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메뉴
아카이브
웹진
이용안내

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장난인 듯 장난 같지 않은 코믹 판타지 <성검전설>

병맛이라 부르는 B급 감성

2024-03-21 최윤석


독자에게 제목과 표지는 첫인상이다. 대체로 많은 이들이 그 첫인상에 의해 작품을 보고, 이어서 볼지 말지를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첫인상과 전혀 다른 이야기에 놀라기도 한다. 그것은 긍정일 때도 있고, 부정일 때도 있다. 그렇다면 오늘 다룰 작품 <성검전설>의 경우는 어떨까. 중년과 노년, 그 사이쯤 보이는 근육질의 남성이 표지로 그려진 이 작품을 소개하자면 간단하다. 성검을 잃어버린 용사가 성검을 찾는 이야기. 제목조차 떡하니 ‘성검전설’이라 하여 왜인지 정통판타지를 기대하게 만든다.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성검을 찾아 헤매는 용사의 모습이 연상된다. 짚고 넘어가자면 실제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마냥 긍정하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기시감이 들 수밖에 없다. 이 작품, 어딘가 모르게 은은하게 돌아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긍정이나 부정이냐 묻는다면 긍정에 가깝다.

  

| 병맛이라 부르는 B급 감성

다소 말장난이 있지만, 그래도 나름, 시작은 무게감이 있었다. 힘든 여정 끝에 마왕 앞에 용사인 주인공이 도착했고, 싸우기 위해 성검을 꺼내려 할 때까진 말이다. 그런데 성검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 본격적이다. 용사란 작자가 무려 성검을 잃어버렸다. 그때부터 작품은 소개한다. 이 작품이 병맛이 가미된 작품임을. 성검을 넣어둔 곳은 판타지 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아공간 마법주머니’. 하지만 그곳을 아무리 뒤져도 성검은 없었다. 그런데 꺼내지는 물건들이 심상치 않다. 성검 못지않게 강력해 보이는 검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날카로운 반자동 이계의 심판자’라며 뜬금없이 권총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황당한 와중에도 마왕은 대충하고 싸우자고 한다. 용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지만, 상황은 어딘가 모르게 코믹하기만 하다. 사실 이 모든 건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용사 ‘존 나르센’이니까. 익숙해져야 한다. 이러한 언어유희는 이 작품에선 기본이니까. 

전개 자체는 제법 정석의 길을 간다. 30년이 지난 후, 성검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성검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그런데 핀트가 꽤 많이 벗어난 듯한 상황들이 등장한다. 마차를 얻어탄 주인공이 돈 대신 주는 것이 마검이고, 주인공이 잠식당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받은 이는 그걸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 받자마자 3컷 만에 마검에 잠식당했기 때문이다. 이게 용사란 작자가 하는 일이란 것도 어이가 없고, 딱히 엄청난 일이 아닌 것처럼 그려지는 것도 황당하다. 물론, 그럼에도 이야기 전개는 아무 문제 없이 흐른다. 즉, 대세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거다. 오히려, 그 사건은 이후에 용사가 추격당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깨알 같은 포인트다.


| 당연한 듯 정상이 없는 파티

일단 주인공인 용사는 정상으로 보기 어렵다. 모든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고, 하필이면 이에 걸맞게 아주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의 이름 ‘존 나르센’답게 작중 묘사하길 성검이 있어서 강한 게 아니라 그냥 강하다고 표현된다. 그런 이가 마왕의 사천왕 중 하나인 ‘망령왕’을 데리고 다니게 되는데 결국 이 캐릭터는 맞기 싫으면 용사를 따라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런데 묘하게 맞는 말을 할 때마다 독특한 웃음 포인트가 생긴다. 가령, 공격해오는 적을 죽여야 한다는 망령왕에게 용사는 친구의 딸이라 안 된다고 하자. 나름 악역 포지션인 망령왕이 이를 공감하는 모습은 ‘맞는 말이긴 한데 그게 당신이 할 소린 아니지 않아?’와 같은 반문을 떠올리게 만들어 웃게 만든다. 이후에 용사 파티에 일행이 추가되어도 망령왕은 이름과 달리 묘하게 정상인 포지션을 가지게 된다. 그로인해 이 작품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오랜만이다. 트렌드적인 요소 없이 세계관 자체는 정통의 느낌을 제법 진지하게 구현해내면서 그 특유의 유머를 한 화마다 꾸준하게 삽입하여 작품의 색깔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이후 전개가 계속 기대가 된다. 


필진이미지

최윤석

만화평론가


관련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