독립과 의존. 자기애와 수치심. 설렘과 떨림. 낯섦과 익숙함. 도전과 안전. 연결되지 않을 것만 같은 양립적인 의미의 단어들이지만 결국 이 모두가 연속선상 어딘가의 한 점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이다. 상담실에서 마주하는 삶의 모습이란 자신이 부정했던 가치관들이 자신 안에서 수용될 수밖에 없는 지점들을 마련해 가는 과정이다. 스킵과 로퍼에서도 그런 양가성이 등장인물들 전반에 걸쳐 묘사되어 있다.

미츠미의 고향은 인구가 적어 한 학년이 8명으로 모두가 친구인 곳이다. 고향은 미츠미에게 미래 인구 소멸의 위기로부터 지켜야 할 곳이자 돌아가야 할 장소이지만,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미츠미는 고향을 떠나 도쿄로 왔다. 고향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인 미츠미 역시, 인구 소멸의 원인이자 결과가 된 것이다. 또 같은 지역 출신인 나오 고모 역시 한 반 모두가 친구였기에, 친구들에게 배제된 학창 시절 때문에 고향은 외로움의 상징이자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었다. 서로 아끼는 두 사람이지만 고향에 대한 태도는 상반된다.

시마는 엄마에게 사랑받고자 애쓰던 어린 시절의 욕구를 계속 기억하면서도, 드라마 아역으로 자신을 도구화했던 엄마에 대한 원망에서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 시마는 자신을 도구화하려는 타인의 의도에 예민하여 상대의 피상적인 호감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에 누구에게나 배려 있게 행동할 수 있고 역설적으로 더욱더 호감을 산다. 유즈키 역시 항상 관심받는 존재이지만 자신의 경계를 침해하며 들어오는 원하지 않는 관심들로 인해 경계를 더 세우게 된다. 앞서 보았듯이 에가시라는 자신을 얕잡아 보던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가꾸는 노력을 해왔으면서도, 결국에는 타인의 시선에 의존해 자신을 낮춰보고 있다. 이 외에도 만화에서 내레이션의 주체로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각자의 양면성과 그로 인한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등장인물들에게 양가적인 측면들이 다양하게 묘사되면서도, 그들의 모습이 바람직하거나 잘못된 길을 가는 것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작가가 편향되거나 과장된 묘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등장인물을 도구적으로 취급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규칙이다. 한쪽으로 치우쳐진 인물의 묘사는 그걸 보는 독자에게도 어느 한쪽의 양극적인 판단을 강제한다. 회색지대는 남지 않고 흑과 백만 남게 된 이야기에는, 독자들이 공감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지 역시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반대로, 치우침 없이 섬세하게 인물을 묘사할수록 독자들은 등장인물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습을 더 투영하게 된다. 이후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등장인물이 드러내는 묘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궁극적으로 등장인물들은 결국 만화를 보는 독자의 일부분이기도 하며, 등장인물을 도구적으로 취급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독자에 대한 존중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겉으로는 밝고 가벼워 보이는 만화에 담겨 있는 작가의 깊이 있는 의도는 이 작품의 가치를 무겁게 만들면서 그 자체로 양가성을 완성한다.


만화가 품고 있는 치유적 힘

모두가 다루는 주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내는 작품을 마주하게 될 때, 그것이 프로 창작자의 결과물일 때에도 나는 작가의 자기 치유를 느낀다. 자기 치유라는 것은 창작을 통해 자신과 마주하며 스스로와 상담해 나가는 일이다. 스킵과 로퍼에서 드러나는 세상에 대한 균형적 관점, 등장인물들 어느 하나조차 소홀히 대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모습은 자신이 만들어가고 싶은 이상적 자아의 투영일지도 모른다. 등장인물의 좋은 면이든 싫은 면이든 그들의 자아를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알게 될수록 더 사랑스러워지게 되므로, 독자들이 그들을 아끼고 작품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작가의 자기애를 충족시켜 주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의 인간에 대한 관점과 그것을 위한 세심한 연출적 노력이 발견되면서, 이 작품이 목표로 하는 자기초월적인 목적도 느껴진다. 등장인물을 사랑하게 되며 성장하는 존재들을 지켜보는 과정에 참여하게 된 독자들 역시, 자연스럽게 성장에 동참하게 된다. 여러 인물의 관점을 알게 되며 현실에서는 이해되지 않던 인물상들에 대해서도 다소 이해의 여지를 넓혀준다. 독자들 각자가 자신 안의 여러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기를 바라는 것, 이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서로에게 이해적이고 수용적인 모습이 되어주기를 희망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이 작품은 결국 독자들을 위해서도 심리 치유에 가깝다.


마무리하며

그래픽노블이나 독립 만화들에서 발견되는 자기 고백과 개별성이 주는 울림만큼이나, 스킵과 로퍼가 전달하는 일상성과 양가성 역시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치유를 낳는만화의 증명이 된다. 만화가 주는 가벼움과 일상성은 청소년기 이후로 지금까지 내게 현실을 견디는 힘이었다. 시마는 스스로 필사적으로 연출해 낸 겉모습이라고 생각했지만, 미츠미가 시마의 다정함에 구원받았던 것처럼, 나 역시 만화의 가벼움으로 얼마나 구원받았는지. 그 일상성이 어떻게 하루하루의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었는지 말할 기회가 생겨서 다행일 뿐이다. 거창한 이야기를 늘어놨지만, 마음은 미츠미와 같다. 이런 만화가 나오면 너무 기쁘니까 앞으로도 그런 만화가 계속 나와 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다(그림 8).

 

 림8 <스킵과 로퍼> 2권, 타카마츠 미사키
출처: 시프트코믹스·리디북스(우)


필진이미지

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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