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만난 디지털 네이티브와의 문화적 대화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웹툰 플랫폼 강의 때 일어난 일 - 선생님, 그거 옛날얘기 아니에요? (1)

웹툰 플랫폼 강의 경험을 통해 교수는 '정보 격차의 역전'을 깨닫고, 학생들의 실시간 현장 경험과 자신의 이론적·역사적 맥락 분석을 결합하여 지식 전달자에서 '학습 촉진자'로 역할을 재정립하는 새로운 디지털 시대 교육 패러다임을 확립했다.

2025-11-14 한창희

웹툰 플랫폼 강의 때 일어난 일 - 선생님, 그거 옛날얘기 아니에요? (1)

정보 격차의 역전과 교육 권위의 재정립

강의실에 들어서면서 나는 이번 주제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웹툰 플랫폼의 변화상과 산업 동향을 다루는 이번 강의를 위해 지난 한 달간 공들여 자료를 수집했기 때문이다. 네이버웹툰의 글로벌 확장 전략을 분석한 산업 리포트, 카카오페이지의 수익 모델을 다룬 경영학 저널, 레진코믹스의 콘텐츠 정책 변화를 추적한 미디어 연구 논문들을 꼼꼼히 읽었다. 공식 보도 자료와 기업 발표 자료를 교차 검증하며 작성한 강의안은 체계적이고 신뢰할 만했다. 최소한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러나 강의를 시작한 지 불과 15분 만에 내 확신은 산산이 부서졌다. 첫 번째 슬라이드에서 네이버웹툰의 일일 이용자 수를 제시하자마자, 앞줄에 앉은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선생님, 그 수치는 3개월 전 자료인 것 같은데요. 어제 플랫폼 업데이트로 DAU10% 이상 증가했거든요." 나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갔다. 인기 작품 순위를 설명하려는 순간, 이번에는 뒷줄에서 다른 학생이 말했다. "지금 1위는 외모지상주의가 아니라 신의 탑이에요. 그리고 그 작품은 이미 완결됐고, 시즌2가 연재 중이거든요." 순간 강의실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고, 몇몇은 스마트폰을 꺼내 실시간으로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점점 더 난처해졌다. 결제 시스템에 관해 설명하려 할 때, "이제 코인 시스템 말고 패스 시스템으로 바뀌었어요"라는 정정이 들어왔다. 작품 연재 주기를 다룰 때는 "그 작가님은 건강 문제로 휴재 중이세요"라는 추가 정보가 제공됐다. 광고 모델을 분석하려던 순간에는 "지금은 그 방식 안 써요. 작년에 사용자 반발이 심해서 정책 바꿨거든요"라는 지적을 받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내가 정성껏 준비한 해외 진출 현황 부분이었다. "일본 시장 진출이 한국 웹툰의 주요 과제"라고 설명하자, 한 학생이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선생님, 요즘은 일본보다 동남아 시장이 훨씬 중요해졌어요. 태국이랑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웹툰 인기가 엄청나거든요. 현지 언어로 거의 실시간 번역되고, 팬 커뮤니티도 엄청 활발해요." 그 학생은 자신이 직접 팬 번역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동남아 독자들과 매일 소통한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가진 정보는 이미 '과거'였고, 학생들이 가진 정보는 '현재 진행형'이었던 것이다.

쉬는 시간에 나는 몇몇 학생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의 정보 습득 경로를 파악하고 싶었다.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은 놀라웠다. 이들은 단순히 웹툰을 소비하는 독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매일 여러 플랫폼 앱을 사용하며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인터페이스와 정책을 체험하고 있었다. 유료 결제를 통해 작품을 구매하며 가격 정책의 변화를 민감하게 인지했고, 작가 후원 시스템에 참여하며 창작 생태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일부는 2차 창작 활동을 하며 저작권 정책의 실제적 적용을 경험했고, 팬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플랫폼의 커뮤니티 관리 전략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웹툰 플랫폼은 연구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일부였다. 한 학생은 자신이 속한 디스코드 채널에서 매일 플랫폼 정책 변화에 관한 토론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다른 학생은 유튜브 웹툰 리뷰어들의 영상을 통해 업계 동향을 파악한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작가들의 트위터를 팔로우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고 했다. 그들의 정보망은 공식 채널을 넘어서 인플루언서, 커뮤니티, SNS, 팬 네트워크 등 다층적이고 실시간적이었다. 반면 나의 정보 습득 경로는 학술 논문, 공식 보도자료, 정기 간행물로 제한되어 있었다. 학계의 검증 과정을 거친 신뢰할 만한 정보였지만, 그 정보가 출판되기까지의 시간 지연은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깊은 성찰에 빠졌다. 전통적인 교육 패러다임에서 교수는 지식의 전달자(teacher)이고 학생은 지식의 수용자(student). 교수가 쌓아온 학문적 권위와 경험은 교육 관계의 근간이었다. 그러나 오늘 강의실에서 벌어진 일은 이러한 일방향적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적어도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말이다. 학생들이 나보다 더 정확하고 최신의 정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들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서 온라인 환경에서 정보를 탐색하고 검증하며 공유하는 데 익숙했다. 반면 나는 아날로그 시대의 학습 방식을 고수하며 신뢰할 수 있는 출처만을 선별적으로 참고했다. 그 결과 정보의 ''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 있었지만, 정보의 '속도'에서는 완전히 뒤처졌다.

