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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제(路祭)

사변괴담(글, 그림 강태진/네이버 웹툰 연재)

2024-07-09 신경진

노제(路祭)

  해방 후 무주공산의 반도를 드리운 이념들은 저마다의 명분과 철학으로 새로운 세상을 선도하기 위해 이즘을 주도하지만, 여러 세력들은 철학적 명분보단 자신들의 안위에 유리한 이념을 끌어들여 숙의 없는 비난만을 서로 일삼았으며, 일제의 압력에서 겨우 벗어난 다수의 민중들은 재차 명맥만을 부지하려 여기저기 부화뇌동하는 가운데.

  유월 매미 소리가 귀청을 맴도는 희뿌연 하늘 아래 인간의 끝 모를 탐욕은 마침내 무모한 전쟁을 선포하게 되고, 그을음이 내려앉은 붉게 물든 대지 위로 아낙네들은 살림살이를 머리에 인 채, 가장은 지게에 솥을 진 채,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다리를 이끈 채 굶주림으로 피난행렬에 오르면서 무정하게 <사변괴담>은 시작된다.

진실 혹은 거짓

  실제 북한의 남침으로 발생한 6·25동란은 가치체계와 신념체계가 다른 두 이념이 충돌하여 벌어진 사상전이었으나, 그 저변에는 저열한 인간들의 다양하고 복잡한 내재적, 외재적 사건들이 누적되어 있음을, 작가는 왜정 때 사라진 사특한 놈들의 잔당을 빌려 사변의 현실을 독특하게 그려낸다. 특히 반동(공산당원이 사회주의 혁명을 반대하는 세력을 부르는 말)과 반공(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정치적, 사회적 운동) 사이 맹목적 편견의 이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몽금포에피소드는 한국전쟁의 비극과 결과를 비유적으로 담고 있어 여타 4개의 에피소드보다 서사적인 측면이 뛰어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불릴만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연유에 관하여 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은 자신의 저서 난세일기를 통해 “6·25의 시작은 한국역사의 진행에 내재하는 구조적인 문제들의 축적된 업보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진실과 거짓이 난무하는 격동의 시간 속에 갈라진 이념을 서로 으로 간주하는 무지와 그 무지에 부화뇌동하는 모습구조에서 이미 한국전쟁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다. <사변괴담>은 이러한 구조적 원인의 문제점에 픽션을 더하고 공포를 조성, 원한과 복수라는 매개체를 활용하여 누가 더 악랄한가에 대한 양자택일의 물음을 던지며 사특한 집단 백백교를 첨가해 사변의 진실과 거짓을 재빠르게 재편한다. 그러면서 사변이란 어지러운 세상 뒤에 숨어 버젓이 자행된 , 남녀를 가르고 세대를 가르고 이념을 갈라 민중들을 학살하는 행위조차 모두 죽었으나 죽지 않는 생시를 확보하려는 사이비 잔당의 악랄한 에서 비롯된 것으로 재구성하여 거짓과 진실이 교묘히 갈마들게 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독자들 스스로 판단하게끔 주체적 사고까지 요구하기에 이른다.

  결국 완전한 거짓은 진실이 없지만, 거짓에 진실을 섞었다는 말은 진실에 거짓을 섞었다는 말이고, 완전한 거짓이 아니라면 진실(영화 『댓글 부대』 中)이란 말처럼, 거짓말 같은 이야기로 실제 이야기를 거짓으로 만들고, 실제 같은 거짓의 이야기로 실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역사임을 작품은 시종일관 강조한다.

꿈인지, ‘생시인지

  생시는 완전한 거짓에 속하는 픽션이다. 작품에 내재된 생시는 중화권의 강시나 서양의 좀비처럼 이미 죽었지만 죽지 않은 존재로’, 살아있는 것과 진배없어 물리적 타격이 가능한 무서운 존재들이자 현 인류의 한계치를 극복한 신인류. 그들이 얼마만큼의 힘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여실히 밝혀지진 않았으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옥순이는 시어머니의 억압과 모진 시집살이로 비극을 맞이하고 사후 생시로 거듭난 후에 서방 백석봉을 한 손으로 압살하는 엄청난 힘을 보여주는데, 사실 이보다 더 요사스러운 점은 바로 교단이다. 교단은 신인류의 도래를 목적으로 한반도의 정국을 뒤흔들어 현 인류를 말살하면서도 한편으론 불쌍한 민중들에게 묘한 인정을 베푼다. 생시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할 판국에 고아가 된 영남이와 영순이 자매를 온전히 보내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조인호의 딸, 정임이 역시 생시로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할 짓이라며 구실을 긋곤, 오히려 그녀의 봉분 앞에서 명복을 빌어주는 등, 일련의 이상 행위들이 분분하게 탐지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작품에 흐르는 전반적인 분위기를 세세하게 비춰봤을 때, 위와 같은 장면들이 결코 모순적이진 않다. 교단의 이상 행위들을 풀이하자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혼탁한 시간 속을 내리 꿋꿋하게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씻김굿민간 학살로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진혼굿을 더불어 내포한 것으로 유사하게 해석이 가능할뿐더러, ‘갈라진 것들의 화합을 유도하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들이 한없이 풀어지도록, 작품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굿판으로 굴러가도록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혼굿

  만신 김금화 선생은 말했다. “굿은 모든 것을 정화한다.” 진실이 너무 비참하여 거짓으로 만든 괴담이 오히려 진실이길 바라며 그린 <사변괴담>, 이념 뒤로 가려진 민중의 을 기리기 위한 정성스레 만든 살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치유가 되지 않는 아픔은 전염성이 강하기에, 나조차 잠시나마 당시의 시대적, 역사적 진실이 이고 차라리 거짓 같은 생시가 진실이길 바랐다. 그래서일까,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영남이와 영순이 자매의 축 처진 모습이 아직까지도 잔상으로 남아 머릿속에 아른거리는데. 이제 그만 그들의 삶에 이 이상의 불행한 편견이 존재하지 않기를.

  그리고 아직도 이념에 갇혀 대지 위에 잠들어 있을 생시들을 위해 웹툰 <사변괴담>노제로써, 고이고이 기록되길 바라나이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허황된 이념마저 바람 따라 물결 따라 훠이, 훠이, 흘러가길, 간절히 비나이고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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