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메뉴
아카이브
웹진
이용안내

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자기를 구하는 영웅, 이야기하는 영웅: <1초>

"과연 누구를 영웅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해당 질문에 답변을 찾아가는 이야기

2024-03-26 수차미


시니와 광운의 <1초>는 소방관을 주제 삼은 웹툰이다. 미래를 보는 능력을 소재 삼아 진행되는 이 작품은 스토리 작가 시니의 데뷔작을 반복하는 듯 보인다.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에서, 진정한 초능력은 소방관들의 헌신과 봉사나 다름없다. 즉, 호랑이가 날개를 달았을 뿐 미래를 보는 것만으로는 특이할 게 없다는 뜻이다. 이 점이 <1초>를 다른 만화들과 구분 짓게 한다. 시니는 특별한 무엇보다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에 관심이 많다. 이를테면 시니의 데뷔작이었던 <죽음에 관하여>(2012~2013)를 떠올려보자. 이 작품은 신이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컨셉으로 진행되었는데 죽음에 대한 사유와 신파, 반전 요소를 적절히 가미해 웹툰으로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흡입력이 컸다. 이야기가 깊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냈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있었다는 뜻이다. 


우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는 소재다. <죽음에 관하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고 사건의 당사자는 우리 자신이거나 혹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 점에서 영웅의 이야기는 죽음과 연결된다. 영웅은 별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영웅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심지어는 바로 당신이기도 하다. 그러니 바로 그 ‘누구’가 없을 때 세상이 그리 풍족하지 않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죽여서는 안 되며 계속해서 살아갈 것을 시니는 말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에서는 자기를 포기하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이기적인 태도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네가 없는 세상>(2013~2015)에서 시니는 ‘너’라는 개념이 사라져버린 세상을 묘사하는데, 이는 ‘누구’를 가리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사람들 간에 공통점을 찾을 수 없게 된 풍경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실들에 공감을 표하는 일이 불가해짐에 따라 세상은 한껏 ‘이기적’이 되고야 만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을 두고서 우리는 영웅이라 부르며, 영웅은 소위 자신의 생명보다 타인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이들이다. 즉, 영웅은 ‘누구’를 가리키기만 할 뿐 자신을 구하려 하지는 않는 듯 보인다. 여기서 질문점 하나, ‘이기적’의 반대말이 ‘이타적’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에 공감하는 일은 꼭 이타적인 것일까? 타인을 구하는 일은 자기를 구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기심의 일종이기도 하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집중하는 시니의 작품은 대체로 타인에게서 자기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보편적인 공감 능력을 발휘한다는 점에 중점이 있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두고서 벌어지는 일을 묘사하는 <1초>는 ‘이기적’이라고 여겨지는 몇몇 사건들에 공명하는 듯한 느낌이 있다. 주인공은 생명을 구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지닌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낭비로 여긴다. 즉 어느 정도는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자아실현에 관한 이기심으로 볼 수 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은 이타심일까 아니면 이기심일까. 바꾸어 말하자면, 능력을 지닌 이가 영웅이 되는 걸까 아니면 영웅이 곧 능력이 되는 걸까. 시니에게 이타심은 이기심과 딱 잘라 구분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무엇도 아닌 것은 바로 그 무엇이기도 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신을 구하는 일도 영웅의 한 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나 이는 타인의 ‘이야기’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진 근래에 깊게 다가온다. <죽음에 관하여>는 한때 웹툰계에 죽음을 하나의 장르로 만들 정도로 파급력이 컸는데, “가는 길에 이야기나 듣지”라는 문구가 밈처럼 떠돌았던 한때는 대상이 죽음에 이르고 나면 곧바로 판단을 중지해버리는 현 세태에서 너무 멀리 떠나온 것 같다. 어쩌면 <1초>는 그 점에서 사람들을 살리는 직업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사람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것, 반대로 보면 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써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필진이미지

수차미

< 만화평론가> 
* 2019 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상 신인 부분 
* 2019 한국예총 평론상 영화 부문
* 2020 서울시립대 영화평론 공모전 대학원생 부문
* 2024 부산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 저서 『안녕하세요 오즈 야스지로』,『포스트 시대의 영화 이미지』


관련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