그러나 이 경험을 단순히 좌절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것은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모색할 기회였다. 다음 주 강의를 준비하며 나는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먼저 학생들에게 미리 공지를 보냈다. 각자가 관심 있는 웹툰 플랫폼을 선택해 최근 한 달간의 주요 변화를 조사해 오라고 했다. 강의 시작 30분은 학생들이 발견한 최신 정보를 공유하는 시간으로 할애했다. 네이버웹툰의 AI 추천 알고리즘 업데이트, 카카오웹툰의 새로운 정산 시스템, 리디북스의 구독 모델 개편, 탑툰의 글로벌 진출 전략 등 학생들이 가져온 정보는 놀라울 정도로 풍부하고 상세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역사적 맥락과 이론적 분석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AI 추천 알고리즘의 변화는 1990년대 협업 필터링 기술의 발전과 2000년대 넷플릭스의 추천 시스템 혁신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정산 시스템의 개편은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가치 사슬 변화와 창작자 경제의 부상이라는 이론적 틀로 분석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생생한 현장 경험과 나의 학문적 배경이 결합하자, 강의실에는 예상치 못한 시너지가 일어났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 학생이 제기한 질문이었다. "선생님, 웹툰 플랫폼들이 왜 이렇게 자주 정책을 바꾸는 걸까요? 사용자들은 혼란스러워하는데 말이에요."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디지털 플랫폼 경제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었다. 나는 플랫폼 자본주의 이론을 설명하며, 디지털 플랫폼이 끊임없이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최적화를 시도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A/B 테스트, 사용자 행동 분석, 전환율 최적화 등의 개념을 소개하며, 웹툰 플랫폼의 잦은 정책 변경이 사실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의 산물임을 보여줬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매일 경험하는 현상의 이면에 있는 구조와 논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나는 학생들의 경험을 통해 이론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전통적인 한 방향 강의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풍부함이었다.

몇 주가 지나면서 강의 방식은 더욱 진화했다. 나는 교수로서의 역할을 지식 전달자에서 학습 촉진자(facilitator)로 재정의했다. 강의 시간의 절반은 학생들이 발견한 사례와 경험을 공유하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그것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맥락화하는 데 사용했다. 학생들은 웹툰 플랫폼의 실시간 변화를 관찰하는 '현장 조사자'가 되었고, 나는 그 관찰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분석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발견들이 이어졌다. 한 학생은 네이버웹툰이 특정 시간대에 특정 장르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푸시 알림 한다는 패턴을 발견했다. 우리는 이를 타겟 마케팅과 사용자 세분화 전략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다른 학생은 레진코믹스의 성인 콘텐츠 정책이 국가별로 다르게 적용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글로벌 플랫폼이 직면하는 문화적 맥락과 법적 규제의 차이라는 중요한 주제로 이어졌다. 또 다른 학생은 작가들이 여러 플랫폼에 동시 연재하는 멀티 플랫폼 전략을 택하는 추세를 보고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플랫폼 종속성과 창작자 자율성의 긴장 관계를 토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늘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도전은 학생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것이었다.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소문과 확인된 사실을 구분하는 것, 개인적 경험과 일반화할 수 있는 패턴을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떤 학생은 특정 플랫폼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었고, 다른 학생은 자신이 선호하는 플랫폼을 옹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때 나의 역할은 명확해졌다. 다양한 관점을 조율하고, 감정적 반응과 객관적 분석을 구분하며, 개별 사례를 더 큰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카카오페이지가 작가들에게 불공정하다"라고 주장했을 때, 나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작가로 활동하는 학생, 독자로서만 참여하는 학생, 해외 플랫폼 경험이 있는 학생 등 다양한 입장이 표출되었다. 그리고 나는 플랫폼-창작자 관계의 이론적 모델들을 제시하며, 공정성의 기준이 무엇인지, 누구의 관점에서 평가하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단순한 정보 제공자를 넘어서 비판적 사고자로 성장했다.

