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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뿐

온리 호프 (글, 그림 초승/네이버 웹툰 연재) flqb

2024-07-05 한유희

오직 사랑뿐

다시 돌아가도 사랑일까?

  회빙환.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장치다. <온리 호프> 또한 의문의 죽음 이후 과거로 다시 돌아오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주인공 은혜는 완벽한 남편인 도진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낸다. 물론 가족들이 환영하는 결혼은 아니었다. 평범한 어느 날, 은혜는 도진의 별장에서 지하의 비밀 공간을 발견한다. 노트북 속 동영상의 도진은 도무지 자신이 사랑하던 남편 도진이 아니었다. 언제나 다정하고 예의가 바른 도진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불타고 잔인한 표정으로 그들을 응시하는 도진은 잔혹했다.

  도진이 사람을 살해하는 듯한 모습에 불안해진 은혜는 동영상 속의 사람을 검색한다. 이미 수년 전에 실종되어 백골 사체가 된 사람이었다. 혼란스럽고 두려워하며 도진을 기다리던 은혜는 갑자기 화재에 휩싸인 별장에서 탈출하다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그 순간 걸고 있던 목걸이가 붉게 빛나고, 9년 전 도진과 은혜가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회귀한다. 9년 전, 은혜만 알고 있던 둘의 첫 만남의 모습으로 재회한 그들은 과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한 사람만 알고 있는 사랑은 과연 이전과 같이 시작될까. <온리 호프>는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파괴적인 사랑의, 사랑에 의한, 사랑을 위한

  <온리 호프>의 스릴은 은혜의 살해, 운암산 살인사건과 같은 에피소드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웹툰에서의 스릴과 공포는 등장인물들의 사랑의 방식에 있다. 도진과 은혜의 부모의 비틀린 사랑은 모든 비극과 사건을 초래한다. 분명 그들은 상대방을 끔찍하게 사랑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파멸을 앞당긴다. 사랑하기에 서로를 망가뜨리고 마는 사랑. 당신을 위한다는 배려는 지독하게도 폭력적이다. 그들은 세 가지 방향으로 향하는 파괴적 사랑을 드러낸다. 자기 자신을 파괴하거나, 주변을 망가뜨리거나, 그 상대방을 옥죄며 파괴하거나. 당연히 그들의 사랑은 모두 실패한다.

  은혜의 부모인 성훈과 한나의 사랑은 성훈의 잘못된 배려로 무너진다. 성훈은 한나를 끔찍이도 아낀다. 하지만 후배인 윤정의 계략에 빠져 잘못된 선택을 감행한다. 한나와 은혜를 위한다는 이유로 범죄에 연루되면서 자신이 사랑하던 아내와 딸을 잃게 된다. 한나가 회귀하면서 은혜는 살아남게 된다. 이후 딸을 위해 윤정과 결혼하고 살아가지만, 성훈은 자기 파괴적인 삶의 태도를 견지한다. 윤정을 혐오하는 마음을 숨기지도 않으며, 아들과 딸에게는 무심한 태도로 일관한다. 특히 은혜를 사랑하기에 밀어낸다. 자신이 죽어야만 윤정과의 관계를 청산할 수 있고, 딸을 지킬 수 있다는 태도는 얼핏 희생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신이 죽음에 이르러야만 사랑이 완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성훈의 사랑은 파멸일 뿐이다. 이미 사랑했던 아내는 죽었고, 딸은 자신의 사랑을 느낄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도진의 부모의 사랑은 더욱더 잔혹하다. 자식까지 저버리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성훈이 딸 은혜를 지키려고 하는 것과는 달리, 도진의 부모인 이준과 서현은 도진을 방치한다. 서현은 도진을 방임하고 학대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들이지만, 차마 그를 용서하지 못하며 이준을 도진에게 투영하며 점차 망가져간다. 이준은 서현과 반대로 도진을 망가뜨린다. 서현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죽일 때 도진에게 관여하도록 한다. 서현을 무너뜨린 사람들을, 아들을 통해 복수하도록 만드는 이준은 이 모든 행위가 서현을 위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살인과 방화, 모든 범죄를 저지르며 자신의 사랑을 확인시킨다.

  <온리 호프>에서 최종 빌런인 윤정의 사랑 또한 자기중심적이며, 독단적이다. 자신이 꿈꾸는 사람인 선배 성훈을 얻기 위해 계략을 꾀하고, 그를 완전히 망가뜨려 자신의 옆에 둔다. 성훈이 단 한 번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곁에 두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준의 파괴적인 사랑과는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다. 이준은 적어도 서현과 서로사랑을 했지만, 윤정은 자신만의 사랑일 뿐이다. 성훈이 한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윤정은 껍데기뿐인 성훈이라도 갖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그녀가 얻을 수 없는 단 한 가지, 성훈의 사랑은 모두 은혜에게 향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윤정은 끝없이 은혜를 경계한다. 은혜의 목숨을 위협하며 성훈을 곁에 메어놓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윤정이 자신의 욕망을 결코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성훈의 외모, 건강 등 일거수일투족 모두를 자신의 관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심지어 성적 관계에 있어서도 우위를 점하며 본인을 우선시한다. 아무리 성훈이 모질게 대하더라도 엄청난 집착과 소유욕으로 놓아주지 않는다. 자신을 혐오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욕망, 즉 소유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사랑이라는 폭력을 사랑하는 대상인 성훈에게 직접적으로 가하는 사랑을 보여준다.

혜로운 사랑

  <온리 호프>에서 욕망하면 윤정 말고도 은혜가 동시에 떠오른다. 은혜와 윤정은 쟁취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사실, 은혜의 사랑 또한 이성적인 범주를 넘어선다. 보통 자신이 죽었고, 심지어 범인이 남편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회귀 후, 도진에게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두려움과 불안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은혜는 다르다. 도진을 무조건적으로 믿는다. 도진이 살인을 저지른 것 같기에, 아예 살인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데 집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범죄자의 안위 즉, 살인과 관련한 윤리적인 고찰은 전연 배제된다.

  동시에 은혜의 사랑은 복잡한 문제 또한 쉽게 넘어가게 만든다. 은혜의 회귀했다는 사실을 도진에게 밝히는 것, 회귀 전 소원했던 아버지와의 관계 또한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큰 갈등 없이 넘어간다. 사실 서사적으로는 엄청난 전환점이자 충분히 더 끌고 갈 수 있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은혜와 도진이 사랑하기에 모든 것은 문제가 될 수 없게 되는것이다. ‘고구마로 존재해야 할 구간은 오히려 은혜가 도진과의 자극적인 사랑의 모습을 담고, 서로를 원할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만 작용할 뿐이다.

  어쩌면 <온리 호프>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환상 자체가 희망이라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모든 윤리와 법을 넘어서는,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는 지독한 사랑 말이다. 아직 알 수 없는 범인의 정체, 미스테리한 사건의 전말보다 은혜와 도진의 사랑하는 모습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그들의 낭만적인 사랑을 서사 전반에 배치해서다. 그들이 무탈하기를, 그리고 결과적으로 누구도 죽지 않고 다시 돌아가지 않는 꽉 닫힌 해피엔딩을 기대한다. 이런 사랑 이야기도 가끔 필요할 테니 말이다.

필진이미지

한유희

문화평론가. 제 15회 <쿨투라> 웹툰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2021년 만화평론 공모전 우수상 수상.
경희대 K-컬처 스토리콘텐츠 연구원으로 웹툰과 팬덤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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