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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감 이상의 행복을 전달하는 현대 판타지 <수의사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사랑스럽게 집사와 꽁냥꽁냥한 현대 판타지 장르의 수작

2024-03-19 박민지

‘스튜디오 니니’에서 제작된 웹툰 <수의사님! 안녕하세요?>의 장르적 범주는 ‘현대 판타지’에 해당한다. ‘현대 판타지’하면 남성향, 초능력, 영웅 서사가 떠오른다. 현생이 불만족스러울 때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대표적인 장르가 아닐까. 웹툰 <수의사님! 안녕하세요?>는 제목에서 가늠할 수 있듯 주인공 ‘이준’은 수의사고, 그는 동물과 대화하는 초능력이 있다. 같은 능력을 가진 ‘닥터 두리틀’이 동물과 소통해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영국 여왕을 구해 입신양명한다면, 이준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경계 없이 동물과 소통하고 치료한다. 



| 내 마음이 들리니

멍멍동물병원 개원 전날 밤, 수의사 이준의 꿈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견 콩돌이가 나온다. 콩돌이가 준 능력일까, 이준은 응급상황에 놓인 개의 목소리를 듣고 아픈 원인을 파악해 엑스레이 촬영 없이 치료한다. (보호자 입장에선 검진비가 굳는 흐뭇함을 감출 수 없다) 잘 생겼지 특별한 능력에 마음씨까지 선한 완성형 수의사와 대립하는 건 자선사업에 버금가는 의료활동 때문에 병원 이익을 걱정하는 장 실장 정도다. 그러나 주인공의 능력이 동물치료에 국한된다면 필연적 갈등이 없는데 어떻게 긴 서사를 만들 것인가?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며 사뭇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장르적 쾌감에 길들어져 더 큰 자극을 원하는 독자를 붙잡을 수 있을까? 초능력이 생긴 뒤 개과천선할 것도 아니고 균열도 결핍도 없는 캐릭터가 대체 뭘 보여줄 것인가?


| ‘반려’ 동물의 세계

2020년 반려동물 보유가구는 약 300만 가구로 반려견 77.2%이며, 반려묘 22.8%로 양분된다. 보호자는 반려동물에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 시행착오를 겪다가 파양을 고민하거나, 최악의 경우 유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려동물로선 보호자가 세상 전부고 유일한 가족이다. 보호자도 반려동물의 속내가 궁금하겠지만 반려동물도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싶을 것이다. 이때 이준은 보호자와 반려동물의 세계를 연결하는 중간다리가 된다. 활력이 넘쳐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비글종에겐 하루 최소 3시간 산책이 필요하며, 평균 몸무게 50kg이 넘는 프레니즈종도 강아지처럼 쓰다듬고 귀여워해 주길 원한다. 이준은 어려움을 겪는 반려동물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문제를 해결한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동물 화자의 등장은 인간 시점으로 동물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여타의 동물 만화와 차별점을 형성한다. 



| 여기, 길고양이도 있어요

이준이 운영하는 멍멍동물병원 근처 늘푸른공원은 동네 개들의 산책코스이자 길고양이들의 서식지다.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은 보다 긍정적으로 확대되었지만 굶주림과 질병, 사고에 노출된 위태로운 삶은 여전하다. 웹툰 <수의사님! 안녕하세요?>는 길고양이도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덕분에 자칫 동물병원에 출입하는 동물에 한정될 수도 있는 이야기에서 확장된다. 그중 늘푸른공원의 대장냥이 ‘실버레인’ 에피소드를 주목해야 한다. 평소 인간을 불신하던 실버레인이 사라지자 이준은 직접 찾아 치료하고 보호자가 되기로 한다. 길고양이 입장에선 기적이나 다름없는, 묘생역전의 순간이다. 세상에 나쁜 반려동물도 없지만, 이런 수의사도 없다. (아직 연재 중이지만) 이 에피소드가 가장 감동적인 건 현실에 있을 법한 혹은 있었으면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초능력을 이용해 부와 성공을 향해 질주하지 않아서, 작은 생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고마워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 오늘도 사랑스럽개 집사와 꽁냥꽁냥

웹툰 <수의사님! 안녕하세요?> 서건주 작가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수의학적 고증과 메티컬 장르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 장점이다. 실제 동물병원은 물론 동물보호소, 길고양이의 생태 등 발로 뛰어 만든 이야기라는 인상을 준다. 웹툰이 장르란 외피를 입고 비슷한 설정과 클리셰로 무한 재생산되는 요즘, 수의학적 전문성을 갖춘 이야기는 매우 신선하다. 상업 웹툰에서 공익성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이 작품은 반려동물이 늘어나는 만큼 유기동물도 늘어나는 현시점에 생각할 거리를 준다. 앞으로도 동물의 마음을 듣는 ‘수의사 인간’의 활약이 기대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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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지

만화평론가
2021 만화평론공모전 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