더 나아가 나는 학생들과 함께 '웹툰 플랫폼 동향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로 했다. 수업 시간에 공유된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출처를 명시하며, 주간 단위로 업데이트하는 공동 작업이었다. 학생들은 각자 담당 플랫폼을 정해 정기적으로 변화를 추적했고, 나는 이를 검토하고 분석 틀을 제공했다. 몇 달이 지나자, 이 데이터베이스는 상당히 유용한 자료가 되었다. 다른 수업에서도 참고할 수 있었고, 심지어 업계 종사자들도 관심을 보였다. 한 웹툰 기획자는 "학술적 관점과 사용자 경험이 결합한 독특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이 프로젝트는 학생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상적 경험이 학술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키웠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단순한 정보 소비자가 아니라 지식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학기 말에 나는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수업에서 가장 유익했던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고무적이었다. "내가 가진 경험이 학습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론과 실제가 연결되는 순간의 통찰이 좋았다.", "교수님도 모르는 것이 있다는 걸 알고 오히려 편해졌다.", "함께 배워간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반응들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 학생의 코멘트였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최신 정보를 모르신다는 게 실망스러웠어요. 하지만 수업이 진행되면서 깨달았어요. 선생님은 정보를 아는 게 아니라 정보를 이해하는 방법을 아시는 거라는 것을요. 그게 더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고요." 이 말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렇다.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교육자의 역할은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맥락화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학생들이 가져오는 날것의 정보에 이론적 렌즈를 제공하고, 파편화된 경험을 연결해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기여였다.

이 경험은 나의 다른 수업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AI 아트를 다루는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사용하는 생성 AI 도구들의 최신 기능을 공유하게 했다. 그들은 ChatGPT, Midjourney, Stable Diffusion의 업데이트 내역을 실시간으로 추적했고, 나는 이를 생성 모델의 발전사와 컴퓨터 비전 이론의 맥락에서 분석했다. 한 학생이 Midjourney v6의 새로운 프롬프트 구문을 시연했을 때, 나는 그것을 1960년대 ELIZA부터 시작된 자연어 처리의 역사와 연결했다. 학생이 "이제 더 자연스러운 언어로 명령해도 원하는 이미지가 나와요"라고 말하면, 나는 "그것은 트랜스포머 아키텍처의 발전과 대규모 언어 모델의 등장이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놀라움 속에는 단순한 기능 사용을 넘어선 이해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이 매일 사용하는 도구가 수십 년의 기술 발전이 축적된 결과물임을 깨달았고, 나는 추상적이었던 이론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BCI 아트 수업은 더욱 흥미로운 전개를 보였다. 학생들이 뉴럴링크, 이모티브, 넥스트마인드 등의 기업 소식을 모니터링하며 가져온 정보는 때로 학술 논문보다 앞서 있었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가 FDA 승인을 받아 인간 실험을 시작했다는 뉴스, 이모티브의 새로운 EEG 헤드셋이 감정 인식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발표, 넥스트마인드가 소비자용 BCI 기기 개발을 중단했다는 소식 등이 실시간으로 공유되었다. 나는 이러한 현상들을 신경 미학의 이론적 프레임워크 안에서 해석했다. 뇌파를 읽어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단순한 기술적 성취를 넘어서, 인간 의식과 창조성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포스트휴먼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BCI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재정의하는 매개체다. 학생 한 명이 "뇌파로 그림을 그린다는 게 정말 창작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한 시간 넘게 토론을 이어갔다. 의도성, 주체성, 표현의 개념이 기술 매개를 통해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논의하며, 학생들은 자신들이 목격하는 기술 혁신이 사실은 존재론적 전환의 한 지점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미디어 아트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NFT 시장의 동향을 추적했다. 오픈씨의 거래량 변화, 새로운 블록체인 플랫폼의 등장, 유명 아티스트들의 NFT 프로젝트, 환경 문제를 둘러싼 논쟁까지 그들이 가져온 정보는 방대했다. 특히 한 학생은 비플의 NFT 작품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6,900만 달러에 낙찰된 이후 NFT 시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상세하게 추적했다. 초기의 과열된 투기 붐, 이어진 시장 조정, 그리고 현재의 안정화 국면까지. 나는 이를 예술 시장의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했다. 15세기 메디치 가문의 후원 시스템, 19세기 살롱 전시의 권위, 20세기 화랑 시스템의 부상, 그리고 21세기 블록체인 기반 소유권 증명까지. 예술 작품의 가치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유통되며 재정의되는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하자, 학생들은 NFT가 단순한 기술적 유행이 아니라 예술 시장 구조의 근본적 재편임을 이해했다. 동시에 블록체인 기술의 사회적 함의, 즉 탈중앙화, 투명성, 불변성이라는 가치가 예술계에 던지는 질문들을 함께 고민했다. 누가 예술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소유권과 감상권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디지털 복제 시대에 원본성이란 무엇인가?

모든 수업에서 공통된 패턴이 나타났다. 학생들은 현재를 살아가며 변화를 목격하는 목격자이고, 나는 과거를 연구하며 맥락을 제공하는 해석자였다. 이 둘의 만남에서 진정한 학습이 일어났다. 학생들이 가져오는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는 이론에 살과 피를 입혔고, 내가 제공하는 역사적·이론적 프레임워크는 파편화된 정보들을 의미 있는 서사로 엮어냈다. 이것은 전통적인 강의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종류의 학습이었다. 교수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양방향의 지식 구성 과정이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경험이 학문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나는 이론이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임을 재확인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단순한 정보 소비자에서 비판적 사고자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현상을 관찰하고, 질문을 제기하고, 맥락을 이해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능력을 키웠다. 이것이야말로 대학 교육이 추구해야 할 본질적 목표가 아닐까.

돌이켜보면 그날 강의실에서의 당혹감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교수로서의 권위는 모든 것을 아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함께 배우려는 태도에서 온다는 것이다. 이 깨달음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학계의 문화는 여전히 전문가의 전지성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교수는 자신의 분야에서 권위자여야 하고,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무능함의 표시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은 이러한 전통적 권위 구조에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 방식뿐 아니라 지식의 위계 구조 자체를 재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식이 소수의 전문가에게 집중되었고, 그들의 권위는 정보에 대한 독점적 접근에서 비롯되었다. 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희귀본, 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학회에서 발표되는 최신 연구 등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식의 보고였다. 교수는 이러한 지식의 문지기(gatekeeper)이자 전달자였다.

하지만 이제 정보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유 자원이 되었다. 구글 학술 검색을 통해 수많은 논문에 접근할 수 있고, 오픈 액세스 저널은 연구 결과를 무료로 공개하며, 유튜브와 온라인 강의 플랫폼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정보의 민주화는 전문가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하는 동시에, 전문가의 역할을 재정의할 기회를 제공한다. 전문가의 역할은 정보 제공자에서 정보 해석자로 변화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해하는가'. 방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의미 있는 것을 선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을 검증하며, 파편화된 정보를 연결해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 이것이 현대 지식인이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이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분야에서는 현장의 실천가들이 학계의 연구자들보다 더 최신의 정보를 가질 수밖에 없다. 연구 논문이 출판되기까지는 통상 1-2년이 걸린다. 투고, 심사, 수정, 재심사, 편집, 출판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기술은 이미 몇 세대를 진화한다. 학술적 엄정성과 시의성 사이의 긴장은 불가피하다.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학생들의 현장 경험과 교수의 이론적 통찰이 만날 때, 어느 한쪽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의 이해가 가능해진다. 학생들은 나무를 보고, 나는 숲을 본다. 학생들은 변화의 순간을 포착하고, 나는 변화의 패턴을 읽는다. 학생들은 '지금 여기'의 생생함을 가져오고, 나는 '그때 거기'의 맥락을 제공한다. 이 둘이 결합할 때 비로소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학생이 "요즘 AI가 그림을 진짜 잘 그려요"라고 말할 때, 나는 "그렇다면 그것은 1950년대 튜링이 제기한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가 어떻게 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응답할 수 있다. 학생의 경험은 추상적 질문에 구체성을 부여하고, 나의 맥락화는 일상적 경험에 철학적 깊이를 더한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함께 의미를 구성해 간다.

나는 이제 강의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나는 여러분이 매일 사용하는 플랫폼의 최신 기능을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왜 중요한지,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함께 탐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경험과 나의 분석이 만날 때, 우리는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초반에는 약간의 의아함이 감돌기도 한다. 교수가 모르는 것을 먼저 인정한다는 것이 낯설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업이 진행되면서 그들은 이해한다. 최신 정보를 아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정보는 인터넷 검색으로 얻을 수 있지만, 통찰은 대화와 토론과 성찰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어느 날 한 학생이 수업 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처음에 선생님이 웹툰 플랫폼의 최신 기능도 모르신다는 게 실망스러웠어요. 대학 강의에서 배울 게 뭐가 있나 싶었죠. 그런데 수업을 듣다 보니 깨달았어요. 제가 알고 있던 건 그냥 정보였고, 선생님이 알려주신 건 이해하는 방법이었다는 것을요. 이제 저는 새로운 기술을 접할 때 단순히 '이게 뭐지?'가 아니라 '이게 왜 등장했지?', '이게 어디로 가고 있지?', '이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지?'를 물어보게 됐어요." 이 말을 들으며 나는 내가 추구하는 교육의 본질을 학생이 정확히 이해했다는 것을 알았다. 정보는 구글이 줄 수 있지만, 비판적 사고의 틀은 교육을 통해서만 형성된다. 팩트는 검색할 수 있지만, 맥락은 학습해야 한다. 데이터는 수집할 수 있지만, 통찰은 대화를 통해 발견된다.

다른 학생은 이렇게 표현했다. "저는 항상 웹툰을 많이 봤지만, 그냥 재미로만 봤어요. 이 수업을 듣고 나서는 웹툰 플랫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이런 정책 변화가 일어나는지, 이것이 콘텐츠 산업 전체에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같은 것을 보지만 다르게 보게 된 거죠." 이것이 바로 내가 학생들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이다.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렌즈. 현상 너머의 구조를 읽어내는 능력. 표면 아래의 역학을 이해하는 통찰. 이런 능력은 특정 플랫폼의 기능을 아는 것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고, 훨씬 넓게 적용된다. 웹툰 플랫폼이 사라져도, 이 분석적 사고 능력은 남는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새로운 기술이나 현상을 마주하더라도 적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결국 그날의 당혹스러운 경험은 나를 더 나은 교육자로 만들었다. 정보 격차의 역전은 교육 권위의 추락이 아니라, 권위의 재정립이었다. 교육자의 권위는 이제 모든 답을 아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끄는 능력에서 온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현대적 형태로 부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고 선언하면서도,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도록 도왔다. 나 역시 최신 정보에 대해서는 무지함을 인정하지만, 그 정보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지에 대해서는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 이 오래된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함께 낚시하며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현대 교육자의 역할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때로는 학생이 더 나은 낚시터를 알고 있고, 교수는 그 물고기의 생태를 설명할 수 있다. 학생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앱의 변화를 감지하고, 교수는 그 변화가 플랫폼 경제의 어떤 논리를 반영하는지 설명한다. 학생은 새로운 AI 도구의 놀라운 기능을 시연하고, 교수는 그것이 기계학습 이론의 어떤 발전을 구현한 것인지 해설한다. 학생은 NFT 시장의 급등락을 보고하고, 교수는 그것을 투기 자본의 역사와 연결한다. 이것이 진정한 협력 학습이고, 디지털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은 단순히 교육 방법론의 변화를 넘어서, 지식의 본질에 대한 재사유를 요구한다. 근대 교육 시스템은 지식을 객관적이고 안정적이며 누적할 수 있는 것으로 상정했다. 교과서에 담긴 지식은 검증되고 정리된 것이며, 교육자의 역할은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지식, 특히 기술과 관련된 지식은 유동적이고 맥락 의존적이며 끊임없이 갱신된다. 웹툰 플랫폼의 정책은 사용자 반응에 따라 수시로 변경되고, AI 모델은 매달 새로운 버전이 출시되며, NFT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요동친다. 이런 환경에서 교육은 고정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을 읽어내는 능력의 함양이어야 한다.

나아가 이는 학생에 대한 관점의 전환도 요구한다. 학생은 더 이상 빈 그릇(empty vessel)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교실에 들어온다. 그들이 가진 것은 학문적 형식을 갖추지 않았을 뿐, 실질적 가치를 지닌 지식이다. 교육자의 역할은 이 비형식적 지식을 학문적으로 정제하고, 이론적 틀로 체계화하며,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돕는 것이다. 학생의 경험을 무시하고 교수의 지식만을 주입하려 한다면, 그것은 절반의 교육에 그친다. 반대로 학생의 경험만을 존중하고 이론적 깊이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불완전하다. 진정한 교육은 경험과 이론, 실천과 성찰, 현재와 역사가 만나는 접점에서 일어난다.

웹툰 플랫폼 강의에서 시작된 이 깨달음은 이제 나의 교육 철학의 핵심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완벽한 강의안을 준비하려 애쓰지 않는다. 물론 기본적인 준비는 철저히 한다. 이론적 배경, 역사적 맥락, 분석 틀 등은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대신 학생들과 함께 채워갈 빈칸들을 남겨둔다. 의도적으로 열린 질문들을 배치하고, 학생들의 경험이 들어올 공간을 확보한다. 그 빈칸은 그들의 경험으로 채워질 것이고, 나의 분석으로 의미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만들어가는 지식은 혼자 준비한 어떤 강의보다 풍부하고 살아있으며 의미 있다.

강의안에는 이제 두 종류의 내용이 공존한다. 하나는 내가 준비한 이론적·역사적 내용이다. 미디어 이론, 플랫폼 경제학, 디지털 문화 연구의 주요 개념과 논쟁들. 다른 하나는 학생들이 채워 넣을 경험적·현장적 내용을 위한 여백이다. 주제마다 "최근 사례", "현장의 목소리", "논쟁적 이슈"와 같은 섹션을 만들어두고, 학생들이 가져온 정보로 채워 나간다. 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강의안은 완전히 새로운 문서가 된다. 내 것인 동시에 학생들의 것이고, 이론인 동시에 실천이며, 과거인 동시에 현재다. 이것을 다음 학기에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학생들이 다르고, 현실이 변했기 때문이다. 매 학기 새로운 강의안이 공동 창작된다.

어떤 동료 교수는 이런 접근이 비효율적이라고 말한다. 매번 새로 준비해야 하고, 통제가 어렵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전통적 강의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고 체계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효율성이 교육의 최고 가치인가? 체계성이 학습의 본질인가? 학생들이 졸업 후 기억하는 것은 교수가 정리해 준 깔끔한 강의 노트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참여하고 기여하고 발견한 순간들이다. 그들이 직접 가져온 사례가 이론과 연결되는 순간의 아하! 모멘트, 자신의 질문이 깊은 토론으로 이어지는 경험, 동료들과 함께 의미를 구성해 가는 과정. 이런 것들이 진정한 배움을 만든다.

"선생님, 그거 옛날얘기 아니에요?"라는 학생의 질문은 이제 도전이 아니라 초대다. 함께 최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자는 초대. 나의 역사적 지식과 너의 현재 경험을 결합해 새로운 이해를 창조하자는 제안. 이 초대에 기꺼이 응하며, 나는 오늘도 학생들과 함께 배워간다. 때로는 그들에게서 배우고, 때로는 그들과 함께 발견하며, 언제나 그들을 위해 맥락을 제공한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 교육자의 모습이다. 전지전능한 현자가 아니라, 함께 길을 찾아가는 동행자. 모든 답을 가진 권위자가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촉진자. 지식을 독점한 수호자가 아니라, 지식을 공유하고 재구성하는 협력자.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 자신도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한다. 학생들이 가져오는 새로운 정보는 내 연구에 영감을 주고, 그들의 질문은 내 사유를 자극하며, 그들과의 대화는 내 이해를 깊게 한다. 교육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순환이다. 내가 주면 돌아오고, 돌아온 것은 더 풍부해져서 다시 나간다. 이 순환 속에서 교사와 학생의 경계는 흐려지고, 우리는 모두 학습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웹툰 플랫폼 강의실에서 시작된 작은 당혹감은 이렇게 나의 교육관 전체를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매 학기, 매 수업, 매 순간이 새로운 배움의 기회다. "선생님, 그거 옛날얘기 아니에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미소 짓는다. 그리고 대답한다. "그렇구나. 그럼, 지금 얘기를 들려줄래? 우리 함께 이해해 보자."


필진이미지

한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